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

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 혹은 분류:종교의 하위 분류를 함께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개신교의 주요 교파(교단)
감리회구세군그리스도의 교회루터교회성결교회
성공회오순절교회장로회재림교회침례회

anglican-communion-logo-1.jpg
Anglican Rose라고 불린다. 가운데에는 그리스어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의 구절이 적혀있다.

聖公會 / Anglicanism 혹은 Anglican Church(잉글랜드 등 대부분의 국가/지역), Episcopal Church(미국[1], 스코틀랜드, 필리핀 외)


세계성공회협의회 홈페이지

1 개요

잉글랜드 교회(Church of England)에서 기원한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이고, 종교개혁 정신이 반영된 교회로 교파 분류상 개신교이다. 다만 다른 개신교 교파들과 달리 겉보기에 로마 가톨릭과 공유하는 전통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 있는데 교리상으로는 완전히 개신교에 해당한다. 다만 교회 제도나 전례나 전통에 있어 구 가톨릭 요소를 전부 폐지 하지 않은것일뿐.

한자문화권인 대한민국, 일본, 중국 등에서 '성공회'라고 부르는데, 성-공회(聖-公會)이지 성공-회(成功-會)가 아니다.[2] 쉽게 말하자면 성당-공교회를 줄여 말한 것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사용되는 성공회의 의미는 스럽고 번된[3] 사도적 교라는 것으로[4]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공교회’’’와 (생략)를 믿으며"에서 따왔다. 좀 더 가까이로는 서방교회의 주요 신앙고백 중 하나인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교회'와도 같은 것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발간한 책자에 따르면, 성공회를 다른 교단과 연관지어 말한다면 '개혁된 가톨릭', '교황 없는 천주교', '교리에 너그러운 정교회', '가톨릭 전통을 유지하는 개신교' 등으로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브릿지 교회(Bridge Church)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한자로 교교?

사람들이 인식하는 성공회의 포지션은 제각각 다르다. 대부분의 기독교 신학자는 교리상으론 완전히 개신교에 해당하기 때문에 개신교의 일파로 본다. 그러나 전례나 전통에서 옛 로마 가톨릭식 요소를 전부 폐지 하지 않았기에 천주교 신자들 중에는 다른 개신교보다 성공회에 친근함을 느껴서 로마 교황이 없는 천주교로 보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보수적인 천주교 신자들은 성공회를 그저 천주교 흉내내는 개신교('열교')로 본다.[5] 불쾌한 골짜기 동족혐오 반면 어떤 천주교 일반 신자는 성공회 = 영국 가톨릭(영국의 천주교)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엄연히 영국에도 성공회와 별개로 천주교가 따로 있거늘(...). 교회간 교류에 무관심한 개신교인들은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있는 독립된 종파로 보는 사람도 있다.[6] 국내에서는 외형상 성공회와 비슷한 루터교회만 하더라도 개신교의 장자 교파라는 인식이 있지만, 성공회는 뚜렷한 포지션을 갖고 있지 못한 점이 아쉬운 점이다.[7]의 일반인에게는 개신교의 일파라는 인식보다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혼합된 종파라든지 천주교의 한 갈래('이혼이 허용된 천주교')라는 인식이 더 강한 듯. 반면에 미국 내에서 성공회는 프로테스탄트 중 리버럴한 교단이라는 인식이 있다.

2 명칭

성공회라는 종교 자체를 설명하는 명칭은 Anglicanism(앵글리커니즘)이다.
성공회는 역사적으로 영국국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다가 18세기부터 영국 이주민과 선교사들이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기에 단순 영국국교회라고 더 이상 보기만은 어려워졌고, 역사상 이전세기 동안의 종교 갈등를 반성하고, 교회내의 여러 목소리에 관용을 베풀고 성스롭고 공번된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 19세기 중반부터는 성공회라는 명칭으로 변경하게 된다.


성공회 교회와 그 조직을 가리키는 용어는 Anglican Church(앵글리컨 처치)가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일부 국가/지역에서는 Episcopal Church(이피스커펄/에피스코팔 처치)[8]('감독 교회'로 번역되기도 한다)라고 쓰기도 한다. angl(o)- 자체가 잉글랜드를 의미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잉글랜드 혹은 영국과 대립한 적이 있어서 정서적 거부감이 있거나, 그런 역사를 지닌 국가/지역 성공회가 개척한 경우 Episcopal Church를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스코틀랜드미국의 성공회가 잉글랜드/영국과 대립했던 역사 때문에 Episcopal Church를 사용한다. 필리핀의 성공회는 미국의 식민지였던 시절 미국 성공회의 포교를 받아 설립되었기 때문에 영국과 대립한 적이 없으나 미국을 따라 Episcopal Church를 사용한다. 타이완 성공회도 미국 관구에 속해있고 미국 성공회의 포교를 받아 설립되어 마찬가지로 Episcop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대한성공회의 영어 명칭에는 Episcopal 대신 Anglican이 들어가는데, 이는 대한성공회는 영국 성공회 선교사에 의해 신앙을 전래받았고, 오랫동안 영국 캔터베리 관구 직할이었던 역사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각 국가/지역을 담당하는 성공회 교회 조직의 명칭에 꼭 Anglican Church나 Episcopal Church가 들어가는 건 아니다. 해당 국가/지역의 기독교 교파 중 성공회 신자가 많거나 국교 같은 뭔가 우월한 지위에 놓여 있(었)던 경우 그냥 Church of 나라/지역이나 Church in 나라/지역의 이름을 붙여 놓은 경우가 많다. 성공회의 모체인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나 한때 법적으로 국교였던 웨일스 성공회(Church in Wales), 아일랜드 성공회(Church of Ireland)[9]나 영국이 지배한 인도 공화국,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의 성공회가 그 예. 물론 영국이 식민지로 지배했다고 해서 꼭 성공회 조직이 이런 식의 이름을 붙인 건 아니니 상황에 따라 다르다. 또, 홍콩(Hong Kong Sheng Kung Hui[10])과 일본(Nippon Sei Ko Kai - 일본어 발음)의 성공회처럼 영어로 적을 때에도 현지 언어의 발음을 그대로 로마자로 옮겨 적는 성공회 조직도 있다.

3 역사 (영국 교회의 역사)

3.1 성공회의 기원

성공회의 기원은 헨리 8세 시기로 알고 있다. 단순히 로마가톨릭에서 개신교로 개종(?)한것 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복잡한 사정이 있다.

역사적 사실을 단편적으로 서술하면, 16세기 종교개혁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으로 잉글랜드 내에서는 로마교회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잉글랜드 국교회가 출범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대륙의 루터, 칼뱅이 이끈 신앙과 교리의 문제와는 매우 다른 특이한 양상으로 생겨 났는데 이는 단선적인 사건은 아니다. 잉글랜드의 종교개혁은 여러 우연과 영국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사건의 결과물이지 왕의 단순 이혼 문제라고 보는건 재미는 있겠지만 그렇다고해서 여러 의문점을 설명할 수준은 되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회의 기원과 역사들을 연구하는 학자들 조차도 세세히 분석함에 어려움을 느낀다.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영국 교회(성공회)의 출발을 결혼같은 우발적 사건, 우연성, 일탈로만으로는 보기에는 현재성공회의 정체성이 설명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단 영국 국교회 가톨릭에서 분리된 표면적인 계기는 헨리 8세의 혼인 무효 문제이다.[11]

그런데 이 설명은 어디까지나 로마교회의 단절이 일어나기전 직전의 사건만을 요인으로 간주하는 방식으로 앞서 간략히 설명한 여러 복합적 요인중 하나일 뿐이다. 왜냐하면, 성공회의 기원을 단순히 '헨리 8세가 이혼하고 싶어서'라고 하는 것은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만화 세계사에나 나올 법한 단편적인 수준이고, 영국 역사나 교회사를 제대로 아는 수준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혼 문제가 표면적 계기라는 설명은 비록 틀린 설명은 아니지만, 성공회에서는 '헨리 8세가 혼인 무효하고 새로 장가가고 싶어서 만든 종파'라는 식으로만 달랑 설명하지는 않고, 당시 잉글랜드가 처한 상황을 설명한다.(그러나 당연히 표면적인 이유가 헨리 8세의 혼인 무효 문제였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복잡한 사정보다 그 시기의 스캔들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
16세기 중반 국왕의 혼인문제 때문에 우발적 사건으로만 본다면 영국(잉글랜드) 교회가 거의 천년역사동안 로마의 종주권을 인정하다가 전통을 부정했음에도 왜 그에대한 국내 반발이 적었고, 오히려 찬성하는 목소리가 높았는지 사실에 대해선 설명이 어렵다.

실제 역사상 헨리 8세가 사망하고 메리 1세 즉위 후 다시 가톨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극심한 반발이 터져나왔고, 16세기 엘리자베스 시기에는 영국국교회의 정체성이 강해지며 국교회 우위가 이어졌으며, 17세기부터는 거의 완전한 개신교 우위 국가가 되었음이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선 일단 전세계 성공회의 역사는 영국에서 출발 한 것으로 영국교회의 역사를 먼저 볼 필요가 있다.

3.2 16세기 이전

영국 교회의 독자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잉글랜드에는 이미 AD 2세기경부터 켈트인 교회(Celtic Church)가 있었는데 나중에 가톨릭 휘하로 들어가게 되었고, 헨리 8세의 혼인 무효 문제로 인해서 이 켈틱 교회가 다시 분리된 것이 현대의 성공회라고 말한다. 즉, 성공회는 스스로 초대 교회 시기부터 잉글랜드 지역에 있었던 켈트 교회를 잇는다고 본다.

가톨릭 교회 전승으로는 597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지시로 로마 태생인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노가 주교로 서임되어 잉글랜드로 건너가 당시 켄트 왕국의 왕 에텔베르트(560-616년)에게 성탄절에 세례를 주어 앵글로색슨족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자 왕으로 임명한 것을 잉글랜드 그리스도교의 시작이라고 본다.

일단 가톨릭 교회 전승과 역사적 사실에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1세기 이후 로마 제국 내에서 기독교의 전파는 초기 동방과 로마, 아프리카에서 영국이 속하는 유럽 변방지역까지 제국 전역으로 퍼졌고[12] , 기원후 2세기경 켈트인들의 일부가 기독교를 받아들인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로마 교황청에서 전래전에 영국 기독교의 역사가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다. 켈트인들은 대륙의 다른 곳과 달리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었다. 수도생활은 서방교회와 공통점이 거의 없었고, 특히나 부활절 날짜를 독특하게 독자적으로 계산할정도. 영국의 주교들이 AD 314년 아를르 교회회의에 참석했던 것으로 보아 가톨릭 교회에서 조차도 역사적으로 브리튼 섬에는 3세기 이전에 이미 선교사가 파견된 걸로 본다. 그러나 로마가 멸망하고 게르만(앵글로 색슨)인들이 영국을 침략하자 기독교를 믿는 켈트인들은 점차 산악으로 밀려나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러다가 597년 대교황으로 불리는 그레고리오 1세의 시기[13] 로마 태생인 캔터베리의 아우구스티노가 주교로 서임되어 잉글랜드로 건너가 당시 켄트 왕국의 왕 에텔베르트(560-616년)에게 잉글랜드 군주 중에 최초로 세례를 주는데 이는 에텔베르트의 왕비 베르타는 프랑크 왕국 계열의 네우스트리아 왕국[14]의 공주로 하리베르트 1세의 딸이며, 앞서 프랑크 왕국은 이미 대륙에서 5세기 클로비스 1세 시절 가톨릭으로 개종했었고, 열렬한 기독교도로 알려진 브륀힐트 여왕의 조카였기 때문에[15] 대륙에서 시집오기 전에 이미 기독교인이었고 로마에서 파견한 선교사들이 켄트 지방 안전하게 상륙하고, 포교할수 있었다. 이를 보아 영국의 지배계층에 기독교인이 상당수 세를 얻고 있었으며, 다른 지배층 또한 선진문물을 받아들일 목적으로 개종에 거리감이 없었다는걸 보여줄 뿐이다.

  • 한편 가톨릭 교회 전승으로 전 서유럽에 주교들을 서임하여 로마의 수위권이 자리잡았다는 식의 서술도 있는데 실은 그 반대다.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각지에서 기독교화된 로마인들이 순교자들의 유골이 있는곳에 교회를 세우고 그곳 유력자들을 주교로 삼아 이민족 침략자에게 맞서 재산을 기부하여 보호하였고, 각지의 주교구에서 서유럽 교회의 중심지이며 서로마의 상징적 후계인 로마에 정당성을 인정받으려 수위권을 인정한것이 대략적인 서유럽 교회의 성립사이다. 한편 로마제국은 망했어도 로마 도시는 여전히 부유했기 때문에 각지에 자금을 지원해주면서 영향력을 키워갔고, 서로마 권역을 벗어난 동방 시리아까지 로마교회의 자금지원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영국은 여타 다른 서유럽 세속왕국처럼 교황청과 갈등을 빚기도 했는데 헨리 3세 시절 교황청에서 주도로 십자군 전쟁을 위해 잉글랜드에 무리한 과세 요청을 했다가 헨리 3세가 등떠밀려 잉글랜드에 세금을 때렸음에도 모금에 실패하자 교황청이 이를 구실삼아 헨리 3세에 파문을 때렸으나 이를 고깝게본 영국 성직자들은 오히려 국왕편을 들 정도였다.[16]

그리고 영국에서는 이미 14세기 개신교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를 배출했다. 위클리프는 그를 따르는 무리인 롤라드(Lollady) 파와 함께 가톨릭 교회의 전통주의, 그리고 성인 , 성유물, 성해에 대한 공경을 성경에서 서술을 찾아볼 수 없고 성서상 기독교 교리와도 충돌하는 숭배로 보아 비판하며[17] 성경 중심의 신앙을 주장했고 이를 강조하려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고 성체성사의 화체설[18], 교황의 수위권 등 교회제도 등에 대해 강한 비판을 했었다. 이는 후대 얀 후스종교개혁 시기 마르틴 루터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위클리프에 대해 교황청에서는 1378년 당시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2세에게 위클리프를 체포하여 정죄할 것을 요구했으나 무시당했고, 로마에선 다시 옥스포드 대학 부총장에게 위클리프 처벌을 지시했지만 잉글랜드 국왕은 옥스퍼드 부총장을 처벌했다. 30여년 후[19] 위클리프와 위클리프주의자들은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보헤미아의 얀 후스와 패키지로 이단자로 선언되고, 위클리프의 유해는 부관참시 당했다. 그러나 이들의 움직임은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을 뿐 잉글랜드 교회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약 20여년 전 1500년대 초반부터 롤라드파의 화체설 교리 비판을 중심으로 가톨릭 교리에 대한 개혁 움직임이 다시 태동했기 때문에 헨리 8세가 가톨릭교회와의 단절 선언이 가능한 것이었다.

3.3 헨리 8세의 종교개혁

  • 헨리 8세의 아들낳기 염원과 이혼문제는 헨리 8세와 연관 항목을 참조하면 될 것이고, 이하 종교개혁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한다.

앞서 여러 오해가 있는데 일단 현재는 완전히 개신교인 성공회와 헨리 8세의 영국 국교회의 모습은 상당히 다르다. 헨리 8세의 종교개혁은 교리나 신앙을 조직을 바꾸는 것이 아니었고 조직의 수장 (잉글랜드 내에서) 국왕으로 재확인 하는 것이었다. 교황청이 명목상으론 서방 교회의 전체를 주관하는 권한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신성로마제국을 제외하면[20] 세속군주에게 교회조직의 운영을 위임했었다. 영국 프랑스[21]와 같은 국가들은 독자적으로 주교를 임명하고 추기경이고 대주교고 간에 멀리 있는 교황청보다 왕의 신하라는 인식이 강했다. 물론 사제계층은 평신도인 왕이 재판할수 없는 신분으로 이론상중세시기 왕이 마음대로 재판할 권한이 없었고, 교회에 조직에 관한, 그리고 교회에서 주관하는 관상제는 성직자들이 왕에게 이견이 있을경우 이론상 로마 교황청에 항소할 수 있었는데, 거의 사문화 되었던 로마교회의 이 성직자 신분에 대한 재판 관할권, 영국교회에 관한 처분을 영국외 다른 조직에 대한 상소권을 반역으로 선언한것... 이것이 곧 수장령 (Acts of Supremacy, 首長令)이다.

