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장비지휘검열

연 1회 행해지는 군용 장비에 대한 검열. 전장비, 전지검, 지휘검열 등으로 통한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보통 검열자체보다는 검열이 있을 때까지 짧게는 일주일에서 길게는 한달동안 일하는 기간을 의미한다. 특히나 기갑, 포병, 공병, 통신 등 크고 아름다운 장비를 사용하는 보직, 혹은 부대일수록 이 준비기간이 길어지며 고생의 양은 장비의 크기와 복잡도에 비례한다. 말년이나 신병을 제외하고는 이 기간동안에 휴가 나가면 공공의 적이 된다.

대체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검열을 앞두고 장비 정비를 해야하는데, 이게 지금 사용해야 하는 장비라는 게 문제다. 어느 수준이냐하면, 개인별로 지급되는 총도 싹 정비하고 검열 전날쯤 되면 몇 개만 돌려쓴다. 그리고 검열날 아침 돌려쓴 총만 마무리로 정비하여 검열 받는다. 총은 물론이고, 생각보다 장비가 많은 군대 특성상...

있는 장비는 닦고 조이고 기름치고 도색해서 새걸로 만들어 놓고, 없는 물건은 에서 나무 베어오고 철봉자르고 에서 줍고 다른데서 뽀려서(…) 채워넣는다. 보통 점검날짜가 다른 옆 대대에서 모자란 걸 빌려와서 검열받고 나면 그쪽 대대에서 모자란 걸 우리가 빌려주는 식이다.

국방색이나 위장패턴은 다 도색하지만, 일선 내무반에서 사용되거나 일일히 칠하기 번거로운 검은색은 구두약으로 해결한다! 심지어 녹까지 위장시키니 새삼 군대에서 새롭게 배우는 생필품 사용법중 하나.

한번 하고 나면 장비들이 겉보기에 방금 출고한 장비처럼 변신하지만, 작업중에 부품이 사라지거나 말 그대로 겉보기에만 멀쩡해 보이도록 이상한 처치를 해서 실제성능은 더 하향조정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루티드? 예를 들면 장비가 녹슨 것처럼 보인다고 페인트나 락카칠 등으로 겉만 멀쩡해 보이게 처리하는 것. 장비 종류가 단순한 받침대 같은 거라면 그러한 처치가 아주 문제될 건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뭐... 칠 벗겨진 야전삽에 구두약을 칠하는 건 예사중의 예사.

새빠지게 분해 다 해서 구석구석 손질해 놓으면 검열관은 겉모양만 슬쩍 훝어보고 돌아가면 맥빠지지만, 검열관이 꼼꼼히 살펴본다면 그건 그것대로 무섭다.(…) 예를들어 보병연대 수송대에 전지검을 나와서 군지사정비대 준위가 하부에 들어가서 직접 구리스 주입을 해보던가 후져보이는 차량 한대를 뽑아서 타고 다니더니 각종 지적사항을 내 놓는다. 물론.... 그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분대장은 바가지로 욕을 먹으며 그날 분대 결산은 지옥이 될 것이다.

사실 검열하는 입장에서는 꼼꼼하게 본다. 단지 검열결과를 지휘관에게 안 알려서 그렇지. 알리면 정말로 그 부대 뒤집어진다.

