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헷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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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름제임스 헷필드(James Alan Hetfield) (James "The Table" Hetfield)
생년월일1963년 8월 3일
국적미국
출신지캘리포니아
포지션보컬, 기타,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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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2집 투어 때의 모습(메탈리카가 세계에서 한창 뜨고 있을 리즈 시절 초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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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5집 투어 때의 모습(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헤비메탈로 1500만장씩 팔아치우던 전성기

1995년, 6집 녹음 중 단독 공연[1] 때의 모습. 뒷머리만 남기고 머리를 짧게 자른, 전성기 시절의 긴 머리에서 6집에서의 짧은 머리로 변해가는 중간 과정.

2014년 'Metallica;By Request' 투어를 마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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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 아부지 머 하시노?!" "메탈리카 하십니더" 학부모님 앞에서 마스터! 마스터!

학예회 종결자. 학생들보다 학부모들이 더 열광할 것 같다! 참고로 왼쪽의 여자아이는 헷필드 형님의 딸이다. 어쿠스틱조차도 파워 스탠스로 쩍 벌리고 치는 모습이 압권이다.

메탈리카의 보컬 겸 리듬 기타겸 식탁. 1963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시골마을인 다우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고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는 피아노를 배웠고 이후 작곡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양친은 크리스찬 사이언스 신자로 어린 시절은 대체로 크리스찬 사이언스 커뮤니티 안에서 자라났고 성장하면서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의 문신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문양이다. 제임스는 9살 때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웠고 14살 때 그의 형에게 드럼을 배운 뒤 이후 기타를 다루게 되었다.

그 뒤, 그는 밴드 멤버들을 모아 레더 챰(leather charm)이란 밴드를 결성하고 Hit The Lights[2]등의 곡을 만드나, 얼마 안 되어 밴드는 해체, 그리고 라스 울리히의 모집광고를 보고 메탈리카에 들어간다.

제임스의 어머니는 암에 걸렸는데도 종교적 신념으로 의학적 치료를 거부하고 제임스가 16살 때 죽게 되는데 이 사건은 그의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 실제로 'Mama Said', 'Dyers Eve', 'The God That Failed' 등은 제임스의 어머니의 소재로 다룬 곡이었고 특히 'Until It Sleeps'은 병으로 인한 고통을 다루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1996년 Load 투어 때 사망했다.

라스 울리히의 밴드 멤버 모집광고를 보고 1981년 메탈리카의 결성 때부터 함께한 초기 멤버이기도 하다. 또 그는 다이아몬드 헤드, 모터헤드, 블랙 사바스, 아이언 메이든, 퀸, 밥 시거, 레드 제플린과 씬 리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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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크를 쥐는 폼이 특이한데 보통 검지와 엄지로 잡는 피크를 제임스는 검지, 중지, 엄지로 잡는다. 이렇게 잡게 되면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불편하지만 피크로 줄을 튕기는 힘이 훨씬 강해지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사운드를 낼 수 있다.
라스 울리히와 함께 대부분의 곡을 쓸 뿐 아니라, 리드 기타는 커크 해밋이 맡고 있지만 사실 메탈리카 사운드의 핵심은 헷필드의 리듬 기타라고 할 수 있는데, 뮤트를 빡세게 걸고 다운 피킹으로 리듬감 있는 리프를 후려 갈기는 것이 특징.
라이브에서 커크와 솔로를 주고받는 걸 들어보면 기타 솔로 속주에는 좀 약한 감이 있다. 이 때문인지 메탈리카는 메가데스의 트윈 기타 사운드와는 달리 리듬기타와 리드기타의 구분이 더 명확한 편.

취미는 사냥과 모터사이클 라이딩이라고 한다.[3] Fuel에서 대놓고 오토바이 덕후 인증을 했다.

참고로 그의 보컬은 오페라 가수였던 어머니에게, 리프 메이킹은 데이브 머스테인에게, 화성학은 클리프 버튼에게 각각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어머니를 따라하는 것인지 연습 중 목을 풀 때 메탈 보컬스럽지 않은 매끈한 초고음을 뽑아내는 모습은 충격과 공포.

그의 기타 중 유명한 것으로는 깁슨 익스플로러아이언 크로스가 있다. 항목 참조.

