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itan Revolution
English Civil War[1]
1 개요
1642년부터 1651년에 있었던 왕당파와 의회파의 3차례에 걸친 내전이다. 공화정이 수립되었을 때 청교도식 법규를 기반으로 하여 통치하였기에 청교도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의회파의 승리로 찰스 1세는 처형당했고, 찰스 2세는 추방당했다. 그리고 의회파는 올리버 크롬웰을 호국경[2]으로 삼아 영국 연방을 세웠다.
2 배경
찰스 1세는 아버지 제임스 1세의 왕권신수설을 굳게 믿고 있었다. 따라서 왕권을 수호하기 위해 1628년에 강력한 상비군을 만들려고 했다. 그 세금을 거두는 과정에서 의회가 "권리 청원"을 통해 의회의 동의 없이 국왕이 세금을 거둘 수 없다는 조항의 승인을 받아냈다. 하지만 의회는 이듬해에 강제로 해산당했다.
그러던 중에 스코틀랜드의 국왕이었던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가 영국 국교회를 신봉하게끔 강요했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장로교를 믿던 스코틀랜드가 이에 대항해 찰스 1세는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세금을 걷기 위해 의회를 다시 소집하게 되었다. 의회는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세금이 필요한 찰스 1세의 약점을 잘 이용해 오히려 국교회를 강제하는 정책을 없애버리고, 의회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법안을 만들어내고, 의회가 3년에 한 번씩은 꼭 열리게 만들었다.
이렇게 찰스 1세와 의회의 대립이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던 즈음에, 의회에서 찰스 1세가 잘못했던 것들을 국민에게 알렸다. 선빵필승 찰스 1세는 당연히 분노했고, 의회의 의원들과 지도자들을 체포하라는 칙령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의회도 그에 대비해 군대를 모았고, 1642년 여름, 청교도 혁명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의회도 국왕을 지지하는 왕당파와 의회를 지지하는 의회파로 나뉘었고, 의회파와 왕당파의 싸움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3 과정
3.1 1차 내전
1642년 여름, 찰스 1세는 외국용병들을 바탕으로 강한 군대를 내세워 내전을 시작하였다. 전쟁 초기에는 찰스 1세의 군대가 전쟁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금방 승기를 굳힐 것으로 보였지만, 올리버 크롬웰이 나타나 철기군을 이끌었다. 결국 1645년, 옥스포드는 함락된다. 이에 찰스 1세는 1645년, 스코틀랜드로 피신하지만 스코틀랜드는 40만 파운드(이적료)에 찰스 1세를 넘겨 주었다.
3.2 2차 내전
유폐되어 있던 찰스 1세가 스코틀랜드와 연합하여 내전을 일으켰으나 즉시 제압되었다.
순삭
3.3 3차 내전
찰스 1세가 처형되고, 찰스 2세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에게 몸을 의탁한다. 그 사이 잉글랜드의 왕당파들은 찰스 2세의 복위를 위하여 내전을 계속하나, 의회파에게 격파당하고 만다.
마찬가지로 순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