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조 : 제네시스
왼쪽부터 마이크 러더퍼드, 필 콜린스, 피터 가브리엘[1], 토니 뱅크스, 스티브 해킷.
영국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유래는 창세기.
1 결성
1967년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차터하우스 스쿨의 학생이었던 피터 가브리엘과 토니 뱅크스가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 당시의 멤버는 보컬의 피터 가브리엘, 키보드의 토니 뱅크스, 기타의 안소니 필립스, 베이스의 마이크 러더포드, 드럼의 크리스 스튜어트였다.
1969년 학교를 졸업하고 그들은 데카 레코드를 통해서 <From Genesis to Revelation>을 발매한다. 앨범을 녹음할 당시에 결성멤버 중에 크리스 스튜어트는 빠지고 존 실버가 대신 들어온다. 이들의 데뷔앨범은 프로그레시브 앨범이라 하기에는 다소 팝적인 성향인 짙고 완성도 자체도 많이 떨어졌다. 이후 제네시스 멤버들은 조금 더 복잡한 음악을 하기로 결심했다.
1.1 첫 번째 전성기
그들은 1970년에 2집 <Trespass> 앨범을 발매한 이후에 멤버를 소폭 교체한다. 안소니 필립스가 무대 공포증[2]을 이유로 밴드에서 탈퇴하게 되고 그 뒤를 이어 프로그레시브 록계의 투 스티브 중의 한 명인 스티브 해킷, 그리고 아역배우 출신의 천재 드러머 필 콜린스가 들어오게 된다. 그들의 가입과 더불어 피터 가브리엘의 음악적 천재성이 빛을 서서히 발휘하기 시작한다.
피터 가브리엘은 밴드 이름에서도 알수 있듯 성경에 바탕을 둔 묵시적이고 난해한 작사가 특기였다. 또한 작곡에 있어서도 다른 멤버들에 비해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제네시스의 음악은 클래식에 바탕을 둔 심포닉 록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그들의 음악은 라이브 시 스티브 해킷과 필 콜린스로 대표할 수 있는 멤버들의 뛰어난 연주력과, 화장으로 대변되는 피터 가브리엘의 다양한 퍼포먼스로 대중들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 있었고 이는 시에트리컬 록 혹은 오페라틱 록의 원형으로 자리잡게 된다.
1.2 갈등
1971년부터 제네시스의 초기 4장의 명반인 <Nursery Cryme(1971)>, <Foxtrot(1972)>, <Selling England by the Pound(1973)>,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1974)> 등을 통해서 그들은 실력과 인기 양쪽으로 최고의 인기밴드가 되었으나 멤버들 사이에는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구성원 모두가 전부 뛰어난 뮤지션인 가운데[3] 피터 가브리엘의 원맨밴드화는 심해져 갔고, 그 때문에 다른 멤버들은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1974년에 발매된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에 이르러서 절정에 달한다.[4] 이 앨범이 발매된 이후 피터 가브리엘은 1975년에 밴드를 탈퇴한다.
1.3 수습기
밴드의 보컬이자 리더인 피터 가브리엘이 떠나고 멤버들은 피터 가브리엘의 대체자를 찾아야 했다. 그들은 먼저 오디션을 통해 보컬을 구해보려고 했으나 약 600명에 가까운 인원을 만나 보았음에도 그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상의 끝에 드러머인 필 콜린스에게 보컬을 같이 맡기기로 하고 라이브 시에는 필 콜린스를 대신한 세션 드러머를 쓰기로 결정한다.[5]
그렇게 피터 가브리엘이 밴드를 떠난 이후에 1976년 4인 구성의 첫 앨범인 <A Trick Of The Tail>을 발매한다. 사람들은 피터 가브리엘의 음악적인 공백을 메울 수 없다고 여겼지만, 필 콜린스는 이 앨범에서 사람들의 그런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킬 만큼 피터 가브리엘의 공백을 완벽히 메워준다.이 앨범 이후 바로 그 해 12월에 발매된 <Wind & Wuthering>을 끝으로 스티브 해킷도 솔로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탈퇴하고 마이크 러더포드가 기타도 맡게 되면서 3인조로 개편하게 된다.
