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

周循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주유의 차남.

처음에는 흥업도위로 임명되었다가 종실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고 병사 1천 명을 인솔해 공안에 주둔했으며, 229년에 도향후로 봉해졌다가 후에 죄를 저질러 평민으로 강등되어 여릉군으로 옮겼다.

239년에는 제갈근, 보즐이 상소를 올려 특별한 대우를 받았지만 방종하고 사사로운 것에 집착해 죄를 지어 처벌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주유의 공을 생각해 주윤을 사면하면서 병사들을 돌려주고 작위를 회복시켜 기회를 달라고 했으며, 손권은 주유의 공을 생각해 주윤에게 벼슬을 줬지만 주윤은 이런 것에 기대어 주색에 빠져 방자하게 행동했다면서 고통을 받게 해 스스로의 잘못을 알게 하려는 것이라 했다.

제갈근, 보즐이 여러 차레 표를 올렸고 주연, 전종 등도 요청하자 손권이 이를 허락했지만 이 때 주윤은 병으로 사망했다.

주유의 63대 후손인 저우보촨(주백천)은 주유가 죽고 주윤이 노릉으로 귀양가면서 한동안 정신차리지 못하고 있다가 현지에서 나씨 성을 가진 원외랑의 눈에 들어 그의 사위가 되었다고 했으며, 나관중의 친구이자 주유의 후손에 해당하는 주서만 과거에 합격하고 나관중은 낙방하면서 이를 질투해 주서의 조상인 주유를 폄하한 것이라 주장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주유가 자신의 계책이 실패한 후에 제갈량의 편지를 받아보고 분노했으며, 이로 인해 병이 악화돼서 사망하자 주유의 장례를 치루게 되었고 노숙이 주유의 영구를 호송해 무호로 갔다. 손권이 영구를 맞아 울면서 제사를 지내고 후한 장례를 치러 고향에 묻게 했는데, 주유에게 아들 둘, 딸 하나가 있다는 것과 함께 손권이 후하게 대우했다고 언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