헨리 8세에드워드 6세 이후 메리 1세 때 다시 영국교회는 다시 국가 교회에서 로마 교황청의 수위권을 인정하여서 가톨릭으로 회귀한 것을 볼 때, 헨리 8세에 의해 영국국교회가 로마교회에서 독립하고,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영국국교회로 회귀하며 지금의 성공회 토대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하여 성공회 신학자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견해로는 [22] 헨리 8세 시절은 잉글랜드가 어떤 일관된 '개신교'가 존재했다는 말을 전혀 할 수가 없다.
헨리 8세 시절은 로마교회에서의 독립으로 영국국교회(성공회)의 역사 시작임은 분명하지만 가톨릭교리를 거의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헨리 8세는 교리상으로는 종교개혁 초반에 루터주의의 영향으로 하나님이 지상권을 군주에게 위임한 것이라는 주장에 매우 호감을 느끼긴했지만 루터주의나 칼뱅주의 자체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온건한 가톨릭 개혁주의 였던 네덜란드 출신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가 헨리 왕의 성향이었다. 당연히 대체로 가톨릭 신앙을 유지했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졌다. 1543년에 나온 '왕의 책(King's Book)'[23]은 가톨릭 신자들을 안심 시키려는 왕의 견해가 분명히 나타난다. 대륙의 복음주의자 즉 프로테스탄트들이 주장한 대부분의 주장을 배격하는데, 가톨릭 교리인 성체성사의 화체설(성변화), 평신도 양형 영성체 금지, 사제독신, 주교제도, 영어성경 번역 금지[24] 고해성사7성사 제도 옹호, 현실적으로 성당의 주수입원이던 '죽은 자에 대한 미사' 등등 기존 가톨릭 교리와 전통을 교황수위권만 제외하면 재확인 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아이러니 하지만 헨리 8세는 가톨릭 교리를 옹호했다.

물론 헨리 8세가 로마 가톨릭 교인은 아니다. 당연히 수장령과 이의 후속 법령인 반역법(Treasons Act)를 근거로 (영국 내에서)교황 수위권을 부인을 거부한 토마스 모어와 존 피셔를 처형하긴 했다.[25] 그나마 토머스 모어[26]는 개인적 친분 때문에 살리려고 회유에 갖은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여 반역죄를 물어 참수 시켰지만, 이전에 토머스 모어를 대법관으로 기용하여 복음주의 루터파 칼뱅신학에 물든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신학교수들은 40명을 체포하여 고문하다 6명을 이단으로 화형시킨 예도 있다. 사실 헨리 8세는 대륙신학에 영향받은 루터,칼뱅주의복음주의자들을 가톨릭교도 신하들보다 더 많이 처형했다, 앞서 두 출처를 긁어보면 헨리 8세 시기 가톨릭 신하 처형자는 60명, 개신교 신하 처형자들은 63명인데 가톨릭 교도들은 반역죄로 처형했다면, 개신교 신앙을 가진 대륙신앙의 복음주의자들은 63명을 종교적 이단이라서 더 심하게 화형을 시켰다.[27]

기존 교회세력의 가장 큰 저항인 1536년 요크셔와 링커셔 지방의 '은총의 순례(Pilgrimage of Grace)'가 유명한데 헨리 8세가 종교정책으로 가톨릭만을 탄압했고 극심한 반발이 있었다 주장하는 측도 있지만, 실제 대규모의 반발은 이 경우가 유일했다.

그마저도 이 반정부 봉기는 성직자중심으로 일어나긴 했지만 오히려 경제적 이유가 컸다. 성직자들이 봉기를 일으켰던 주요 이유는 정부의 개혁정책으로 여러 교구들을 소유하지 못하게 되고, 해산당한 수도원수도자들을 고위 성직자들이 먹여 살리게 했으며, '첫 열매와 십일조 법령(Act of First Fruits and Tenths)'을 통해 자신들의 수입이 박탈당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종교정책을 바꾸기 원했던 것이라기보다 경제적 불만을 표출하는 일종의 저항의 표시였다.[28]

앞서 수도원 몰수도 가톨릭 교도들의 반발... 이 있었다곤 하고 동기도 개혁같은 순수한 의도가 아닌, 현실적인 금전적 욕구에서 몰수한것이긴 한데 여론의 지지 없이 한것이 아니다.

이미 중세이후 유럽의 수도원 상태는 영국이라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특권집단화 되어 수도원이 잉글랜드 토지의 1/6을 소유하면서 면세혜택과 치외법권 혜택을 누렸고 이에 특권집단화 된 수도원의 수도를 할 수도자들이 있는 수도원도 있지만 많은 수도원에서 경제적 이득을 쫓는 수도자들이 대거 유입되며 범죄자,문맹자들이 대거 유입 그로인하여 수도원에서 이를 악용하여 이자놀이, 범죄자 숨기기, 도박장 운영... , 농민들 상대로한 경제적 수탈, 등등 다양한 막장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런던등 대도시에서 부르주아들은 물론 독실한 교인들마저 수도원을 갈아엎은건 환영할 정도였다.


또한 잉글랜드의 가톨릭으로부터의 독립은 당시 잉글랜드가 처한 국가적 상황과 연결하여 입체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 실제로 아무리 왕권이 강하다고 한들, 왕이 이혼하고 싶다고 해서 영국인 전체가 하루아침에 종교를 갈아엎는다는 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당시 잉글랜드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란머 등 헨리 8세에게 협력한 성직자들이 상당수였고 이들이 영국 교회를 개신적인 신앙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을 주도했다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들은 이질적인 라틴어 미사를 비롯한 전통이라는 이름에 유지되던 가톨릭적 관습에 깊은 회의를 느꼈고 동시에 섬나라 잉글랜드 교회의 독자적인 특성들에 이해하고 로마 교회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특히 당시 왕의 측근이었던 토마스 크랜머는 왕의 이혼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자신의 숙원이던 '공동기도문(The Book of Common Prayer)[29][30]를 발간해 지금의 성공회 예배 형식인 감사성찬례의 원형을 만들었다.


어쨌든 헨리 8세의 원래 의도도 어디까지나 로마로부터 간섭 받지 않는 교회조직을 만드는 것이지 영국 교회 체제 전체를 전복시키려는 것이 아니었고 실제 개혁을 움직인 성직자들도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잉글랜드 교회만의 독자적인 신학을 정립하려는 의도였기에 사실 단순화시켜서 얘기하면 헨리 8세 당시의 영국 국교회는 로마 가톨릭적인 외적 요소들에 루터교장로교의 교리를 조금 첨가해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현대에 이르며 갈수록 넓어지는 스펙트럼을 가진 성공회 신학을 단순히 정의하기는 힘들어졌다. 그렇기에 "성공회는 어떤 기독교입니까?"에 대해서 어떤 성공회 신학자나 성직자 또는 신자도 간단히 답을 내리지 못한다.

한 가지 더, 헨리 8세로마 가톨릭적인 요소들을 용인한 데에는 교회의 전통을 중시한 것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장로회식의 수평적 정치는 헨리 8세가 원했던 목적들을 이루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코틀랜드 교회는 수평적 정치문화가 발달해 있었고 이에 장로회 체제를 도입한 후 최종적으로 주교제를 폐지한 것과 대비되게 중앙집권과 국가교회체제 도입을 우선시했던 왕에게는 수직적 계서제의 주교제가 무척이나 중요했다.

3.4 헨리 8세 시대 이후

헨리 8세 사망 이후 영국 교회는 한동안 혼란을 겪게 된다. 유일한 아들 에드워드 6세시절 에드워드의 외가를 비롯한 대륙의 복음주의 성향 신하들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다시 헨리 8세시절 가톨릭으로 거의 회귀한 영국교회를 대륙에 영향을 받은 개혁신학의 영향을 깊게 받게 된다. 에드워드가 요절하고 짧게 메리 1세 시대가 되자, 메리는 이혼의 원인이 된 아라곤의 캐서린의 딸이며 이혼으로 신분이 격하 되었다가, 헨리 8세의 변덕과 새어머니의 배려로 다시 적자로 되는등 신앙을 떠나 자신의 정통성과 지지세력이 가톨릭이기 때문에 영국교회는 다시 로마가톨릭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에서 극심한 반발이 터져나왔다. 골수 가톨릭 교도 펠리페 2세와의 결혼은 모든 신하가 반대했고, 여왕의 결혼에 반대하는 폭동이 런던 시내에서 발생했고, 철저히 무력 진압에 나서면서 반대파 숙청에 나서기 시작했고, 대륙의 개혁 신학을 받아들인 청교도, 뿐만 아니라 기존 영국교회의 독자성을 중시하던 고위 성직자들까지 화형을 시키면서 5년 동안 300여명을 화형시키게 된다. 더불어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으로 다져진(?) 스페인인들이 개신교도 색출에 나서자 가톨릭에 동조적인 잉글랜드 인들조차 여왕에 등을 돌리게 된다.물론 이러한 무리한 조치는 짧은 치세동안 되돌리기 어려웠고, 메리 사후 엘리자베스 1세 시기 거의 자발적으로 복귀한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 초반에는 메리시절 잔혹한 종교탄압과 상반되는 정책을 폈다. 엘리자베스 1세 세기 초반 12년 치세에는 귀족들은 가종교적 맹세를 면제받고 사실상 종교의 자유를 누렸다. 가톨릭 교도가 탄압받기 시작한것은 엘리자베스 주도가 아니라 1570년에야 교황청에야 뒤늦게 엘리자베스를 파문하고, 이어서 형부인 펠리페 2세가 잉글랜드 침공을 시도하자 그 전후로 가톨릭 교도는 매국노이며 반역자라며 민족감정이 들끓으면서 사회적으로 탄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엘리자베스 시기 후반에 가면 요크셔처럼 가톨릭에 미련이 많던 일부 지역마저 영국국교회 우위가 두드러지게 된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시대에 앞서 헨리 8세 시대에는 개신교와 가톨릭 신앙을 왕권의 방해요소가 아니면 묵인했기에 극심한 탄압이랄것은 없었다. 에드워드 6세 시기는 미성년 국왕 대신 섭정들과 유력가들의 권력 다툼으로 배가 산으로 가던 시기고, 가톨릭 신자였던 메리 1세는 가톨릭 교도가 아닌 복음주의자들을 극심하게 탄압했다. 여기서 국교회(성공회)신자들이 탄압받지 않았냐는 소리가 나오는데 국교회는 메리가 교황청에 도로 조공으로 바쳤기에 고위 성직자 주교들은 불만을 품은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 종교에 그다지 큰 관심 없는 신도들은 국교회나 평생 볼일 없는 교황청이나 그게 그거..라서 차이점을 못 느꼈다 그리고 중요한것은 이 당시 신도들은 종교적으로 열성적인 복음주의자, 기존 전통적 신앙을 지키려는 가톨릭 신도들은 숫적으로 다수가 아니었다. 도시의 일부만 종교개혁을 지지했다는 무리한 의견이 있는데 당시 서유럽 농촌의 문맹률은 거의 95% 이상이고, 도시마저도 교육받은 계층은 절대 소수였기 때문에 지금에 와서야 성공회니 개신교니 가톨릭이니 교리가 어떠한지의 논쟁은 대부분의 신자들은 노관심을 넘어선 접근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었고, 외형적인 교회 예배는 헨리 8세시절 거의 유지했기 때문에 변화자체를 체감 하지 못 했다.

어쨌든 종교갈등에 대한 교훈을 얻어 성공회는 가톨릭과 대륙 신학의 개신교도(청교도)들의 과격한 행동을 배격하며 'Via Media'(중용의 길)이라는 모토가 성공회에 자리 잡았다.

물론 그 당시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된 적은 별로 없었다. 여하튼 이 모토 역시 성공회의 태생과 그 정체성, 현실적 제도와 맞물리면서 그야말로 '개혁하는 보편교회'라는 성공회의 모토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핵심이 되었다. 초대교회의 전통을 보전하면서 신학과 믿음에서는 끊임없는 개혁을 추구하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포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후임 제임스 1세 때도 유지되어 스코틀랜드 출신의 제임스 1세도 주교제 아래에 움직이며 보편교회와 개신교회를 동시에 추구하는 성공회를 중심으로 국교회 체제를 강화하는 데 일조한다. 다만 제임스 1세 때부터 정치적 견해 차이로 청교도 탄압이 일어났다. 애초에 스코틀랜드 국왕 시절 제임스 1세는 칼뱅주의 교육을 받아 교리상 상당한 호의감을 느꼈으나 잉글랜드 국왕 즉위 후 국가 교회와 주교제도에 대단히 만족했는데 청교도들은 이런 제임스 1세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으며, 신학적으로 가톨릭 전통의 일소를 주장했고, 제임스 1세의 왕권신수설과 주교(감독)제도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후 찰스 1세시기 고교회파로 청교도들에게 악명과 원성이 높았(?)던 윌리엄 로드[31] 대주교 같은 인물도 개신교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으며, 찰스 1세조차 처형직전 진정한 개신교 신앙을 가졌으며 자식들에게도 그러하길 주문할 정도로 완전히 개신교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다.

올리버 크롬웰 시대에는 청교도가 권력을 잡게 되어[32] 보수적인 장로회 문화로 주교제가 폐지되고 성공회 신학이 매우 급진적인 예정설로 흐르게 된다. 이후 한동안 국가교회의 정체성만 간신히 유지하다가 19세기 헨리 뉴먼[33] 등을 중심으로 한 옥스퍼드 운동으로 '보편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초대 교회의 전통들을 다시 복원, 확산하게 된다.

이 시기 이후 성공회의 이른바 '고교회파(high church)'와 '저교회파(low church)'가 확연히 구분되기 시작한다. 고교회파는 하드웨어는 가톨릭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저교회파는 하드웨어든 소프트웨어든 다른 개신교 종파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34] 이런 '고교회파' 또는 '저교회파'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이런 용어는 잘사용되지 않는다. '고교회파(High Church)는 앵글로-가톨릭(Anglo-Catholic)[35]으로 '저교회파(Low Church)'는 복음주의(Evangelical)[36][37] 사용된다. 그렇기에 성공회 포럼 등을 들어가보면 고교회파, 저교회파라는 용어를 볼 수 없다. 한국 성공회는 앵글로-가톨릭이 주류인 관계로 로마 가톨릭과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한국의 모든 성공회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앵글로-가톨릭은 외형상 로마 가톨릭 교회와 거의 흡사하며, 현대 로마 가톨릭에서 사라진 전통적 풍모가 일부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 앵글로-가톨릭에서는 사제를 로마 가톨릭처럼 '신부'라 호칭하며, 로마 가톨릭의 성직자와 입는 것과 비슷한 성직복을 입는다. 반면에 복음주의파는 외형상 로마 가톨릭보다는 개신교에 가까우며(존 스토트가 몸 담았던 런던 소재 '올 소울스 교회'도 그러하다) 복음주의파에서는 사제를 일반 개신교처럼 '목사'로 호칭하며복음주의파에서도 사제를 '신부'라고 호칭한다.[38] 이쪽 계열 사제들은 가톨릭스러운 성직복보다는 일반 개신교 목사처럼 일반 정장차림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앵글로-가톨릭(고교회파)라 해서 그들을 동질적인 그룹으로 보기엔 곤란한 부분이 있다. 고교회파라 해도 전례는 로마 가톨릭에 가깝지만 신앙관면에서 개신교의 정체성을 강하게 가지는 부류도 있고[39], '교황 없는 천주교'라는 별명이 어울릴 정도로 신앙관마저도 천주교에 근접한 부류도 있다. 또한 고교회파 중에서도 보수파[40]와 진보파가 존재한다(동성애, 여성사제 등의 문제에서). 후자를 liberal Anglo-Catholicism이라 한다.

넓은 신학적 저변을 가지고 있고 중도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에서 현대의 성공회는 다른 교파에 비해 적극적인 교회일치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보편교회적인 특성에서 교황의 절대적 수위권을 거부하고 지역교회 간의 자율과 권한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정교회와도 대화할 수 있고, 신학이나 교의적인 측면에서는 단연 다른 개신교 교파들와 연대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교회일치운동에 빼놓을 수 없는 교단이 되었다. 물론 교리상, 전례상으로 가톨릭과의 공통점도 많아서, 가톨릭과의 연대도 가능하다. 세계교회협의회의 창립멤버이기도 하다.[41]

paul-vi-m-ramsey.jpg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좌측)와 마이클 램지 캔터베리 대주교(우측)의 만남.

16세기 이후 서로 대립해오던 세계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은 1970년대부터 '성공회-로마 가톨릭 국제위원회(ARCIC, the Anglican-Roman Catholic International Commission)'를 설립하고 일치를 위한 공식적인 대화의 길을 열게 되었다.

본래 교회일치운동에 소극적이던 로마 가톨릭은 지난 1965년 폐막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회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을 발표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고, 그 일환으로 성공회와 ARCIC를 발족하게 된 것.

이러한 대화의 결과들은 양측의 공동합의문 형태로 발표됐으며 성공회와 로마 가톨릭은 16세기 이후 오랜기간 동안 나눠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과 교리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후 지난 2000년 캐나다의 미시사가에 모인 양측 대표는 3기 위원회를 구성하고 1기와 2기의 결과 및 새로운 주제들을 선교라는 보다 큰 틀에서 다루기 위해 명칭을 '성공회-로마 가톨릭 일치와 선교를 위한 국제위원회(IARCCUM, the International Anglican-Roman Catholic Commission for Unity and Mission)'로 변경하고 매년 1차례 회의를 개최하며 일치운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40년에 가까운 일치논의에도 두 교단은 교리와 신앙상의 도덕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왔다. 더욱이 성공회에서 여성과 동성애자를 사제와 주교로 임명하는 것을 허용하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양측간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대립상태에 놓여있는 모습에서 깊어진 골이 확인됐다.

