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마리아

이 문서는 종교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이 문서가 다루는 종교, 종교인에 대한 내용은 읽는 이에 따라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잘못된 요소가 있을 수 있으므로 이 문서에 쓰여진 내용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마십시오. 편집할 시에는 문화상대주의를 기반으로 객관적으로 작성하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신중히 검토한 뒤 작성하십시오. 또한 문서의 사실에 관한 내용을 수정할 때에는 신뢰가 가능한 출처를 기입하시거나, 토론 과정을 거치신 뒤 하시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거나 비하하는 내용을 넣지 마십시오.

이 틀을 적용할 경우, 문서 최하단에 혹은 분류:종교의 하위 분류를 함께 달아 주시기 바랍니다.

성모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성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이 문서에서 그리스 문자의 라틴 문자 전사에 사용한 발음은 그리스 정교회의 것입니다.
47301a216c1e3&filename=%EC%84%B1%EB%AA%A8%EB%8B%98_%EC%9D%80%EC%B4%9D%EC%9D%98%EC%A4%91%EA%B0%9C%EC%9E%90.jpg
파리의 성모

[1]

히브리어מרים (미리암/미르얌)
그리스어Παναγία (panayia)[2] 혹은 Η Δεσποίνα (Dhespina)[3]
라틴어Sancta Maria, mater Dei
아랍어مريم العذراء
터키어Meryem ana
영어Mary, Virgin Mary, Mother Mary, Mary the mother of God, Mary the mother of Jesus, "Our Lady"
프랑스어Ste.Marie, Notre Dame

1 개요

그리스도교에서 '천사의 계시로 처녀 상태에서 잉태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고 얘기하는 인물이다. 이 처녀 잉태가 빠르쎄노옌니시스(παρθενογένεσις/parthenogenesis, 처녀+생성, 코이네: 파르테노게네시스)로, 아래의 타나크의 구절을 끌어다 왔다.

다윗 왕실은 들어라.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도 성가시게 하려는가?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이사야서 7장 13~14절 (공동번역성서)

이 구절의 '처녀'를 단지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은 위의 처녀가 히브리어로 Almah라는 단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인데, 이는 일반적으로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단어이고, 처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Betulah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현재까지도 논란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가톨릭정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교 주요 종파는 '평생 동정'을 믿을 교리로 하여 이 해석을 인정하지 않는데, 일반적인 반론은 젊은 여성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 것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므로 주님이 보여주는 징조로 볼 수 없다는 견해이다. 한편,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새로 펴낸 성경에서는 히브리어의 뜻을 살려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러자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이사야서 7장 13~14절(천주교 주교회의 성경)

논란이 되는 이사야서와는 달리 마태오 복음서에는 해당 구절을 인용하면서 그리스어Παρθενο(Virgin, 동정녀)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이사야서에서 '젊은 여자'라는 뜻으로 저 단어를 썼다 한들,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동정녀인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마태오를 비롯한 복음서들은 처음부터 그리스어권에서 그리스어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졌으며, 그래서 구약 인용도 그리스어로 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어권 유대인들[4]에게 널리 쓰이던 구약성경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제작된 70인역인데, 이 책에서 이사야서의 해당 구절을 Παρθενο(동정녀)로 번역한 것이 그대로 복음서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이미 유대교 공동체 안에서 해당 구절을 원 맥락에서 벗어나 처녀 출생의 신적인 기원을 가진 메시아 도래의 예언으로 이해하는 전통이 자리잡았음을 알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안나와 요아킴은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다고 한다. 이를 자신의 탓이라 여긴 요아킴은 기도를 위해 은둔했고, 안나는 남편의 은둔과 자식이 없는 것을 한탄하면서 하느님에게 "만일 아이를 낳게 해준다면 당신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부부는 천사의 방문을 받고 안나가 놀라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부부는 나자렛 성벽에서 기쁨의 재회를 맛보고, 그 뒤 태어난 딸이 성모 마리아라고 한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안나의 기도대로 3살 때 예루살렘의 성전에 맡겨진다. 성모 공경이 숭배 수준으로 극심해질 시기에는 성모 마리아가 안나와 요아킴이 성벽 아래에서 만났던 그 때 잉태되었다고, 즉 예수와 같이 성관계 없이 잉태되었다는 수준으로 격상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아래에 언급될 '무염시태'와 연관된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가 아랍계 여성의 이름에 많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국가들에서 여성 이름으로 많이 사용된다. 구약에 나오는 '미리암'의 변형으로서 친족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짓는 유대 지방의 풍습 때문에 많이 사용되는 이름이다. 복음서에 해당 이름을 가진 사람만 3명이다. 영어권에서 자주 쓰이는 이름인 Mary(마리, 메리) 같은 건 모두 여기서 나온 이름이다.

반대로 예수는 당시에는 흔한 이름이었지만, 비록 이름일 뿐이긴 하나 하느님과 맞먹는 셈이 되기 때문인지 중세를 거치면서 서유럽그리스도교 문화권에서는 인명으로 사용되는 빈도가 줄어든 편이다. 다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서, 스페인어권과 중동 그리스도교권 등에서는 여전히 Jesús(헤수스)라는 이름이 흔하게 쓰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스페인의 축구선수 헤수스 나바스.

성모 마리아와 비슷하게 학계에서 유명한 마리아는 창녀[5] 혹은 과부로 추정되는 인물로 예수를 만나 회개했고 간혹 예수의 아내였다는 개드립이 있는 마리아 막달레나, 예수가 기적을 일으켜 부활한 라자로의 누이이자 예수의 수난 전 그의 발에 나르드 향유를 바르는 등 극진히 대접했던 마리아 베타니아 등이 있다. 특히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의 유일한 여제자였단 말도 있지만, 이는 소위 위경에 적힌 것으로 보통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당시에도 마리아는 많이 쓰는 이름이라서 성모 마리아나 다른 마리아들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에서는 신앙의 대상인 성부, 성자, 성령를 제외하면 성인 중에서 가장 우선 가는 이로서, 불후의 2인자로 자리매김한다. 그야말로 하느님의 한 위격의 현세적 어머니다운 대접이다.

한국 가톨릭에서는 남편인 성 요셉과 함께 대한민국수호성인, 정확히 말하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의 호칭[6]으로서의 수호성인이다. 여러가지 성모 마리아를 지칭하는 호칭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것이며, 한국 가톨릭의 중심지인 명동성당의 주보성인이기도 하다. 순결과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정서에 딱 맞는 수호성인들. 광복절과 성모승천일이 겹치는 것을 한국 가톨릭에서는 의미있는 것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2 성모 공경

2.1 초대 교회

성모 공경은 1세기 이전 초대교회에는 언급이 되지 않다가 2세기경 부터 본격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7] 천사의 인사가 마리아 공경의 역사적 기원이다. 이것은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고려되어져야 한다. 하느님의 파견자인 천사가 나자렛 처녀에게 보여준 존경과 영광의 태도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는가? 천사는 하느님이 그녀에게 행하였던 것과 그녀에게 주어진 성소 때문에 존경하고 영광을 드린다. 또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을 때 그녀는 마리아를 보자마자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공경을 드린다.

2세기에 유행했던 위경인 <야고보의 유아 복음서>에는 성모 마리아의 출생, 성장, 수태 등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리옹의 주교였던 성 이레네오는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 하와(이브)의 안티테제로서 성모 마리아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브의 불순종을 동정녀의 순종(Fiat voluntas tua)으로 말소하고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 동정녀는 여성의 대변자가 된다.

성모 공경은 5세기 초 신학적 논쟁에 휩싸인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안티오키아 학파의 거두 네스토리우스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치릴로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마리아론을 주요 쟁점으로 삼았다. 이 논쟁은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시작되었다. 성모 공경에 대해서는 두 신학자들 간에 이견이 없었으나, 그녀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가 문제였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취임했던 네스토리우스는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육체만을 낳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 반발하여 치릴로가 이끌고 있던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동정녀가 하느님을 낳았다"는 기존의 견해를 고수하였다.

