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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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맥스웰 어마어마한 미남이시다

James Clerk Maxwell(1831년 6월 13일 ~ 1879년 11월 5일)

1 소개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태생의 이론 물리학자, 수학자. 전자기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하였으며, 그것만으로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존경 받을 수 있는 위대한 물리학자이다.

2 생애

학창시절에는 언제나 친절하고 쾌활하였으며, 종종 비교되곤 하는 뉴턴이나 아인슈타인 등 괴팍한 물리학자들과 달리 매우 친절하고 예의바른 신사였다. 한 예화로, 맥스웰의 어머니는 암에 걸려 사망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사망한 그 날 어린 맥스웰은 눈물을 흘리면서 "정말 기뻐.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동시에 독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했는데,(맥스웰은 스코틀랜드 장로교출신. 즉 기독교 중에서도 신교이며, 북유럽의 대세 루터교와는 다른 계파. 어디까지나 그도 스코틀랜드인이기에.. 장로님까지 되셨다.) 한 선교단체에서 '뛰어난 물리학자인 그가 신앙을 간증한다면 굉장히 설득력 있을 거다' 하고 간증을 부탁했으나, 맥스웰은 '전 신앙은 각자의 내면 안에서만 형성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며 거절했다는 일화가 있다. 진정한 신앙

1847년 열여섯 살에 에든버러 대학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했고, 1850년에는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겼다. 1854년에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를 수학 전공으로 졸업했다. 1854년 캠브리지의 졸업시험(mathematical tripos)을 치르고 그 결과를 하인에게 보고 알아보라고 했다. 자신이 당연히 1등을 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인이 돌아왔을 때, "누가 2등했어?"라고 물었는데, 하인이 "너 님이요"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당시 수학 1등(Senior Wrangler)은 뛰어난 수학 지도로 유명한 수학자 에드워드 루스(Edward J. Routh)가 차지했다.

교육에도 열정적이어서 교육받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해 야간 학교 강사를 무보수로, 시간을 쪼개가며 꾸준히 해 주었다. 다만 그의 교육 방식에 대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열정적이긴 한데, 이해는 안 된다.'고 평하였다.

시골 마을의 지주이기도 했는데, 매년 일정 기간은 마을로 돌아가 발전을 위해 힘썼다. 학교와 교회를 무료로 세우는 등 마을 사람들에게도 평이 좋았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연상의 부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해 병약한 그녀 옆에서 매일 저녁 책을 읽어주는 게 일과였다. 이 사랑과 일과는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된다.

1879년 위암으로 48세에 사망하였다. 죽음을 앞두고는 이미 자신의 운명을 직감적으로 깨닫고는 친구였던 의사에게 '그래,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라고 물어보았고 사망 당일에는 조용히 기도하며 숨을 거두었다.

3 전자기학의 창시자

전자기학의 아버지는 맥스웰.
그러나 전자기학에서 어머니라 불리는 사람은 딱히 없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자기학에 엄마가 없단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 전기력자기력은 서로 전혀 다른 힘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외르스테드가 전기자기를 만든다는 것을 알아내자, 서로 다른 두 힘이 무언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 뒤, 패러데이는 '전기와 자기를 직접 설명하지 말고 전기장, 자기장과 전기력선, 자기력선으로 설명하자'라는 아이디어와 '전기와 자기는 서로 짝을 이룬다'라는 아이디어를 들고 나왔고,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자기도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내었다.

다만 패러데이의 아이디어만으로는 전기와 자기를 완전하게 통합할 수 없었고, 수학을 잘 몰랐기에 수학적으로 아름답게 정리해 낼 수는 없었다. 이때 혜성처럼 맥스웰이 나타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하나 더 추가함과 동시에 기존의 아이디어들과 패러데이의 아이디어들을 수학적으로 깔끔히 정리하여 발표한 것이 전자기학의 출발점이다.[1](사실 출발점이라고 하기에는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내었다)

한편, 맥스웰의 방정식에 포함된 장이라는 개념은 그 당시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추상적이었다.[2]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에테르라는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물리학에서 추상적 개념이 도입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4 그 외의 업적

14살 때 핀 2개와 실을 이용해 타원을 작도하는 당시에는 아주 독창적인 작도 방식에 대한 논문을 냈다. 예전에도 데카르트 등이 같은 모양의 타원을 작도하는 방법을 발표했으나 맥스웰의 방식이 더 간편했다.

열역학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열역학에서 그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만 해도 열역학 퍼텐셜 사이의 관계식인 '맥스웰 관계식'과 일반적인 입자의 속도 분포에 쓰이는 '멕스웰-볼츠만 분포'의 2가지가 있다. 특히 후자는 통계역학의 언어로 열역학을 설명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완성한 것은 볼츠만이지만. 한편, 1876년에 열역학 제 2법칙을 작살내는 가상의 악마를 가정한 사고실험인 맥스웰의 악마를 고안하기도 했다.

파일:Attachment/제임스 클러크 맥스웰/first colour photograph.jpg

최초의 컬러사진 또한 이 분의 작품. 간단하게 빨간색, 파란색,초록색 필터를 앞에 끼고 사진을 찍었다.
  1. 패러데이는 맥스웰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수학적 재능에 감탄했다(...)라고 말했다.
  2. 전기장과 자기장이라는 게, 그냥 3차원 공간에 펼쳐져 있는 전기적 분위기, 자기적 분위기라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반면 뉴턴 역학의 개념들은 질량, 힘 등등처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다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