또한 계속 제기되고 있는 성체성사 문제 역시 두 교단이 일치 될 수 없는 뜨거운 화두로 작용하고 있다. 성공회 주교들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가톨릭의 영성체를 허용하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영성체 문제는 일치를 이루지 못한 상황이라, 아직도 성공회-가톨릭 공동 예배는 성찬례가 생략된 채로 집전된다.

그럼에도 지금도 양측 간 일치 노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16년 10월에는 캔터베리 대주교와 교황 프란치스코가 만나 일치를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기로 결의했다. 이에 앞서 2016년 2월에는 헨리 8세의 옛 왕실 예배당에서 450년만에 가톨릭 전례가 드려지는 것이 허용되고, 여기에 성공회 런던 주교가 참석함으로서 교회일치를 향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차이에도 두 교단의 일치문제가 오랫동안 구체적으로 검토된 것은 양측이 다른 개신교보다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개신교 중에서는 가톨릭과 가장 사이가 좋은 편이며[42], 본고장 격인 영국에서는 이미 많은 행사를 연합해서 치르고, 역사적 건물을 공동관리 하는 등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교리적 차이는 인정하되, 한국에서처럼 누가 옳으네 그르네 하면서 치고받는 모습은 드물다.

4 특징

한마디로 'Via Media'(중용의 길)로 표현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위에 기술한 역사적 배경처럼 영국교회가 종교개혁을 바탕으로 국가교회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모든 국민이 믿어야 하는 국가교회의 탄생을 위해서는 기존의 영국에 있었던 로마 가톨릭, 루터교, 장로회 등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교리와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탄생한 개념이 'Via Media'다. 기존 각 교파의 극단적인 교리보다는 중용을 통해서 진리를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른 그리스도 교단보다 '다양성의 존중과 이성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된다. 다양성을 존중한다고 해서 성공회가 상대주의/다원주의적인 관점을 취한다고 보는 건 큰 오산이다. 성공회의 신앙관은 다양성 그 자체의 추구가 아닌, 다양성을 통한 진리 탐색이다.

성공회 신앙관을 이야기하자면 '성서', '전통', '이성'[43]으로 나타낼 수 있다. 성공회는 이 세 가지 중에서 그 어느 하나도 덜 중요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 세 가지 모두를 동등하게 중요하게 여긴다. 개신교이기에 성서가 더 중요하다고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44] 성서를 해석하는 방식으로 전통과 이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권위가 성서에 있을지언정 세 가지 모두 동등하게 중요하다.

또 한 가지 오해하기 쉬운 것이 '이성'인데, 이 이성은 한 개인의 이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이성을 의미한다. 이성도 중시하는 성향은 반지성주의로 치닫는 근본주의 개신교와 반대되는 모습니다.

즉 개신교가 갖는 종교개혁적 정신과 로마 가톨릭가 갖는 전통, 주교제의 안정감 및 사회적 깨끗함, 그리고 성공회 특유의 이성중시 사상이 결합된 교회이다. 그래서 어떤 다른 교단 목사님은 '성공회가 교회의 끝판왕'이라고 한다.[45]
우리나라 성공회 교회를 봐도 이런 특징이 잘 나타난다.

인권과 진보적인 성향을 추구하는 성공회대학교[46]를 운영하고, 교회의 정치적인 입장을 보면 좌파 일변도의 느낌도 있지만, 정작 성공회 교인들 중에는 조선일보 사주인 방상훈 대표이사, 한화 김승연 회장 등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의 교인들도 매우 많다. 중장년, 노년층 성공회 신자들의 정치적인 스탠스가 평균적인 개신교인과 크게 다를바 없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회 분위기 상 교회가 신자에게, 신자가 다른 신자에게 '해라, 마라'의 강요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특정한 사항에 확실한 답을 하지 않는 성향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는 '교회가 개인의 신앙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는 성공회의 가치와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나라 주류 개신교단 또는 로마 가톨릭[47]에서 성공회로 교회를 옮긴 신자들은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여긴 정답이 없는 교회야 결국에는 신자 개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답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 헌금에 관하여
    • 다른 개신교회처럼 십일조를 하시는 엄청 독실한 분(...)도 있고, 천주교같이 1/30 수준의 교무금 정도 하시는 분, 주일 헌금만 하시는 분, 헌금은 성경적이지 않다고 하면서 아예 안하시는 분(...) 등 신자 성향이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도 교회는 확실한 답을 알려주지 않고 신자의 개인적 성향에 맡긴다.
  • 주일 감사성찬례/미사/예배를 빠지는 경우
    • 개신교회: 주일성수 안했다고 정죄(?)하는 분위기. 특히 뜨거운(?) 교회 일수록 목사님이나 전도사님이 전화하고 찾아온다. 천주교가 정신적 압박이면, 여긴 실제 물리적 압박을 준다.
    • 로마 가톨릭 교회: 교리에서 정한 죄를 지었으니까, 회개하고 신부님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영성체(성찬식 참여)가 가능하다. 만일 고해하지 않고 영성체 했다가는 대죄(중죄)인 모령성체가 돼서 또 고해를 해야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 성공회 : 아무 애기가 없다. 너무 안 나오면 가끔 신부님이 문자 한번 주긴 하는데안 주는 경우가 더 많다 주는 경우를 못 봄 신부님 제발 관심 좀 구역장이 냉담자들한테 부활절, 성탄절 예배라도 출석하라고 독려하는 전화를 주기도 한다, 1년에 2번만 출석하면 성공회 신자라는 농담도 있다, 감사성찬례에 나오라고 강요는 안한다. 그래서 몇 달 몇 년씩 방황(냉담 또는 다른 교단, 타 종교)하고 오는 신자가 꽤 있다. 그래도 뭐라고 안한다. 그냥 신자 스스로 고민해서 돌아오길 바란다.
  • 고백예식[48]에 관하여
    • 개신교회: 죄의 고백과 용서는 하나님이 하는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고해(고백) 할 수는 있으나, 성사는 아니며, 목사는 용서할 권한이 없다.
    • 로마 가톨릭 교회: 하느님이 죄를 사하는 권한을 교회에 주었기에 사제를 통해서 대죄를 용서 받아야 한다. 그렇기에 고해성사는 신앙생활에서 필수적인다.
    • 성공회: 개신교 스타일대로 하느님께 직접 고백해도 되고, 천주교처럼 사제에게 고해해도 되는 하이브리드(...)한 시스템이다. 공식적인 입장으로는 신앙생활에 매우 유익하므로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로마 가톨릭과 다른 점은 로마 가톨릭은 고해성사를 정기적으로 하도록 의무화 되어 있으나, 성공회는 신자 본인이 진정으로 고해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 로마 가톨릭처럼 제도적으로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는 신자도 없고, 만일 한다 그러면 신부님이 당황하는 걸 볼 수 있다.
  • 외경(제2경전)에 관하여
    • 개신교회 : 정경이 아니므로 교리의 기초로 삼을 수 없으며, 특히 보수 교단의 경우 외경을 읽는 것 자체를 배척하기도 한다.
    • 로마 가톨릭 교회 : 제2경전 또한 39권 구약 경전와 동등한 정경이다. 연옥 등 많은 교리가 제2경전을 근거로 하고 있다.
    • 성공회 : 외경(제2경전)은 정경으로 삼지 않으며 교리의 기초로 삼을 수 없지만 유익한 책으로 적극 읽기를 권장한다.
  • 성모공경에 관하여
    • 개신교회[49]: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고 좋은 믿음을 가진 신자라는 것은 동의하지만 '그래서 어쩌라고?'의 느낌이 강하다.
    • 로마 가톨릭 교회: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평생 동정설', '원죄 없으신 잉태(무염시태)', '몽소승천'의 4대 교리를 믿는다. 또한 모든 성인 중에 가장 높으신 분으로 우리를 위하여 하느님께 간구하시는 분으로 상경지례의 대상이 된다. 저런 교리를 부정하는 것은 파문에 이르는 죄로 여긴다. 또한 가톨릭 신자들은 집에 십자고상과 함께 성모상도 모셔둔다.[50]
    • 성공회: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공식적인 입장은 '하느님의 어머니'만 천주교와 동일하다. 나머지에 대해서는 개인의 신앙에 맡긴다.[51] 또한 예수님의 어머님이고 믿음의 모본으로 공경하기에 다른 개신교에 비해서 성모신심이 약간 강한 편이다. 또한 신자 개인이 로마 가톨릭 수준의 매우 강한 성모신심을 가지고 있다해도 이를 말리지 않는다. 애초에 성모송 정식 예식 도중에 들어가는데 한편으로 성당에서 펼치는 성모축일 행사 등을 거부하지 않는 선에서, 타 개신교단 신자처럼 개인 신앙생활에서 성모 마리아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예를 들어 개인 방에 성모상을 안둔다든지) 신앙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다. 어떤 사람은 성공회는 성모 마리아 없는 천주교라 평했다 카더라[52]
  • 성체성사에 관하여
    • 개신교회: 단지 예수의 희생과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일 뿐이라는 입장에서 영적으로 임재하신다는 입장까지 다양하다[53] 다만 화체설(성변화)을 거부하는 것은 다 동일하다. 성찬식의 경우 일년에 한 두 번, 많아 봤자 분기당 한번씩이나 매달 한번씩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 주일마다 성찬식을 하는 것은 성체에 대한 숭배로 변질 될 가능성이 있어서 이신칭의 신앙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자제해야 된다는 종교개혁 시기의 주장도 있었고, 한국의 주류 개신교 목회자나 평신도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포도주, 면병이 아니고도 포도주스, 효모빵, 카스테라 등으로 할 수 있다. 동방정교/로마 가톨릭/성공회와 달리 성체를 영하는 특별한 예절은 없다.
    • 로마 가톨릭: 축성된 면병과 포도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이며("성변화"), 성체를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매우 중요한 성사이다. 따라서 매일 미사마다 영성체를 실시한다. 대죄를 진 상태라면 반드시 고해성사를 보고 영성체를 해야 한다.[54] 면병과 포도주가 성변화를 일으키는 시점은 사제가 제정문을 낭독할 때이다.[55] 그렇기에 로마 가톨릭의 미사의 절정은 제정문을 낭독할 때이다. 로마 가톨릭 신자만이 적법하게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체를 영할 수 있다.[56]
    • 성공회: 성체를 영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중요한 성사이고 로마 가톨릭 같이 매 주일 감사성찬례마다 영성체를 실시한다. 다만 로마 가톨릭과 달리 축성된 면병과 포도주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 변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성공회의 주류 입장은 "성사적 임재설"이다.[57] 공식적으로 성공회의 감사성찬례의 절정은 성체 축성시 마침영광송과 대(大)아멘을 하는 시점이다. 즉 사제와 신자가 함께 아멘을 하는 순간이 성체에 영이 임재하는 순간이다. 천주교와 달리 만인사제설이 반영된 것이다. 영성체를 하기 위해 고해예식을 볼 필요는 없고, 성공회 신자가 아니더라도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파와 상관없이 성공회에서 성체를 영할 수 있다. 모령성체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으로 영성체 참여를 거부하는 태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가 일반적이다.
  • 구원관에 관하여
    • 개신교회 : 교파마다 구원관이 제각기 다르지만 한국의 주류 교단인 장로교를 중점으로 설명하자면, 믿음으로써 의로워진다는 이신칭의 구원관이 강하다. 로마 가톨릭식 구원관을 이단시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 로마 가톨릭 : 단순히 마음으로 믿을 뿐만 아니라 행위로서 믿음을 증명하며 성화에 이르러야 한다는 구원관을 갖고 있다. 따라서 개신교의 이신칭의 구원관을 수용하지 않는다.
    • 성공회 : 기본적으로는 온건한 예정론 구원관(장로교의 구원관이 온건화된 것)을 취한다고 하지만(39개 신조), 신자 개인이 감리교식(알마니안) 구원관을 취해도 되고[58] 로마 가톨릭식 구원관을 취해도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즉, 주류 그리스도교 종파(즉, 구원파와 같이 이단스러운 구원관이 아닌 이상)의 구원관이라면 개인의 신앙관으로서 존중해준다는 의미다.
  • 성경 번역본 선택에 관하여 (대한민국 기준을 중심으로 설명)
    • 개신교회 : 한국 개신교회는 주로 예배용으로 개역개정판을 사용한다. 다만 일부 강경보수 교단을 제외하고는 신자 개개인 통독용 성경에 대해서는 크게 터치하지 않지만 그래도 개역개정판을 권하는 분위기가 있다.[59] 영어 성경으로는 주로 NIV, ESV, KJV 등이 선호된다.
    • 로마 가톨릭 : 전례용(미사용)으로는 교황청이나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은 것만 쓰도록 강제되어 있고, 신자 개개인 통독용 성경에 대해서도 교황청이나 주교회의의 인준을 받은 것을 쓰는 것이 강력히 권고된다.[60] 영어 성경으로는 NAB, NABSE, RSV-CE, JB 등이 쓰인다.
    • 성공회 : 대한성공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공동번역성서를 쓰이지만, 신자 개개인 통독용 성경에 대해서는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영어권 성공회에서는 주로 NRSV가 쓰인다.

성공회에 입교할때도 기독교의 웬만한 타 교파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해준다. 심지어 군대 훈련소 시절에 받았던 개신교 진중세례도 세례증명서를 제시하면 인정해준다. 군대 시절 진중세례를 받고도 본인 의사에 따라 다시 정식으로 세례를 받는 문제에 대해서는, 당시 신앙심 없이 단지 부식물(초코파이)를 위해 진중세례에 임했던 경우라면 신부님과 이 문제에 대해 상담하는 것이 바람직하나[61], 나름 진지하게 진중세례에 임했던 경우라면 다시 세례 받는 것은 신학적인 문제가 크게 걸리므로 다시 세례를 받지 않도록 담당 성직자가 조치한다. 천주교로 입교하는 경우라면 개신교의 사도전승 문제를 문제삼아 다시 세례 받는 걸 허용할 여지가 있겠지만

확실하고 분명한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주류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이성적이고 유연한 신앙생활을 좋아하는 신자에게는 이만한 교회도 없다.

현재 성공회는 이런 가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최고의 교회'보다는 교회가 가지는 단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중용의 길을 통하여 '최선의 교회'를 추구한다. 그래서 모든 교회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교회일치(에큐메니즘)를 위해서 가장 애쓰는 교단이다. 지금은 은퇴한 김성수 주교는 CBS 방송출연 중에 가까운 곳에 성공회 교회가 없으면 근처에 다른 교단 교회에 다니라고 한다. 같은 하느님을 믿는 거라고 하면서(...) 심지어 장로회 같은 타 교파의 교회와 성공회 모두 다 교인으로 등록하고 양쪽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시하지 않는다.[62]

키팅 선생님으로 잘 알려진 헐리우드 배우 故로빈 윌리엄스가 말한 성공회 신자의 10가지 장점이 교회의 특징을 잘 말해준다. 조금 재미있게 표현한 것들이 많다.

Robin Williams - Top Ten Reasons For Being An Episcopalian.

10. No snake handling.
09. You can believe in dinosaurs.
08. Male and female, God created them; male and female, we ordain them.
07. You don't have to check your brains at the door.
06. Pew aerobics.
05. Church year is color coded!
04. Free wine on Sunday.
03. All of the pageantry, none of the guilt.
02. You don't have to know how to swim to get baptized.

And the number one reason for being an Episcopalian:
01. No matter what you believe, there's bound to be at least one other Episcopalian who agrees with you.

10. 뱀을 취급하지 않는다.[63]
09. 공룡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64]
08.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하느님께서 창조하셨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모두, 성공회에서는 사제가 될 수 있다.[65]
07. 교회 문 앞에 뇌를 두고 오지 않아도 된다. [66]
06. 신자석에서 일어섰다 앉았다 하면서 에어로빅을 할 수 있다.[67]
05. 교회력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68]
04. 주일에는 공짜로 포도주를 즐길 수 있다.[69]
03. 화려한 구경거리가 있다, 하지만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70]
02. 세례를 받기 위해서 수영을 배울 필요가 없다.[71]

그리고 마지막 첫 번째 이유
01. 당신이 무엇을 믿든지 간에, 적어도 한사람의 성공회 신자는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의 생각에 동의해 준다.[72]

즉 성공회 교회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강요를 원치 않고, 이성적인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길 원하는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교회이다.

4.1 여타 개신교와의 비교

장로회, 루터교, 감리회, 침례회, 오순절파 등의 여타 개신교 교파처럼 종교개혁 정신을 받아 16세기에 생긴 종파이며,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왔고, 역사상으로 개신교 세력과 연대를 많이 하였기에 개신교에 속한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개신교 신문이나 잡지, 방송 중에서는 CBS 기독교방송에 소개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교리나 교회제도 등을 보자면 다른 개신교와 차이가 꽤 난다.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보편교회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3중 성직제도(주교>사제>부제), 주교감독제의 교회제도, 7성사 또는 성사적 행위[73] 등 보편교회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의 이름과, 표방하는 모토인 '개혁하는 보편교회(reforming catholic church)'라는 말에서도 그 정체성이 짙게 드러난다.

