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관중

羅貫中
(1330년? ~ 1400년)

파일:Attachment/나관중/luo13.jpg

중국 산시 성(山西省)에 세워져 있는 나관중의 동상. 태어난 년도는 추정.

1 개요

원나라 말, 명나라 초의 인물. 삼국지연의의 작가로 유명하다. 본래는 자가 관중이고 휘(諱-이름)는 본(本)으로 '나본'이 본명이다. 호는 호해산인(湖海散人)

2 출생과 행적

출생지에 대해 흔히 조운이 태어난 상산이나 관우가 태어난 하동 등으로 추정하지만[1] 소설 삼국지통속연의에 보이는 북방지리에 대한 고증오류[2][3]로 미루어 볼때 남쪽 지역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일설에는 동부에 있는 산서성 여릉 출신이라고도 한다.

그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친구이자 머나먼 친척인 주서(周敍)[4]와 같이 과거를 봤는데, 주서는 합격했지만 나관중은 떨어졌다. 나관중은 다시 과거를 봤지만 또다시 떨어졌다. 이후에도 계속 과거를 봤지만 나관중은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산서성 태원 일대에서 가문의 생업인 소금장사를 하게 되었으나 나관중은 천성이 게을렀는지라 소금장사도 흐지부지 상태가 되었다. 현대의 수많은 부지런한 작가들이 오장원을 전후해서 뻗는 걸 보면 나관중이 살던 시대와 지금의 게으름은 그 척도가 다른가 보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살던 곳의 근처 찻집에 드나들면서 하루하루를 놀고먹으면서 가문의 재산을 까먹고 살고 있었다.

당시 그 찻집에서는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삼국희곡(三國戱曲)을 매일같이 공연해 나관중은 이 삼국희곡을 즐겨 들었는데,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이를 외우는 수준까지 도달해 이를 토대로 해서 삼국지연의를 집필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가문에서 쫓겨나 족보에도 나관중의 이름이 지워져 둘째 아들을 외지로 보냈다는 기록만 남았다고 하며, 연구자들은 정부에 항거한 이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인 수호전을 지은 것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의 생존 시기는 원말-명초이며 사망한 년도는 확실히 1400년. 탄생년도만 불분명할 뿐이다. 삼국지연의 이외에도 여러 작품의 저자로 추측되고 있지만, 과거에 탈락하고 한량처럼 살았다는 점 이외에는 밝혀진 바가 많지 않아서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게으르고 실력이 없어서 관직에 탈락했을 뿐이지 나관중이 관직에 오르지 못한 것은 원나라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명나라가 1368년에 건국됐는데 명나라가 건국되고 32년씩이나 지나서야 나관중이 죽었기 때문이다.

3 논란

3.1 촉 옹호/위 비판 논란

삼국지연의를 지은 것 때문에 한동안 촉빠라서 위나라와 조조를 깠다느니, 역사를 왜곡했다느니 하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적어도 당시에 살았던 선비답게, "당시까지 알려져 있는 사서적 사실"에 대해서는 어지간한 나관중까보다 나관중이 훨씬 뛰어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관중 까는 사람 중에 나관중보다 당시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5]은 아무도 없다. 나관중보다 당시 역사에 조예가 깊은 사람들은 그가 촉빠가 아니란 것을 알기 때문에 결코 나관중을 까지 않는다.

삼국지연의로 분석해 보건대 제갈량, 조운, 관우를 매우 존경하고, 당시 민간에서 인기가 있었던 장비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그것때문에 장비는 코에이 삼국지 13까지 나온 현재 총 13개 작품에서 한번도 매력 50을 넘긴적이 없다. 특히 관우의 경우에는 나관중 본인은 관우가 죽는 장면조차도 묘사하지 않을 정도로 존경했던 것 같다. 명나라대의 나관중본에서 관우는 죽지 않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늘의 부름을 받아 신이 되어 승천한다. 엘리야 청나라 시대에 모종강본이 나오면서 관우가 죽는 장면이 추가된다.

최훈은 그를 '저도의 유비빠'라고 평했지만, 모종강이야말로 유비를 거의 절대적인 이상적 유교의 군주로 표현했고, 나관중 본인은 유비가 관우를 속이는 말을 하고 장판파에서 장비를 20여기만 따라온게 장비에게 맞아죽기 싫어서라고 표현하는 등 유비 측의 단점도 표현하여 삼국에 더 균형을 주었다. 즉, 나관중은 굳이 따지자면 "영웅쟁패" 위주로 썼고, 모종강이야 말로 진정한 "숭유반조"(=촉빠위까)의 입장을 견지했다. 삼국지가 울고있네에 따르면 일본에서 "조조가 삼국제일영웅"이라고 하자, 중국 측에선 비웃은 게 일본은 나관중본이 알려지고 중국은 모종강본이 대중적이어서라고 한다.

