코바시 켄타

만화의 등장인물에 대해서는 코바시 켄타(더 화이팅)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1996년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레슬러
미사와 미츠하루코바시 켄타미사와 미츠하루
2003년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레슬러
커트 앵글코바시 켄타코바시 켄타
2004년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레슬러
코바시 켄타코바시 켄타코바시 켄타
2005년 레슬링 옵저버 선정 올해의 레슬러
코바시 켄타코바시 켄타미스티코

小橋建太
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러. 닉네임은 절대왕자. 더 화이팅에 등장하는 동명의 캐릭터는 이 프로레슬러에게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데뷔했다. 1985년 고교를 졸업한 뒤는 교세라에서 평범한 직장인 생활을 했으나 2년 후 1987년 2월 14일 프로레슬링에 입문하기 위해 퇴사, 같은 해 12월 16일 코라쿠엔 홀 흥행의 배틀로열 경기에 참가함으로써 데뷔했다. 하지만 본데뷔는 1988년 2월 26일이다.

데뷔 당시 세대교체 시기를 맞이한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뛰어난 경기력[1]과 보는 사람을 식겁하게 만드는 불굴의 투혼으로 "전일본 4천왕"[2]이라 불리며 정상급 레슬러로 군림했다.

이후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터지며 "프로레슬링 노아"라는 단체를 만들 당시 미사와 미츠하루에 이은 주축 멤버로서 노아의 링에 선다.

전일본 입단 당시부터 톱 레슬러가 되기까지의 일등공신은 역시 엄청난 연습량 때문이라고 전하는데 그와 관련한 에피소드 또한 많다.

연습생 시절 자이언트 바바의 심부름꾼으로서 하와이에 갔을 때 훈련만 거듭하고 있던 코바시를 보기가 힘들었던 바바가 '쉬는 것도 연습이니 쉬어라'라고까지 말했다고 하며 또한 후에 TV에서 코바시의 경기를 해설하고 있던 도중에도 '코바시는 취미가 연습'이라고 말했던 적도 있다. 또 그의 과도한 훈련을 보고 한 중견선수가 비웃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전일본의 간판 스타였던 텐류 겐이치로가 '너는 지금 웃고 있지만 곧 이 녀석(=코바시)에게 먹히는 날이 올것이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한다.

그밖에 후배 아키야마 준이나 제자 KENTA조차 코바시의 과도한 훈련량을 따라가다 못해 그만 병원에 간 적도 있다 하며, 2002년 무릎부상에서 복귀하기 전 하와이 훈련에 동행했던 KENTA가 마지막날에는 '제발 오늘은 쉬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했던 적도 있다.

여담으로 쩌는 훈련량 때문에 근육량도 많아서 신장암 수술할때 근육때문에 남들 수술 시간의 두배 가량이 걸렸다고 한다.(...)

문설트를 많이 써서 무릎부상으로 1년동안 쉬었지만 복귀전에 문설트를 썼다고 한다. 2006년에 신장암에 걸려 선수생활에 위기를 맞았지만 546일만에 복귀해서 많은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그렇지만 몇개월후 팔꿈치 부상을 당해서 쉬다고 2009년 3월에 복귀했다. 그 이후 또 팔꿈치 부상을 당해서 휴식.

전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약하던 당시는 오렌지색 팬츠를 입고 있었으나 노아로 이적하며 검은색 팬츠로 복장을 바꿨다.

봉인기 버닝 해머강완 래리어트

문설트 프레스와 오렌지 크러쉬, 하프넬슨 수플렉스, 슬리퍼 스플렉스, 롤링 케사기리 춉, 래리어트#가 그를 대표하는 기술이며, 가뭄에 콩나듯 버닝 해머라는 MAX초필살기 봉인기를 사용한다.[3][4] 알고보면 이때문에 피니쉬 무브흑역사가 굉장히 많은 선수가 바로 코바시이다. 데뷔 초창기시절 문설트를 매 경기 쓰다가 문설트 개발자와 손잡고 무릎부상으로 병원신세를 지면서 오렌지 크러쉬, 풀 넬슨 바디 시저스, 켄타키 밤[5], 다이아몬드 헤드[6] 등 이런저런 피니쉬를 쓰다가 최근엔 강완 래리어트로 완전히 정착했다. 여담으로 근육량이 일반인의 3배라고 한다.(...) 특히 그의 두꺼운 팔뚝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는 래리어트는 브래드쇼의 '클로스라인 프롬 헬'에 필적하는 위력을 보여준다.