우리나라에선 학습만화 먼나라 이웃나라에서 초기 성공회 교리를 로마 가톨릭에 루터파 양념(?)을 치는 걸로 묘사하긴 했는데, 모든 개신교에서 루터가 주장한 이신칭의와 만인사제설을 받아들이긴 하지만 사실 성공회의 핵심교리는 루터교회 보다는 칼뱅주의에 가깝다. 초기 영국 교회는 교회제도에선 로마식을 유지하고 신학적으론 칼뱅파를 받아들인 중용적인 개혁(via media) 성격이었다. 헨리 8세는 후기에 교황 수위권을 제외하면 후기에 거의 가톨릭으로 기울었기 때문에 별로 이 시기엔 이야기할건 없고, 후대 헨리 8세의 아들 에드워드 6세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영향을 받기 시작하는데 에드워드 6세는 개신교식 교육을 받고 자라서 츠빙글리의 사위 하인리히 불링거를 신학자중 가장 존경했으며, 칼뱅의 제자 존 녹스에게 로체스터 주교직을 제안하기도 했다.[74]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래머는 대륙의 여러 개혁가들을 불러 들였는데 알자스의 슈트라스부르크 출신 마틴 부처(Martin Bucer)가 특히 유명했다. 부처는 초기 종교개혁 시기 츠빙글리 진영에서 있었고 장 칼뱅을 교육하기도 했으며 스위스와 남독일 지역의 개혁을 이끈 개혁자 였는데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나란히 흠정교수로 개혁신학을 소개했고 헨리 8세 시절 로마 가톨릭으로 거의 회귀(?)한 영국 교회 신조를 백지화 했다. 이시기 제일, 제이 공동기도문은 엘리자베스 1세시기 약간 수정된 이후 현재까지도 영국 성공회의 예배지침서로 사용되고 있다. 토마스 크래머는 니콜라스 리들리, 존 녹스[75] 와 함께 잉글랜드 교회 신앙고백으로 ≪42개조 신조≫를 만들었다. 42개조 신조는 엘리자베스 여왕시절 켄터베리 대주교 매튜 파커에 의해 수정했는데 주로 칼뱅의 가르침에 비추어 ≪39개조 신조≫를 구성했고 수정을 거쳐 현재 영국 성공회의 신조이기도 하다.[76]

칼뱅주의 영향으로 구원론에서는 온건한 예정설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장로회와 교리를 공유하고 있고, 로마 가톨릭만큼 성모신심을 강조하지 않아[77][78] 국내 주류 개신교 교인들 입장에서는 성공회의 성모신심을 받아드리기 어려운 수준은 아니다.

다만 앞에서는 구원관에서는 칼뱅주의의 영향으로 온건한 예정설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 언급되었지만, 종교개혁 초기엔 루터파나 스위스 칼뱅주의의 인간관과 구원관보다는 알마니안주의적 구원관 역시 감리교가 성공회에서 분리된 교파인 점을 들어서 존중한다. 고교회파 일부에서는 천주교 구원관에 근접한 구원관을 취하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성공회 특유의 정신인 'Via Media'에서 알 수 있듯이 '중용'의 자세를 중시해 로마 가톨릭칼뱅주의 개신교를 포함한 여타 개신교나 동방정교 간 균형점을 추구하고, 모든 기독교 종파에 대한 관용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핵심적인 가치의 일치 아래에서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종파이고, 어느 특정 교리가 정답이라고 단정짓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한국의 개신교가 근본주의 색깔이 강한 것과 대조적으로 성공회는 성향이 온건하다. 다른 선진국 지역의 성공회도 온건한 성향의 교파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근본주의 계열 개신교도들은 성공회를 '자유주의 교단' 내지는 '이단인 로마 가톨릭을 흉내 내는 정체불명의 이상한 교단'이라며 싫어한다 카더라

이신칭의 신앙관이 강한(그리하여 일각에서는 무교회주의가 일정부분 용인되는) 여타 개신교회와 달리, 성공회는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속하는 것을 신자의 의무로 보기에 로마 가톨릭, 정교회와 마찬가지로 무교회주의를 배격하는 입장에 있다.

4.2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비교

성공회는 표면상으로는 많은 면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지켜온 초대교회의 전통을 공유한다. 가장 특징적인 점으로는 다른 개신교회와는 달리, 로마 가톨릭교회의 7성사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39개조 신앙고백상으로는 세례와 성찬 2가지 성사만 인정하지만,[79] 나머지 5가지 성사도도 성사적 행위 또는 준성사라고 하며, 성경에 없으므로 세례 및 성찬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천년 이상 교회의 전통으로 유지된 것이기에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성사적 행위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로마 가톨릭과는 안드로메다급이신칭의가 기본 교리인 상황에서 고해성사에 대한 입장이 천주교와 같을 리가 만무하잖아이지만, 일종의 예식으로 나름의 신학적 해석을 거쳐서 실시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와있지 않는 예식이라 해서 아예 배척하는 개혁주의 개신교 교단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또한 동방정교, 로마 가톨릭처럼 신자들이 세례명[80]을 가진다. 7성사 가운데 나머지 5개도 성사적 행위 또는 준성사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세례에 대해서는 동방정교나 로마 가톨릭과 완전히 공유한다.[81][82] 성공회의 경우 타 개신교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물과 삼위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경우 다시 세례를 주지 않는다.[83] 한국에서는 성공회 신자가 되려면 동방정교나 로마 가톨릭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더라도, 성공회의 교리를 공부하고 다시 견진을 받아야 한다. 왠지 성년식 2번 치르는 느낌이지만 넘어가자 물론 이전에 견진을 받은 적이 없는 개신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84] 사실 견진은 해당 교단에서 이제 정식 일원이 되었음을 확인하는 것이기에 다시 줄 수 밖에 없다.

성공회 예배양식 역시 비록 '성공회 기도서'의 영향으로 로마 형식의 미사와 세세한 측면에서 간소화되고 달라진 점들이 있으나 독자적인 '새럼 양식' 전례와 미사를 연구하여 이를 조화시킨 감사성찬례가 있다. 기본적인 틀과 구조는 미사와 동일하며 장엄 전례(High Mass)로 드릴 경우 로마 가톨릭의 장엄미사 보다 장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85] 이 때문에 앵글로-가톨릭 성공회 교회의 장엄 미사와 성모 축일 행진 행사를 보고 일부 천주교 신자들이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기도 한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 의결 이후로 현대식 미사에서 사라진 트리엔트 미사의 전례적 풍모가 성공회 앵글로-가톨릭에 일부 남아있기 때문. 영어권의 일부 고교회파 교회에서 거행하는 장엄 미사는 그 외형이 로마 가톨릭의 트리엔트 미사와 상당히 비슷하다(유튜브 동영상. 장궤 영성체도 한다! 다만 일반적인 감사성찬례의 구조는 바오로 미사와 더 비슷하다. 외형적인 유사성 때문인지 로마 가톨릭에서 사정상(본당 재건축, 신축 문제) 임시로 성공회 예배당을 빌려서 천주교 미사를 치룬 경우도 있다.

성상을 용인하는 것도 로마 가톨릭과 비슷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39개조 신조에서부터 성상이나 묵주와 성인 공경 등에 대해 부정하는 조항이 있지만, 앞의 주석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 39개조 신조는 옥스퍼드 운동을 거치면서 사실상 사문화된 조항이 되었기에 성공회 성당에 가면 성상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저 신조를 철저하게 지켜서 십자가에 촛대만 올려놓는 등의 간단한 인테리어를 가진 교회도 볼 수 있긴 하나 흔하지 않다. 더군다나 천주교에서 성공회로 옮긴 사람이 아니고서는 성상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많이 쓰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앞에서 이야기가 나온 것처럼 성모 마리아와 관련해서는 천주교와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성공회는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성모 신심을 인정하고 성모 안식 기념 미사를 치루지만, 천주교와 다르게 무염시태설과 몽소승천설, 평생동정설을 부정한다. 그리고 성체성사에서도 천주교는 성변화(성체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는 이론)를 믿는다면, 성공회는 성사적 임재설을 믿는다. 그렇기에 이런 성체성사에 대한 신학적 문제와 사도계승 문제 때문에 로마 가톨릭에서는 신자가 성공회에서 영성체 하는 것과 성공회 신자가 로마 가톨릭에서 영성체를 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모령성체, 성체모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로마 가톨릭에 비해 약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지 않은 자가 성체를 영했을때,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체모독'으로 심각하게 바라보지만, 성공회에서는 성체모독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성공회는 보편교회임을 자부한다. 그러나 동방정교의 대부분과 로마 가톨릭 성공회가 보편교회라는 것을 부정한다. 다만 일부 정교회는 성공회의 보편교회성을 인정한다.[86][87] 이는 로마 가톨릭이 보기에 성공회가 에드워드 6세 이후 변경된 주교 서품 예식이 원래 서품 형식에서 형상적인 부분이 명확히 표현되어 있지 않다[88]고 생각하여 이로 인한 성공회 사도계승의 단절을 교황 레오 13세가 직접 선언해버렸기 때문. 한편 여성 사제 서품으로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과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관계가 많이 소원해지기도 했다.[89]

로마 가톨릭과 대비되는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동방정교처럼 사제성직자들이 혼인 가능하다.[90] 그러나 동방정교 주교는 미혼자만 가능하지만[91] 성공회는 혼인한 성직자도 주교가 될 수 있다. 예컨대 2015년 현재 세계성공회의 선임자이며, 영국 성공회의 대표자인 캔터배리 대주교 저스틴 웰비는 결혼했고 아이도 6명이나 있다. # 참조. 물론 수도자는 결혼 못 한다. 수도자사제인 경우에도 마찬가지.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해외에는 성공회나 동방정교 그리고 북유럽 루터교 성직자를 받아줘 예외적으로 교황청이 허락한 가정이 있는 로마 가톨릭 사제들이 있다. 그래서 이미 전 세계의 로마 가톨릭 속에는 아무리 예외적이라 하더라도 교황청이 인정하는 기혼사제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종신 부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로마 가톨릭 사제인데 부인도 있고 자식이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교회에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성공회나 정교회, 북유럽 루터교 사제가 가톨릭으로 넘어왔을 경우에 한정된 특수한 상황인 것이고, 이걸 가지고 가톨릭에서도 성직자 독신제도가 무너진다는 식으로 보는 것은 정확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라틴 교회가 주축인 가톨릭에서는 성직자의 독신은 의무사항이다.

또 하나의 특이점이라면, 여성 사제를 인정한다는 것.[92]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모 마리아를 13번째 사도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고 또 그렇다 해서 사제의 직위에 사도를 넣지 않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경우로 일부 국가에는 동성애자 사제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커밍아웃한 동성애자 사제에게 사제의 자격을 문제 삼지 않는다.[93][94]하지만 여성 사제를 인정했을 때 성공회 내부에서도 엄청난 반발이 있었고, 상당수 사제들이 로마 가톨릭으로 옮겨가기도 했다.[95][96][97] 어느 로마 가톨릭 신부의 말처럼,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이 꿈꾸는 일을 너무 서슴없이 실행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낌새를 눈치챈 교황청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옮기려는 성공회 사제 및 신자들을 위한 사목적 지침을 마련한 상태다.

성공회는 로마 가톨릭처럼 성직자 직제를 인정하면서도 만인사제주의를 부정하지 않으므로 평신도-사제, 하급 사제-상급 사제 간 '순명권'의 개념이 로마 가톨릭에 비해 약한 편이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의 경직된 시스템이나 교리에 질린 일부 신자들이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또한 특히 외국의 경우 일부 진보적인 신자들이 여성 사제나 낙태, 동성애, 이혼과 재혼 등 사회교리 문제에 있어서 보수적인 가톨릭의 일관된 모습에 실망하여 반대로 이들을 허용하는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반 평신도 외에도 가톨릭 사제가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자주 있다.[98] 또한 서구 지역 가톨릭의 아동성추행 문제에 실망하여 성공회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성공회의 이러한 풍모는 로마 가톨릭 교회 내부의 급진개혁파에게 귀감이 되기도 한다.

개신교 목사가 로마 가톨릭으로 옮기면 로마 가톨릭의 사제가 될 수 없고 그저 평신도만 되지만[99], 성공회 신부주교가 로마 가톨릭으로 옮기고 나서 사제서품을 다시 받으면 로마 가톨릭의 사제가 될 수 있다. 성공회의 성직자 중 남성 기혼자가 로마 가톨릭으로 옮겨도 사제직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특례를 받고 있다.[100] 이러한 특례(?)는 교황의 사목적 배려와 그동안의 로마 가톨릭-성공회 간 교류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다. 로마 가톨릭으로 옮긴 성공회인 중 가장 유명한 존 헨리 뉴먼(성공회 주교 출신)은 이후 추기경직에 올랐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시복되기도 했다.

반대로, 로마 가톨릭이나 정교회 등 사도전승을 계승받았다고 주장하고, 역사적 주교제도를 유지해온 교단 출신 성직자들이 성공회로 옮길때 성공회에서는 그 성직을 인정한다.

사회참여, 정치참여 문제에서 로마 가톨릭과 사뭇 다른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로마 가톨릭은 성직자가 세속 권력을 얻는 것(의회 진출 등)을 제한하지만, 성공회는 딱히 제한을 두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재정 신부가 성직자의 세속 정치 참여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물론 정치계에 진출한 성공회 성직자의 성직은 휴직처리 된다.


성공회 여성 사제들의 모습.*

로마 가톨릭 신자 중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성공회는 단지 사도전승이 끊긴 개신교(천주교 흉내내는 개신교)로 절하하여 보는 시각이 크며, 로마 가톨릭 신자 중 에큐메니컬 정신이 강한 사람들은 브릿지 교회 내지는 천주교 2중대(교황수위권에 들지 않은 천주교)로 본다고 한다. 물론 반대로 개신교쪽에서는 보수적인 신자일수록 성공회를 (부정적인 의미로) 로마 가톨릭에 가깝게 본다.

정리하자면, 성공회는 개신교 교단 중에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가장 가까운 교단이라고 볼 수 있다.

5 조직

imgp5785.jpg
가운데에 있는 안경 낀 백인은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이고, 맨 오른쪽의 동양인은 박경조 프란시스 전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이다.

로마 가톨릭과 비슷한 하드웨어 때문에 '잉글랜드 국교회(Church of England)'[101]가 성공회의 수위권을 지닌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성공회끼리는 수위권 타령 같은건 없고 상호병렬적 수평 관계이다. 공동체 내에서 역사적 대표성을 지닌 점을 빼놓고는, 어디까지나 '잉글랜드 국교' 역시 '세계성공회공동체(Anglican Communion)'의 일부이다

간혹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세속적 정치체제로는 자국에 충성하나 신앙적으로 바티칸 아래 있는 것처럼 성공회도 잉글랜드 국교회 수장인 영국 왕실에게 영적/신앙적 친교관계에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16세기 헨리 8세 시절 수장령 선포 후 영국 교회를 국가교회화 시켜 영국 내에서의 교황의 지위를 왕에게 귀속시킨 사건 이후 그후의 역사에 대해 잘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회를 믿으면 영국 여왕을 섬기냐(?)라고 의문을 제기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약간 역사적 지식이 필요한데 일단 영국만의 국가교회라는 영국 국교회라는 명칭도 1846년부터 보편교회를 추구하는 성공회로 바뀌었다. 그리고 앞서 서술하다시피 잉글랜드 성공회는 여타 다른 성공회와 수평 관계이며 수위권 같은것은 없다.

영국 국왕은 잉글랜드 성공회의 수장이 아니다. 영국 군주가 교회의 수장을 포기한 것은 비교적 최근도 아니고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절부터이다. 영국 내에서의 교황 수위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가톨릭 교리[102] 를 지지한 헨리 8세시절 수장령(Acts of Supremacy) 을 내려서 영국 교회의 수장(首長,Supreme Head)임을 선언했는데 이는 영국 외에서 교황의 지위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정치적인 행위였다.[103]헨리 8세 사망 이후 에드워드 6세는 9세에 즉위하여 15세에 사망했기에 사실상 독자통치한 바가 없고, 후임 메리 1세 시절 영국은 다시 가톨릭으로 회귀했다.

그리고 나서 엘리자베스 1세가 다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되었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기존 가톨릭 신자들은 이 자리는 당연히 교황의 것이라 여겼고, 개신교도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타협책으로 스스로 수장임을 칭하지 않고 (권한을 위임받은) 최고 통치자(Supreme Governor)라고 칭했고,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현 엘리자베스 2세는 잉글랜드 성공회의 최고통치자(Supreme Governor of the Church of England)이며, 헨리 8세가 교황 레오 10세에게 수여받은 신앙의 수호자(Fidei Defensor) 칭호까지 쓰고 있다.