또 하나 의무대 검열은 보통 군의관이나 약제관 등 의무계 장교가 나와서 검열하게 되는데 안쓰는 약 등은 본 체 만 체 할 때가 많지만 많이 쓰는 약들[1] 같은 경우엔 보급계의 출납 장고처럼 처방전과 군의관 컴퓨터 처방을 대조해 보며, 심한 경우엔 "약통 까! 약 다 쏟아! 다 세!"타이레놀 한 병에 1000알씩 들어있는데 언제 다 세!!! 이 개XX야!! 이 세 마디로 의무대를 쳐바를 데가 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이 정도로 끝나지만, 군수나 각종 장비를 담당하는 병사들의 경우에는 그냥 장비를 검사하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정밀장비나 중장비의 경우는 부품 자체의 상태뿐만 아니라, 예비부속의 확보여부나 부족분 청구현황, 연간/분기/월간 정비현황과 그 기록 등등, 정말 별 사소한 걸 다 살펴본다. 평소에 서류작업을 소홀히 했다면? 와! 야근이다~ 덕분에 야산에 멀쩡한 부속을 파묻는다거나 반대로 비밀의 장소에서 듣도 보도 못한 물자가 튀어나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왜인고 하니, 원래 예비부품은 지정된 품목을 지정된 양만큼만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이걸 항상 유지해야 한다. 지정된 품목에 없는 부속은 정비소요가 없다면 반납이 원칙이지만, 이게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닐뿐더러 군대란 곳은 없는 물건을 필요한 때에 제때 보급받기가 아주아주아주 어려운 곳이다. 심지어 사소해 보이는 차량용 볼트/너트 같은 소모품마저도 운이 없으면 청구품이 불출되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할 지경이다. 따라서 만일을 대비해서 남는 건 검열때 숨기는 경우가 태반. 특히 장부에는 없는데 창고에 있는 유령부속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감춰야 한다. 그리고 별로 쓸데없는 물건은 쓸데없이 보급도 잘 나온다는 게 함정

경험자의 말로는 자신의 부대에 사용하지 않고 폐쇄한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데, 행보관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니 엄청난 양의 물자가 쌓여있었다고 한다. 검열을 준비할 때 이곳으로 물자가 들락날락 했다고. 중장비를 이용해서 단번에 파고 비닐시트로 포장해서 묻고 깔끔하게 다지기까지 한다. 포크레인이나 로더등이 풍부한 공병부대라면 순식간.

혹시 본인이 전산실이나 교환대에서 상주해야하는 인원이라면 바닥의 액세스 플로어를 까보자. 통신장비 수리부속은 기본이요. 언제썼는지도 모를 다 삭아가는 교범 및 잡지, 혹은 전역자가 남겨둔 물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수있다. 2011년 모 사단 연대 교환대에서 근무한 어느 위키러의 경우 액세스 플로어 바닥에서 무전기용 부속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고...

모 수송대는 검열 당일에 적절한 사유로 트럭 한 대 배차내서 그 트럭 화물칸에 잉여부속을 다 실어버리고 하루 종일 밖에서 놀다 오게 시키기도 했다. 효과는 만점.

이 모든 기록들은 그나마 안전장치로서 부대와 후임병의 안위를 걱정하는 선임병들이 조치를 취한 경우이고 수리부속계원이 2년치 검사작업지시서, 검작지를 재고번호도 쓰지 않고 가라로 날짜만 적어놓고 튀어버리고 다음 T/O 신병이 그 2년치 검작지를 1년동안 써놓고 전지검을 받은 다음 남은 1년간 놀다 전역하고 그 다음 신병이 1년후 전지검을 대비해 2년치 검작지를 1년동안 쓰고 남은 군생활 1년을 놀고..역사가 반복된 부대도 있었다..(...)

재력이 좀 있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간부나 군무원 중, 아예 검열때 확인하는 장비는 사용하지 않고 A급을 유지하게 고이 모셔두고, 자비로 사제 장비를 사서 쓰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것은 주로 정비고의 공구 같은, 사제로 사용해도 문제 없는 장비 한정.

주호민이 그의 출세작 에서 이 전투장비지휘검열을 실제 상황에서 가감없이 아주 담백하게 묘사하였다. 백미는 구두약으로 호루를 칠하고 연탄을 으깨어 물에 섞은 급조된 염료를 타이어에 발라놓은 것. 행보관 지시로 발랐는데, 정작 검열관에게 타이어에 연탄 바른걸 지적당하자 행보관이 "애들이 의욕이 넘쳐서 그런거니 귀엽게 봐달라"면서 감싸주는척하면서 누명씌웠다.(...)
  1. 타이레놀, 아스피린 같은 진통제류, 각종 소화제류, 많이 쓰는 건 아니지만 부작용 많이 타는 항생제류, 자해 도구가 될 수 있는 주사기 바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