분명 촉 장수들의 활약을 늘려 준 부분도 있지만, 시각에 따라서는 오히려 나관중을 촉까 위빠로 볼 수도 있다. 원래 엄청난 영웅이었던 유비는 전공이 전부 삭제되거나, 남의 전공으로 둔갑당했고 한술 더 떠서 유비를 상당히 위선적이고 무능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는 노신도 지적한 사실.) 제갈량 역시 처음 느껴지는 포스는 소설 쪽이 더 강할지 몰라도 소설속의 제갈량은 하나하나 따져보면 역사 속의 제갈량보다 허접하며, 유비 못지 않게 위선자에다가 권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관우안량을 참수할 때 묘사도 안량이 관우가 이야기하러 오는 줄 알고 방심했기 때문으로 나오는 등 분명 촉 장수인데도 오히려 전투 공을 허접하게 바꾸거나 없애는 일도 다반사였다. 참고로 모종강은 이 부분을 삭제해서 관우가 위엄있게 보이도록 했으며, 영웅논담때도 나관중본에서는 유비가 번개를 무서워하며 치졸한 변명을 하고 조조는 이를 보고 한심해하는데 비해 모종강본은 유비가 "번개가 치면 군자도 두려워했다 합니다."라고 하자 조조가 이를 옳게 여기는 등 유비를 더 좋게 그렸다. 심지어 모종강본에서는 조조가 관우를 시험하기 위해 유비의 부인들과 함께 지내게 했더니 관우가 밖에 서서 밤을 지내는 장면까지 추가되었고 제갈첨이 등애에게 항복할까 고민하는 장면도 삭제되었다. 한마디로 촉빠위까는 모종강과 모성산인데 엄한 나관중만 덤터기를 뒤집어 쓰는 것이다.

연의에서 조조를 많이 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나관중은 역사서에 없는 내용을 조조에게 붙여준 것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동탁을 암살하려 칠성검을 꺼냈다 튄 이야기는 정말 난데없는 나관중 창작. 원래 역사상으로 동탁에 대응하며 떠오른 이는 원소인데, 나관중이 이 시기의 원소 간지를 전부 조조에게 넘겨주는 바람에 원소는 연의에서 답이 없는 막장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관점을 민간설화에서 차용한 것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 삼국지연의의 전신인 삼국지평화에서도 조조는 그저 동탁 mk-2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게다가 연의에서는 "내가 하늘을 배반할지언정 하늘이 나를 배반하게 할 수는 없다" 같은 어느 작품에서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명대사도 나온다. 물론, 정사에도 비슷한 의미의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내가 남을 해쳤으면 해쳤지, 먼저 남에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스케일이 확연히 작은 발언이다. 나관중은 이 내용의 스케일을 키움으로서 조조를 감히 천하까지 노리는 최종보스로 만든 것이다. 거기에다가 나관중은 조조의 대표적인 악행으로 꼽히는 서주대학살관도대전 이후 원소군 포로 생매장도 통으로 삭제했으며, 그 밖의 조조의 악행도 통삭제시키거나, 스케일을 줄이거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묘사해줬다.

오나라에 대해서 말하자면, 여기손책의 일화를 보고 확인해보자. 추가로, 손책이 진등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갔다가 몇 천의 군대에게 발린 적이 2번 있는데 이것도 없앴다. 다만, 이것은 진수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확실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관중이 엄청난 양의 민간설화나 야사들을 참조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관중이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수도 있다.

손권의 경우는 간발의 차이로 이득을 본 편인데, 나관중은 연의에서 손권의 아량과 군주로서 도량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많이 추가하여 수성의 군주 이미지를 분명하게 했다. 합비에서의 추태는 실제에 비해 스케일이 작아진데다가, 그것마저 손권에 대한 손오 무장들의 충성심이 주로 묘사되었고 손권의 대표적인 치부인 이궁의 변이나 손권의 노망도 묘사하지 않아서 이미지 하락을 막아주었다. 다만, 손권의 아버지 손견의 경우 손해를 본 유명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화웅을 벤 것이다. 연의에서는 손견군이 벤 화웅을 관우가 베었다고 묘사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관우와 화웅은 평생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사실 화웅은 원래 유명한 무장도 아니고 연의에서 관우가 죽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무장이어서 이 공을 넘겨 준 걸 가지고 크게 손해 보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또 정사에서 동탁 진영은 손견을 원소, 원술, 유표와 함께 위협적인 인물로 평가했는데 연의에서는 용맹있는 장수로서만 조명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다만, 정사에서 원술의 객장이었던 손견을 당당히 독립세력으로 묘사했기에 오히려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주유가 까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오히려 중국사 4대 재상에 빠지지 않는 인간인 제갈량과 중국사에서 잠깐 나오는 장수A와 라이벌이라는 것 자체가 나관중이 오빠라는 증거이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주유의 공을 제갈량에게 일부 돌린 것을 두고 지적하자면, 애초에 정사에서 적벽대전 묘사를 보면 '주유가 유비를 도와 조조를 막았다' 급으로 서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나관중은 연의에서 적벽대전을 거의 주유 공으로 묘사했다. 한마디로 공 몇 개를 제갈량에게 넘긴 건 큰 문제가 아니다.

