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전제

중국의 북조인 북위(北魏)에서 시작해 북제(北齊) 북주(北周)로 이어저 (唐)시대 까지 약 300여년간 시행되어온 토지제도

토지 지급 및 조세 징수제도로, 북위의 효문제가 처음 시행했다. 국가의 차원에서 한 사람의 대토지 소유를 억제하고, 토지의 분배와 회수를 반복하여 조세 수입의 극대화를 위한 제도였다. 그 내용을 보면,

  • 15세 이상 남성에게 노전(露田)80무 및 상전(桑田)20무나 마전(麻田)10무를 지급한다.
  • 기혼 여성에게 정전(正田)20무, 배전(倍田)20무, 마전(麻田)5무를 지급한다.
  • 경작용 소1마리마다 정전(正田)30무・배전(倍田)30무를 지급하며, 소의 숫자는 4마리로 제한한다.
  • 원택지(園宅地)로써 양인3인에게 1무, 노비5인에게 1무를 지급한다.
  • 조세로 한 부부에게 곡물2석, 특산물로써 비단1필이나 마포1필의 세금을 부과한다. 미혼 남성에게는 이것의 1/4, 노비에게는 1/8, 소에게는 1/20을 부과한다.

그러나 이때는 노비에게도 평민 성인남자 할당량의 절반에 상당하는 토지 보유를 인정했으므로, 호족들은 대규모 노비 소유를 통해 대토지 소유 억제책을 피해갈 수 있었다. 토지의 균등한 배분보다 노동력을 완전히 활용하여 세수입을 확보하는데 주안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수나라, 당나라가 보완하고 계승했으며, 당나라는 이 균전제를 토대로 사회의 지위나 나이등에 따라 토지를 지급했으며, 그에 따라 농민들은 1년에 강제 노역20일(하루에 비단3척씩으로 대납가능) , 특산물로 내는 공납(비단2장과 진면3냥), 토지세로 곡물2석 등을 내야했다.

당나라는 정남(21-59세)에 대하여 전1경을 지급했으며, 그중 20무는 영업전으로 자손 상속을 허용하고 나머지 80무는 구분전으로 본인이 사망하면 국가에 반납하도록 하였다.

당대에는 농병 일치를 원칙으로 함에 따라 부병제로 인한 군역을 수행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