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장왕

초의 역대 국왕
22대 초목왕23대 초장왕24대 초공왕


중국 춘추시대초나라의 23대 군주. 춘추오패중 한 명으로 꼽히는 성군으로 평가된다.
醋醬
초장에 끝내버리는 왕이라 카더라
楚莊王
재위기간 BC 613년 ~ BC 591년.

1 재위 초기

아버지 초목왕이 급사하여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라 초기의 그 위치는 매우 불안정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대기근이라는 천재지변이 일어나더니 반란까지 발생, 수도가 함락되어 감금되었다가 다시 풀려나는 다이나믹한 재위 초기를 보낸 후 장왕은 스스로 업무를 중단하고 매일 같이 주색잡기나 즐기며 파티나 벌이는 암군으로 변한다. 이 때 명령이 "과인이 노는 거 가지고 왈가 왈부하면 죽여버린다!" 흠좀무

그리고 이런 생활이 3년이나 지속되었다. 당연히 권력을 간신들에게 농단당하며 국정이 돌아가지 않는 전형적인 암군 혹은 폭군의 테크트리를 타는 듯했다.

2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

이렇게 매일 같은 방탕의 끝에, 참다 못한 오거[1][2]라는 신하가 목숨을 걸고 돌리고 돌린 간언을 올려 속을 떠보니, 장왕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오거 : "초나라 정원에 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는데, 3년 동안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다(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3])고 합니다. 이 새는 어떤 새입니까?"

장왕 : "그 새는 날지 않았으니 일단 날면 높은 하늘까지 이를 것이고(차조불비즉이 일비충천此鳥不飛卽已 一飛沖天), 울지 않았으니 일단 울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불명즉이 일명경인不鳴卽已 一鳴驚人)." 경의 뜻은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시오.

그 뒤로 몇 달이 지나도록 장왕은 여전히 향락을 그치지 않았는데,충신 한 명 가지고는 성에 안 찬다! 오거의 친구이자 또 다른 충신인 대부 소종(蘇從)이 찾아와서 목숨을 걸고 직구를 날리니 간언을 올리자, 장왕은 비로소 잔치상을 치우고 소종과 마주 앉아 국정을 논하고는, 다음날 그동안 아부하던 간신들을 싸그리 몰아내는 숙청을 단행해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는다. 3년에 걸친 사치와 향락은, 나라가 너무나도 혼탁해 충신과 간신을 구분할 수 없자, 일부러 사치와 향락을 즐겨 옥석을 가리고자 했던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간신을 처단한 장왕은 오거와 소종에게 국정을 맡겨 패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유명한 불비불명(不飛不鳴)이라는 고사이다. 그야말로 간지폭풍의 일화. 조상들도 저 일화에서 간지폭풍을 느꼈는지, 이 일화에서 비롯된 고사성어가 상당히 많다.

  • 불비불명
    • 삼년불비
    • 삼년불비우불명三年不飛又不鳴
    • 삼년부동불비불명三年不動不飛不鳴
  • 일비충천
  • 일명경인

3 일화

대인배 오브 대인배의 한 사람으로서 절영지연 이라는 고사를 만들어 냈다 항목참조.

어전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에 신하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자 기뻐하기는 커녕 자신보다 더 나은 신하가 없으니 어찌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가겠냐며 안타까워했다는 일화도 있다.

장왕이 진(陳)나라를 정벌하기위해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신하들은 진나라는 성벽이 높고 양식이 많고 무기가 많아 작은 나라일지라도 정벌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장왕은 그 말을 듣고서는, 진(陳)나라가 그 정도로 성벽이 높고 양식이 많고 무기가 많다는 것은 백성들을 고달프게 해서 성벽을 높게 하고 양식을 빼앗고 무기를 만들게 해 백성들의 원망이 얼마나 클 것냐이라고 하며 진(陳)나라를 쉽게 정벌할 수 있다고 설득해 진(陳)나라를 정벌했다.

초나라의 재상이였던 투월초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투월초의 활솜씨는 신궁에 가까워서 전쟁 중에 장왕을 두 번이나 활로 위태롭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사이에선 초장왕이 투월초 화살에 곧 죽게 된다는 소문이 나돌게 되었다. 이 말을 들은 장왕이 초나라에 보물로 내려오는 화살이 3발이 있는데[4] 그걸 투월초가 두 발 훔쳐가 이제 두 발을 다 썼으니 두월초는 다시는 장왕의 목숨을 노릴 일이 없다며 병사들을 안심시켰다. 이런 소문을 퍼트린 한편으로 장왕은 계략을 써서 투월초의 화살을 쏘지 못하게 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일없이 투월초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여기서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기도 했다. 이 때 투월초와 대결한 사람은 양유기였는데, 양유기는 버들잎을 백 보 앞에서도 맞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장수였다. 이들은 활쏘기 시합을 제안했으며, 먼저 투월초가 세 발을 쏘자 그는 활로 막고, 몸을 옆으로 기울이고, 이빨을 화살로 물어서 투월초의 공격을 막아냈고, 양유기는 그 다음에 한 발로 투월초의 반란을 제압했다.근데 생각해보면 반란군 수장이 맞다이를 하다 죽나?그 뒤 초왕인 공왕은 양유기가 재주만 믿고 함부로 날뛰니 활을 쏘지 말라 했고, 그 뒤 그는 전쟁터에서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장왕이 아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너무나 아끼는 나머지 말에게 풀이 아닌 사람이 먹는 야채를 먹이고 비단옷을 입히며 침대에서 잠을 자게 했다. 그 뒤 말이 죽게 되자 말이 침대에서 자서그래 장왕은 슬퍼하며 말에게 관을 만들어 주려고 하였다. 신하들은 말에게 관을 만들어 준다는 사실에 대거 반대하였지만 장왕은 이말을 듣지 않고 말의 관을 준비했는데, 이때 우맹이라는 악공이 나타나서 이왕 하는 거 최고로 비싼 관에 넣어주고 무덤엔 비단으로 치장하며 국외의 국빈들까지 말의 장례식에 초청하자고 건의하였다.반어법 그러자 장왕은 우맹의 말에 뉘우치고 말의 관을 만드는 걸 취소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은 고깃국이 되어 신하들과 맛나게 나눠먹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사건을 거처서 성장시킨 국력을 바탕으로 필 땅의 싸움에서 진나라를 꺾고 중원의 패권을 장악했다.