이렇게 전개된 논쟁에서, 우선 민간을 포함하여 당시 그리스도교 사회에 두루 성모 공경 신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 논쟁은 마리아론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론이다. 인간이자 동정녀인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았다는 명제를 예수의 입장에서 풀면, 예수는 참 하느님이면서 참 인간(마리아의 아들)이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모두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스토리우스는 이러한 명제가 마리아에게 신성을 부여하고,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인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서 이를 막고자 동정녀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육체만을 낳았다고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네스토리우스의 의도 자체는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도 결코 이단이 아니다. 그러나 논쟁이 계속되면서 네스토리우스는 전체 교회의 뜻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통합적으로 보는 사유를 거부하고 둘을 분리시키려고 했다.

2.2 5세기

431년에 개최된 에페소 공의회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주장이 신학적 정당성을 얻고 공식 교리로 채택되었다. 여기서 그리스도교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을 낳은 자', 그리스어로는 테오토코스(Θεοτόκος/Theotokos[8])임을 선언했다. 패배한 네스토리우스는 면직되고 파문된 후 페르시아로 망명하였다. 이후 성모 공경은 거침없이 확산되어,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사랑받는 성인에 이르게 되고, 후대에 이르면 교회에서 그리스도 다음가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9]

2.3 중세 시대

중세를 지나면서, 특히 유럽흑사병이 돌았을 때 이를 주의 징벌로 해석하면서 더욱 강해지면서, 신자들이 받아들인 마리아의 이미지는 하느님의 분노를 누그러트리는, 자애로운 성모.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엄격한 심판자로, 마리아를 자비로운 어머니로 이해하였고, 성모 마리아는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기 보다는 기적적인 도움을 청하는 기도의 대상으로 국한되게 되었다. 중세 후기에 마리아에 관한 많은 작품들은 외경을 근거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과장되고 잘못된 마리아 신심을 바로잡으려는 신학자들의 노력도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서 대 알베르토는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보다 최고의 공경을 받아야 하지만 하느님께 드리는 흠숭을 받을 수는 없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많은 작가들이 잊고 있었던 마리아와 그리스도 사이의 무한한 차이를 항상 주지시켰다. 그는 물론 마리아의 중개성을 인정하지만, 그 중개는 항상 간접적인 것임을 일깨워 주었다.

"어머니의 영예는 왕의 영예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으로 말미암아 다른 성질을 지니시는 것이므로 마리아는 신적 영예를 요구하지 못한다. 그분의 아드님은 그의 신성을 그 어머니로부터 받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2.4 19세기

1800년대에 들어오면서 성모 마리아가 발현하여 하느님의 사적 계시를 전해주었다는 보고가 잇달아 교황청에 접수되었고 마리아 신심을 더욱 확장시켰다. 지금까지 성모 발현에 대한 수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교회 교도권이 그 진실성을 인정한 성모 발현은 다음의 10번이다. 멕시코의 과달루페(1531년), 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1830년), 프랑스의 라 살레트(1846년) , 프랑스의 루르드(1858년), 프랑스의 퐁멩(1871년), 아일랜드 공화국의 녹(1879년), 포르투갈의 파티마(1917년), 벨기에의 보랭(1932년), 벨기에의 바뇌(1933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1945년).

이 외에 미국의 베이사이드나 나주의 성모 발현, 스페인의 가라반달은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다. 나주 성모동산의 경우 관할 교구인 광주대교구 당시 교구장 최창무 대주교가 나주 성모동산이 더 이상 가톨릭교회와 일치 화합할 의사가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교령을 2008년 1월 반포하였다.

한편 메주고리예의 성모 발현은 아직 조사 중에 있어서 최종 결정이 유보된 상태다.

2.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로 인하여 성모 신심에 대한 중용을 찾게 되고, 성모 마리아는 '교회와 신자들의 모범인 성모'라는 이미지로 제자리를 찾고 그에 맞는 자리를 잡게 된다. 바티칸 제2차 공의회 문헌 교의 헌장 부분의 제8장,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 부분에 잘 나와 있다. 분명히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는 구별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으며, 성모로서 그 어떤 성인보다 공경하는 것[10]뿐이지 절대로 숭배가 아니라는 것이 가톨릭의 입장이다. 엘리사벳이 말했듯, 최고로 복되신 여인이며, 역사에 그녀보다 더 아름답고 능력있는 여인들이 많을지 몰라도, 성모 마리아만큼 복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

가톨릭의 평신도 사도직 단체 중에는 성모 마리아를 총사령관으로 한 군대를 모토로 한 레지오 마리애가 있다. 여기서 쓰는 성모상은 뱀을 발로 밟고 있는 뤼뒤박의 무염시태 성모상이다.

터키의 에페스(Efes)라는 조그만 시골마을 근처에 위치한 뷜뷜 산(Bülbül dağı)에는 성모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는 집의 유적이 있다. 한 수녀가 환시를 통해 성모님의 집을 찾았는데, 우연히 닿은 그곳이 환시에서 본 집과 주변 상황과 놀라울 정도로 똑같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성지로 공인된 곳이다. 무슬림터키인들은 이 집을 찾아와서 소원(!)을 빌고 가는데, 종이에 소원을 적은 다음 성모의 집 주변의 나무에 매달아놓는다. 또한 성모의 집 근처에 있는 우물의 물은 영험한 치유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국 가톨릭 신자들도 많이들 떠나는 성지순례 여행패키지에도 파트모스 섬과 함께 반드시 들어가는 곳.

2.6 한국 천주교회와 성모 마리아

한국 천주교는 교회 형성 시기부터 성모 공경을 통한 마리아 신심 운동을 활발히 펼쳐오고 있다. 신자들은 「천주실의」 「성경직해광익」 「주교요지」 등 서학서를 통해 마리아에 대한 이해를 키웠고 묵주기도를 통해 성모 신심을 함양했다. 박해시대 관헌에 체포된 신자들은 모진 고문에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신앙을 증거했고, 순교 직전까지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의 성모신심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입국하면서 더욱 확산됐다. 조선대목구는 놀랍게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서 탄생했다. 유럽에서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이 성당에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조선대목구 설정을 반포한 것이다.

조선 땅에 입국한 선교사들은 당시 프랑스에서 널리 확산되고 있던 성모 신심, 특히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께 대한 신심과 전통을 한국에 그대로 옮겨놓았다. 주교로서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신자들의 성모신심을 칭송해 1838년 교황청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회 수호성인으로 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년 8월 22일 이를 허락했다.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는 1846년 11월 2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원죄없으신 성모 성심회'를 설립, 신자들의 성모신심 운동을 체계화ㆍ조직화했다. 한국 천주교 마리아 신심 단체의 효시인 성모성심회 회원들은 매주 정기 모임에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를 많이 바쳤다.