이처럼 나관중은 삼국의 비중을 대략 균등하게 맞춰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애당초 편향된 서술이라는 지적들은 삼국지연의는 한 개인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 남송시대까지 전해오던 삼국시대에 관한 모든 역사, 전설, 민담, 신화들이 집약된 거대한 전집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들이다.

3.2 전투 규모 논란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를 시작해서 여러 전투 규모를 실제보다 몇배나 더 부풀렸다고 욕하는 경우가 있는데, 잊지 말자. 연의는 엄연한 소설이다. 아무래도 재미를 위해서는 스케일 규모를 키우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4 여담

아무래도 장수는 전사해야 멋지다고 생각했는지 작중 죽음이 바뀐 장수가 몇 있다. 서황이 가장 잘 알려진 예이고, 태사자도 그렇게 묘사되었으며 장억의 경우도 연의에서의 죽음이 더 비장하다. 맹달의 화살을 정통으로 맞고 죽은 서황의 경우는 위나라 장군 중에도 멋지게 나온 편이다. 수호지에선 주인공들 108명 대부분을 몰살시킨 작가이니… 근데 정작 장비는 전사가 아니라 암살당한걸 그대로 적었다..

가장 대표적인 건 학소. 병에 걸려 다 죽어가면서도 병사를 지휘하며 제갈량의 군대를 막다가 사망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비장함 그 자체. 덕분에 삼국지 게임 내에서 능력치가 상승했다. 대신 수명이 줄었다.

평요지나 수호지의 저자로도 추정된다. 여담이지만 국내 삼국지 여성향 동인계에서는 삼국지, 촉빠계의 거물로 숭앙 받는다. 흠좀무.

정사에 없는 에피소드는 흔히 나관중의 창작으로 여겨지고 있으나, 대부분은 삼국지평화, 화관색전, 조만전 같은 별로 안 유명한 출전이나 민담들에서 먼저 나온 내용들이 많다. 또한, 배송지주에서 슬며시 언급된 이야기에 살을 붙여 넣거나 한 경우도 많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정말 마이너한 민담이나 책까지 찾아서 써먹은 걸 보면 나관중의 삼국지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인천 지하철의 화장실에 있는 액자에 "사고팔았던 사이는 거래가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주고받았던 사이는 그 주고받음이 끝나도 이어지는 그 무엇이 있다."가 나관중이 한 말로 나오는데, 정확한 출처는 알 수 없다.

  1. 이것은 관우나 조운에 활약에 대해 '같은 고향 출신이라서 띄워준 게 아닌가?' 하는 얘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에 내용에 대한 민담 외에도 삼국지연의 창작에 대한 민담도 많은데 이런 의문 때문에 생겼을 것이다.
  2. 대표적으로 화웅여포가 있던 호뢰관과 사수관은 실제로는 같은 관문의 다른 이름이며(후한대에는 사수관으로 불렸다) 소설에 나오는 관우의 천리행 행로는 그대로 가면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가게 된다. 다만 이와 같은 오류들은 어쩌면 무지의 결과가 아니라 의도된 각색일 수도 있다. 가령 호로관과 사수관은 중간보스 화웅과 스테이지 보스 여포를 순차적으로 등장시키기 위한 설정일 수도 있는 것.
  3. 그러나 당시 낙양은 여덟 개의 관문으로 보호 받던 지역으로(여담으로 사수관은 여기에 속하지 않았다) 낙양 동쪽에서 낙양으로 진군할 경우 사수관의 서쪽에 선문관이라는 관문이 존재했다. 즉, 낙양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
  4. 이 사람은 삼국지에 나오는 주유의 후손이라고 한다.
  5. 애초에 역사를 바탕으로 100년 가까이 되는 것을 소설로 그려내면서 그만한 고증에다 민간설화나 여러 역사책에 흩어져서 묘사된 내용까지 섭렵할 정도이니 나관중은 어지간한 학자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