그 외의 주력기인 하프넬슨 수플렉스는 하프넬슨 상태에서 그대로 뒤로 던지는 수플렉스. 워낙 고각으로 사용하는지라, 수플렉스 주제에 정수리가 바닥에 쳐박히는 흉악한 기술이다. 쵸노 마사히로는 이 기술을 맞아본 후 "머리에 혹이 나는 수플렉스는 처음이다"라며 애매한 감상을 밝히기도 했다.

사람 죽겠다 싶은 강력한 기술을 몇번씩 얻어맞고도 오똑이처럼 일어서는 투혼과,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맞은 이상으로 되갚아주는 화끈한 시합 운영 덕분에 지금도 최고의 인기를 얻고있다. 니코니코동화 프로레슬링 덕후들은 그의 테마인 GRAND SWORD를 국가(國歌)라고 할 정도.(...) 무한도전 WM7 9월 11일차에 오프닝으로 나오기도 했다.


미국 인디 팬에게도 많이 알려졌는데 춉을 많이 써서 '춉바시'라 불린다(...). 미국에서도 몇번 경기한 적이 있는데 ROH에서 벌인 바 있는 사모아 죠와 대결이 가장 유명하다. 원래 사모아 조가 꽤 후덕한 몸매에다 땀도 많이 나게 생긴 체질이다 보니 춉을 맞을 때 나는 소리와 사방으로 튀는 땀으로 인해 임팩트가 굉장했다. 이 경기는 ROH를 북미 제3단체로 끌어올린 여러 전설급 경기들 중 하나다. ROH를 잘 모르는 레슬링 팬들도 한번쯤은 보게 되는 명경기.[7]

2005년 사사키 켄스케와 벌인 시합에서는 무려 300발이 넘는 춉이 나왔고 5분동안 춉만으로 대결한 것으로 유명하다. 위 사진을 잘 보면 두 선수의 가슴에 벌겋게 피멍이 든 자국이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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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머신건 은 그의 엄청난 근성을 잘 나타내 주는 대표적인 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미국에서 춉의 달인이 릭 플레어라면 일본에서는 당연히 코바시가 뽑힐 정도.

보통 선수들은 한번만 당해도 선수생활이 위태로울 몸의 이상(신장암, 무릎부상, 팔꿈치부상 2번)을 여러번 뚫고 복귀했고, 평상시 보여주는 엄청난 파이팅 때문에 철인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또한 '절대왕자'라는 별칭은 일본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장기간, 최다횟수 타이틀 방어 기록'(13회)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붙은 것이다.

다만 프로레슬링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탓인지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결혼을 하지 못했고근데 자서전 보면 연애는 엄청 오래하셨다, 몸이 성한 곳 하나 없는 만신창이여서 팬들은 미사와 미츠하루 같은 불행한 사태가 닥칠까 우려하고 있다. 공공연히 은퇴를 말하는 팬들이 있을 정도. 물론 막상 닥치면 엄청나게 아쉽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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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5일에 결혼을 발표해 프로레슬링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신부는 전 아이돌이자 현 엔카 가수인 미즈키 마이로 7살 연하라고 한다. 두 사람은 같은해 10월 2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예전에 코바시는 게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었는데 위키는 믿을게 못된다면서 2ch등지에서 나오는 헛소문을 더 맹신하는 일부 몰지각한 팬들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소식일 듯 싶다.[8]

그리고 2012년 12월 9일 흥행에서 은퇴 발표. 일본 언론 기사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프로레슬러를 그만둘 수 밖에 없다면서 은퇴 의사를 밝혔다. 팬들 중에서도 그의 몸 상태를 걱정하여 은퇴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역시 대부분은 그래도 아쉽다라는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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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경기는 2013년 5월 11일 무도관으로 잡혔다. 이 시합의 예매표가 발매 5분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2013년 5월 11일 무도관에서 은퇴시합 'FINAL BURNING in Budokan'이 열렸다. 코바시는 마지막 시합 8인 태그매치에 출전했다.