제6대 조선교구장 펠릭스 클레르 리델 주교는 1877년 재입국한 후, 중국의 예수회 선교사 이탁이 저술한 「성모성월」을 한글 번역본으로 간행해 유포함으로써 성모 공경을 더욱 신장시켰다. 한글 번역본 「성모성월」의 내용은 서문에서 성모성월에 대한 해설과 1822년 비오 7세 교황이 공포한 ‘성모 성월 및 성모 공경에 관한 대사문’이 수록되어 있고, 본문에는 5월의 ‘성모 성월’이 시작되기 하루 전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총 32일 분량의 묵상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각 날은 그날의 주제에 대한 설명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기도에 이어 덕행 실천, 기도 지향, 성인 행적의 예로 구성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성모 성월을 정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성모 마리아님을 예로써 공경하는 달을 정한 첫 번째 이유는 성모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평생토록 주시는 온갖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이다.……성모성월을 정한 2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주의 성총이며, 이는 잠시라도 멀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악을 고치고 선을 행하여 선종하는 것은 모두 천주 성총의 도우심 때문이니,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또 성모님의 인자하심에 의뢰하지 않고 이 성총을 얻는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할 대 어찌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님께 기도하는 데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3번째 이유는 성모 성월이 성모님을 특별히 열애하고 공경하는 거룩한 때와 가르침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한국 천주교는 1898년 명동성당을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했다. 우리 민족이 해방된 8월 15일은 바로 성모승천대축일이었는데, 한국 천주교는 민족의 해방을 성모 마리아의 선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신자들 사이에 성모 신심은 더 확산됐는데 특히 반공 이데올로기와 맞물려 공산주의자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는 파티마의 성모 신심이 급속도로 퍼졌다. 1950년 전후로 레지오 마리애, 파티마의 성모 사도직(푸른군대), 성모 기사회 등 성모신심 운동 및 사도직 활동이 도입됐고,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 교리 선포 100주년이 되던 1954년 한국 주교단은 성모 성년 대회를 개최하고 다시 한 번 한국 가톨릭교회를 성모 마리아께 공식적으로 봉헌했다.

아울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4년 5월 6일 명동성당에서 한반도와 한국 천주교회를 마리아에게 봉헌했다. 한국 천주교회는 또 대구대교구 성모당, 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순례지, 수원교구 남양 성모성지 등 성모 순례지를 지정, 신자들의 건전한 성모신심을 함양시키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처럼 성모 마리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3 가톨릭과 정교회의 성모 교리

가톨릭 및 정교회의 성모 공경은 크게 성모 마리아에 대한 4대 교리로 정리된다.

성모 교리가톨릭정교회
천주모친/하느님의 어머니Θεοτόκος(Theotokos), Deipara인정인정
성모 평생동정Αέιπαρθενος(Aiparthenos)인정인정
성모 무염시태 (원죄 없이 잉태되심)Immaculata Conceptio,
Παναγία(Panayia), Άχραντος(Ahrandos)
인정[11]인정하지 않음
(무염태를 인정)
다른 종파는 물론이고 가톨릭 내에서도 오랫동안 갑론을박이 오고갔었는데, 성 베르나데트 수비루가 겪은 성모 발현 사건을 통해 교리로 인정되었다.
성모 몽소승천 (하늘로 들어올림 받으심)Assumptio인정[12]전승 차원에서 인정
절대 '몸소승천'이 아니다! 몽소승천은 한자로 蒙召昇天라고 쓰는데, 이를 우리말로 풀면 '부르심을 받아 하늘에 올라갔다'는 뜻이 된다.[13]. 여기서의 승천은 에녹과 엘리야의 승천과 같은 경우이고, 예수의 승천은 스스로 올라갔다 하여 'Ascensio'라는 단어를 따로 쓴다.

성모 공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기도문이나 미사통상문에서도 언급되는 교리이며, 신자로서 반드시 믿어야만 하는 교리이다. 특히 무염시태 교리와 몽소승천 교리는 교회와 교황의 무류성에 근거하여 선포된 교리이기도 하다.

정교회의 성모 교리 역시 가톨릭과 비슷한 맥락이지만, 무염시태와 몽소승천에 대한 가르침이 다르다. 우선 정교회에서는 "처음에는 성모 마리아도 다른 인간들처럼 원죄가 있었지만,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모영보(聖母領報, Annunciatio)[14]'를 받은 시점에서 원죄가 사라졌다"는 '무염태'를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또한 하늘로 들어올려졌다는 몽소승천 역시 직접적으로 승천을 교리로 가르치지는 않으며, 단지 나중에 사도들이 성모 마리아의 무덤을 열어보니 비어 있었다는 '성모 안식(Dormitio)'을 교리로 채택하고 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교리가 아닌 '전승'의 차원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8월 15일이 가톨릭에서는 성모승천대축일이지만 정교회에서는 성모안식기념일이다.

정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의 임종 때 열한 제자들이 자리를 지켰는데, 3일 후 늦게 도착한 성 토마스 사도가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천하는 성모를 목격하고 성모의 허리띠를 받았다고 한다. 이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 사도는 다른 열한 사도를 불러 이들이 성모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켰다고 하는데, 복음서에서 예수 부활을 기록한 내용과 강한 유사성이 나타난다. 반면 가톨릭의 전승에서는 성모의 시신이 그대로 천사들에 의해 들어올려져 하늘로 올라가 영혼과 다시 결합되었다는 것과, 부활 후 천국에 들어올림을 받았다는 것의 2가지 전승이 공존한다. 교황 비오 12세가 성모 승천을 정식 교리로 확정할 당시의 교령은, 이 둘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애매한 면이 있다.

교의의 근거[편집]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비록 공식적인 의견 표명은 아니었지만, 요한 복음서 14장 3절을 성모 승천에 대한 교의적 근거로 인용하였다. 성모 승천 교의 역사의 끝자락에서 큰 역할을 차지하는 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을 통해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거룩한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모든 입증과 확신은 거룩한 전승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성모 승천설은 수세기 전부터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공연히 믿어져 오던 전승이었다. 비록 성경에 직접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초대 교회부터 내려오는 믿을 만한 교회의 전승으로 여겨져 왔으며, 또한 구세사(救世史)에 있어서 마리아의 역할, 마리아와 그리스도의 관계, 교회 안에서의 마리아의 위치 등에 의해 받아들여진 것이다.

우선 마리아 이전에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이미 승천, 즉 육신과 영혼이 하늘나라로 들어 올림을 받은 사례가 있다.

1. 엘리야

주님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실어 하늘로 들어 올리실 때였다. …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 말이 나타나서 그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엘리사는 그 광경을 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이시며 기병이시여!” (2열왕 2,1-5)
2. 에녹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에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받았습니다. (히브 11,5)
모세 역시 사후에 그의 주검이 하늘로 들어 올려진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미카엘 대천사도 모세의 주검을 놓고 악마와 다투며 논쟁할 때, 감히 모독적인 판단을 내놓지 않고, “주님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바란다.”하고 말하였을 뿐입니다. (유다 1,9)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례를 봤을 때, 마리아 역시 그러한 들어올림의 대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그렇게 큰 무리라고 볼 수는 없다.

가톨릭교회에서는 마리아의 육신과 영혼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다고 가르치고 있다. 마리아에게 죄가 없다면(원죄 없는 잉태), 죽음이 그녀를 구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자신의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며 지냈다.[5]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여 낳았으며, 그를 양육하였으며, 십자가 밑에서 그의 수난과 죽음을 지켜보며 곁을 지켜주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자기 어머니인 마리아를 각별히 여겨 그녀의 육신이 땅 속에 묻혀 의미없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에녹과 엘리야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 어머니의 육신도 하늘나라로 들어 올렸을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우리 그분 거처로 들어가 그분의 발판 앞에 엎드리세.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라는 내용의 시편 132장 7-8절이 이미 성모 승천이 예정된 일이었다고 보고 있다.

마리아는 새로운 계약 궤이다.[6] 다윗 왕이 예루살렘 백성들을 이끌고 피난처로 이끌었듯이, 그리스도 역시 하늘로 승천하여 자신의 거처로 백성들을 이끈다.


루벤스가 그린 성모 승천
요한 묵시록 12장을 보면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등장한다. 이 여인은 쇠 지팡이로 모든 민족을 다스릴 사내아이를 출산하였다.

교회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예수가 묵시록에 나오는 이 사내아이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은 다름 아닌 동정 마리아를 뜻한다고 결론내릴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수세기에 걸쳐 발생한 성모 마리아의 발현, 즉 가르멜 산의 성모, 과달루페의 성모, 뤼뒤박의 성모, 파티마의 성모 등을 살펴보면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태양 내지는 발밑에 달을 두고 있다는 점, 머리에 열두 개의 별로 된 관을 썼다는 점 등 묵시록에서 언급된 여인의 모습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점이다.

