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버클리

Berkeley_4.jpeg

George Berkeley
1685~1753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1]
철학이란 진리를 탐구하기 때문에, 철학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 지식의 확실성을 가지며 더 평온하게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왜 평범한 사람들이 더욱 안락하게 살아가는 동안,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더 깊은 회의주의의 수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가.[2]

1 생애

아일랜드 출신 철학자이자 성공회 주교. 1709년 『새로운 시각 이론에 관한 시론』[3]으로 주목을 받았고, 1711년에는 『인간 지식의 원리론』[4]을 출간하여 경험주의에 기반한 인식론을 전개했다. 이후 1713년 『하일라스와 필로누스가 나눈 대화 세 마당』[5] 을 비롯하여 주교 활동을 하면서도 몇 권의 책을 출간했으나 주목받지는 못했다. 나름 로크와 흄 사이에 낀 콩라인.

2 버클리의 철학

시기상 로크의 사이에 있는 비운의철학자로, 두 사람과 함께 영국경험론의 대표자로 꼽힌다. 로크는 인간이 인식하는 것들을 '관념'이라 부르고, 이 관념을 직접 경험하여 얻는 것(단순관념)과 경험한 것들을 비교하거나 조합하여 만들어내는 것(복합관념)으로 나누었다. 이 때, 신이나 영혼, 죽음과 같이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설명할 수 없다는 한계가 생긴다. 버클리는 이에 대해 추상 관념의 존재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모든 존재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만큼 존재한다는 것이다.

2.1 인식론

버클리는 기존의 추상 관념, 즉 보편자의 존재를 부정한다. 예를 들어 '필통'이라는 단어가 있을 때, 필통의 이데아와 같은 것은 없으며, 그저 필통과 유사하게 생긴 사물들을 그렇게 부르기로 약속한 것이 필통이라는 단어라는 것이다. 철학자들이 '이성(Reason)'이라는 단어를 두고 이성의 본질(이데아)이 무엇인지 고민한다고 가정해보자. 인간은 제각기 생각하는 '이성'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보편적인 정의를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성적이란 말이 누군가에겐 차분한 태도를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논리적인 모습일수도 있다. 토론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근거를 설명하는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말해주세요' 라고 하면 전자일 것이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감정적 발언이나 욕설을 할 때 '이성적으로 말해주세요'란 후자를 가리킬 것이다. 이렇듯 언어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버클리는 여기서 오해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즉, 한 언어를 정확히 한 개념으로 정의해야 한다는 강박이 추상 관념을 만들어냈을 뿐, 이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편자 개념이 없다면 어떻게 법칙을 만들어낼 수 있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는데, 버클리는 해당 증명에 사용된 특수성을 공유하는 다른 개별자들에게도 증명이 적용되는 방식으로 보편화된다뭔소리야 (뜻이 어렵다기 보다는 문장 구조가 복잡한것인데해당 증명에 사용된 특수성을 공유하는 다른 개별자들에게도/ 증명이 적용되는 방식/으로 보편화된다으로 끊어 읽으면 이해하기쉽다) 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 임을 증명하려 한다면 기존 철학자들은 '삼각형의 본질'이 있다고 전제할 것이다. 하지만 버클리는 둔각 삼각형이자 직각 삼각형이자 이등변 삼각형이자 예각 삼각형... 은 없다고 말한다. 한 삼각형이 모두를 대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을 떠올려보면 쉽다. 교과서에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 라고 백인 남성 그림을 올려두면 굉장한 지탄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흑인, 황인, 여성, 대머리, 장신, 단신 등의 인간이 '인간의 본질'이라 할 수도 없고, '흑인이자 백인이자 남성이자 여성이자 장신이자 단신이자 비만이자 저체중인' 사람이 존재할수도 없다. 즉, 본질은 없다. 삼각형도 마찬가지다.

그럼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어떻게 증명할까. 아무 삼각형을 그려보자. 그것이 예각이든 둔각이든 상관없다. 둔각삼각형을 그렸다고 가정하고 그걸로 세 내각의 합이 180도임을 보인다. 이 때 이 삼각형이 가진 많은 성질, 즉 '한 각이 둔각이다, 길이가 얼마다, 색깔이 어떻다' 등등의 특징들은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세 직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이라는 특징만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이 증명은 세 선으로 둘러싸인 도형에는 모두 적용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인간의 추상 관념이 없어도, 연구를 통해 인간이 어떻다는 점을 알아내고 그걸 '인간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 모두 적용된다고 말하는 식으로 보편화할 수 있다.

주교이기 때문인지, '신은 인간이 알려고 하면 웬만하면 충족시키도록 세상을 만들었다'는 서술도 나온다. 즉 철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더 모르는 것만 많아지고 고뇌에 빠지는 것은, 원래 인간이 유한한 존재라서 무한한 진리를 모르도록 태어난 게 아니라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오해는 바로 여러 비슷한 특징을 묶어 부르기로 한 '단어(언어)'에 하나의 확고하고 변치않는 정의를 내리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한 철학자가 '오 신이시여, 왜 저는 '이성(Reason)'의 본질(이데아)에 대해 알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까!' 라고 한다면, 아마도 그 신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야 이 미친놈아, 단어는 니가 만들어놓고 왜 나한테...'
  1. Esse est percipi
  2. 『인간 지식의 원리론』 서문에서 제시한 문제. 이에 대한 답으로 기존 철학자들이 관념(Idea)을 인식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며, 자신의 철학을 전개해 나간다.원래 대가들이 기존철학 까는 건 이쪽 전통이다
  3.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Vision
  4. A Treatise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Human Knowledge
  5. Three Dialogues between Hylas and Philonous. 여기서 필로누스는 Philo(사랑)+nous(정신, mind)의 합성어로, 정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며 버클리 자신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