태그팀 멤버는 무토 케이지, 사사키 켄스케, 아키야마 쥰 등 같은 세대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했다. 한편 상대팀은 KENTA, 시오자키 고, 카네마루 요시노부, 마이바하 타니구치 등 쟁쟁한 후배들이었다.

아무래도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만큼 파워밤이나 버닝 해머 등 코바시의 살인기한방을 제대로 어필할 기술은 나오지 않았으나, 카네마루에게 문설트 프레스를 작렬해 핀폴승을 거뒀다. 무릎은 당연히 언급할 것도 없고 온몸 어디 성한 곳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기어코 피니쉬를 문설트 프레스로 택한 점이 절대왕자다운 마무리였다.

은퇴 이후로 정치가로 간다는 루머도 있다. 프로레슬러 출신 의원인 하세 히로시가 좋게 보고 있고.은퇴 파티때는 무려 전 총리인 간 나오토까지 와서 축배를 들었다고 한다.물론 일본 민주당은 완전 나가리가 되었지만..;

다행히정치쪽으로는 안가고 모대학에서 교수를 하고있고 일년에 한번쯤 자신이 프로듀서 하는 프로 레슬링 경기를 열기도 한다. 은퇴후 많은 단체에서 경기를 보고 거기서 쓸만한 선수들을 매치 시켜서 흥행을 하는데 경기의 질이 높아서 많은 관객을 동원한다.역시 코바시가 노아 사장이 되었어야 했어

AKB48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쿠라모치 아스카가 광팬이라서 나왔다고 한다. 케니 오메가도 같이 출연.
쿠라모치 아스카 졸업 콘서트에서도 방문 격려를 해주었다고 한다.

대단한 인품의 소유자로 전일본 이탈했을때 코바시가 미사와를 지지 안해주었다면 노아는 미사와의 원래 계획대로 중소 단체가 되었을 것이다. 거기에 팬서비스도 엄청나서 경기후 사인 받으로 오는 사람들을 사양하지 않고 다 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제자였던 시오자키 고의 말에 따르면 100미터 가는데 1시간이 걸렸다고.(...) 그리고 사내 파벌이나 정치에도 관심이 없어 미사와가 죽고 내란에 휩싸였을때도 그냥 연습하고 있었다고 한다.
  1. 프로레슬링 평론가인 멜쳐로부터 두 번째로 많은 별 5개 경기를 만들어낸 레슬러이다. 1위는 라이벌인 미사와 미츠하루.
  2. 미사와 미츠하루, 코바시 켄타, 카와다 토시아키, 타우에 아키라 4명이다. 이후 아키야마 준이 가세하면서 5강(五強)이 되었다.
  3. 아르젠틴 백브레이커(=토처랙) 자세에서 옆으로 몸을 기울여 머리부터 고각으로 떨어뜨린다. 인버티드 데스벨리 드라이버라고 보면 되는데, DVD가 WWE금지 기술이면 이건 그냥 살인기 수준.
  4. 실제로 이 기술은 코바시의 커리어에서 총 5번 나왔고 미사와 미츠하루가 3번, NOAH 창단이후 최고 에이스였던 아키야마 준이 2번 맞았다. 작렬한 경기는 전부 승리. 변형 기술인 리스트 클러치식 버닝해머의 경우 역시 전일본 최강의 사나이었던 타우에 아키라와 자기 제자이자 NOAH의 주니어 헤비급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KENTA를 합처 딱 2번. 즉 버닝 해머는 커리어내내 10번도 안쓴 기술이라는 것이다. KENTA의 경우 결혼하는게 부러워서(...) 썼다는 소리도 있다.
  5. 펌프핸들 자세에서 그대로 싯다운 파워밤. 본인은 기술 이름을 짓지 않았으나 어떤 프로레슬링 기자가 본인의 동의 없이 이름을 붙인 것에 격분해 봉인.
  6. 파워밤자세에서 사이드워크 슬램으로 연결하는 기술. 그러나 첫 시도때 실수를 저질러 가네마루 요시노부가 늑골골절을 당하고 그대로 봉인.
  7.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 2005년 올해의 경기에 선정되었다.
  8. 코바시 외에도 게이 의혹을 사고 있는 프로레슬러가 몇몇 있긴 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