요한 묵시록 12장에서 여인이 낳은 사내아이는 하느님에게로, 그의 어좌로 들어 올려졌다고 나온다. 여기서 들어 올려져 하느님에게로 갔다는 뜻은 십자가상에서 죽은 예수가 부활하여 하늘에 올라 성부의 오른편에 앉아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내아이가 하늘로 올라가자 용(사탄)은 그 사내아이를 낳은 여인을 쫓아갔다.(묵시 12,13) 그러나 그 여인에게 큰 독수리의 두 날개가 주어졌다. 그리하여 그 여인은 광야에 있는 자기 처소로 날아가, 그 뱀을 피하여 그곳에서 일 년과 이 년과 반 년 동안 보살핌을 받았다.(묵시 12,14)

여기서 ‘큰 독수리의 두 날개’라는 말을 “독수리가 보금자리를 휘저으며 새끼들 위를 맴돌다가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들어 올려 깃털 위에 얹어 나르듯….”이라는 내용의 신명기 32장 11절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볼 때, 독수리는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이며 두 날개는 하느님의 두 천사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고 자기 처소로 날아가 뱀을 피하여 피신했다는 구절은 곧 성모 마리아가 천사들에 의해서 하늘나라에 들어 올려졌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교부들은 창세기를 검토하면서 성모 승천을 확신하였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동정 마리아는 아들 예수의 인류 구원 사업에서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들의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공동 운명임을 알 수 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창세 3,15)
여기서 볼 수 있듯이 사탄과 마리아 사이에, 타락한 천사들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적개심이 형성되리라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 결정되었다. 개신교인들은 이런 풍유적 해석을 볼 때마다 참 쇼킹하다. 부정적인 의미로.

성모 승천 교의를 입증하는 모든 논리 가운데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로는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완전한 궁전이 되기 위해서는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어야 한다는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다. 8세기의 교부 성 제르마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동정 마리아가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잉태된 순간 받게 되는 육신과 정신 그리고 영혼의 세 요소가 태중에서부터 이미 완전무결해져야만 한다. 마리아는 하느님에 의해 제2의 하와로서, 즉 티 없이 깨끗한 상태로 창조되어야만 했다. 그녀의 정신과 영혼 그리고 육신은 원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야만 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하느님의 뜻에 불복종했을 때, 하느님에게서 받은 자신의 영원한 생명을 상실해 버렸다. 그리고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영혼과 정신 그리고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고 교회의 세례를 통해서만 새로운 마음과 영혼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구원의 희망을 꿈꿀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로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성경이나 교회의 전승 그 어디에서도 마리아가 여느 인간처럼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마리아가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이미 새로운 몸과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녀는 원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 세례를 받을 필요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마리아는 원죄에 전혀 물듦 없이 잉태되도록 하느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었다. (원죄 없는 잉태) [15]

마리아가 여느 인간처럼 단순히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합으로서만 생겨난 자손이었다면, 마리아는 의심의 여지없이 그녀의 부모로부터 원죄를 물려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경우는 달랐다. 하느님은 특별히 손을 써서 마리아가 태중에 잉태될 때 미리 그녀를 원죄로부터 차단하여 그녀가 티 없이 깨끗한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마리아는 원죄 없는 여인이 됨으로써 주의 어머니가 될 자격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예수가 태중에 잉태될 때 원죄의 모든 흔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육신과 정신,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 온전히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지지하는 성경상의 증거는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하와가 죄를 범한 후 그녀에게 한 말에서 엿볼 수 있다. 하느님은 하와에게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창세 3,16)라고 예고하였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원죄를 물려받지 않고 흠 없는 상태에서 예수를 낳을 때는 원죄의 산물로 나타나는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논리적인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성경에도 고통 없이 아이를 출산하는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진통을 겪기 전에 해산하고 산고가 오기 전에 사내아이(예수)를 출산한다. 누가 이런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누가 이런 일을 본 적이 있느냐? 한 나라(하느님의 나라)가 단 한 번 만에 태어날 수 있느냐? 한 민족이 단 한 번 만에 태어날 수 있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이 오자마자 자식들을 낳는다.” (이사 66,7-8)
위에서 언급한 논리로 볼 때 마리아의 육신은 여느 인간처럼 땅속에 묻혀 의미없이 소멸될 수 없으며 살아있는 상태에서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거나 죽은 상태에서 부활하여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졌다는 신학적 논리로 도출된다. 이 두 가지 논리 가운데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교회는 유보적인 상태다. 어쨌든 새로운 하와이자 세상의 어머니로서 티 없이 깨끗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육신과 정신, 영혼은 때가 되자 하늘나라로 들어 올려져 영광스러운 빛의 존재로 변화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보통 인간은 지금의 육신은 결국 소멸하며, 소멸하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갖기 위해서는 최후의 심판 날이 도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7] 그렇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창세기, 이사야서, 요한 묵시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성경 구절을 전부 종합해 보면 동정 마리아의 몽소승천 교의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16]

4 예수의 형제?

성경에는 예수의 형제로 야고보, 유다 등이 있다는 언급이 나오고, 이것을 가지고 지금도 논쟁 중이다.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성모는 영원한 동정녀라고 보기 때문에, 예수의 형제들은 유대의 관습에 따라 친척들을 그렇게 부른 것이라고 본다.

마리아의 배우자인 요셉도 평생 동정을 지켰다는 전승이 가톨릭 전승이 있으나 , 이것은 도그마가 아니다. 즉 믿든 말든 상관없다는 것. 정교회에서는, 복음서에 언급된 예수의 형제들은 요셉의 전처가 낳은 자식이라는, 즉 마리아는 요셉의 후처라는 것. 정교회 전승대로라면 마리아와 요셉의 나이 차이는 상당했을 것이다.[17]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했다는 내용은 신약 위경<야고보 복음서>에도 기록된 내용인데, 여기에 따르면 요셉은 마리아와 재혼할 당시 이미 나이가 80이었고, 이미 사별한 전처와의 사이에서 야고보, 유다, 시몬, 미리암 등의 자식이 있었으며, 그 중 야고보가 이 야고보 복음서를 저술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복음은 어느 종교에서도 정식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위경이며, 정교회가 요셉이 마리아와 재혼했다는 전승을 받아들였다는 사실과는 별개이다.

반면 개신교에서는 성모를 평범한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예수의 형제들은 당연히 예수를 낳은 후 요셉과 마리아가 동침해서 낳은 자식으로 보고 있다. 당시 유대인들은 12세에 성년의식을 치르고 역시 10대에 조혼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도 마리아와 재혼한 것이 아니라 초혼으로 보고 있고, 그래서 개신교 교리에 따라 만든 영화 등 창작물에서는 요셉도 20대의 팔팔한 청년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신교에서 예수의 형제들을 사촌이 아니라 형제로 보는 이유는 그리스어 성경[18]에 친형제를 의미하는 단어 아델포스(αδελφός)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아람어 표현을 그리스어로 번역하다 보니, 친척에서 형제로 의미가 변질됐다는 근거가 없다고 보기에 친형제로 본다.