영국 왕실은 성공회 공동체의 일부인, 영국 전체도 아닌 잉글랜드 성공회의 보호자일 뿐이므로 한국인, 미국인까지 갈 것도 없이 같은 영국 내 웨일스스코틀랜드 성공회 신자와도 관계를 갖지 않는다. 또한, 현재에는 상징적 최고통치자 역할도 행사하지 않는다. 주교 임명권한도 형식적인데 주교회에서 거친 결정을 거스르지 않고 임명장만 국왕 명의로 나갈 뿐이다.[104]

이 '세계 성공회 공동체'는 역사적으로 이어오는 주교에 의해서 치리(治理) 되는 지역/국가별로 독립적인 성공회 관구들이 공통의 신앙을 가지고 연대한 조직으로 이를 통해 성공회는 자신을 보편교회라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성공회의 출발점이자 지금도 영국 성공회의 정신적 수장인 캔터베리의 대주교가 전체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정신적인 지주로 의장 주교의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 성공회 입장을 조정한다. 이런 점 때문에 운영방식은 10개의 독립교회를 중심으로 각 교회의 최고 주교가 각 지역에서만 자치권을 행사하며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하는 동방정교의 운영과 매우 흡사하다.

캔터베리 대주교는 특별히 세계성공회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노력의 의무를 지녀 10년마다 전체 성공회 주교들의 회합인 '램베스 회의'를 주관한다. 어디까지나 의장 주교이며 정신적인 수장을 맡는다는 점에서 수많은 지역 성공회들에 권고와 자문 정도만 할 뿐이지 그 역시 캔터베리 관구를 제외한 다른 성공회들의 신학, 조직, 재정 등의 문제를 치리할 권한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 관구가 하나의 독립교회로 역할하기 때문에, 비록 10개로 나누어져 있다곤 해도 어느 정도 계층적인 시스템을 구축한 동방정교회에 비해 지역 교회에 독립성이 더 크며 이론적으로 같은 나라에 있어도 관구가 다르면, 다른 지역 교회와 별도로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며 나아가 다른 성공회 공동체와 교제를 단절할 수도 있다. 애초에 램베스 회의의 결정사항도 권고사항이지 의무사항이 아니다.

실제로 미국 성공회가 동성애자 사제 진 로빈슨(Gine Robinson)을 주교 서품하자 이에 반발하는 보수적인 교구들이 전부 미국 성공회 관구를 탈퇴하는 일이 벌어지고 새 관구를 독자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이후 있었던 램버스 회의에서 보수적인 교구들이 전부 불참을 선언하는 일이 빚어졌다. 교구-관구-교황청 순으로 계층적 교계제도를 이루는 로마 가톨릭에서 일개 교구가 공동체를 탈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 전에 파문 당하지 않나

이러한 분권화 경향에 캔터베리 주교도 위기의식을 느꼈는지 '세계성공회공동체 계약서'를 전 관구에 배부하여 이를 승인하여 공통적인 신앙과 보편교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만, 이 성공회 계약서는 성향에 관계없이 많은 관구들의 까임을 받은 바 있다.

6 영국과 아일랜드 공화국의 성공회

6.1 잉글랜드 국교회

Church of England.
홈페이지

성공회의 모체로 간주되는 교회(모체라고 했지 특별히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진다는 뜻은 아니다).

이름대로 잉글랜드를 담당하는데 잉글랜드 이외에도 웨일스 일부 지역[105], 영국 왕실령인 맨 섬채널 제도, 유럽 대륙(!)(터키, 구 소련 국가들 포함)과 모로코를 직접 관할한다. 아무래도 유럽 본토에는 성공회 신자가 적다 보니 이렇게 관할 범위가 넓어진 것.[106]

관구(province)는 캔터베리와 요크 둘이 있다. 캔터베리 관구는 잉글랜드 남부, 웨일스 일부, 채널 제도, 유럽 대륙·모로코(지브롤터 교구 관할)를 커버하며 30개의 교구(diocese)가 있다. 대한성공회의 경우 한국 관구가 독자적으로 설치되기 전까지는 캔터베리 관구 직할 구역이었다. 요크 관구는 잉글랜드 북부와 맨 섬을 담당하며 12개의 교구가 있다. 캔터베리 대주교가 잉글랜드 국교회의 지도자이면서 세계성공회공동체에서 명목상의 지도자로 간주된다. 잉글랜드 내 성공회 교구들은 원래는 로마 가톨릭 산하 교구였지만[107], 잉글랜드 국교회가 형성되면서 로마 가톨릭에서 떨어져나갔고 영국 로마 가톨릭은 교구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고역을 겪기도 했다.

영국 법률적으로도 아예 잉글랜드 국교회가 잉글랜드의 국교(established church)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국회 귀족원(상원)에 아예 캔터베리 대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이 의원으로 임명된다. 이런 성직자들을 성직귀족(Lord(s) Spiritual)이라고 부르며 2015년 현재 총 26명이 있다. 당연히 성직자가 정치인처럼 의석을 갖는 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존재한다. 하지만 귀족원의 의석이 800석이 넘을 정도로 워낙 많아[108] 이들의 의석 비중이 적다. 그리고 현대 영국에서는 귀족원이 평민원(하원)의 보조 기관으로 전락한 지 오래이며[109] 성직귀족들이 정치 현안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피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구조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이 있다는 정도지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여론의 격렬한 반발이 있었으면 예전에 이들의 의석이 폐지되었을 것이다. 다만 상원 개혁론이나 폐지론이 계속 있기 때문에 이 의석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미지수이다. 만약 상원의 모든 의석을 선거로 뽑는 식으로 바꾸거나 아예 폐지한다면 성직귀족 의석 또한 사라질 것이다. 물론 상원 개혁을 하더라도 선거로 뽑지 않는 소수의 의석을 남겨놓는다면 이들의 의석이 남을 수는 있겠다.[110]

여담으로 잉글랜드 국교회에서는 KJV, RSV, NRSV, NIV, REB, NJB, ESV 성경을 전례용으로 인정하고 있다.출처(잉글랜드 국교회 주교회의 2002년도글) 일반적인 전례용으로는 NRSV 영국버전이 많이 쓰이고, 국가적인 의전 행사에는 KJV가 쓰인다.

6.1.1 캔터베리 대주교 목록

  • 로완 윌리엄스 : 웨일스 출신. 자유주의적 고교회파(liberal Anglo-Catholic)다.
  • 저스틴 웰비 : 런던 출신. 이튼 스쿨, 케임브리지 대학교 졸업. 성직 입문 전에는 정유회사 임원으로 일했다. 현 캔터베리 대주교. 복음주의파다.

6.2 웨일스 성공회

영어: Church in Wales
웨일스어: Yr Eglwys yng Nghymru
홈페이지

웨일스 대부분을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 웨일스 성공회에서 관할하지 않는 일부 지역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캔터베리 관구에 속해 있다. 웨일스 성공회 산하의 교구는 6개가 있다.

웨일스가 잉글랜드의 지배를 오래 받았던 탓에 웨일스만의 성공회 조직이 원래는 없었다. 그러다가 1920년에 별도의 교회로 분리되었다. 이때부터 웨일스는 국교로 지정된 종교가 없다.

6.3 스코틀랜드 성공회

영어: Scottish Episcopal Church
스코틀랜드 게일어: Eaglais Easbaigeach na h-Alba
홈페이지

스코틀랜드를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동군연합 단계를 넘어서 완전히 한 나라로 합병한 시기의 군주였던 앤 여왕이 공식 설립자로 되어 있다.[111] 산하 교구는 7개가 있다.

참고로 Church of Scotland는 여기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신도가 많은 장로회이니 주의.

6.4 아일랜드 성공회

영어: Chuch of Ireland
아일랜드어: Eaglais na hÉireann
홈페이지

아일랜드 섬 전체, 즉 현재는 독립국인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에 남아 있는 북아일랜드 모두를 담당하는 성공회 조직이다.[112] 성공회를 세운 헨리 8세에 의해 설립됐다. 다만 본래 잉글랜드 국교회 산하에 있었다가 1869년에야 완전히 분리되었다.

현재 아일랜드 공화국에서 로마 가톨릭에 이어 2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고 2번째라고 하기에는 너무 격차가 크다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 아일랜드 장로회[113]에 이어 3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이다.[114]

성공회가 오랫동안 영국에 의해 아일랜드의 국교로 지정돼 있었던 탓에 아일랜드 내에서 로마 가톨릭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몇몇 오래된 주요 성당들은 아일랜드 성공회 소속으로 돼 있다. 예를 들어 더블린 시내에 있는 크라이스트 대성당과 성 패트릭 대성당[115]은 아일랜드 성공회 소속이다. 물론 성공회 형성 이전에는 로마 가톨릭 소속이었지만..... 이러한 상황 때문에 웃기게도 가톨릭 더블린 대주교는 주교좌성당(대성당)이 존재하지 않고 임시 대성당만 존재한다...

7 대한성공회

大韓聖公會
Anglican Church of Korea
대한성공회 홈페이지

성공회는 전 세계적으로 8천만-1억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는 메이저 개신교 교단이다. #. 이는 13억 가톨릭, 3억 정교회, 1억 침례회에 이은 세계 4번째이며, 개신교 내에서도 1-2위를 다투는 규모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신자 수 기준으로, 주류 개신교계에서 이단으로 취급 받는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보다도 교세가 더 마이너하다(...). 안습 한국 내 성공회 신자들의 대부분은 대대로 신앙을 이어온 사람들과 로마 가톨릭[116]이나 장로회, 감리회 등 주류 개신교 교단[117][118]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기독교 타 종파에서 온 경우가 아닌 성공회에서 처음 신앙 생활을 하는 새신자는 적은 편이다. 이런 경향은 성공회가 타 개신교단과 달리 전도에 적극적이지 않기에 더 심해진다. 사회 구원으로서 전도하려는 생각이 많기 때문. 단순히 팜플렛이나 휴지 등을 나누어주는 얌전한 형태의 길거리 전도도 잘 하지 않는다.

또한 성공회는 '헨리8세가 이혼하려고 천주교에서 뛰쳐나와 만든 교단'이라는 일반인 사이에 퍼져있는, 성공회에 관한 막연한 인식은 '정통성'을 따지는 한국인 성향과 맞물려 교세 확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못했을 듯.

물론 대한민국에도 소수이지만 신자가 있다. 다른 영미권 계통 개신교처럼 구한말인 1889년에 첫 선교가 시작되었으니 생각보다 일찍 들어오긴 했다. 대한성공회 홈페이지에 의하면 2011년 2월 말 현재 5만여 명의 국내 신자가 있고,[119] 3개 교구(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와 100여 개의 성당이 있다. 서울특별시 시청역 3번 출구 덕수궁 옆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성가(聖架) 수녀회 본원이 있으며[120], 구로구 항동에는 성공회대학교도 있다. 성공회대학교는 대한민국의 기독교계 대학교 중에서 한신대학교와 함께 신학과 사회과학 분야를 중심으로 가장 진보적인 학풍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특징인 근본주의 경향이 아닌, 사회구원을 추구하며 소수자편에 서고[121] 권력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정말 몇 안 되는 개념있는 개신교 교파이기도 하다. 다만 성공회 공동체 내부 기준으로는 다양성을 중시하는 성공회 특성 때문인지 신자들의 성향 스펙트럼[122]이 넓은 편. 성공회 교세가 그나마 가장 강한 곳[123]은 인천 강화군이고, 인천 본토와 부천, 광명, 구로 등지를 비롯한 경기 서부권, 평택, 충청도 일부(천안, 아산, 청주, 진천, 음성)도 다른 지역보다는 성공회 성당들이 밀집한 편이다.

대한성공회는 형식적으로 앵글로-가톨릭(고교회파)이 주류라서[124] 전례 형식은 로마 가톨릭의 현대식(바오로) 미사와 많이 비슷하다. 더군다나 특히 수도권지역은 하드코어 앵글로-가톨릭으로 한국 천주교에 비해서 더 장엄한 느낌을 받기 쉽다.[125] 예를 들어 평소 예배 시작전에 복사들이 십자가를 들고 입당식을 한다든지, 니케아 신경을 성가 형식으로 낭독하는 등의 것이 있다. 앵글로-가톨릭 성향이 강한 수도권 지역에서도 일부 복음주의(저교회파) 성향의 지역교회가 존재한다.

한동안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관구 직할로 있다가 1967년 처음으로 한국인 주교 이천환 바우로가 착좌하였고, 1993년에 서울의 주교를 의장으로 하는 독자적인 한국 관구(대한성공회)가 성립하였다.

2001년에는 대한성공회 최초로 여성이 사제서품을 받았다(민병옥 가타리나[126], 부산교구). 2004년 서울교구에서도 처음으로 여성 사제를 배출했으며(김기리 미리암)[127], 2007년에는 첫 여성 수도사제도 탄생했다(오인숙 가타리나, 성가 수녀회). 현재 대한성공회에는 대략 20여 명의 여성 사제들이 있다고 한다.

에큐메니컬 운동(교회일치)에 가장 적극적인 교단으로, 다양성을 중시하다 보니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 주류 개신교 교단과 적극 교류하며, 타 교단에 대해서 정말 웬만해서는 이단시하지 않는다.[128] 그래서 위에서 이야기 했듯이 로마 가톨릭이든 개신교이든 동방정교이든 타 종파에서 성공회로 옮길 때 해당 기성 기독교 종파에서 세례 받은 것을 다 인정해준다.[129]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교단, 감리교단과 교류를 하며, 심지어는 교환 예배(기장의 경동교회, 예장통합의 새문안교회, 감리교 정동교회)[130]를 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의 에큐메니컬 기도회(로마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기타 개신교회 연합)가 개최되는 장소는 서울성공회성당이다.

여담으로 제사 문제에 대해서는 가톨릭과 비슷한 입장이다.

물론 교회일치에 앞장서는 건 대한성공회만의 특징이 아니라, 세계 성공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영국 성공회의 중심지인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행해지는 강론에서도 마더 테레사 수녀나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와 같은 로마 가톨릭의 성인들이 신앙의 모범으로 언급되는 것을 들을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영국 성공회가 현재 관리하고 있는 (헨리 8세가 해산시키기 이전의) 옛 수도원 건물들에서 정기적인 천주교 미사를 드리는 것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설립자가 영국 성공회 신부였다.

미국에는 한인 성공회 교회들이 여럿 있는데, 어떤 곳은 대한성공회에서 파견 보낸 사제가 사목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곳은 미국 성공회에 소속되어 있기도 하다. 대한성공회 사제가 파견된 한인 성공회 교회도 견진성사는 현지 주교가 집전한다[131]

7.1 한국 교구 현황

교구 산하 교무구 관할 구역은 성당 분포지역을 나열한 것임.

7.1.1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서울성공회성당)

관할구역 :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 강원도 북부(영동고속도로 이북)

중앙교무구 (서울 북부, 경기 북부)서울특별시(중구[132], 종로구, 노원구, 도봉구, 동대문구, 성북구, 용산구),
고양시, 양주시, 양평군, 포천시
강남교무구 (서울 남부, 동남부 및 경기 일부 동남부)서울특별시(강남구, 강동구, 관악구, 영등포구, 송파구), 성남시[133],
구리시, 남양주시, 하남시, 춘천시
서부교무구 (인천권)서울특별시(구로구[134]),
광명시[135], 부천시, 김포시[136],
인천광역시(중구, 동구, 남동구[137], 부평구, 계양구, 서구[138])
남부교무구 (경기 남부권)안양시, 군포시, 안산시, 수원시, 오산시, 평택시[139], 용인시, 이천시, 여주시
강화교무구 (인천 강화군)인천광역시 강화군[140]

7.1.2 대전교구

관할구역 :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충청북도, 세종특별자치시, 강원도 남부(영동고속도로 이남), 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중앙교무구대전광역시
강원교무구강원도
충북교무구충청북도
충남교무구충청남도
전라교무구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7.1.3 부산교구

관할구역 : 부산광역시, 울산광역시,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

중앙교무구부산광역시, 경상남도, 제주특별자치도
북부교무구대구광역시, 경상북도, 울산광역시

교무구가 2개 밖에 없을 정도로 대한성공회에서도 교세가 가장 빈약한 지역이다. 사실 이들 지역은 성공회 뿐만 아니라 기독교 전반의 교세가 약한 지역이기도 하다.

