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愼
생몰년도 미상
탕구장군으로 185년에 장온과 함께 양주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진압하기 위해 3만의 병력과 함께 서쪽으로 출정했으며, 손견이 변장과 한수와 싸울 때 주신은 금성에서 한수를 포위했다. 이 때 손견이 주신을 도와야 한다고 했지만 장온이 이를 거부하면서 장온이 손견에게 강족의 토벌을 명하자 출정했다.
손견이 1만의 군세를 인솔해 금성으로 가면서 주신이 2만의 군사로 후위가 되면 좋겠다고 진언했는데, 금성에는 식량의 저축이 없어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것이 분명해 주신의 대군을 보면 경솔하게 교전하지 않을 것이고 손견이 한수의 보급선을 차단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주신은 손견의 의견을 채용하지 않고 스스로 금성을 공격했다가 퇴로가 차단되자 두려워해 무거운 짐을 실은 수레를 버리고 도망쳤다.
창작물에서
삼국지를 품다에서는 동탁의 과거에서 도망친 병사들을 데려갈 때 이유가 병사에게 상황 설명을 물어봐서 장온이 주신을 앞세웠다가 너무 성급해서 대부분의 군사를 잃었고 이로 인해 장온 휘하의 장수들이 모두 후퇴했다고 언급한다.
삼국지 가후전에서는 강족을 토벌하기 위해 부섭과 함께 우익을 담당했으며, 공격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경비, 마등이 먼저 움직이자 주신도 움직였다. 장온에게 보고한 병사에 따르면 문책은 적장의 목과 함께 받겠다고 이야기했으며, 두번째로 강족을 공격할 때 매복에 당해 병력 반을 잃고 낙마해서 중상을 입었다.
한수의 난이 일어나자 동탁에게 보고하는 전령에 따르면 한수에게 패해 안남으로 달아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