복음서에는 예수의 형제들을 요셉의 아들들이나 마리아의 아들들로 확정해서 말하는 대목이 없든지 말든지 예수의 형제이라는 기록만 있을 뿐이니 당연히 형제로 본다.[19] 따라서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을 가리키는 형제들이라는 단어가 사촌 또는 육촌의 혈육이라고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요한 복음서 19장 26-27절을 보면 예수는 죽기 전에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부탁하는데 , 이는 예수의 형제들이 그 당시엔 예수를 배척했고[20] 오직 요한만이 예수의 임종을 지키고, 그를 매우 따랐기 때문에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형제가 예수를 배척했기 때문에 사도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했다는 주장은 성서에 마리아와 요셉의 자식들에 대해서 분명치 않기 때문에 해석상 다른 의견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당시 여러 형제가 있는 중에 첫째 아들이 죽었을 경우, 그 어머니는 당연히 둘째 아들이 모셔야 했으며 그러니 다른 형제가 없었다는게 천주교의 주장.그런데. 개신교에서는 성경에는 천주교에서 주장하는 평생동정, 요셉의 전처 자식들에 대한 설명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역시 문헌상 불분명확한걸 확장 유추 해석하는것이라 비판한다. 만약 요셉의 전처 사이의 아들들이 많아 형제가 많은데 막내아들 예수가 죽으면 맏형 둘째형들은 아버지의 후처를 보살피는게 당연하지 사촌에게 맡기는건 그당시 풍습을 아무리 합리화 해봤자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사족으로 예수 옆에 서있던 사람들에 대한 언급을 비교해보면
마태복음 27장 56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마가복음 15장 40절: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요한복음 19장 25절: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이모글로바의 아내 마리아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저 구절들을 문자 그대로 비교해보면 천주교가 말하는 사촌형제설이라는 주장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일단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라는 언급이 있기 때문에 친동생 야고보가 사실은 글로바(알패오)의 아들과 동일인물이라고 보지도 않으며, 십자가 옆에 정확히 몇 명이나 서 있었는지 정확히 언급이 없다. 때문에 누가 누군지 정확히 짐작하기 힘들다. 4명만 있었다고 가정하고 저 구절에 나오는 인물을 일일히 대응해보면, 이모, 살로메, 세배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란 구절로 인해, 살로메가 예수님의 이모였고,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이종사촌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개신교에선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 교리는 초대 교회의 전승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맞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부정한다.


천주교에선, 아델포스와 아델페가 일반적으로 친형제와 친누이를 가리키는 건 맞으나 반드시 친혈육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본다.
예를 들면, 마태오 복음 5장 22~24절에서 말하는 형제가 친형제만을 의미한다고 보면, 문맥상 이상하다. 앞뒤 구절에서 결국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보편적인 교리를 말하는 예수가, '친형제' 에게만 화내지 말고, 욕하지 말라는 말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는 이웃에게도 화내지 말고 욕하지 말라는 의도로 말했고, 따라서 해당 구절의 아델포스는 이웃을 친형제처럼 여기라는 뜻에서 썼다고 본다.

또한 마르코 복음 3장 34~35절에선 예수를 중심으로 맺어진 영적 가족 관계 안에서의 형제 자매를 표현하기 위해 아델포스를 사용했고, 마르코 복음 6장 17~18절에서는 이복 형제를 뜻한다. 그리고 창세기 29장 12절에서는 '형제'나 '친척'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아히'를 '아델포스'로 번역했다.
물론 신약은 그리스어로 씌어졌다. 그런데 구약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쓰여졌고, 유대인들은 아람어를 아람 문자가 아닌 히브리어 문자로 써서 문법과 발음 면에서 정통 아람어와 차이가 있는, 일종의 히브리화 된 아람어를 사용했다.
즉, 유대인의 아람어는 히브리어와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고, 예수가 그리스어가 아닌 아람어로 말한 걸 볼 때, 아람어로 형제나 친척을 뜻하는 말이 그리스어 '아델포스'로 쓰였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여긴다.
결국 '친형제'만을 가리키는 뜻으로 엄밀하게 아델포스가 쓰인 건 아니라 주장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라는 구절이 나온다. 따라서 예수의 형제들이라는 사람들이 한때는 몰라도 끝까지 예수를 배척했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요한이 대타로 마리아를 보살폈다는 개신교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에서 예수의 친형제들이라고 주장하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등은 성모 마리아가 아닌 동명이인인 다른 여인의 아들들로 본다. 한 위키러가 개신교와 마찮가지로 예수의 십자가 곁에 서 있던 이들이 누구였는가를 예로 들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마태 27,56)라고 했고,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했다.
이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아님은 요한 복음서를 보면 알 수 있다(요한 19,25).
그러므로 십자가 곁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셋이나 있었던 것이다.
즉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와 클로파스(알패오라고도 불리는 사람이다)의 아내 마리아이다.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마태 27,56)라고 했고,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라고 했다.
이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아님은 요한 복음서를 보면 알 수 있다(요한 19,25).
그러므로 십자가 곁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셋이나 있었던 것이다.
즉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와 클로파스(알패오라고도 불리는 사람이다)의 아내 마리아이다.

그런데 천주교에서는 개신교에서 예수의 친동생이라고 내세우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이다(마태 10,3). 그리고 타대오는 야고보의 아우이다(루카 6,16). 즉, 이 ‘야고보 형제’의 아버지는 요셉이 아닌 알패오라는 것을 이라 보며, 그들의 어머니는 그 알패오(클로파스)의 아내인 마리아라고 본다.
따라서 마리아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여동생이므로(요한 19,25),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예수의 친형제들이라는 사람은 예수의 사촌형제라고 보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한다 고 여긴다.

그리고 가톨릭과 정교회는 개신교의 '오직 성경으로'와는 달리, 교회사 전승의 권위도 인정한다. 따라서 초대 보편 교회에서 발생하고 교부들에게 인정받은 평생동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도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그들의 제자이자 후계자들인 초대 교회의 교부들은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옹호했다. 4세기 초엽 알렉산드리아의 베드로(Petrus von Alexandreia, †311)는 마리아에게 이 칭호를 부여하였다. 서방교회의 암브로시오(Ambrosius,†397)와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354-430), 동방교회의 요한 크리소스토모스와 시리아의 에프렘(Ephram?,†373)은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을 관철시킨 대표적인 교부들이었다. 특히 아우구스티노, 베드로 크리솔로고 등의 교부들에게서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이 삼중형식으로 고백되고 있다. 이후 교부들의 이론들은 교회 안에서 자연스럽게 수용되었고 마침내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를 통해 확증되었다. 라테란 공의회(649)는 이 입장을 재천명하였고, 2차 바티칸 공의회 역시 이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교회헌장 52항, 57항).

5 개신교의 관점

상술했듯 성모 관련 교리는 원래 성경에 언급이 거의 없고, 나중에 만들어진 전통이기 때문에 종교개혁가들은 연옥 교리처럼 없애버려야 할 것으로 보았다.

마르틴 루터의 경우도 개혁운동 초기에는 '탁상담화'라는 저서를 통해 성인숭배와 성유물, 성상을 없애는 것을 긍정했다. 다만 안드레아스 칼슈타트나 츠빙글리, 재세례파 등 자신보다 더 과격하게 개혁하려는 사람들과 의견이 충돌하는 과정도 있었고, 믿음이 약한 형제들과 기존 관습에 물든 사람들에게는 유용하니[21] 도끼나 망치로 작살내는것은 부적당하다고 본것일뿐이다.[22] 루터는 기존 가톨릭 교회 관습인 성모공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이들이 성모마리아를 부르며 그녀를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경배한다.