2 보컬

메탈리카 결성 초기에는 노래에 자신이 없었는지 기타 치면서 보컬까지 하기 빡세서 그랬는지 몰라도 보컬로 아머드 세인트(Armored Saint)의 존 부쉬를 영입하려 하였으나 존 부쉬의 거절로 그냥 계속 보컬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메탈 보컬리스트 중 한 명이 되었다.[4]

전성기를 빨리 맞았고 그만큼 빨리 목소리를 잃었다. 사실, 데뷔 초기에는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날카로웠지만, 무조건 내지르기만 했던 그의 창법[5]은 3집부터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며, 1988~1989년에 돌았던 4집 투어 'Damaged Justice' 때는 마치 울부짖는 한 마리 사자처럼 상당히 거친 절정의 성량과 사운드[6]를 들려준다.

그러나, 1991년 5집 녹음 작업을 하면서 목을 풀지 않고 노래를 부른 탓에 성대 결절이 생겼고 1991~1993년까지 돌았던 5집 투어 'Wherever We May Roam Tour', 'Guns N' Roses/Metallica Stadium Tour', 'Nowhere Else to Roam' 때 가뜩이나 성대 결절을 겪은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장기간의 투어 일정과 빡빡한 공연 스케쥴을 소화한 것 때문에 목에 상당한 무리가 갔는지, 당장 1992년 샌디에고 라이브에서조차 톤이 확 낮아지고 목소리도 좀 더 탁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초창기 음악과 현 시점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게 동일인물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리고 1995년부터 모든 곡을 반 음 낮춰서 연주하기 시작했고[7][8] 90년대 후반에 접어들자 80년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9]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아예 목을 긁지도 못하는데다 저음도 내지 못하고 고음도 소화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가 되면서 라이브를 망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또 Death Magnetic 앨범엔 또 어느 정도 돌아온 게 신기하다(...). 나이 때문에 목소리가 좀 바뀌긴 했지만 그래도 특유의 공격적인 톤은 살려냈다. 근데 라이브 공연을 보면 또다시 고음만 내지르고 있으니 안습 그자체... 다른 보컬에 비해 이런 정도로 기량이 급감했다는 것은 그만큼 보컬부분에서는 자기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3 사생활

2016년 1월에는 미국의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에서 천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땄다고 한다(...) 제 2의 브라이언 메이 신보 발매가 점점 늦어지는 이유 ...로 알려졌으나 제임스가 거짓 정보라고 못 박았다.

1992년 몬트리올 공연에서 'Fade To Black' 의 인트로 도중 무대효과용 마그네슘 폭발로 2도 화상을 입고 공연을 중단한 적이 있다. 이때 메탈리카가 미안하다 하면서 1시간 일찍 무대에서 내려갔는데 그 자리를 건즈 앤 로지스가 채웠다. 근데 무대 셋팅도 느려지고 하니까 희대의 망나니 액슬 로즈는 '나 집에 갈래' 하면서 귀환이건 뭐 병... 그리고 일어난 것이 전설적인 몬트리올 폭동이다(...).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회복된 이후 헷필드는 팔에 붕대를 감고 몬트리올을 다시 찾아 무대를 마쳤다.

메탈리카는 안티 드러그 곡으로 유명한 'Master Of Puppets' 라는 곡을 갖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알콜 중독으로 고생한 밴드 멤버들이 몇몇 있는데, 방출당했던 데이브 머스테인이 그랬고 제임스 헷필드도 알콜 중독으로 한때 치료를 받았다. 이때 제임스는 다른 약물에 대한 중독[10]도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자세한 것은 공개하지 않았다. 알콜 중독 자체는 재활원 생활을 통해 잘 이겨낸 듯하지만 이 시기에 미친듯이 살이 찌기 시작해서 8집 'St. Anger' 투어인 'Madly in Anger with the World Tour' 가 있었던 2003~4년 사이의 모습을 보면 술로 사람이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찔 수 있는지에 대한 표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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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의 모습. 오메... 사자가 금돼지가 되었습니다. 이 금돼지는 염소가 될 예정입니다.

