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 버튼

1 클리프 버튼

이름클리퍼드 리 버튼(Clifford Lee Burton)
생년월일1962년 2월 10일
사망1986년 9월 27일
국적미국
출신지캘리포니아
포지션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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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팔에 문신펑크 록 밴드 미스피츠의 마스코트 크림슨 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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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현장에 세워진 클리프 버튼의 추모비. 새겨진 글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곡인 To Live Is to Die의 가사이다.

2 개요

새로운 베이스의 영역을 보여준 노력하는 천재

데이브 머스테인과 더불어 초기 메탈리카의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매우 혁신적인 베이시스트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촉망받는 신예밴드 '트라우마'에서 베이시스트로 재적하던 중 메탈리카가 클리프의 연주를 보게 되었는데, 버튼이 워낙 현란한 속주를 선보인 탓에 제임스는 그를 기타리스트로 착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루는 악기가 뭔가 기타가 아닌 것같아 줄을 세어보니 네 줄. 그 길로 메탈리카는 버튼을 영입하기 위해 리퀘스트를 넣었다. 하지만 버튼은 '난 현재 안정적인 수익이 있는 밴드에서 재적중이지 않느냐. 너희가 샌프란시스코로 연고지를 옮겨준다면 너희와 함께하도록 하겠다.'라고 했고, 메탈리카는 오로지 클리프 버튼때문에 진짜로 LA에서 500Km 떨어진 샌프란시스코까지 짐을 싸들고 이사를 와버렸다(...). [1] 여기에 감명받아 버튼은 트라우마를 탈퇴하고 메탈리카의 베이시스트로 합류하게 되었다.

메탈리카 초기 멤버 중 유일하게 음악을 제대로 배운 멤버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주유소 알바를 하던 제임스[2], 그냥 감으로 명곡을 쓰던 천재 데이브 머스테인[3], 테니스를 치던 라스와 달리 클래식을 듣고 시를 읽으며 탄탄한 기초를 쌓은 멤버였다. 그는 제임스 헷필드에게 화성학을 가르쳤으며, 당시 오로지 메탈만 듣던 다른 멤버들에게 바흐, 모차르트 같은 클래식이나 밥 딜런, R.E.M. 등을 처음 들려주었다고 한다.

Fight Fire with Fire 도입부의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과 Orion[4] 연주에서 그의 이러한 고전적 성향과 탄탄한 기초가 잘 나타나며, 라이브와 레코딩을 불문하고 여러 이펙터를 사용하여 기타로 착각할만한 놀라운 사운드를 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For Whom the Bell Tolls의 인트로[5]와 Orion의 클라이막스[6]가 대표적으로, 이후 들어오게 되는 제이슨의 여러 탈퇴 이유 중 하나가 클리프 버튼이라는 천재의 그늘에 가려져 비교 당한 것이었다는 쪽에 설득력을 더해줄 정도로 클리프 버튼의 영향력은 컸다.

3 사망

안타깝게도 1986년 3집의 유럽 투어 중 스웨덴 스톡홀름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이동하다 버스 전복 사고를 당해 24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평소 커크 해밋의 침대를[7] 무척 탐내던 클리프는 사고 당일 제임스와 포커 내기를 하게 되고 내기에서 스페이드 에이스를 뽑아[8] 제임스를 이기고 커크의 침대에서 잠이 드는데, 그 직후 버스가 미끄러져 뒤집어지는 사고가 난다. 커크의 자리에 있던 클리프는 멤버 중 유일하게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 버스에 깔려 어떻게 조치해볼 새도 없이 현장에서 사망하며 사고의 유일한 희생자가 되었다. 당시 잠자리가 불편했던 제임스 또한 커크의 침대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9] 클리프의 사망 후 한동안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반 폐인처럼 지냈다고 한다.

