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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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역대 종법사
1916년~1943년1943년~1962년1962년~1994년1994년~2006년2006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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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대각 여래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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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송 규 (宋 奎)
1900년 경북 성주군 초전면
1962년
종법사 재임1943년 - 1962년
법호정산(鼎山)
본관야성 송씨
속명도군(道君)
구산 송벽조(久山 宋碧照)
준타원 이운외(準陀圓 李雲外)
한 울안 한 이치에

한 집안 한 권속이
한 일터 한 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

-정산종사 게송

1 개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수제자.
일제강점기 말기와 해방 초기 및 6.25 전쟁 시기 원불교를 이끌었던 원불교의 2대 종법사. [1]
원불교에서는 "정산 종사"라고 호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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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생

"송규는 보통사람의 지량(知量)으로 능히 측량할 인물이 아니다. 내가 그를 만난후로 그로 인하여 크게 걱정하여 본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나 내가 시켜서 아니한 일과 두번 시켜 본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그의 마음이 되고 그의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 되었다"
- 소태산 대종사, 대종경 신성품 18장
" 내가 이 세상에서 본 한국인의 얼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익산 원불교 총부에서 본 송정산 선생의 얼굴이었다. 평생을 두고 잊을 수 없는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이 얼마나 닦고 닦았으면 지혜와 자비로움이 넘치는 그런 얼굴을 가질 수 있을까에 감동했다"
- 숭실대 안병욱 교수 (동아일보 기고)

경북 성주 사람으로 8세부터 한문을 공부했다. 인류를 구제하는 인물이 되겠다는 뜻을 품고 스승을 찾아다녔는데, 마땅한 인연을 찾지 못하고 전라도까지 건너오게 되었다. [2]

1917년에 정읍 화해리에서 소태산 대종사를 처음으로 만났고, 이듬해 대종사가 있는 영광으로 찾아가 사제의 연을 맺었다. 당시 제자들 중 나이는 가장 어렸으나 수제자로 인정받았으며 대종사는 그를 "우리 회상의 법모(法母)"라고 칭찬했다.

이후 대종사를 보필하여 원불교의 교리를 제정하고 기반을 닦는 데 공헌을 하였으며, 1943년 대종사 열반 후 후계 종법사가 되었다.

일제말기 어려운 시국에서 원불교를 지켜내었으며, [3] 해방 후 '원불교' 교명을 확정하였다. [4] 해방직후 혼란한 사회에서 전재동포 구호사업을 펼쳤고, 6.25 전쟁 등 험난한 시기를 이끌었다. 1961년 4월에 삼동윤리를 발표한 뒤 이듬해 열반했다.

정산 종사의 법문을 수록한 정산 종사 법어는 소태산 대종사의 법문집인 대종경과 더불어 원불교 교서로 쓰이고 있다.

그 외 <원각가>, <불법연구회 창건사>, <건국론>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3 삼동윤리

- 동원도리 : 세계 모든 종교가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근본적 진리는 모두 같다는 의미
- 동기연계 : 모든 인류와 생령들이 이름은 다르지만 한 기운으로 연계된 동포라는 의미.
- 동척사업 : 각종 사업과 주장이 서로 다르고 모순되어 보이지만 궁극적 목적은 더 좋은 세상의 개척으로 동일하다는 의미.

정산종사의 대표 사상으로, 이렇게 모두가 하나인 것을 알아서 서로 대동화합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4 기타

  • 동생인 주산 송도성 종사[5]와 더불어 원불교 최고법위인 대각여래위로 추존되었다. 2016년 현재 역대 대각여래위는 소태산 대종사를 포함해서 총 6명으로, 형제로써는 유일한 사례.
  • 상기 이유로, 성주군 초전면 정산종사 탄생가는 '두 명의 여래를 배출한' 원불교 성지다. 원불교 5대성지 중 소태산 대종사와 관련된 곳이 아닌 유일한 성지. 2016년 사드 배치 장소가 원불교 성주성지와 불과 500 미터 떨어진 곳으로 선정되어 논란을 빚고있다. 당연히 원불교에서는 반발하고 있다. 원불교 입장에서는 소수종교의 서러움이라고 볼 수 있다.
  • 대부분의 신흥종교가 창시자 사후에 분열되거나 멸망했음을 생각하면, 역사적으로도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그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이 과정에서 증산계통 종교 중 하나인 보천교의 교조 차경석을 만나기도 했으나, 올바른 도인이 아니라 판단하고 떠났다
  • 대종사 열반 당시 일제에서는 "불법연구회(원불교)는 이제 끝"이라 생각했다. 당시 대부분의 신흥종교가 창시자 사망후 망하거나 제자들의 갈등으로 분열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었다. 정산 종사 취임 후 대종사 열반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운영되는 불법연구회의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 대종사 당시의 공식 명칭은 '불법연구회'였다.
  • 소태산 대종사의 사위이자 정산 종사의 동생으로, 대종사의 법문을 기록하여 남기는 등 원불교 초창기 기틀을 다지는 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전재동포 구호사업의 총책임자이며 이 때 과로로 병을 얻어 4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