8 미국 성공회

Protestant Episcopal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PECUSA 또는 ECUSA)[141]
홈페이지

미국 성공회[142]의 경우 신자의 수도 많고 기득권 교단에 속한다.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중간격 종파로 인식하는 일반인이 많은 한국 내 성공회의 경우와 달리 미국의 성공회는 온건파(리버럴) 프로테스탄트의 일파로 인식된다. 워싱턴D.C.에 가면 미국의 국립(!)[143] 성공회 성당도 있고, 성공회 신자인 대통령이 가장 많이 나왔을 정도로 메이저 종파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들의 경우 성공회 신자나 신자였던 사람[144]들이 대부분이다. 80년대까지도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은 성공회 신자였던 경우가 많다.참조 아니, 심지어 그 부시 가문도 아버지 부시(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까지는 대대로 성공회였다. 아들 부시도 대외적인 근본주의 기믹과 다르게 의외로 성공회였다가 전 영부인 따라 연합감리교[145]로 개종한 사례이다.참고1, 참고2

오히려 미국에서는 사회적인 스탠스나 대통령 배출 횟수나 로마 가톨릭이 마이너 하다. 다만 미국이란 나라가 워낙 크니 지역별 편차가 강해서 이건 간단하게 일반화할 수 있는 건 아니다.[146] 특히 최근 들어 성공회가 포함된 '메인 라인 프로테스턴트’[147]의 경우 신자 수가 감소세를 보이는 편이고, 성공회의 경우 특히 정치적인 문제[148]에서 아주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예전만큼 상류층을 끌어들이지는 못한다. 심지어 남부나 중부 같은 미국 내에서도 오지인 곳으로 나가면 리버럴 빨갱이들이랑 타협하며 주교제를 유지하는 이단이라고(...) 까인다. 위에서도 나온 미국성공회 동성애자 사제 서품 관련해서 보수 교구들이 성공회를 단체로 탈퇴한 것도 비슷한 이유로 발생한 것. 이들 교구의 대부분이 남부 또는 중부에 소재한 교구들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쪽에 관심 없는 대중에게는 성공회 하면 드레스 셔츠넥타이 매고 네이비색 블레이저와 카키색 드레스 팬츠를 입은 WASP 이미지가 강한 편이다. 물론 성공회의 존재를 아는 사람 한정. 요즘 들어 미국의 젊은 세대는 성공회가 한때 미국에서 거의 국교와도 같은 위상을 가졌다는 것은커녕 성공회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개신교라 하면 대부분 근본주의 침례교를 떠올리는 편.[149] 한편 한국에서는 개신교라 하면 대부분 근본주의 장로회나 순복음을 떠올린다

전례/신학의 경우는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는 미국 북동부와 서부의 경우 도시에 성공회 소속 성당 5개가 있다면 그중 4개는 앵글로-가톨릭이고 1개는 광교회파[150]라 보면 된다. 이들의 전례는 미국 천주교 신자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전통적인 편이다.[151] 신학 또한 로마 가톨릭에 가까운 경향을 보이는데,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신학교인 General Theological Seminary의 경우 미국 독립 직후에 설립되었음에도 하드코어한 앵글로-가톨릭이다.[152]

하지만 근본주의 침례교가 강세를 보이는 지역인 남부나 중부 등에서는 복음주의파가 다수, 못해도 광교회파가 많은 편이다. 다만 이쪽 지역에도 오히려 아주 전통적인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예배의식을 Holy Communion, 즉 감사성찬례(Eucharist)가 아니라 미사라 부르는 교구들도 있다. 남부에 속한 신학교의 경우는 광교회파인 경우가 대부분.

이렇게 보면 미국 성공회의 전례/신학 문제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신자들에게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이다. 세세한 교리의 경우 신자에게 상당한 믿음의 자유를 주는 편이기 때문. 예를 들어 화체설 관련 믿음 등. TS가 아니라 성체성사 시 화체설(성변화)를 이야기 하는 거다. 즉 앵글로-가톨릭/복음주의/광교회 문제의 경우 자기 취향에 맞는 교구를 다니면 되기 때문에 큰 상관이 없다. 더 나아가 앵글로-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예배드릴 때 전통적으로 성호를 그어야 하는 부분에서 로마 가톨릭처럼 성호를 긋는 사람들[153]과 신경도 안 쓰는 사람들로 나뉠 정도.

이는 80년대 이후 미국 성공회의 문화 자체가 아주 기본적인 교리[154]만 믿고 성공회 기도서만 잘 따라 하면 무엇을 믿든, 무엇을 하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아주 개방적인 문화로 바뀌었기 때문.[155] 얼마나 개방적인가 하면 무신론자와 결혼한 신부님도 있을 정도. 신자 구성 자체도 단순한 WASP 상류층 위주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과 소수 인종 및 성소수자들 유입으로 조금씩 바뀌어 가는 편. 단지 이로 인한 아이러니한 문제가 있다면, 무엇을 믿든 그를 존중하는 문화로 인해 전도를 거의 하지 않아서 신자 수도 줄어들고 교단 자체도 위에서 언급되었듯 젊은 세대 에겐 듣보잡이 되어간다는 것. 신자들 자체가 남들에게 실례될까 봐 "궁금하면 우리 교회 한번 와봐"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할 정도.

북미 지역에는 미국 성공회와 캐나다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온 또 다른 분파인 Anglican Church of North America가 있다. ACNA의 관구장 주교는 2016년 1월 11~15일에 있었던 관구장 회의에는 참석하였으나, 세계 성공회 공동체의 가입여부는 2016년 4월 8~20일에 열리는 세계 성공회 협의회(ACC)에서 결정을 내리기로 하였다.

미국 성공회가 동성결혼에 진보적인 성향을 보인 것이 문제되어 세계 성공회 공동체에 분열을 야기한점을 문제삼아 2016 관구장 회의에서 미국 성공회(EC)의 의결권을 3년간 정지하기로 결정하였다.BBC 기사 동성애 문제를 둘러싼 보수 성향의 아프리카 지역 성공회 관구들의 강력 반발로 인한 성공회 분열 위기를 의식한 결정으로 보인다. 사실 로완 웰리엄스 전임 캔터베리 대주교가 진보파라면, 저스틴 웰비 현임 캔터베리 대주교는 중도보수파[156]이기도 하고... 이 결정에 또다시 동성결혼 지지파인 스코틀랜드 성공회, 잉글랜드 성공회 산하 요크 대교구 등이 반발하면서 성공회가 최악의 분열 위기를 맞고 있다.

9 기타

앞에서도 대강 설명을 되어 있지만 성향은 크게 3개로 나누어진다. 구교에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성공회 전례를 잘 따르는 ‘’’앵글로-가톨릭(Anglo-Catholic)’’’, 사회구원과 진보신학 성향을 보이며 가장 자유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광교회파'(Broad Church)’’’, 주교제도를 거의 신경 쓰지 않고 개신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는 ‘’’복음주의(Evangelical)’’’가 존재한다. 이를 앞에 성공회의 신앙에 대한 관점(성서, 전통, 이성)을 통해서 앵글로-가톨릭은 전통의 눈으로 성서와 이성을 보고, 복음주의는 성서의 눈으로 전통과 이성을 보고, 광교회파는 이성의 눈으로 성서와 전통을 본다고 흔히들 표현한다.[157]

한국의 경우 서울교구의 성공회 교회들은 거의 앵글로-가톨릭이고[158], 지방으로 갈수록 복음주의 성향이 진해진다.[159][160] 참고로 복음주의 그룹은 감리회가 처음 생길 때 존 웨슬리를 따랐지만, 선교적 사정으로 별도의 교회로 갈라질 때 나가지 않은 데서 그 유래가 있다.[161]

아무래도 다른 개신교 교파와는 달리 가톨릭과 크게 다른 점이 없기에, 옛날부터 가톨릭과 다시 하나로 합치자는 얘기가 일부 신자들 있었고 몇 차례 긍정적 합의를 보기도 했으나, 앞에서 동방정교와 성사교류가 못 일어나게 된 이유와 비슷하게 여성 사제 인정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로마 가톨릭 측에서 일단 '결혼한 성공회 남성 사제를 조건부 인정한다'는 전제를 파격적으로 내세운지라[162] 다시 적극적인 논의가 되고 있지만, 대한성공회는 이러한 의사를 부인하고 있고 거의 나라별로 분권화가 이루어져 있으며 [163] 영국 감리회의 경우 현재 성공회와 일치를 이루었다.[164] 앞서 말했듯 로마 가톨릭 사제(주로 진보파)가 성공회로 가거나, 거꾸로 성공회의 보수적 사제들이 로마 가톨릭으로 가는 외국 사례는 매우 많았고 국내에서도 전혀 없는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신학/사회과학 분야에서 나타나는 성공회대학교의 학풍이나, 장로회 등 대형 개신교 교단과 대형교회의 배타적인 기복신앙과 기득권 지향적 면모와 대비되는 모습 등의 영향으로 성공회가 진보적이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하는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솔직히 이런 교회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하지만 성공회 자체는 위에서 서술되었듯 신학적 입장이든 세상에 대한 입장이든 진보도 보수도 모두 존재하며 세계적인 관점에서 딱히 진보적인 종파는 아니다. 한국의 신자들 역시 대개 선교 초기부터 몇 대째 신앙을 이어온 신자들이 많으며, 이들의 성향이 대외적 이미지에 딱히 부합하는 것도 아니며 평범한 한국사회 구성원의 모습에 더 가깝다 할 수 있다. 물론 가톨릭이나 근본주의 개신교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여성 사제, 동성애자 사제 인정 등 성공회 자체에도 혁신적인 면이 있으며 젊은 신학생들 중심으로 사회운동 등을 거치면서 교리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진보적인 기독교 종파 중 하나로 꼽히는 편이다.

이렇기에 로마 가톨릭과 합치자거나 유사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국내 성공회 신자들에게는 크게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편이다.[165] 가톨릭에서 결혼한 사제는 인정해도 여성사제는 인정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데다가, 국내 성공회 신자와 사제 중에 민중 신학 등 진보적 신학에 관심 가졌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강조하는 사람이 많은데 역시 로마 가톨릭 주류와 잘 맞지 않는다. 물론 형식적인 면에서 로마 가톨릭의 전례와 유사하기는 하지만 형식은 형식일 뿐.

여담으로 나이지리아 성공회는 영국 성공회 다음으로 가장 큰 교회다. 사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도 여기에 속하고, 자메이카에서도 위상이 큰 듯이 대영제국에 속했던 식민지 중 힌두교이슬람이 이미 토착 종교로 깊이 뿌리 박혀 선교가 잘 안 된 곳들, 즉 인도나 이집트 같은 곳을 제외하면 옛날 영국이 있었던 곳에는 성공회 또한 상당한 발자취가 있는 편이다. 대표적인 예가 동아시아에서 최대 규모인 홍콩동남아시아 유일의 성공회 최대관구인 싱가포르가 있다. 싱가포르는 아예 개신교=성공회로 인식할 정도로 불교 및 이슬람과 함께 최대 종교로 뿌리 박혀있으며 홍콩 성공회도 마찬가지다. 애초 홍콩의 개신교는 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받아온 한국과 달리 영국 개신교의 영향으로 복음주의이지 근본주의는 아니고 상당히 유연하다.

반대로 다른 동아시아, 특히 중국일본은 성공회 신자가 거의 없다.[166] 기독교인 많다는 한국조차 성공회 및 루터교는 극소수.

대한성공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함께 1957년 이래 연세대학교 이사회의 일부를 구성하는 파송 교단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97년 이후 20년 가까이 이사장을 지켜오던 방우영[167]의 말기인 2011년경 기장교단과 함께 파송재단에서 빠지게 되었다. 언더우드 가문의 후손들과 성공회 차원에서 항의할 정도로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었으나 여론의 주목은 받지 못하였다. 현재 연대 이사회에서 참여하는 기독교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로 줄었으며 이들이 공식적인 교단의 파송이사인지, 교단을 대표한 개인 자격의 참여인지는 추가바람.

영어권 전반적으로는 영어 성경 역본 중에 NRSV가 널리 쓰인다. 다만 국가적인 의전 행사인 경우에는 KJV가 쓰이는 편이다.

로마 가톨릭(특히 한국 천주교[168])에 비해서 사회인 출신으로 성공회 성직자로 입문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더 눈에 띈다.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도 법학 등을 전공한 명문대 출신으로 대기업(정유회사)에서 일하다가 막내딸의 교통사고가 계기가 되어 성직에 입문하였다.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로마 가톨릭과 달리 청소년 예비신학생 과정을 따로 두지 않는다. 성공회 신부님 중에 본래 장로교(예장합동) 출신으로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성공회 신대원을 졸업한 출신도 있다. 성공회는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성직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169]

10 창작물에서의 성공회

한국에서는 대중적인 그리스도교 종파가 아니라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 종파의 존재를 유럽사 서적에서나 혹은 교세에 비해 매우 방대한 본 문서를 포함한 위키질 중에 처음 접한다. 그러다 보니 존재감이 미약하여 창작물에서 다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특정 나라에서는 국교의 레벨이라는 점, 그 나라가 꽤 잘나가는 서구 국가 중 하나인 영국이라는 점 등으로 인하여 "앗! 저 사람은 영국 직속의 A 신부!!" 같은 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간혹 창작물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쪽 방면의 작품으로는 헬싱,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170]이 있다. 대신 영국 문학, 특히 추리소설에서는 무지하게 자주 나온다. 특히 딕슨 카의 작품에서는 반드시 나온다.

11 성공회 신자 혹은 성직자인 인물

11.1 가상인물

11.2 실존인물

11.2.1 성직자[172]

