田惠麟
1934-1965.
한국의 번역가이자 수필가.
1934년 평안남도 순천군에서 태어났다. 법률가인 전봉덕(田鳳德)의 1남 7녀 중 장녀이다. 전봉덕은 일제강점기 때 경찰 고위간부를 지낸 친일파로 경성제대 법문학부 법과 재학 중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 행정 양과를 패스하고 일본 경찰 최고위직인 경시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8.15 광복 후에는 친일파 경찰들이 많았던 헌병 조직에 들어가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를 수사하면서 사건을 축소/은폐한 의혹이 있다.(?)
1952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1955년 전공을 문리과대학 독어독문학과로 바꾸고 독일로 유학하였다. 1959년 독일 뮌헨대학 독문학과를 졸업하고 이 학교 조교로 근무하였다. 유학 중이던 1955년 가톨릭에 귀의하여 막달레나(Magdalena)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이듬해 법학도인 김철수[1]와 혼인하여 딸 정화를 낳았다.
1959년 5월 귀국하여 경기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이화여자대학교의 교사와 강사를 거쳤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강사를 지낼 때는 서울대학교 독문학 동아리인 독우회를 지도하였다. 이 때 독우회의 멤버로는 노태우 정권의 실세이자 노태우의 처 김옥숙 여사의 고종사촌 동생인 박철언[2]이 있었다. 1964년 성균관대학교 조교수가 되었다.
독일 유학시절부터 헤르만 헤세 등 독일작가들의 작품을 수 권 번역한 바 있으며, 사망 이후 수필집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발간되었다.
1965년 1월 11일 31세로 자살하였다. 요절한 천재의 사례 중 하나이며 지금도 한국 문학사를 거론할 때 자주 거론되는 대표적인 여류작가이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천재'라는 칭호는 좀 과장된 면이 있다. 아주 젊은 나이에, 무척 잘 나가고 있을 때 자살한 여성이라는 존재가 1960년대 한국에 굉장히 드문 것이었기 때문에 당시 매스컴이 소란을 피웠던 것이다. '천재'라는 칭호는 아이큐나 학력이 아닌 '실적'으로 증명되는 것인데, 전혜린은 따지고 보면 수필집과 헤세 번역정도밖에 없다. 이 정도로 천재라면 천재는 굉장히 많다. 단 허명이든 뭐든 죽음 이후 수십년간 천재로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사실 정도만 기록해두는 것이 공평할 것이다.
2004년에 방영한 EBS 드라마 명동백작과 지금도 마로니에는 에서 전혜린의 일생을 간략히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