버스가 엎어진 이후 상황을 간단히 기록하면 이렇다. 버스가 한바탕 구르고 멤버들이 부리나케 팬티바람으로 버스를 탈출하는데, 제임스는 사람 수를 세다 한 사람이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후 버튼은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가 굴러오는 버스에 그대로 깔린 채 발견되었으며, 제임스는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도하고 광분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버스기사에게 사고 원인을 추궁했다. 버스 기사는 검은 얼음[10]을 밟고 미끄러진 것 같다고 했으며, 분을 삭이지 못한 제임스는 버스가 미끄러져온 길을 수백 미터 되돌아 걸어갔으나 어디에도 '검은 얼음'은 없었다고 한다. 버스기사에게서는 술 냄새가 났다고. 버스기사는 이후 인명사고의 책임을 물고 실형을 살게 되었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공연에서 한 번도 연주되지 못했던 그의 마스터피스 Orion이 재생되었으며, 이 곡은 그대로 클리프의 추도곡으로 남아 2005년까지 20년간 한 번도 완곡으로 연주되지 못했다. 오직 89~92 라이브투어 중 잼 형식을 빌어 후반부 리프가 1분 남짓 연주되고 다음 곡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조금 연주되었을 뿐이었다. 후일 제임스가 회고한 바에 따르면 이 곡을 연주할 때면 클리프와 함께했던 행복한 기억들이 떠올라 눈물이 나기 때문에 아무래도 라이브로 연주하기 많이 꺼려졌었다고. 실제로 2006년 내한공연에서 연주된 영상이나 2012년 <Through the Never> 엔딩 크레딧으로 쓰인 Orion 연주 영상을 보면 내한공연에서는 제임스가 거의 카메라에 비춰지지 않고.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는 멤버 중 혼자서만 어두운 무대에서 짙은 스포츠 고글을 쓰고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사망 이후 방과 연습실에서 나온 그의 연습노트와 테이프에 실린 베이스 리프를 모아 남은 멤버들이 재구성한 곡이 있는데, 이 곡이 4집에 실린 연주곡 To Live is to Die이다. 이 곡 역시 완곡으로 연주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가 201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메탈리카 30주년 기념 파티에서 딱 한 번 연주되었다.

4 여담

메가데스의 곡인 In My Darkest Hour는 데이브 머스테인이 그의 사망소식을 듣고 만든 곡이다.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로는 러시의 게디 리, 블랙 사바스의 기저 버틀러, 모터헤드의 레미 킬미스터가 있으며 아이언 메이든의 스티브 해리스는 대놓고 아웃 오브 안중[11]드림 시어터존 명이 존경하는 베이시스트 중 한명이라 한다.

2009년 메탈리카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을 때 부모님이 대신 참석을 해서 수상을 하였다. 아들이 사고로 죽은지 몇십년이 지났지만 팬들이 자신의 아들을 잊지않고 기억을 해준 것에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1. LA 메탈과 Bay area thrash란 말이 있을 정도로 LA보다는 샌프란시스코가 초기 메탈리카 스타일의 음악이 먹힐 수 있는 장소였던 것도 사실이다.
  2. 참고로 제임스의 엄마는 오페라 가수였다고 한다.
  3. 메가데스가 수많은 명곡과 명반을 쏟아내고도 한참 지난 후인 2000년대에 팔목부상으로 요양을 하면서 스케일을 비롯한 음악이론을 제대로 배웠다고 한다. ㅎㄷㄷ
  4. 잔잔한 베이스 연주로 시작하는 중간 부분이 유명한데, 이 부분은 클리프가 직접 편곡했다고 한다.
  5. 와와 페달을 사용한 것으로,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기타 소리로 착각한다.
  6. 대략 6분 30초쯤부터 베이스 두 대에 이펙터를 먹여 하이프렛에서 3도 화음을 쌓는 절절한 연주가 시작되는데, 베이스 볼륨이 작은 편이고 워낙 톤이 높아 기타 솔로로 착각하기 쉽다.
  7. 미국은 버스안에 침대가 설치된 투어버스를 타고 공연하러 다니는 경우가 흔하다.
  8. 여담으로 스페이드는 무덤을 팔 때 쓰는 삽을 상징.
  9. 사실 짬 순서대로 하면 제임스가 커크의 침낭을 차지했어야 했으나 클리프가 이에 반대하며 카드내기를 제안했다고 한다.
  10. 아스팔트 도로에 얕게 언 빙판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11. 어느 인터뷰에서 연주 스타일이 아이언 메이든의 스티브 해리스와 비슷하다는 인터뷰어의 말에 자신은 그런 밴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 때문인지 아이언 메이든 멤버들은 한동안 메탈리카를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