1.4 전환기 : 프로그레시브에서 팝으로
3인조로 개편한 뒤 제네시스는 프로그레시브의 색채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1981년에 발매한 <Abacab>을 시작으로 팝밴드로 변신을 시작한다. 동명의 타이틀 곡은 팝이나 다름없는 멜로디에 전자음이 들어가 그들의 골수팬들을 당황시켰다. 그리고 이 해에 필 콜린스는 솔로로 데뷔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제네시스의 그 드러머가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제네시스와는 너무나도 다른 미성의 소울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1983년에 발매한 <Genesis>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밴드에서 팝밴드로 새출발을 선언하는 이정표와 같은 앨범이었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클래시컬한 곡은 더 이상 없었고 드럼머신과 전자음으로 상징되는 팝음악의 요소로 가득찬 앨범이었다.[6] 그리고 멤버들은 제네시스가 아닌 각자 솔로로서 활동에 치중하기 시작하여 앨범을 발매하는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게 된다.
1986년에는 싱글 <Tonight, Tonight, Tonight>을 통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등극하고, 영국 축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4일간 콘서트를 개최하여 75000석 매진을 기록, 당대 최고의 팝밴드로 등극했음을 알린다. 이후 1991년에 필 콜린스는 <We Can't Dance>를 끝으로 밴드를 떠나고 남은 두 명의 멤버는 레이 윌슨이라는 보컬을 영입해 앨범 <Calling All Stations>을 발매하지만 평론가, 팬 모두에게 혹평을 받으며 이들의 흑역사로 남게 되었다.
1.5 현재
필 콜린스는 2006년에 제네시스에 다시 복귀했다. 새로운 앨범은 발매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콘서트 위주로 활동을 했으나, 필 콜린스가 척추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해 드럼 연주가 불가능해지면서 이들의 활동도 휴지기에 들어갔다. 2010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지만 헌정식에 피터 가브리엘은 오지 않았다. 현재 필 콜린스가 드러머 뿐만 아니라 솔로로서도 완전히 은퇴를 선언했기에 활동 재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2 영향력
처음에 서술한 것 처럼 이들은 프로그레시브 록에 극적인 요소를 도입하였다. 보컬 피터 가브리엘은 라이브 시 극적인 요소를 강조하고자 다양한 분장[7]을 보여주고 1인칭 모노드라마처럼 가사에 연극 대사를 넣어 혼자서 연기하는 것 처럼 노래를 불렀다. 이런 그들의 특성은 특히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프로그레시브 록 계열에서 이들은 시조로 대접받는다.[8] 그 외에도 네오 프로그레시브라 할 수 있는 마릴리온[9]이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인 드림 시어터도 제네시스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언급하고 있다.
- ↑ 영국인이기 때문에 피터 게이브리얼이라고 쓰는 게 맞다. 하지만 이 표기를 쓰는 곳이 '가브리엘'보다 훨씬 적다.
- ↑ 의사가 권했다고 한다. 안소니 필립스는 탈퇴하나 초기 제네시스 앨범들인 Nursery Cryme부터 Selling England By The Pound 까지의 앨범들은 안쏘니 필립스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때문에 이 앨범들을 좋아한다면 안쏘니 필립스의 솔로 앨범도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 ↑ 1980년대에 솔로데뷔로 팝계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로 부상한 필 콜린스는 차치하더라도, 기타리스트인 스티브 해킷의 솔로 앨범을 들어보기 바란다. 물론 토니 뱅크스와 마이크 러더포드도 앞에 두 사람보다는 솔로활동은 적었지만 각 개인으로만 봤을때는 대단한 뮤지션들이다.
- ↑ 이 앨범은 Foxtrot 앨범과 더불어 피터 가브리엘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프로그레시브 록 음반들 가운데에서 제일 난해한 음반으로 손꼽힌다. Rael(라엘)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의 몽환적인 여행기를 앨범 전체에 걸쳐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통 제네시스의 음반을 추천할 때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워 이 앨범은 잘 추천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앨범이 일본에 발매되었을 때 너무나도 난해한 가사로 정신과 의사가 일본판 부클릿에 앨범 해설을 쓰기도 했다.
- ↑ 1976~77년에는 예스의 빌 브루포드, 이후에는 웨더리포트와 프랭크 자파 밴드의 드러머인 체스터 햄튼이 라이브 세션드러머를 맡게 된다.
- ↑ 물론 장르를 프로그레시브가 아닌 팝으로 보았을땐 음반 자체의 평가는 높은 편이다.
- ↑ 피터 가브리엘이 분장을 한 캐릭터들은 굉장히 다양하다. 몇 개 예를 들자면 The Musical Box의 노인, Foxtrot 앨범 표지의 여우, Supper's Ready 후반부의 악마, 그리고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 앨범의 주인공인 Rael.
- ↑ 대표적인 밴드로는 이탈리아의 라떼 에 밀레.
- ↑ 제네시스의 86년 곡인 'Land Of Confusion'을 리메이크를 할 정도로 밴드원들이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