한창 전성기 시절인 1989년의 모습이나 1991년에 모스크바 공연에서 수십만 관중을 사로잡던 위엄은 사라졌지만 워낙 원판이 원판이다 보니 살이 쪄도 꽤 중후한 멋이 느껴진다는 사람들도 있다.설마

제임스 헷필드나 메탈리카의 멤버들은 대체로 사생활에 대해서는 발언이 없는 편이지만 알콜 중독에 대한 치료는 공개적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인터뷰도 몇 번 있었으며 자신의 파괴 충동이나 분노 성향을 억제하는데 성공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어쨌건 이 사건은 많은 팬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제임스 헷필드는 알콜 중독을 완전히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물론 알콜 중독 문제로 밴드에서 쫓아냈던 데이브 머스테인이 헷필드를 오지게 놀려먹는 등 여러가지로 본인이나 똑바로 하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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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집 활동 이후 살을 전성기 수준으로 감량하였다! 기념공연 영상. 메탈리카의 30주년 기념 공연에서 공개된 모습으로는 커크 해밋이 부럽지 않은 날씬한 몸으로 되돌아왔다. 왼쪽 두번째 좀 부어보이는 아저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건강을 위해 약간의 벌크업과 동시에 살을 조금 찌웠다. 살크업 목소리도 회복되어서 머리만 기르면 딱 왕년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원형탈모가 찾아왔다. 안돼!!!

1997년 8월 17일 아내인 Francesca와 결혼한 후 1998년 딸 Cali, 2000년 아들 Castor, 2002년 딸 Marcella를 낳았다.
  1. 6집 녹음 중 Escape From The Studio 95 라는 이름으로 3번의 단독 공연을 했었다. 이후 2006년에 9집 작업 중 Escape From The Studio 06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몇번의 단독 공연을 했는데, 2006년의 내한 공연이 이 공연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2. 메탈리카 1집에 수록된 곡이랑 동일한 곡.
  3. 그는 상당한 수준의 모터사이클 수집가이자 라이더이다.
  4. 반면 제안을 받았던 존 부쉬는 후에 조이 벨라도나의 탈퇴로 인해 보컬 파트의 공백으로 엔스렉스의 보컬리스트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엔스렉스 팬들에게 밴드를 말아먹은 1등 공신으로 원망을 받게 된다.(...) 사실 좀 억울한 면도 있지만.
  5. 사실 영국 헤비메탈 밴드인 다이아몬드 헤드의 보컬이었던 숀 해리스의 보컬을 엄청 따라한 창법이었다! 실제로 제임스는 다이아몬드 헤드의 열성팬으로 메탈리카가 가장 먼저 커버한 곡들 역시 다이아몬드 헤드의 곡들이다.
  6. 89년 시애틀 라이브나, 다른 4집 투어 당시 라이브를 찾아보면 1~3집에서 들려준 날카로운 가성과 5집에서 들려준 묵직한 흉성이 섞여, 그야말로 메탈 보컬로서는 흠잡을 데 없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진짜 작정하고 내지르면 밴드 사운드를 잡아먹어버리는(!) 포스를 보여준다.
  7. 예외적으로 'Sad But True'는 원래 음대로 연주하고 'Seek And Destroy' 에선 아예 한 음을 낮춰서 연주한다.
  8. 부연 설명을 하자면 Load와 Reload 시절 곡들은 앨범 녹음부터 아예 반음을 낮췄고, 연주곡들을 굳이 라이브에서마저 반음 낮춰서 연주하는 이유는 기타의 튜닝 문제이다. 대부분의 곡들을 라이브에서 반음 낮춰서 부르다보니 기타들도 반음 내린 상태로 튜닝이 되어있는데, 공연 중간에 연주곡하면서 다시 기타를 튜닝하거나 교체할 수고를 덜기 위함이다. 공연 모습을 자세히 보면 'Sad But True'나 'Seek And Destroy'를 연주하기 전에 멤버들은 기타를 교체하며, 이때는 ESP 엔도서 기타보다는 본인 소유의 기타를 가지고 연주한다.(예를 들면, 제임스 헷필드는 상기한 두 곡을 연주할 시 깁슨 익스플로러를 들고 연주한다.)
  9. 그래도 90년대 후반은 제임스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 들어보면 80년대보다는 약하지만, 충분히 목 긁을 거 다 긁으면서 한다.
  10. 2002년경 재활원에 입원할 때 받았던 의학적 판정은 '알콜 외 기타 약물 의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