井田制
1 개요
정전법(井田法)이라고도 한다.
기록상 등장하는 중국 최초의 토지제도이다. 《주례(周禮)》, 춘추 등에서 언급된다. 맹자의 저술을 모은 《맹자》에서 맹자는 주공단이 이 제도를 정비했다고 주장했으며, 이것이 주나라의 토지제도이며 이상적인 제도로 보았다. 하지만 그 실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맹자의 영향으로 후대에도 지속적으로 정전제 논의가 나오게 된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친절하게 설명해 드립니다.
2 제도
사방 1리의 사각형 토지(1정=900무)를 우물 정(井) 자 모앙으로 9등분 한다. 9등분 된 토지는 공전과 사전으로 나눈다.
- 사전(私田) : 9등분 된 토지에서 100무 씩을 8가구가 각각 나눠가져 경작한다. 사전의 수확물은 스스로가 가지게 된다.
- 공전(公田) : 중앙의 100무의 토지이다. 공전은 공유지로서 정전에 소속된 8가구가 공동으로 경작하고, 이 토지의 수확물은 모두 세금으로서 나라에 바친다.
정전제의 한 구획은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사방 135미터의 길이를 가지는 정사각형으로, 182a(아르)에 해당한다.
3 후대의 영향
왕망이 실시한 왕전제, 그리고 후대의 균전제는 정전제의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이후로도 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조선에서는 토지 배분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될 때 정전제나 정전제를 개수한 토지 제도 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나온다. 박제가도 저서인 북학의에서 정전제를 언급한다..
후대인들이 보기에는 공산주의의 집단농장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는 듯. 그래서 이 제도를 주장하는 유자들은 공산주의자라는 드립도 나오고 있다(...).
4 창작물에서의 정전제
육룡이 나르샤에서 '계민수전(計民授田)'이라는 이름으로 정전제가 등장한다. 정도전과 조준 등이 주축이 되어 추진한 정책이다. 하지만 반발 끝에 타협적인 정책인 과전제로 마무리되고 만다.
무명 조직의 지도자와 정도전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무명 조직의 지도자는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 온 것은 땅을 더 얻고자 노력하도록 만드는 개인의 이기심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도전은 정전제를 통해 땅을 더 얻을 수도 없지만 빼앗길 수도 없는 세상을 만들어 평등의 기반 위에 성리학적 이상이 구현된 세상을 만들겠다고 답변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적 입장을 각각 대변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