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바 쇠뇌병

영문 : Genoese Crossbowmen
이태리어 : Balestrieri genovesi
c5de4a7cfc9c2a0ae16e77decc6f6947.jpg

1 개요

제노바 쇠뇌병이라 불리는 용병집단은 중세시대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용병집단 중 하나였다. 묵직한 대형방패인 파비스와 제노바제 쇠뇌로 무장을 한 이들은 제노바 공화국의 주요 수출품 중 하나였으며, 다양한 전장에서 활약했으며, 이탈리아가 중세 시대에 용병으로 유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노바 쇠뇌병은 다른 이탈리아 용병들과 차별되는 독자적인 취급을 받는다. 흔히 말하는 떠돌이 유랑집단 같은 용병단은 아니었다는 이야기. 란츠크네히트와 달리

2 등장

이탈리아에서는 중세 중기 이후로 자치권을 도시국가들이 발달하면서 도시간의 분쟁이 발발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는데, 영토가 작지만 부유한 도시국가들은 병력을 외부에서 고용하는 용병들로 군사력을 유지해왔다. 초창기에는 노르만, 슬라브, 게르만족 기사 등 외국인을 고용하는 형태가 많았지만, 차츰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콘도티에리[1]라는 용병대를 만들어 용병업이 성행하게 되고, 이들 콘도티에리들은 차츰 이탈리아 국내뿐이 아니라 유럽 각국의 군주들을 위해 용병업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제노바 쇠뇌병이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낸 전투는 1차 십자군 전쟁으로, 상인이자 무장대 리더였던 귈레무스 엠브리아쿠스가 조직해 예루살렘 공성전에 참여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귈레무스 엠브리아쿠스는 이 성전에 투자하고 참여함으로써 제노바의 자치권을 획득하고 안전을 보장받았다.

사자왕 리차드가 이끄는 3차 십자군 전투에도 참여해 야파 전투에서 활약한 그들은 화약의 시대가 찾아오기 전까지 유럽에서 가장 인정받고 존경받는 용병집단이 된다.

3 몰락

그들의 몰락은 영국 장궁병이 유명해지는 계기와 맞물린다.

크레시 전투에서 쇠뇌병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머리가 텅텅 빈 멍청한 프랑스 기사의 지휘를 받은 것이 그들의 몰락을 앞당겼다. 사정거리가 더 긴 장궁병을 상대로, 전날 비가 와 진창이 된 전장에서, 그것도 언덕 위의 진지를 향해 개돌을 하라는 명령을 받은 그들은 파비스도 없이 전방으로 내몰려 손 쓸 틈 없이 죽어갔다. 그들을 고용한 프랑스 얼간이 놈들은 그 유명한 제노바 쇠뇌병도 별 것 아니네, 라는 평판을 내리면서 다른 전장에서도 계속 개돌을 시켰다.

이후, 잔 다르크의 등장과 대포의 전술적 활약에 힘입어 프랑스군은 결국 승리하지만, 본격적으로 화약의 시대가 찾아오고 더 이상 제노바 쇠뇌병은 제대로 역사에 등장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안습

4 무장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제노바제 쇠뇌. 발리스타이社에서 제작한 것으로 제노바 쇠뇌병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중세 초기에는 조잡한 쇠뇌를 썼지만, 십자군 전투 이후 빠르게 발전해서 중세시대 서구 쇠뇌의 표준이나 다름없게 된다.

그리고 또 유명한 것이 보병이나 다른 병과는 좀처럼 쓸 일 없는 무겁고 큰 파비스. 이 대형 방패는 이동시에는 등에 짊어지고 있다가 전투시가 되면 땅에 박아넣고 엄폐물로 활용한다. 위력이 뛰어나지만 재장전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쇠뇌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짝궁과도 같은 존재다. 이 파비스 덕에 제노바 쇠뇌병은 중세시대 병과로 야전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엄폐물을 찾아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엄폐물을 세우고 원하는 곳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었기 때문.

그 외에 개인무장으로 가벼운 금속 투구와 백병전용 단검, 그리고 사슬갑옷 위에 고지트라 불리는 강철판을 가공한 목 보호대를 입었다.

5 관련항목

  1. 단수형 콘도티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