11.2.2 평신도

  1. 미국 독립 후 Anglican이라는 말이 영국 왕당파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Anglican 대신 Episcopal로 바꿔 쓴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부분의 성공회 교회는 중립을 지켰지만, 일부 왕당파 성공회 성직자들은 박해를 당하기도 했다.
  2. 표준발음법상 '성'을 장음으로 발음한다. '성스럽다'는 의미의 한자 '성(聖)'은 장음으로 발음하는 것이 원칙. 즉, 4대 성인의 '성인(聖人)'은 장음으로 [성ː인]으로 발음하는 것이 옳으며, '어른'이라는 의미의 '성인(成人)'은 단음으로 [성인]으로 발음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장단음의 구별이 많이 사라졌지만…
  3. '보편적'이라는 뜻으로 현대 사전에 따르면 '공된'이 더 적합하다. '공번되다'는 북한어로 사전에 실려있다. 하지만 번역된 때에는 남북이 나뉘기 전이기에 '공번된'으로 표시하였다. 물론 이제는 이런 용어가 아니라 그냥 쉽게 '보편적인'이라고 한다.
  4. 성공회라는 한자 표현을 영어로 직역하면 Holy Catholic Church가 되어버린다.
  5. 성직자를 '사제' 또는 '신부'라 칭하고, 그들이 로만 칼라를 입고 다니며, 야훼를 '하느님'이라 부르기 때문.
  6. 반가톨릭 성향이 강한 일부 개신교인은 성공회를 이단인 천주교에 물든 '천주교 2중대' 비슷하게 보는 시선이 있다.
  7. 그러나 루터회와 성공회가 외형상 유사점이 많은건 사실이긴 하나 세부적인 내용으로 들어가면 꽤나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인식이 생긴 것이기도 하다. 우선 유래부터가 신학적, 신앙적으로 로카 카톨릭에 반발해 분리되었고, 종교개혁의 시발점인 루터교와 신학적 노선차이라기 보다는 정치적인 이유로 카톨릭과 분리된 측면이 강한 성공회는 차이점이 있으며, 루터회의 경우 모든 개신교 교파가 동의하는 개신교 기본 원칙인 '다섯 솔라'등을 강조하고 개역한글이나 개역개정등을 주로 사용하며, 목회자의 명칭도 '목사'인 점 등 개신교적인 정체성이 상당히 강한 반면, 보편교회론을 인정하고 국내한정으로 앵글로-카톨릭의 영향력이 매우 강해 카톨릭적 양식이 두드러지는 성공회의 차이는 무시 못할정도로 크다
  8. episcopal은 '주교(들)의, 감독 교회의'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이다.
  9. 아일랜드 공화국과 영국의 북아일랜드를 담당하는 성공회
  10. 사실 홍콩은 광동어가 사실상의 공용어지만 표준중국어 발음을 웨이드 자일스 표기법(성조 표기는 삭제)대로 적은 Sheng Kung Hui로 적었다. 참고로 한어병음식이라면 Shenggunghui로 적어야 하며, 광동어 발음대로 적을 거면 Sing Gong Wui(발음을 로마자로 정확히 옮기고자 할 경우)나 Sing Kong Wui(관행적인 로마자 표기) 정도가 돼야 한다.
  11. 헨리 8세는 형수인 아라곤의 캐서린과 결혼했고, 율리오 2세에게 면책을 받았다. 혼인무효이니 이혼이니 하는 용어는 별로 중요치 않다. 혼인 무효는 이혼급으로 자주 이용이 되었기 때문...애를 못 낳는다던가 동맹이 풀린다던가.. 새장가 가고 싶거나 하면 유럽군주들은 교회법학자들을 동원하여 무효 사유(?)를 열심히 잘 찾아냈고 교회에선 거의 대부분 들어 주었다. 대부분의 사유는 근친혼인데 앞서 헨리 8세의 경우처럼 근친혼으로 결혼하며 면책받았다가(유럽왕족들은 신분에 맞춰 근친혼이 성행했기에 교회에선 기독교 군주의 결합을 대의로 인정하여 허용하는 추세였다.) 이혼하고 싶으면 근친혼.... 이라며 무효를 주장..
  12. 기원전 3~4세기 이전부터 로마 제국 지역 뿐만아니라 아프리카 페르시아까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곳곳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들 유대인들은 국제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역시 빠른 기독교 전파에 영향을 주었다.
  13. 이전의 로마 교황과 8세기까지 후임 교황들은 세속적으론 동로마제국의 봉신이며, 황제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에게 수위권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교회전승에서 내려오듯 온전한 교회수위권 같은 것은 누리지 못했다. 이탈리아 반도에선 침략자들의 방어하고 협상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잉글랜드에 신경 쓸 겨를이 더 없었다. 그레고리오 1세 시절엔 동로마제국서 파견한 라벤나 총독에게도 무시당할 정도.
  14.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 시절은 왕이 죽을때마다 분할상속으로 나뉘어졌다 서로 싸우고 죽고 병림픽으로 합쳐졌다의 반복이었다. 네우스트리아는 파리와 북 프랑스지역
  15. 서고트족 출신임에도 프랑크계통 왕국에 시집와서 아리우스파에서 가톨릭으로 자발적으로 개종함.
  16. 앞서 언급했듯이 전근대 서유럽에서는 의외로 세속군주가 교황에게 엿을 먹이고 해당 국가 성직자들이 군주 편을 드는 사례가 많다. 당장 아비뇽 유수도 그런 사례라 할 수 있다. 중세는 교황이 세속 정치에 영향을 끼치던 시대이기도 하지만, 통신과 교통 수단의 미발달로 인해 의외로 가톨릭 교회가 각국 주교들의 느슨한 연합체 같은 느낌으로 결합되어 있기도 했다. 그래서 통일된 미사 경본이 나온건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에서나 가능했다 기존 신성로마제국, 프랑스 왕국 의 세속 군주는 교황청을 왕의 권한아래나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교회권력을 이용했다면, 헨리 8세는 영국 교회 자체를 로마에서 분리 시켰다는 점에 있다.
  17. 초대교회에서 성인공경을 찾을 수 있는지, 성경이 가톨릭의 교리를 지지하는지 부정하는지 등은 논란이 있고 이 항목에서 서술하기에는 여백이 부족하지만, 확실한 점은 성경에서 직접적 서술이 없다는 것이다.
  18. 성공회를 비롯한 개신교에선 가톨릭 교회에서 교리로 주장하는 변화설(화체설)을 공식적으로 부인한다 개신교 성찬(성만찬)교리인 공재설(공체설, 실재설) 영적 임재설, 기념설 등 중립적인 '설'로 쓰면서 본문서에서 가톨릭 교리에 해당하는 성변화로 자꾸 수정하는것은 가치중립적 서술을 떠나 가톨릭 중심적인 서술에 해당한다. 이하 다른 대체적인 용어가 제시되지 않는다면직접적인 가톨릭 교리를 지칭하는 내용을 제외하고, 이하 가톨릭 교리는 화체설로 서술함.
  19. 1380년부터 교황청이 분열되어 2~3명의 대립교황이 난립했기 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1415년에야 해결된다.
  20. 사실 제국내에서 독자적인 권한보다는 세속군주와 협조적인 관계였고, 강력한 황제가 출현할 때마다 실제적인 힘이 없는 교황청은 세속권력 공백시기가 아니면 거의 항상 '신앙심이 약한(?) 군주들'에게 무너졌다.
  21. 프랑스의 경우 프랑수아 1세 시절 볼로냐 조약으로 9개 대주교를 비롯한 주교,수도원, 수녀원장 직위 600여개 임명권은 프랑스왕이 교황청 대신 직접 행사하고, 수입도 프랑스왕이 차지하기로 교황청과 합의 했다. 대신 교회 분열기 공의회에서 프랑스측이 인정하지 않던 교리를 사후 추인하는 소소한 양보정도로 답례
  22. 옥스퍼드대 위클리프홀을 거쳐 킹스칼리지에서 재임하다 현재 다시 옥스퍼드 대학 '과학과 종교'강좌 석좌교수
  23. 정식 명칭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교리와 학식(the necessary Doctrine Erudition for Any Christian Man)' 라는 장문의 제목이다. 혼자 공의회, 교황 노릇을 하며 교리를 정해준다는 교조적인 서적이다.
  24. 아예 금지는 아닌데 불가타를 직역한 것만 허용하고, 헬라어(고전 그리스어)를 배워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라틴어 비교 성경을 보는건 허용했다. 당연히 불가타 직역본은 번역상태가 거의 사망수준이고, 헬라어 원전 신약성서는 학자급이나 학식이 아니면 접근 불가능. 왕께서 친히 펴낸 교리 설명용 소책자를 보는건 적극 권장했다. 당연히 아부꾼들이 비위 맞추려 몇부 본거 빼곤 가톨릭이고 개신교 신앙 가진 양측에선 거의 무시했다.
  25. 헨리 8세는 교황은 '로마의 주교일뿐'이라며 국내 간섭을 거부 한것이지 교황청의 모든 권위에 대해서 적극 부인한것이 아니다.
  26. 토머스 모어는 헨리 8세가 요구한 혼인의 적법성, 후계자의 계승 순위 수도원을 작살낸것 같은 소소한 이유는 마지 못해 찬성했고, 로마교회 수위권만 거부하지 않았다.
  27. 드라마 <튜더스>에서도 당시 모습이 나오는데, 당시 사형이 면제된 여성까지도 이단이라서 화형시키는 모습이 나온다.
  28. 《기독교의 역사》p508, 폴 존슨
  29. 공도문이라고도 하고 영어로 축약 표현 할 때는 BCP라고 적는다. 이 책자도 영국 내에서는 킹 제임스 성경과 함께 Crown Copyright을 적용받는 저작물이다.
  30. 한국의 ‘성공회 기도서’도 ‘공동기도문’이라고 하기도 했었는데, 개정하면서 ‘성공회 기도서’라는 명칭으로 바꾸었다.
  31. 왕당파라서 청교도 혁명으로 처형된다.
  32. 이 시기에 웨스트민스터 성당에서 한국과 미국 장로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신조 중 하나인 ‘웨스트민스터 신조’가 생겨났다. 이 당시 청교도는 영국 국교회 안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성공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만들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성공회 신학은 웨스트민스터 신조와는 너무 다르다
  33. 훗날 가톨릭으로 회심하여 추기경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된다. 사후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시기에 복자로 시복되었다.
  34. 다만 이들 모두 공동기도문을 사용한다는 것은 동일하다.
  35. 이때 가톨릭(Cathollic)은 로마 가톨릭이라는 의미도 없지는 않지만, 보편교회나 초대교회의 전통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된다.
  36. 존 스토트 사제, 톰 라이트 주교, 앨리스터 맥그래스 등 성공회가 배출한 걸출한 복음주의자들은 이쪽 계열이다.
  37. 앞의 주석에서의 톰 라이트 주교의 경우 한국에서는 자유주의로 몰리는 경우도 꽤 있지만, 세계적으로 신학계에서는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인 신학자로 평가 받는다.
  38. 한국과 해외가 사용하는 용어에 차이가 있어서 조금 문제가 되긴하는데, 굳이 한국에 맞춰서 번역하자면 목사보단 사목자가 더 적합하고 이런 용어와 신부라는 용어는 별개로 사용한다.
  39. 고교회파 저변도였던 대한성공회에서도 일부에서 이런 움직임이 있다.
  40. 이들 중 상당수는 성공회 내 동성애자 사제, 동성결혼 인정 문제, 여성사제 문제에 반발하여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도 했다.
  41. 어떤 성공회 신자는 진정으로 교회일치가 이루어져 성공회가 사라진다 해도 크게 아쉬울 것 없다는 말을 했다 카더라. 그 정도로 에큐메니즘이 강한 종파라는 의미.
  42. 가톨릭과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면 가톨릭이 성공회 신자들에게 가톨릭 영성체 참여를 허용안한 것에 대해 성공회 측에서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로마 가톨릭을 친정(종갓집)으로 생각해온 고교회파 신자들이 분노에 가까운 서운함을 느꼈다하더라 반가톨릭 성향의 보수 개신교 같았으면 가톨릭 영성체 개방문제는 자신들과 관련 없는 일로 치부했을테니.
  43. 개신교는 '성서'를 강조하고, 로마 가톨릭은 '성서'와 '전통'을 강조한다.
  44. 이것과 비슷하게 보는 입장이 복음주의파(저교회파)이다.
  45. 그렇다고 완벽한 교회는 아니다. 애초에 사람 모인 곳에 분쟁이 없을리가.., 최근에는 성공회대 운영 문제를 둘러싼 잡음이 좀 있긴 하다. 애초에 어떤 교파이든지 하느님보다는 사람(성직자/목회자)만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냉담의 지름길이다.
  46. 엄밀히 말하면 성공회대학교 내에 진보적 인사가 많고, 대학교에서 이들의 언행에 별로 제제를 안가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지 성공회대학교 자체가 진보적인 성향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47. 로마 가톨릭의 경우 성경이나 교리 해석을 교황청이 독점하며 시시콜콜한 것까지 교리서로 정리해주지만, 성공회는 큰 틀에서만 교리로 정리해두고 나머지는 신자의 개인의사에 맡긴다.
  48. 고해성사, 고백성사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나, 준성사 또는 성사적 예식이라고 해서 성공회 기도서에는 고백예식이라고 표현한다.
  49. 여기서는 장로교, 한국 감리교, 성결교회, 침례교, 오순절교회(순복음교회). 성공회보다 개혁주의가 강한 교단들을 일컫으며 루터교회는 이런 측면에서는 대체적으로 성공회 쪽에 가깝다.
  50. 또한 십자고상, 성모상과 같은 성물은 사제에 의한 축복식을 받아야 한다.
  51. 물론 공식적인 입장은 '평생 동정 아님', '무염시태 아님', '성모안식'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강요도 없고 성직자나 평신도 개인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인다.
  52. 물론 성모 마리아가 없다는 건 과장/왜곡된 얘기이지만, 개인의 신앙관에 따라 성모 마리아에 크게 신경 안써도 되는 성공회의 분위기를 묘사한 표현.
  53. 다만 교단 차원에서 전자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사나 평신도 중에서는 전자 입장도 꽤 있는 듯하긴 하다.
  54. 소죄의 경우 성체를 영하는 것으로 사해진다.
  55. "온 누리의 주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주님의 너그러우신 은혜로 저희가 땅을 일구어 얻은 이 빵을 주님께 바치오니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소서." 등
  56. 단 위급한 상황의 동방정교 신자도 영할 수 있다.
  57. 역시 자유를 바라기에 개인적으로 빵이 성체로 변화한다는 믿음을 말리지 않는다. 일부 고교회파 사제, 평신도들이 화체설을 따르는 경우도 있다.
  58. 특히 감리교가 성공회에서 분리되어 나온 교파인 점을 들어서 감리교식 구원관도 성공회의 전통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59. 이건 루터교도 마찬가지이다.
  60. 로마 가톨릭 신자, 사제라 해도 진보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개신교 성경 활용(어디까지나 보조적 용도에 한하여)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 경우도 있지만, 보수적인 신앙관을 가진 사람들은 금지에 가까운 권면을 하기도 한다.
  61. 서울주교좌성당 소속 사제와의 이메일 문답
  62. 물론 성공회를 훼방할 목적으로 타 교파에 양다리를 걸치는 경우가 아닌 이상
  63. 미국의 근본주의 교회중에 뱀을 잡는 의식을 치르는 곳이 있다.
  64. 과학과 이성을 존중
  65. 남녀 평등 추구. 다만 이는 로반 윌리엄스가 미국 성공회 신자였기 때문에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성공회공동체 소속 관구 중에는 여성 사제를 반대하는 관구도 많다.
  66.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을 해도 된다는 얘기
  67. 전례적 교회
  68. 전례적 교회
  69. 성사적 교회. 매 감사성찬례마다 성체성사를 한다.
  70. 죄의식을 가지는 것보다 하느님의 은총을 강조
  71. 침례가 아님. 물론 이 역시도 관구나 교회(주임신부 개인성향)에 따라서 침례를 주는 경우가 있다. 또한, 침례를 안주는 경우에도 침례가 더 성서에 부합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72. 여러 성향의 신자 구성 및 다양성 존중
  73. 성공회는 신앙고백 상으로는 세례와 성찬 2개만을 성사로 인정하며, 나머지 5개는 성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5개를 완전히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성사적 행위 또는 준성사로 보고 있다. 다만 동방정교와 로마 가톨릭과는 달리 신앙생활의 필수요소로 보지는 않는다. 이 부분에서 개혁주의 개신교와 다른 점은 개혁주의 개신교는 이 5개를 비성경적이라 하여 배척하는 반면에 성공회는 교회의 전통으로서 존중해준다는 것이다.
  74. 존 녹스는 감독제(주교제) 제도 자체를 반대해서 사양했다.
  75. 스코틀랜드 개혁교회를 수립하여 스코틀랜드에서 종교개혁을 완성한 사람으로 장 칼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76. 39개 신조가 사문화 되었다는 의견이 있는데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시대에 흐름에 따라 사문화 된 조항도 있기도 하고, 영국 외의 성공회에 구속력이 없지만, 램베스 회의등에서 새로운 판단을 내릴 때 주요 참고 대상이다. 다른 곳의 성공회에나 역사신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그 시절엔 이런 신앙이 있었고, 가톨릭이나 여타 대륙 신학과의 갈등에서 어떤 판단을 내렸는지에 대한 좋은 연구 자료로 보고 있다.
  77. 이전 버전의 문서 등을 보면 오해하는 것이 천주교의 4대교리를 성공회가 부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서분열 이전의 공의회에 있었던 테오토코스는 분명히 4대 교리 중 하나이나 성공회의 교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78. 그렇다고 성모신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주류 개신교에 비해서 성모신심이 강하다. 애초에 성공회 기도서의 예식을 보면 성모송도 있는 것도 있고, 묵주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다.
  79. 현대의 세계성공회공동체에서 39개조 신앙고백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는다. 그 시대에 저런 교리가 필요했다고 볼 뿐이다. 다만, 성공회의 신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방향은 잡을 수 있는 문서이다. 애초에 성공회는 진리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찾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시기나 대상에 따라 교회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0. 다만 로마 가톨릭과는 다르게 본명(本名)이라고 하지 않고, 신명(信名)이라고 한다.
  81. 이런 이유로 로마 가톨릭에서는 성공회 사제가 베푼 세례는 아무 이의 없이 인정한다고 공칙된 바가 있다. 다만 로마 가톨릭로 옮기는 그 성공회 신자가 당초 성공회에서 세례를 받은 경우가 아닌, 성공회 입교 이전에 타 개신교 교단 출신이어서 성공회 입교 당시에 세례를 생략한 경우라면 그 사람이 로마 가톨릭으로 옮길때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게 되어 있다. 또한, 세례는 다시 주지 않더라도 일치예식은 받아야 한다.
  82. 참고로 로마 가톨릭에서는, 선의를 가진 동방정교인은 누구든 로마 가톨릭에서 성사를 받는 것을 허용한다. 단지 동방정교 측이나 로마 가톨릭 측이나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하지 않을 뿐이다. 더군다나 로마 가톨릭 교회법에는 정말 급한 사정이 아니면 로마 가톨릭 신자가, 동방정교나 성공회에서 영성체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83. 이건 동방정교나 로마 가톨릭이 개신교에서 옮긴 사람을 세례 받았는지 판단할 때도 동일하게 사용되는 기준이다. 다만 자신이 받은 첫 세례가 훈련소 진중세례인 경우 본인의 희망에 따라 다시 세례를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진중세례도 적법한 세례라 하면서 재세례를 거부하는 신부들도 있다.