이렇게 해서 성모마리아는 그녀의 의도와 상관없이 일종의 혐오스러운 우상이 되어버리고 만것이다.[23]

당연히 그런고로 루터는 말그대로의 인간으로써의 공경만 할 뿐 기존 가톨릭 관습에 대해선 숭배라며 못마땅하게 보았다. 루터는 '몽소승천도 성경에 근거가 없다 하여 부정했다.이는 장 칼뱅의 개혁주의에도 이어져서 현재 개신교에선 마리아에 대해 "예수의 육체의 모친"이라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에 당연히 반발한다.[24]

루터나 칼뱅이 처음에는 성모공경을 인정했다는 잘못된 오해가 있는데 95개조 반박문은 루터의 신학 핵심인 이신칭의를 강조하려고 보속과 사면이라는 기존 가톨릭 교리와 면죄부 효력, 교황의 대사 권한에 대한 토론이지 성모 공경은 매우 부차적인 문제이기에 당연히 다루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신학이론상 토론 제의지 가톨릭 교회의 모든 문제점을 95개조로 들어서 비판한게 아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면죄부와 연관되서 성유물 숭배[25] 를 비판하며 성인 숭배까지 역시 나아가 비판했기 때문에 가톨릭 신자들이 잘 못 알고 있는 내용.[26] 95개조 반박문 75번 항목을 들어 가톨릭과 같은 마리아공경을 주장했다는 허황된 지식이 있는데 마르틴 루터, 면죄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교황청서 파견한 도미니코회 수도자 요하네스 테첼이 면죄부를 사면 성모마리아를 강간해도 깨끗이 용서받는다는 광고를 치고 다녔기 때문에 비판한 내용일 뿐이다. 하나님의 어머니도 육신의 어머니란 뜻일뿐이다. 그리고 교황청의 공식 입장과 전통이 변치 않는 가톨릭 교회와 달리 개신교에선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견해도 역사성을 인정하여 참고 대상일뿐이지 교리도 아니요 개신교회의 창시자란 용어 자체도 쓰지 않는다.[27]

성모 공경을 부정하는 이유는 기존 교회, 즉 교황으로 대표되는 가톨릭에 대해 반발하면서 오직 성경으로만[28] 근거로 하고 기존 가톨릭 교회는 초기교회와 전통과 전승이 끊어졌고 성경의 권위를 이어받은 개신교회가 진정한 전통을 계승했다고 하기 때문에 기존 관습을 부정한다.

한국의 개신교의 일반적인 견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자신의 몸을 하나님의 도구로 드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해준, 본받을 만한 인물[29]이다. 천주교처럼 성모신심까진 아니더라도, 존경받아야 할 인물로 대한다.[30] 마리아 뿐만 아니라 요셉도 의인으로 역시 본받아야 될 인물로 인정한다. 순전히 가톨릭 관습이 옳지 못하다는 것이지 결코 성모를 폄훼하진 않는다.

현재 개신교 중에서 루터교회영국 국교회(성공회)와 같은 경우 공식적으로 성모 공경을 받아들이고 있다. 다만 루터파의 경우 위에서 설명한 소위 '아디아포라'[31] 문제에 관해 다른 종교개혁가들보다 유연한 면도 있었고, 루터가 죽은지 바로 1년 뒤 1547년도 슈말칼덴 종교전쟁이 일어나 신교도 지역이 가톨릭 세력을 등에 업은 황제군에 초토화 당하면서[32] 종교개혁 초기상태의 입장에서 가톨릭 교리를 일부 받아들이는 입장으로 대거 후퇴하였다. 이른바 정치적 타협의 산물일뿐 루터를 비롯한 다른 종교개혁가의 뜻과는 약간 거리가 있다.[33] 성공회도 옥스포드 운동 이후 가톨릭식 관습을 대거 복구시켰고 성모 마리아를 위대한 신앙의 모본으로 보며 신앙을 본받지만, 자체를 기도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무염시태와 몽소승천도 다른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통공기도 중보자 역할도 부정하는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인해 원래는 없어야 할 성모송이 일부 국가의 루터교와 성공회에도 있는 것이다.[3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 7장 14절)

위의 성모관련 교리 4가지에 대해서는,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모친'만 인정하고 그 이외는 불인정하거나 '그거 있든 없든 무슨 상관인데?' 혹은 '그게 왜 필요한데?'라는 태도를 지닌 것에 가깝다. 천주모친'에 대해서도 "그리스도가 이세상에 오시는 방법"으로서의 의미이지 그 개인이 가지는 특별한 위치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요한 복음서 8장 58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존재한다면 예수의 신성의 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것이 개신교의 논리. 예수가 구원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조건인 무죄성은 이사야 선지지의 예언인 동정녀 탄생 자체로 증명되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원죄가 사라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개신교는 마리아가 죄가 있더라도 동정녀 탄생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통해 원죄가 유전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에, 무염시태/무염수태뿐 아니라 평생동정이나 몽소승천 같은 교리도 구원에 필요없고 계시될 필요도 없는 것이 된다. 해당 내용을 강하게 부정하는 측에서는 사람의 죄가 없어지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십자가는 필요 없다 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개신교 교파에서는 가톨릭 전통의 성인공경을 '성인 숭배'로 보아서 금지하고 비판해 왔고 현재도 비판하고 있다.이는 가톨릭 교회에서 그나마 교회전통이 남았다고 인정하는 성공회[35]와 루터교회도 포함이다.[36] 이들 두 교파는 자신들이 진정한 '공경'을 하고 있고 가톨릭 전통은 숭배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물론 개신교는 개교회 특성이 강하여 성공회나 루터교회의 지역적 성향에 따라 여타 다른 개신교 개혁교단만큼 강하게 비판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뿐이다.

사실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서 (겉보기에)가장 큰 차이점으로 여겨지는 마리아 문제는 종교개혁 당시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시 개신교측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교회의 성인 공경과 성상문제등 여러점을 비판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개신교측 '이신칭의'와 만인사제론 교리를 들어 교황수위권, 사제제도, 7성사등 이였고, 현재 개신교에서 크게 비판하는 마리아 교리의 확정은 상술한대로 19세기와 20세기에 가톨릭 교회에서도 논란끝에 채택이 된 것이라 이로인해 비교적 현대에 새로운 교리차이가 생겨난것이다. 따라서 초기 종교개혁가들은 기존 가톨릭교회의 마리아 전통을 인습으로 바라보아 비판한 측면이라면 현재 개신교회는 교리상으로도 틀어졌다는 점이 달라진 것이다.


가톨릭의 성모 교리가 초대교회부터 전승이라고 주장하는데 현재 개신교 교회 사가들은 그런 입장을 부정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가톨릭의 성모 교리는 19세기~20세기에 채택된것이 사실이고 이것도 가톨릭 내부의 반발을 무릅쓰고 강행한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공경의 공격에 대항하여 개신교는 목사를 숭배한다는 주장까지 하는데 개신교의 교리는 오로지 성경뿐이고 나이많은 여성 신도들 위주로 목사를 지나치게 쫓아다니거나 선지자취급하는 병크는 자주 있지만 그것이 교리와 교회 정통 방식이라고 생각하는 개신교 신도는 거의 없다. 반대로 가톨릭 교회에서 신부님들을 귀찮게 하는 나이지긋한 여신도들이 없나 그런 사례가 전혀없나? 생각해보면 간단한일이다. 초기 종교개혁가들의 성모 신심과 달리 개신교에서 전통을 잃어버리고 가톨릭을 공격한다는 주장도 오해에 가깝다. 중세 시절 가톨릭에서 주장하는 정도의 성모 공경을 벗어나 한때 그정도가 심해져서 가톨릭 내부에서도 비판이 컸고 종교개혁시기에는 개신교의 주 비판대상이 되기도 했다. 현재 개신교와 다른 무염시태 1854년에야 가톨릭에서 확정 되었고, 중보자 교리는 20세기 초반 베네딕토 15세 시절, 몽소승천은 1950년, 교회의 어머니 교리, 천상의 모후 같은 교리는 20세기 중반에야 확정 되었고, 교리로 채택되지 않았으나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1959)에서 마리아를 구원의 중개자라며 교회론에 포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격렬한 논쟁 이후 최종 투표 당시 1,114표를 얻은 반대파(50.9%)의 승리로 좌절한 적도 있었다.[37] 따라서 가톨릭 교회가 종교개혁시기와 다른 교리를 선언하여 개신교와 달라진 것이지 개신교 종교개혁가들이 비판하지 않았던 교리를 전혀 문제삼지 않다가 이제와서 한국의 개신교에서 마리아론을 비판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한국에서는 현재 교회일치 운동 참여와 상관없이 거의 모든 교파에서 가톨릭측 성모 교리에 대해선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는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교파도 마찬가지이다. 왜냐 하면 종교개혁시기 가톨릭 전승과 성경을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주장한 가톨릭 교회의 입장의 대표적인것이 마리아론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개신교는 물론 가톨릭 내부에서도 이견이 따르는 교황무류설로 선포된 교리이기 때문이다. 교회일치에 긍정적인 교단도 이러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교리에 부정적이기 때문.