4 춘추시대 최대 스캔들

진(陳)나라에 하어숙이라는 대신이 있었다. 하어숙의 부인인 정나라 출신인 하희는 미인으로 유명했는데 하어숙이 죽고 난 이후 하희가 정나라의 다른 사람들과 바람을 피는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진(陳)나라의 군주이였던 영공까지 하희와 스캔들이 나서 하희의 아들이였던 하징서가 진(陳)나라의 군주였던 영공을 살해해버린다.[5] 당시 맹주였던 초장왕은 신하가 왕을 죽였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진(陳)나라로 쳐들어가 하징서를 죽여버리고[6] 하희를 초나라로 데려왔다. 하지만 하희가 워낙 미인이라 초장왕이 탐을 내 첩으로 삼으려고 했지만, 신하인 무신이 하희는 남자를 망치는 여자라하면서 초장왕이 첩으로 삼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그러자 초장왕은 그 말을 들어 얼마 전에 아내를 잃은 신하에게 하희를 시집보낸다. 하지만 그도 전쟁에서 죽게 되자 하희를 고향인 정나라로 돌려보냈다. 15년 후 제나라의 사신으로 무신이 자청해서 가게 되었다. 무신이 제나라로 가던 도중 정나라에 있던 하희를 데리고 진(晉)나라로 도망가 버리는 사건이 발생[7] 이 사실을 알게된 초장왕은 무신의 가족을 몰살시켜버렸다.(좀 과하단 생각도 들긴 하지만 초장왕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지는 일..)

5 패권국을 자청하다

주나라엔 권력은 없었지만 군주국이라는 명목은 있는 나라였는데[8] 그 주나라의 사신이 오자 구정의 무게가 얼마나 나가냐고 물었다. 구정은 하나라 때 만들어진 솥으로서 왕권의 신성함을 상징[9]하는 물건인데, 그것의 무게를 물어봤다는 것은 자기가 그 솥의 주인이 되어 초나라를 패권국으로 만들겠다는 속마음의 선포나 마찬가지다.

정확히는 패권국을 넘어 주나라를 멸망시키고 초나라가 새로운 군주국이 되려고 했던 야망을 표출했던 것이고, 여기에 더해 우리 초나라는 부러진 창끝만 모아도 구정을 서너 개는 만들 수 있다면서 허울뿐인 권위 따위는 초나라의 무력 앞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간접적으로 말하는데, 이에 주나라 사신은 '주나라가 군주국인 이유는 구정 덕분이 아니라 그 권위를 하늘에서 인정받았기 때문이고, 덕이 있다면 구정은 작아도 무거운 것이다'라고 답했고, 장왕은 이를 듣고 천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버리게 된다. 고우영의 십팔사략에서는 분위기가 정 반대로 나오는데, 위의 창날 얘기를 하면서 초나라의 무력 앞에 허울뿐인 권위 따윈 아무 쓸모도 없다는 선포를 듣고 그 포스에 주나라 사신이 떼꿀멍하면서 달아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발언은 초나라가 한족이 아닌 묘족의 나라였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초나라가 주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였지만 이는 초나라가 중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지 복속했다고 보기어려운데 이는 군주의 명칭은 주나라와 같은 왕을 썻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황제란 단어 등장이전엔 천자의 공식 작위는 왕이었고 제후국들은 오등작 명칭을 사용했다. 초장왕의 발언은 단순히 초장왕의 야망이라기 보다는 초나라의 야망이었다고 추정이 가능하다.
  1. 단, 이 인물에 대해선 기록이 저마다 다르다. 사기 초세가에는 오거, 한비자에는 그냥 벼슬인 우사마라고 나오며, 여씨춘추에는 '성공 가'라고 기록되어 있다. 덤으로 소설인 열국지에서는 신무외(申無畏)라고 쓰고 있다.
  2. 이 사람의 후손으로 오자서가 있다
  3. 삼년불비三年不, 혹은 삼년부동불비불명三年不動不飛不鳴이라고 쓰기도 한다.
  4. 물론 군심동요를 막기 위한 거짓말
  5. 모여 시시덕거리며 하징서는 어디를 널 닮았네 어디는 너를 안닮았네 하며 놀고있던걸 듣게 된 하징서가 듣다듣다 못해 군주를 죽여버리고 만다.
  6. 오체분시형으로!
  7. 이때 쯤 하희의 나이가 추정으로 40대 중반 이상되었다.
  8. 초나라가 이 명목상의 군주에게 충성을 안한다는 이유로 다른 제후국들의 어그로를 끌었다.
  9. 천자가 신(왕의 조상)과 접할 때 쓰는 제사용 기구이기도 하고, 이것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청동 주조술이 하나라 또는 상나라의 왕실에 의해 철통보안을 받아온, 당시 개념으로서는 최첨단 기술이었다. 물론 초장왕의 시대에 와서는 그저 권위의 상징물이라는 가치만 남았을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