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德弘
John Choi Deok-hong
사목표어는 CARITAS ET OMNIA (사랑은 만능이다). 방패형 중앙의 횃불은 사랑의 상징이고, 횃불의 손잡이를 감고있는 세 매듭은 신·망·애 삼덕을 표시하며, 그 아래의 월계수(月桂樹)와 종려수(琮櫚樹) 두 가지는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유물사관에 대한 가톨릭의 승리를 상징한다. 사랑의 횃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있는 2개의 백합모상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주보이며, 대구 교구의 주보 성모 마리아의 표시이다. 그리고 문장의 바탕을 푸른색으로 칠한것은 온 세계를 의미한다. |
역대 천주교 대구대교구장 | |||||
5대 노기남 바오로 주교 | ← | 6대 최덕홍 요한 대주교 | → | 7대 서정길 요한 대주교 |
한국 가톨릭의 제6대 대구교구장. 세례명은 '사도 요한'이다.
1902년 6월 2일 경북 대구에서 출생. 1914년 10월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하여 사제 수업을 받은 후, 1926년 5월 29일 졸업과 함께 사제서품을 받았다.
서품 후 제주 서홍리(西洪里)[1]본당 주임신부, 1929년 6월부터 1936년 7월까지 제주본당 주임신부, 1936년 7월부터 1940년까지 성 유스티노 신학교 교수, 1940년부터 1942년까지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2] 교수, 1942년부터 1944년까지 전주교구 경리부장, 1944년부터 1948년 12월까지 목포(木浦) 본당 주임신부 등을 역임했다.
1948년 12월 대구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1월 30일 주교로 성성(成聖)된 뒤 해성병원, 효성여대[3] 등을 설립, 대구교구의 교육 · 사회복지사업을 주도하는 한편 현재의 왜관대리구에 속해 있는 왜관 · 낙산(洛山) · 성주(星州) 지역의 관할권을 성 베네딕토회에 위임하고 부산광역시를 중심으로 하는 경남대리구(천주교 부산교구의 모체)를 설정하였다.
제6대 교구장으로 임명된 최덕홍 주교의 착좌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서울교구장인 노기남 바오로 주교가 대구교구장을 겸임한 점을 고려하면, 최 주교가 실질적으로 대구교구장을 맡은 한국인 최초의 주교가 되는 것이다. 또 서울에서 교육을 받은 이전 교구장들과 달리, 최 주교는 성 유스티노 신학교 1회 입학자로 대구에서 교육받은 교구장으로 지역 실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추진 방향도 잘 잡을 수 있었다. 6.25 전쟁 때 대구교구는 당시 6개 교구 가운데 유일하게 북한군에 점령당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최 주교는 한국 천주교의 중심을 잡았다는 평을 받는다. 신부들이 군종으로 활동하도록 뒷받침해줬고 북한 지역에서 피신온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왜관에 자리 잡게 했다.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당시 최 주교의 비서 신부가 바로 후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과 추기경이 되는 김수환 스테파노 신부였다는 것이다.
1953년 주교회의 군종신부단 지도주교를 역임하고 이듬해 11월 암(癌)으로 해성병원에 입원 중, 12월 14일 선종, 대구교구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