개신교의 입장에서 가톨릭 교회 마리아론 대략적 비판 내용은 다음과 ,이곳과, 이곳 등을 참조하기 바란다.

6 이슬람의 관점

이슬람에서도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일화가 있다. 홀로 젊은 여자가 아이를 낳았기 때문에 예전에 했던 처벌대로 던지는 돌에 맞는 벌을 당할 뻔했지만, 포대기에 싸인 어린 예수가 입을 열어서 사람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그래서 위대한 예언자를 낳은 어머니로서 대우하는데, 꾸란의 제 19번째 장(=수라)은 마리아의 장이며, 여기서는 복음서에서는 언급하지 않는 성모의 수태와 성장, 예수의 어린 시절 같은 이야기들도 담고 있다. 대체로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승과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마리아의 장에서는 어디까지나 알라의 위대한 예언자인 예수와 그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겸손함과 신에 대한 복종, 그리고 기적들을 찬양할 뿐 예수의 신성화나 성모 신심에 대해서는 분명한 메시지로 경계하고 있다.
쿠란에 의하면 마리아는 이므란의 딸[38]로 되어있는데, 이 이므란은 아론과 모세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마리아에 대하여는 아론의 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39] 이는 명백하게 모순되는데, 아론과 모세의 활동시기는 B.C. 1800년 즈음이고, 마리아의 활동시기는 B.C. 5~4년 정도다. 천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 것. 무슬림들의 반론은 셈계 어휘에서 ‘계승자 내지 후손’을 ‘형제’로 부르는 관습이 있다고 하여 ‘아론의 누이’라는 표현은 아론의 후손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그러나 예수가 살았던 시대뿐만 아니라 쿠란이 쓰여질 때 당시에도 여성의 인권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여자 한 명 한 명까지 누구의 후손인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은 힘들 것이고, 또한 성경이나 쿠란에도 여성을 누군가의 후손, 후계자라는 의미로 '누이'라고 서술한 전례 역시 없다.게다가 아버지 이름까지 모세, 아론의 아버지와 같은 데다가 확인 사살로 아랍어로 아론의 누이 미리암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표기가 같다.

7 성모 마리아의 축일

그리스도교 전반에서 가장 공경받는 성인인 만큼 축일도 호칭에 따라 여러 날이 있다.

개신교 중에서도 성모신심이 존재하는 성공회와 루터교회에만 성모축일이 존재하고,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나머지 개신교 교단에서는 성모축일이 없다.

날짜가톨릭정교회성공회루터교회
1월 1일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월 1일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3월 25일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마리아 수태고지
5월 31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7월 16일카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참고)
8월 5일성모 대성전 봉헌 기념일
8월 15일성모 승천 대축일성모 안식 축일성모 마리아 안식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8월 22일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기념일
9월 8일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성모 탄생 축일성모 마리아 탄생
9월 15일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0월 1일성모 보호 축일
10월 7일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11월 21일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성모 입당 축일
12월 8일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마리아의 잉태

8 대중문화에서

성경, 특히 예수의 일대기를 주제로 제작된 영화에서 비중있는 역할로 자주 등장한다. 주로 예수의 잉태와 탄생, 유년시절, 그리고 십자가 수난 시기에 모성애와 신심(信心) 어린 성모 마리아의 열연(?)을 볼 수 있다.

영화 <나자렛 예수>에서.
배우는 마더 테레사 수녀의 전기 영화에도 출연한 올리비아 핫세.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에서. 배우는 마야 모르겐슈테른.
163716_480801788320_109208878320_5775008_6960408_n.jpg
미국 영화 <네티비티 스토리>(2006)에서. 배우는 케이샤 캐슬-휴스.[40]
maryofnazareth.jpg
독일 TV영화 <나자렛의 마리아>(2012)에서. 배우는 알리사 융.
왼쪽은 예수를 잉태해 출산한 젊은 모습, 오른쪽은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의 중년 모습.

본격 신성 모독 만화 배틀 포프에서는 쭉빵하신 누님으로 나온다.

세인트 영멘에서는 동안미인으로 나오지만, 키요시라는 아이돌을 좋아하며[41], 할머니카트(!)를 끌고 다니는 갭모에를 보여준다.[42]

스타워즈 시리즈의 주인공 아나킨 스카이워커의 어머니 슈미 스카이워커는 처녀의 몸으로 어느날 갑자기 아나킨을 잉태하고 낳았다는 점에서 성모 마리아를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이다.

9 관련 어록

오, 마리아여! 예수님은 평범한 인간으로 당신 태중을 빌어 태어나셨습니다. 이 복된 왕, 지극히 풍요로우신 왕께서도 당신 앞에서만은 가난한 이 되셨고 스스로를 낮추셨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무한하신 분이 작은 이 되셨고 천사들보다 못한 신분이셨습니다. 마침내 참 하느님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그분이 인간으로 탄생하셨습니다.

- 성 베르나르도

이사야가 노래하셨다. “동정녀가 잉태하리라.” 그러나 이 일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일어날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마리아 안에 예언의 큰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놀라운 기적으로 충만한 마리아에게 이 예언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리아에게 숨겨진 예언서의 비밀들이 알려졌다. 그녀에게서 정의의 태양이 움트고 떠오른 태양 앞에 온 땅이 빛을 내었다. 마리아 안에서 모든 상징과 표징이 이루어지고, 모든 예언이 완성되었다.

- 시리아의 에프렘

오 복되신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시여, 하느님께서 당신을 통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보여주셨는지요! 하느님께서 온갖 은총으로 당신의 비천함과 보잘것없음을 돌보셨나이다. 당신께 하신 대로 주님께서 이제와 항상, 가난한 저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비로이 돌보실 것을 기억하게 하셨나이다.

