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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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로버트 카파가 촬영한 <어느 인민전선파 병사의 죽음(Spanish Loyalist at the Instant of Death)>


한국전쟁 당시 사용했던 종군기자 휘장. -소장처 전쟁기념관

1 개요

從軍記者. war correspondent. 전쟁에서 군대를 따라 전투상황을 신문 등 언론에 보도하는 기자를 일컫는다.
이들의 사진은 역사의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국제법상 의무병과 함께 이 사람에게 발포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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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 당시 러셀 사진.

최초의 종군기자는 런던 타임즈에서 크림 전쟁을 취재한 윌리엄 하워드 러셀(1820~1907)로[1] 특히 그의 취재로 인해서 나이팅게일이 종군하게 되었고 더불어서 그녀의 활약상이 크게 부각되었다. 또한 러셀은 훗날 미국 남북전쟁, 오스트리아 - 프로이센 전쟁등에도 취재하고 이후 영국 기사에까지도 서임되었다. 또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역시 종군기자로 참전, 이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기여 잘 있거라 같은 명작이 탄생하였으며 그의 세번째 부인이었던 마사 엘리스 겔혼은 여성으로서 30년대의 스페인 내전부터 80년대까지 60여년을 전장을 찾아다니며 취재하기도 했다. 윈스턴 처칠 역시 보어전쟁등에 종군기자로 파견된 경험이 있었다.

국제법상 발포를 금하고 있지만 전쟁을 보도한다는 특성상 종군기자들이 취재도중 전쟁터에서 사망하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 당연히 한국전쟁 때에도 세계 각국의 많은 기자가 종군하였으며 17명이 순직하였다. 이들을 위해 파주시의 통일공원에는 순직종군기자추념비가 설립되어있다. 가장 많은 종군기자가 사망한 것은 1944년 르완다,보스니아,알제리 등에서 터진 내전으로 총 157명의 종군기자가 사망했다고... 거기에 2차 세계대전때 종군 카메라맨의 수는 미국만 1500명에 달한다고 했으니 2차세계대전 기간동안 사망한 종군기자의 사망수는 그보다 더 많을듯.

허나 당시 군인들은 종군기자를 썩 좋아한 편은 아니었다. 당시 폭격기 승무원들은 함께 탑승하던 종군 카메라맨들을 폭격기 내에 사람만 한명 더 차지하고 전투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 달갑지 않게 보았다고 한다. 심지어 폭격기에 고사포의 공격 모습의 촬영이 잘 안나온다고 폭격기 기장에게 고사포 공격에 좀 더 접근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고 하고 이착륙시 바퀴의 모습을 찍겠다고 하부 총좌에 들어가서 촬영하기도 했다고 하니 여러모로 골아팠을듯.

하지만 전쟁말기 미군은 각 부대에 한명이상의 카메라 촬영하는 병사를 투입해서 교육 후 각종 기록영상을 찍게 하기도 했다. 일종의 정훈병인셈. 이런 촬영병사들 중에선 미국 할리우드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고 이들 역시 교육 후 각 부대에서 수많은 사진과 영상들을 촬영했다.

베트남전 부터는 종군기자들이 보내온 사진때문에 반전바람이 불어 군인들은 학살자나 아동 살해자같은 불명예스런 욕설을 듣는일이 생겼고 걸프전부터는 아예 작정하고 프로파간다에 써먹는바람에 전쟁을 스포츠 게임마냥 보도한다며 군인들에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그 후로는 기자 하나 뜨면 수송차량 몇대가 달라붙어서 호위를 해줘야 하니 귀찮은 존재.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에겐 욕먹는 직업.

현재까지 대한민국에서 순직한 종군기자는 1958년 금문도 사건에서 취재 도중 조난, 순직한 최병우 기자가 유일하다.

  1. 최초로 전쟁을 보도한 기자는 1807년 엘베강 전투를 보도한 타임즈의 헨리 로빈슨으로 보고 있지만 직접 전쟁현장을 취재하진 않았기에 최초의 종군기자로 보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