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총리 | ||||
4대 리펑 | ← | 5대 주룽지 | → | 6대 원자바오 |
朱镕基 (주용기)
(1928~)
1 개요
중화 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상하이방. 1998년부터 2003년까지 국무원 총리로 재직했다.
2 생애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 성 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명나라 황족으로부터 내려왔다고 한다. 그래서 주(朱)씨다. 아버지는 지주이자 지식인으로 출신성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중국공산당의 초기 지도자들은 마오쩌둥으로부터 시작해서 대부분 지식인-중산층 이상의 부유층이었기때문에 그다지 문제되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린나이에 돌아가셔서 삼촌의 슬하에서 컸다. 공부를 엄청나게 잘했던지 베이징의 칭화대학교에 입학했고,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1949년 대륙을 장악한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1951년 칭화대학 학생회장이 된다.
대학을 졸업한 후 공무원 생활을 했고, 이후 여러군데서 관리생활을 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1957년 백화제방 운동 당시 마오쩌둥의 경제정책을 비판했다가 출당되었다. 뒤이어 추방되어 재교육 캠프에서 삽질을 했다. 대약진운동 이후 마오쩌둥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덩샤오핑과 류사오치가 정권을 잡자 다시 중앙정계로 복귀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절 다시 한번 숙청되었고, 다시 삽질을 하게 된다. 여기서 문자 그대로 돼지에게 인분을 퍼날라 먹이는 일을 하는 개고생을 했다고 한다.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얼마 안가 덩샤오핑이 정계에 복귀하자 주룽지도 복권되어 다시한번 중앙정부로 복귀한다. 이어 석유부에서 일하고 당원자격도 복귀뒤었다. 이어 계속 능력을 보여서 1980년대에는 국가경제위원회의 부주석에 임명된다.
1987년 상하이 시장에 임명되었고, 개혁개방을 지휘하여 상하이지역의 경제개발을 지휘한다. 이때 엄청한 부정부패 단속과 관리들의 기율 단속으로 으로 제2의 임칙서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9년 베이징에서 벌어진 천안문 6.4 항쟁의 강경진압과는 달리, 상하이의 소요사태는 주룽지가 앞장서서 평화롭게 해결하여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1998년 퇴임하는 리펑에 이어 총리자리에 올라 2003년까지 재직한다. 그는 엄정한 공직 기강을 강조하여 반부패운동으로 성과를 거두었고, 전임 리펑과는 달리 중국에서도 이미지는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