- 마르틴 루터

10 관련 항목

  1. 한국에선 일반인도 개신교인도 가톨릭인도 대부분 성모 마리아하면 파리에 발현한 파리의 성모의 이미지를 생각한다.
  2. '완전히 거룩한(all-holy) 여성'이라는 뜻.
  3. '여주인'(The Mistress), '여왕' 등의 뜻.
  4. 헬레니즘 시대에 디아스포라(Diaspora)화된 유대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5. 이 부분은 견해차가 커서 키배가 자주 벌어지는 부분. 대다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용과는 달리 4대 복음서 어디에도 마리아 막달레나창녀임을 암시하는 기록은 보이지 않으며,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죄인'이라는 여인이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창녀 언급은 후대에 교황 그레고리오 1세의 착각에 의해 이러한 소문이 퍼졌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물론 가톨릭에서는 이미 수정해서 창녀라는 말은 안 나오고, 오히려 개신교에서 자주 써먹는 떡밥.
  6. Immaculata 임마꿀라따. 축일: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7. 기록상으로 2세기 경에 처음 등장한다.
  8. 라틴어 번역어는 Mater Dei. 가톨릭 문서에서 지겹게 인용하는 구절이다. 마찬가지로 정교회 기도문에서는 마리아를 지칭하는 말로 '테오토코스이시며…'라는 문구가 뻔질나게 들어간다.
  9. 반면 네스토리우스파는 이미 이 때부터 훨씬 더 뒤에 등장할 개신교와 흡사한(?) 교리로 나갔으며, 지금도 네스토리우스파 고유의 전례형식(교리 자체는 1976년 딩카 4세시기부터 타 교파와의 일치를 위해 조금 수정되었다)이 많이 남은 아시리아 동방교회같은 경우 성상과 성화도 인정하지 않아서 이콘이 아닌 십자가에다 정교회 스타일로 입맞추는 광경을 볼 수 있다.
  10. 상경지례. 성인 중에서 최고로 침.
  11. 복자 비오 9세의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에서 공인.
  12. 비오 12세의 사도헌장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에서 공인.
  13. 받침 하나 차이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 수 있다. 신자들도 간혹 순간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 듯(…)
  14. 정교회에서는 '성모희보(聖母喜報)'라고 한다. 부산광역시에 있는 정교회 성당의 이름이 이를 기념하는 '성모희보성당'이다.
  15. 개신교는 세례가 중요하긴 하지만 세례 안받으면 구원 못받는다고 하면 그냥 너 이단 취급한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례와 마리아 무염시태와 연관짓지 않는다.
  16. 개신교는 성경 전체를 조망하면서 해석하는 것은 천주교와 비슷하지만, 성경을 문법적, 역사적 맥락을 따져보되, 천주교의 이런 풍유적 해석을 굉장히 지양하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통.. 이런 해석은 신천지나 하나님의 교회같은 개신교 이단들이 잘 써먹는다.
  17. 참고로, 당시 관습에 비추어 보면 요셉과 혼인했을 당시 마리아의 나이는 십대에 불과했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한다.
  18. 참고로 신약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었기에 아람어 성경은 없다.
  19. 근데 정작 예수 본인은 '누구든지 하느님 뜻대로 하는 사람이 내 형제고 자매고 모친이다'라고 말했으며, 육적인 형제자매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20. 요한복음 7장 5절: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21. 반대로 츠빙글리칼뱅은 성경에 명시된 관습만 받아들이는 것이 옳으며 '연약한 형제'라는 개념을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
  22. 실제로 교회당 안에 있는 성상은 건드리지 않았지만 교회 밖 길거리 야외 십자고상(Wegkreuz)과 성상들은 죄다 뽑아버렸다. 지금도 가톨릭 지역과 루터교 지역이 확 차이나는 부분.
  23. 루터와 미켈란젤로 (신준형의 르네상스 미술사), 루터선집(지원용, 컨콜디아사) 재인용. 지원용은 한국루터교회 목사, 컨콜디아사는 한국루터교회에서 운영하는 출판사이다.
  24. 애초에 중세 초기에 성상이 사용되던 목적도 그렇고 가톨릭이 전 유럽에 퍼지면서 선교를 위해 이교도였던 게르만족들을 회유하려고 성경에 없는 교리들이 대거 생겨난 것인데, 구텐베르크에 의해 성경을 대량으로 찍어낼 수 있는 인쇄술도 생겨났고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깨우칠 수 있게 되면서 더이상 필요없다는 것이다.
  25. 당시 교회에서 성유물 구매와 참배, 소지, 성지순례가 역시 면벌 효과가 있다고 교회에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루터가 있던 작센 지역만 하더라도 성안나의 엄지손가락 성모의 모유 몇방울, 예수 탄생 말구유의 나무 조각 이라며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흙이나 지푸라기 등을 성유물로 속여 순례객들에 장사질을 해먹었기 때문.
  26. 1517년 당시 루터는 아직 가톨릭 교회에서 나갈 생각이 없었고 면죄부 팔이조차도 도미니코회와 마인츠 대주교만 주도하는 줄 알았다. 교황청도 처음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은게 독일 내 아우구스티노회가 도미니코회가 잘 나가자 질투해서 비방하는줄 알았다.
  27. 애초에 루터와 칼뱅 본인도 성경적인 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고 했지 새로운 교파를 만든다 말하지도 않았고, 루터교회란 명칭도 해당 문서에서 알 수 있듯 극초기에는 카톨릭 진영에서 비하하려고 썼던 것이다.
  28. 종교개혁가들의 주요 사상중 하나인 Sola Scriptura
  29. 이국진, '굿모닝 성경' 누가복음 1장의 해설에서 발췌.
  30. 이 당시 결혼도 하지 않은 여자가 임신을 했다가는 돌에 맞아죽는다. 총이나 칼 같은 병기에 의해서 신속히 숨이 멎는다 하더라도 고통이 대단할텐데 돌에 맞아서 천천히 죽는다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아니 애초에 방법을 떠나서 소중한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고 순종한 사람이기 때문에 대단할 수 밖에 없다.
  31. 단어 자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란 뜻으로 성경에는 없지만 그렇다고 폐해버리면 더더욱 곤란한 관습들이란 의미가 있다. 루터파와 츠빙글리/칼뱅파 간의 갈등은 성만찬 문제 외에도 어디까지 기존 교회의 전통과 관습을 남겨둘 것인가에 대한 논쟁 역시 만만치 않았다. 이 논쟁에 관해서도 성만찬 만큼이나 대부분의 종교개혁 관련 신학 서적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므로 더 자세한 것은 그쪽을 알아보자.
  32. 신교도 양대 제후 작센선제후 요한 프리드리히 1세와 헤센방백 필리프 1세는 제국 추방령과 작센선제후는 궐석재판으로 사형까지 받고 나란히 체포 되었고 마그데부르크를 제외한 모든 신교도 지역이 일시적으로 카를 5세에 굴복했다.
  33. 마르틴 루터 사후 가장 유력한 루터파 신학자 필립 멜란히톤은 1547년 신교도의 수도(?) 비텐베르크가 함락되자 7성사와 라틴어 예배까지 용인하려 할 정도였으며 가장 중요한 교리만 인정 받으면 중요치 않은것(?)은 양보한다는 구상이었다.
  34. 한국 루터회의 경우 전례력으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기념일은 인정하지만 성모송은 인정하지 않는다.
  35. 성공회는 교단 차원에서는 테오토코스를 제외하고는 로마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교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다만 신자 개인(특히 일부 고교회파)의 신앙관으로서 로마 가톨릭 수준의 성모신심을 특별히 문제시하지 않을 뿐이다. 성공회 신자 중에서도 특히 개신교 성향에 가까운 저교회파(복음주의파)를 중심으로 여타 개신교 교단 수준으로 로마 가톨릭의 마리아 교리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
  36. 그래서 이 두 교파도 성상 없는 교회 인테리어가 가능하다. 실제로 종교의 자유가 어느정도 확립되고 건축양식이 현대 모더니즘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19~20세기에 세워진 몇몇 루터교회들은 정말로 초기 루터의 유훈을 본받아(?) 십자가(십자고상 말고!)와 성경책, 촛불만 덜렁 놓아둔 경우도 많다.
  37. 구원의 중개자주장은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도 거의 반반으로 갈려서 교리는 아니나 개인적으로 믿는건 문제삼지 않는다. 요한바오로 2세는 긍정적이었고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부정적
  38. 3:35~36이므란의 여성이 말하길 주 여 저의 태내에 있는 것을 당신에게 바치겠나니 이를 받아 주소서 당신은 모든 것을 들으시며 알고 계시나이다 그녀가 분만을 하고서 말하길 주여 저는 여자 아이를 분만하였나이다 하나님은 그녀가 분만한 것을 잘 아시도다 남자가 여자와 같지 아니하니 그녀의 이름을 마리아라 하였나이다 그녀와 그녀 의 자손을 사탄으로부터 보호할 것을 명령하였노라
  39. 19:27~28얼마 후 그녀가 아들을 안고서 사람들에게 나타나니 마리아여 너는 이상한 것을 가지고 왔구나 라고 조롱하더라 아론의 누이여 너의 아버지 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고 네 어머니도 부정한 여자가 아니었노라
  40. 뉴질랜드 배우로 마오리족 혈통이다. 촬영 당시 만 16세. 영화 <웨일 라이더>로 2004년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최연소 후보로 오른 기록도 있고, 스타워즈 시스의 복수에서 나부의 새 여왕 역으로 잠깐 등장하기도 했다. 만 17세에 첫아이를 낳았다.
  41. 키요시는 손자같아서 귀엽다고.
  42. 할머니카트는 키요시의 공연을 보러다니다가 공연 대기시간에 앉을 수도 있다는 주변 아줌마들과 할머니들의 추천으로 마련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