  84. 다만 적법하게 세례를 받은 자라면, 개신교, 동방정교, 로마 가톨릭 어느 곳의 신자라도 성공회의 감사성찬례에서 영성체를 할 수 있다. 이게 감리회장로회와 공동예배할 수 있는 이유.
  85. 장엄전례로 감사성찬례를 드리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앵글로-가톨릭 성공회 교회에서 드리는 감사성찬례는 일반적인 로마 가톨릭 미사에 비해서 장엄하다는 평을 받는다.
  86. 동방정교로마 가톨릭은 서로를 보편교회로 인정한다.
  87. 다만 성공회가 보편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동방정교에서도 로마 가톨릭처럼 성공회가 교회가 아니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88. 1552년의 성공회 서품 예식서에서 성찬례 집전권에 대한 부분이 명시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다만, 1662년 예식서에서는 이 부분이 개정되었으나, 이미 1552년 예식서대로 서품을 주었기에 이후에 바르게 고쳐졌다고 해도 교황 레오 13세는 그전에 사도계승이 단절되었다고 보았다.
  89. 실제로 정교회와는 사도 전승 인정에 관한 논의가 잘 진행되다가 이로 인해 정교회 측이 반발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90. 이거 때문에 로마 가톨릭 성직자와 성공회 성직자가 친할 경우에는, 서로서로 놀리면서 산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 결혼에 성공해서 성공회냐?/성공회: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 물론 대화 당사자가 서로 친할 때.
  91. 기혼자도 동방정교에서 주교가 될 수 있지만, 이는 미혼 사제가 없는 경우에 한하고 주교가 되면 별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92. 물론 세계성공회공동체는 여러 관구로 이루어져있고, 관구별로 자율성을 존중하기에 관구에 따라서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거나, 여성 사제는 인정하나 여성 주교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93. 이 역시도 관구별로 자율성을 존중하기에 관구에 따라 입장이 다르다.
  94. 동성애자라는 점보다 동성애에 관한 성경적 관점을 따를 것인가가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데 애초에 성서에는 '동성애'란 단어가 없다(...) 성서에서 죄악시하는 것은 남성 간 성매매나 이교도 의식으로서의 남성 간 성교뿐.
  95. 교회의 사도성에 대한 문제때문이다.
  96. 실제로 세계성공회공동체 내부에서 여성 사제 문제와 동성애자 사제 문제로 지속적으로 논란이 일고 있고, 나아가 분열의 기미도 보이기도 한다.
  97. 보수파의 성공회 탈퇴에 대해 일부 진보파 사제, 평신도들은 오히려 잘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성공회가 진보적인 교회로 거듭나는 데 방해가 되는 보수파들이 알아서 로마 가톨릭으로 떠나갔기 때문.
  98. 그것이 가톨릭의 교리나 제도에 대한 회의이든, 아니면 다분히 혼인을 위한 목적이든.
  99. 로마 가톨릭 개종 1~2년만에 로마 가톨릭 사제로 서품받을 수 있는 성공회 사제 출신과 달리 개신교 목사 출신은 로마 가톨릭 사제가 되려면 처음부터 수년 간의 사제 양성 과정을 거쳐야 한다.
  100. 다만 기혼 주교는 주교품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어서, 현재 영국 성공회 출신 신자들을 관할하는 월싱엄의 성모 속인적 자치단의 장상인 전 성공회 주교는 로마 가톨릭으로 옮긴 뒤에는 주교품을 받지 못한 대신 몬시뇰의 칭호를 받고 자치단을 다스리고 있다.
  101. 엄밀히 말해서 영국UK이 아닌 잉글랜드 국교이다.
  102. 7성사, 사제독신, 성변화, 루터신학에 영향받은 윌리엄 틴틀 판 영어번역성경 소지 및 구입 금지 등
  103. 반대자들에겐 충분히 교리적인 이의제기였지만 일단 법적으로 헨리 왕의 수위권을 부인한 토머스 모어는 반역죄로 목이 잘렸다. 가톨릭 교리를 부인한 복음주의자들은 이단이라서 화형시킨다.
  104. 스튜어트 왕조시절 주교들을 성직귀족에 해당하여 임명하고 의회에 꽂아넣어서 거수기 노릇을 시켜서 의회세력에 큰 비판을 받았기에 권리장전 이후로는 국왕의 임명권한은 형식적이다.
  105.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일부 접경 지역에 한정. 웨일스 대부분은 잉글랜드 국교회 산하에 있다가 분리된 웨일스 성공회(Church in Wales)가 관할한다.
  106. 미국 성공회도 유럽 일부 지역을 관할한다.
  107. 캔터베리 대주교(직책)도 성공회 형성 이전에는 로마 가톨릭 소속이었다.
  108. 세계에서 유일하게 하원보다 의석이 많은 상원이다. 2015년 11월 현재 하원인 평민원은 650석인 데 반해 귀족원은 자그마치 822석이다. 참고로 귀족원은 의원의 정수를 따로 정해 놓지 않는다.
  109. 귀족원은 국민들의 선거로 뽑히는 조직이 아니다 보니 민주주의가 성숙하면서 자연스레 권한이 크게 축소되었다. 그리고 현대의 다른 민주 국가들을 보아도 상원과 하원의 실권이 대등한 경우는 있어도(예: 미국) 상원이 하원을 압도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하원이 상원을 압도하고 상원은 단지 하원을 보조하거나 가끔씩 견제하는 정도인 경우가 더 많다.
  110. 실제로 보수당·자민당 연립 정권(2010년 5월~2015년 5월)하에서 자민당 주도로 추진했던 상원 개혁안에서도 이들의 의석은 남겨놓게 되어 있었다. 자민당의 개혁안은 귀족원 의석의 정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축소하고, 대부분의 의석을 선거로 뽑게 하였다. 그리고 선거로 뽑히지 않는 의석은 의원 정수의 20%를 넘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서 선거로 뽑히지 않는 20% 중에 성직귀족 의석을 포함시켜서 존속시키게 했다. 사실 자민당의 자유주의 취향대로라면 성직귀족의 의석도 없애는 게 맞다. 하지만 보수당과의 연립정부를 꾸린 상황이므로 타협을 위해 성직귀족의 의석을 남기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수당 내에는 상원 개혁 자체에 반발하는 의원들이 많아 개혁안 자체가 폐기돼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111. 설립 당시 스코틀랜드 일각에서 한 나라로 합병되는 것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있는 상황이었는데(물론 지지한 사람들도 있었음) 만약 스코틀랜드에서 Anglican Church라는 용어를 쓰면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 종교적으로까지 침투하려 한다는 적대적인 반응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태를 우려한 탓인지 스코틀랜드 성공회 이름에는 Episcopal을 집어 넣었다. 다만 현재 홈페이지 주소는 scotland.anglican.org 식이라 도메인에 anglican이 들어가 있다.
  112. 아일랜드 섬에서 활동하는 많은 조직들이 섬 전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히려 아일랜드 공화국과 북아일랜드를 따로 관할하는 조직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
  113. 북아일랜드 신교도 중 적지 않은 수가 스코틀랜드 이주민의 후손이다. 따라서 이들의 후손들 중에 장로교 신자가 많다.
  114. 다만 북아일랜드에서 개신교를 다 합치면 가톨릭 신자보다 수가 많다. 성공회와 장로교 신자가 북아일랜드 신교도 대부분을 반분하고 거기에 소수의 감리회 신자가 존재하는 식이다.
  115. 참고로 두 성공회 성당은 마주보고 있다고 해도 될정도로 서로 거리가 가깝다. 도보로 3-4분 거리.
  116. 로마 가톨릭의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교리 때문. 게다가 성 차별(성직자 서품 문제 한정)이라든가 성소수자온건하게나마 여전히 배격(대표적으로 영성체 문제)하는 등의 문제에 반발하는 이들도 있다.
  117. 헌금 및 봉사 강요, 신사도 운동, 통성기도, 근본주의(극단적 세대주의 포함), , 성소수자 배척 등에 반발하기 때문.
  118. 주류 개신교단에서 성공회로 옮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천주교 입교까지 고려했으나 천주교의 보수적인 교리(성 관련 교리)나 이질적인 교리(천주교 특유의 성모신심, 고해성사)에 동의하지 않아서 성공회로 발길을 돌린 경우다.
  119. 인구대비로 볼 때 극소수이지만 그래도 신자 수가 5여 명밖에 안되는 루터교정교회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볼 수 있다.
  120. 주한영국대사관과 가까운 위치에 있다. 사실 이 성당과 영국대사관 모두 예전 덕수궁의 원래 권역 안에 있는 것이다. 덕수궁 건물 중 하나인 양이재 건물이 주교관으로, 현재 대성당 경내 안에서 사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121. 젊은층과 성소수자를 위한 선교형 교회인 길찾는 교회가 있다.
  122. 자유주의 신학관부터 보수적 복음주의 신학관까지. 다만 근본주의 신학관은 배격하는 편이다.
  123. 물론 모든 개신교 교단 통틀어서가 아니라 성공회 내에서의 차원을 말하는 것이다.
  124. 한국에 처음 성공회가 전래된 19세기 말엽은 영국에서 옥스퍼드 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125. 이전 버전에서는 벽제대나 장궤영성체를 하지 않고, 트리엔트 미사보다는 바오로 미사에 더 가깝기에 하드코어 앵글로-가톨릭으로 보기 어렵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장엄미사는 트리엔트 미사와 바오로 미사에 모두 존재하는 형식이고, 바오로 미사와 트리엔트 미사는 전례 형식의 차이이지 어느 것이 더 하드코어하다와는 거리가 멀다.
  126. 1978년 성공회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나, 당시에는 여성의 서품을 허용하지 않았고 남존여비적 분위기가 심해, 줄곧 전도사로만 머무르고 있다가 졸업하고 23년이나 지난 후에야 사제서품을 받을 수 있었다. 10년간 사목한 후 2011년에 은퇴했다.
  127. 본래 한국기독교장로회 경동교회에 다니다가 성공회로 옮겼다. 남편도 성공회 사제라고 한다.
  128. 그래서 이단에 대해서 취약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그래도 흔히 정통 그리스도교라고 불리는 가치는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129. 장로회, 감리회 등 세례명이 없는 개신교 교단 출신이 성공회에서 타교파 영접식이나 견진을 받을 때 세례명을 설정할 수 있다.
  130. 경동교회는 한국 에큐메니컬 운동의 산실이자 기장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이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첫 여성 사제인 김기리 미리암 신부가 성공회로 옮기기 전 다니던 교회라는 인연도 있다. 한편 새문안교회는 영락교회와 더불어 예장통합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 중 하나이고, 또한 한국 장로회 역사에서 매우 비중이 큰 교회이기도 하다.
  131. 이는 천주교의 한인성당도 마찬가지로 현지 천주교 주교가 견진성사를 집전한다.
  132. 서울주교좌성당, 약수동교회
  133. 분당교회, 성남교회
  134. 항동교회, 성공회대학교, 성공회대 교내 교회
  135. 성공회 광명교회가 성공회 영등포교회에서 분가되었음에도 어찌된 일인지 강남교무구가 아닌 서부교무구 산하로 편제되어 있다.
  136. 김포교회가 최근 인천 검단으로 이전.
  137. 간석교회, 서창교회
  138. 서인천교회와 김포시에 있던 김포교회
  139. 평택교회, 팽성교회, 안중교회
  140. 따로 교무구가 설정될 정도로 유독 강화군에 성공회 성당들이 여럿 있다.
  141. 보통 The Episcopal Church(TEC/EC)로만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142. 미국 성공회 관구의 관할 지역은 미국을 비롯해서 유럽, 나아가 대만까지 포함된다. 여기서는 주로 미국 내의 성공회에 대해서 다룬다.
  143. 정확히 얘기하자면 워싱턴 국립 성공회 성당 건립을 미 연방 의회가 의결한 것.
  144. 이들 중 상당수가 성공회 신자였다가 이신론자로 전환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신론자로 전환한 후에도 성공회 신자로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인 이신론자로 알려진 조지 워싱턴의 경우도 대통령 취임식 마치고 바로 성공회 회당에서 열린 추수감사절 예배에 참여했을 정도.
  145. 그런데 연합감리교(UMC)도 후술할 메인라인 계통에 속한다.
  146. 일단 단일 종파이자 조직력으로는 미국 내에서도 로마 가톨릭이 가장 크고, 남부와 중부로 내려가면 남부 침례교로 대표되는 보수적 복음주의 개신교의 영향력이 훨씬 더 강하다.
  147. 20세기 초중반 신학자 라인홀트 니부어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적 개혁을 받아들인 동북부 엘리트 위주의 감리회, 장로회(PCUSA), 루터교의 진보적 교회들과 성공회를 일컬으며, 이들은 대부분 동성애, 여성 사제 등의 사회, 종교적 이슈에 관하여 진보적인 접근을 공유한다. 수적으로는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단어 그대로' 미국 개신교의 주류였으나, 레이건 정권 시절 미국 사회에서 68혁명에 대한 반동적 역풍이 불 때 복음주의 개신교에 역전 당했다. 이러한 연유로 '메인라인'이 아닌 '올드 라인'으로 불러야 한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148. 동성애자 사제 허용, 낙태 문제 등
  149. 미국의 주류 근본주의 개신교 대부분은 침례교 및 파생 교파들인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남침례교.
  150. 쉽게 말해 앵글로-가톨릭과 복음주의 사이의 중도파. 광교회파를 자유주의를 따른다고 보기도 한다.
  151. 특히 따로 명시되어있지 않는 분야에서 성공회가 더 전통에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한 예로 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천주교 성당에서는 비용과 면적 등의 문제로 반주가 필요한 부분에 풍금(리드 오르간이라고도 부르며, 파이프 오르간과는 달리 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프리 리드를 사용)을 사용하는게 상당히 흔해졌지만, 성공회의 경우 작은 교회라도 어떻게든 파이프오르간을 마련해 사용하는 게 대부분이다.
  152. 그러나 한국의 성공회가 미국의 성공회보다 로마 가톨릭과 더 비슷하다.
  153. 실은 이렇게 성호를 그리는 경우 로마 가톨릭의 현대 미사형식인 바오로 미사보다 전통적인 미사 형식인 트리엔트 미사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즉, 현대 로마 가톨릭보다 더 많이 긋는다.
  154. 삼위일체 및 성체성사와 세례성사 관련 믿음 등. 쉽게 말하자면, 주류 기독교 종파들의 공통분모들.
  155. 이는 미국 성공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성공회의 문화 자체가 그렇다.
  156. 성공회 내 복음주의파. 동성결혼과 동성커플에 관한 혼인성사에는 반대하지만 호모포비아적 태도를 배격하고 여성 사제 문제에는 호의적인 입장.
  157. 단, 여기서 자유주의(liberal)과 광교회파를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자유주의가 이성의 눈으로 성서와 전통을 보는 것이고, 광교회파의 경우 성서와 전통과 이성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광교회파와 자유주의를 동일하게 본다.
  158. 물론 수도권 지역에도 복음주의 성향의 성당이 몇몇 있다.
  159. 그렇다고 해도 한국 관구 전체로 따지면, 앵글로-가톨릭의 성향이 강하다.
  160. 한국의 경우 복음주의 성공회 교회를 찾으려면 선교형 교회를 가야 된다.
  161. 존 웨슬리도 계속 성공회 신부로 남아있었다.
  162. 로마 가톨릭은 성공회 출신으로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사제와 평신도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위한 사목적 지침까지 마련한 상태이며, 별도의 관구까지 마련한 경우도 있다. 또한 그 해당 특별 관구 내에서는 성공회의 전례를 유지할 수 있는 특례도 적용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이는 로마 가톨릭과 성공회의 일치가 아니라, 로마 가톨릭의 성공회 흡수이기에 반발하는 신자들도 꽤 많다.
  163. 천주교의 바티칸과 달리 캔터베리로 대표되는 영국 성공회가 전 세계 성공회를 통제하지 못하고 대개 국가별로 설정되는 관구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특성이 가장 근본적 장애가 될 확률도 높다. 그래서 10년마다 전세계의 주교들이 모이는 람베스 회의에 불참한다는 식의 행동이 가능하다.
  164. 감리회는 성공회에서 갈라져 나왔다.
  165. 그 중에서도 특히 자신이 로마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옮긴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로마 가톨릭의 경직성과 보수성에 동의하지 않아서 성공회로 옮겼는데 로마 가톨릭과 도로 통합되어 버리면... 그리고 저교회파 신자의 경우 차라리 감리교로 가면 갔지 로마 가톨릭으로 왜 가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166. 일본 대학 랭킹 5위권인 릿쿄대학을 일본 성공회에서 설립운영하고 있고, 사제도 이 대학에서 배출된다. 그러나 신자는 이 학교 학생 중에서도 극소수다.
  167. 조선일보 일가인 그 방우영이다. 길 건너 신문사가 고려대학교를 자기네 재산으로 갖고 있는 게 부러웠는지 아래 사건을 계기로 사실상 주인 없는 연세대 이사회를 사유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부 언론 중심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어이없게도신기하게도 조카 방상훈 조선일보 대표이사와 그 가족은 성공회 신자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조선일보 사옥 건물이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고, 서울주교좌성당 1996년 증축 완료 당시에는 조선일보 사주 일가에서 성당에 증축 기념비까지 세워줬다.
  168. 한국 천주교의 성직자들은 거의 전부가 학창시절에 예비성소자 활동을 거쳐 7년짜리 신학 교육과정이라는 풀코스를 거쳐 사제 서품을 받은 경우다.
  169. 김근상 서울교구 주교는 대대로 성공회 성직자 집안 출신이지만 학부는 서강대 화학과 입학, 가톨릭대 신학과 졸업이다.
  170. 금서목록에서는 '영국 청교'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어서 나온다. 이름은 실제 역사상의 청교를 연상시키지만, 작중 묘사는 영락없이 성공회이다.
  171. 팬들이 로마 가톨릭이나 성공회 신자로 추정하고 있다.
  172. 성공회는 개신교의 일파이지만 성직자 계층을 인정하는 교파다.
  173. 김종철, 김종희, 김종식 등 일가가 신앙을 공유하며 특히 어머니와 아내가 독실한 신자로 유명하다. 김승연 본인도 소년 시절에 성공회 성당에서 복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참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