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

1 理性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능력.

비슷한 반대는 감정 혹은 감성. 흔히 인간의 정신을 감성과 이성으로 이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근래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성은 감성 없이는 기능할 수 없는, 감성의 연장선상에 있는 일종의 도구적 특질로 파악하는 가설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성을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볼 경우 그 생각의 방향을 정하고 종합판단하는 주체는 감성이다. 다만 해당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추가적인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영어로는 reason이라고 한다.[1] 사물을 가리는 능력이라고 표현하며 또한 다른 말로는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또한 사람의 냉정함과도 관련이 있는데 이성을 잃어버린 경우 흔히 냉정함을 잃은 상태라고 말하며 정신과 마음이 나가버린 상태를 뜻한다. 대중적인 의미로는 '광기'가 이성의 반댓말. 데카르트는 이러한 이성을 '자연의 빛'이라고 표현했다.

창작물에서 나오는 "이성을 잃었다"라는 표현에서 이성은 이것을 가리킨다. 2번 항목을 잃어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탈레반과 같은 극단주의자 집단은 이성을 거부하기도 한다.

1.1 철학에서의 理性

위의 문단에서 데카르트가 이성을 가리켜 자연의 빛이라 했음이 인용되었는데, 이성은 굳이 데카르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수많은 철학자들에게 매우 핵심적인 문제였다. 이성을 어떻게 보는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였고 지금도 그러한데, 사실 이성이라는 단어 안에는 수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각기 다르게 쓰인다.[2]

이성이라는 단어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의미들은 대중적으로 보았을 때는 감성과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그렇게만 정의해서는 이성이 당최 뭔 개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 문단에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 이성이라는 단어에 들어 있는 몇 가지 뜻을 몇 가지 비교를 통해 설명한다. 현재 학계에서 논의되는 내용을 다 적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고(...)

1.1.1 연역적(기계적, 절차적) 이성과 직관적 이성

위에서도 보았듯 데카르트는 이성이 자연의 빛이라고 했는데, 다시 말해 이는 근대인이 이성을 자연이 인간에게 필연적으로 부여한 본성, 능력, 방법 등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그 개념이 아직 체계화가 덜 되어 있었는데, 당장 데카르트가 <방법서설>, <정신 지도를 위한 규칙들>,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등의 저서에서 이끌어가는 논리만 봐도 직관적 이성과 연역적 이성을 혼용한다. 현대에는 이 개념들이 분리되었다.

우선 연역적 이성이란 논리적인 절차(대표적인 예로 삼단논법)를 이용하는 능력 내지는 방법이다. 이러한 의미로서의 이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좋은 예는, 당신이 쇼핑을 할 때 당신의 지갑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사고싶은 물건을 막 사제껴 빈털터리가 되었을 때 '비이성적 소비였다'고 여기고, 지갑 사정을 고려해 살 수 있는 만큼의 상품의 양과 질을 논리적으로 판단해 소비할 때 '이성적인 소비'였다고 여기는 것을 들면 알 수 있다.

직관적 이성은 공리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보면 이해하기 편한데, 대표적인 예로는 데카르트의 그 유명한 '코기토 논증'. 데카르트는 모든 지식이 하나의 토대 위에서 연역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는데, 그가 제시한 하나의 토대가 바로 코기토, 즉 '생각하는 나는 내가 생각하는 동안만 존재한다'.[3] 이 문장이 어떤 연역을 통해 나온다면 이미 모든 지식의 토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연역하기 위해서는 선행하는 개념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하지만 코기토 논증도 어떤 명제에서 자연스럽게 연역이 된 문장이다. 왜냐면 "생각하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다"는 명제가 참이어야 코기토 논증은 참이 되니까 그래서 근거를 따질 필요 없이 참인 이 코기토 논증을 직관적 이성의 결과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물론 그냥 데카르트가 틀린 주장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넘쳐난다

1.1.2 순수 이성과 실천 이성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정확히 구분한 것은 철학계의 톱스타(...) 임마누엘 칸트인데, 사실 완전히 구분하지는 않더라도 둘을 구분하는 것에 근접하는 사고를 이미 과거의 사람들은 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잘 알고 있는 것과 잘 행동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잘 하다', '탁월하다' 정도로 번역되는 arete는 예전에는 덕(德)이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이 오역이라는 주장이 학자들 사이에 제기되었고 현재에는 거의 대부분의 번역자들이 arete를 '탁월성' 내지는 '잘하다'로 번역한다.

1.1.3 객관적(절대적) 이성과 주관적 이성

객관적 이성에 대한 연구는 철학사 내내 가장 중요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중요하다.

이 논의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얼간이들이 몇몇 있으나, 그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현대 철학자들의 서적을 철학사적 지식 없이 대충 훑어보고 주장하는 어중이떠중이에 불과하다.[4] 객관적 이성에 대한 논의는 철학계에서 아직도 유효하고, 앞으로도 세계가 망하기 전까지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이 논의가 결론이 나면 그 다음부터는 뭘 해야할지 고민하지 말고, 세상이 어떻게 해야 안 망할지부터 고민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객관적 이성은 기본적으로(어디까지나 기본적으로)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하던 단어인 로고스(logos)를 가리키는데, 로고스란 세상을 다스리는 절대적 원리를 가리킨다. 즉 객관적 이성은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진리라는 단어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로고스에 접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철학자로 규명한 대표적인 인물이 플라톤. 플라톤의 유명한 비유인 '동굴의 비유'는 이 로고스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라고 봐도 무방하다.

주관적 이성은 단일한 원리가 아닌, 그 원리에 접근하는 정신(그리스어로 Nous, 독일어로 Geist)을 가리키는데, 예전에는 오성(悟性)이라는 단어로 번역했다가 지금은 그마저도 오역이라는 주장이 많아 지성(知性)으로 번역된다. 번역이 어찌됐건 이 정신이라는 개념을 열심히 판 사람이 독일의 철학자 헤겔. 물론 헤겔만 주관적 이성을 열심히 판 건 아니고, 데카르트도 연구하고 칸트도 연구하고 여러 이름있는 철학자들은 거의 다 한두번쯤은 주관적 이성이라는 개념을 건드려 봤다(...).

2 異性

성별이 다른 것.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를,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자를 가리킨다.
화학에서는 물질 간의 다른 성질을 뜻하며, 주요 사용례로 이성질체가 있다.

3 중국 오대 십국 시대의 화가

李成

이성(919년 ~ 967년)은 중국 오대 십국 시대와 송 시대를 살다간 화가이다.

4 MBC 6기 성우

항목 참조.

5 수호지의 등장인물

이성(수호지)
  1. reason은 이유, 원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 역시 이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의미이다. 이성이 있어야 사람은 상황의 인과관계나 원인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2. 사실 이성이 이렇게나 많은 의미를 갖는 것은, 이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온전히 일대일로 대응시켜 번역할 수 없는 단어들을 번역할 때 쓰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본에 처음으로 서구적 의미의 학계가 생겨났을 때 그것들을 모조리 이성으로 번역해버렸고, 현대에 와서는 그 오역에 가까운 의역들을 다른 단어들로 바꾸어 번역하고 있다.
  3. 데카르트는 '나'라는 개념을 생각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즉 앞의 문장의 더 정확한 뜻은 말 그대로 코기토(생각한다) 하나 뿐이다.
  4. 물론 객관적 이성에 대한 논의가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존재하긴 했으나, 그 주장을 논리적인 설명으로 뒷받침할 수 있으려면 인터넷에서 위키질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을 인터넷에서 만난다면, 그냥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근사해보이니 따라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비웃어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