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덕암 최용술(德庵 崔龍術, 1899.7.21 - 1986.10.27)
일본명: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
대부분의 한국의 합기 무술은 이 사람으로부터 나왔다.
합기도 1대 도주.
어린시절 일본인 부부에 의해 유괴되어 일본에서 방랑하게 되었다.
스님의 소개로 다케다 소오가쿠(武田惣角, 1859–1943)의 양자가 되어 평생 대동류 합기유술을 수행하게 되었다.
일본 패망후 조국으로 귀국하여 자신의 무술을 가르치게 되는데 이것이 합기도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무술을 야와라(柔)라고 말했으며 가르칠 때는 야와라, 혹은 합기유권술이라 칭했다. 참고로 야와라(柔)는 유술이라는 뜻이다.
2 여담
- 제자들에게 낙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 술기의 체계나 교육과정 없이 가르쳤다.
- 일본에서 수년간 입산수련할 당시, 스승인 다케다 소오가쿠로부터 온몸에 피멍이 들도록 혹독한 가르침을 받았다. “부엉이같이 생긴 다케다 선생이 너무 보기 싫어서 잠을 잘 때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을 숱하게 느꼈다.”고 술회했을 정도였다
- 용술관에서는 최용술 도주의 무술을 원형대로 수련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 정착된 합기도와 구별하기 위해 덕암류 합기유술이라고도 부른다.
3 제자
- 김윤상 - 합기도 3대 도주, 용술관 총재
- 김정윤 - 한풀
- 서복섭 - 최용술 도주의 첫번째 제자
- 임현수 - 정기관 관장
- 지한재 - 이소룡의 영화 사망유희에서 합기도 고수로 출연, 신무 합기도 총재
4 논란
자신의 무술이 일본의 대동류 합기유술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은 많은 논란 거리가 되어 왔다. 최용술 도주측의 주장. 해당 문서를 참조. 이러한 주장에 대해 일본의 아이키도측과 대동류측에서는 전혀 다른 내용을 내세우고 있다.
1. 다케다 소가쿠는 모든 수업생의 이름을 영명록에 기록해 두었는데 영명록 속에 대동류를 배운 다른 한국사람들의 이름도 있었지만 최용술 옹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
2. 우헤시바 모리헤이는 혼자 배웠던것이 아니며 사가와 유키요시(佐川幸義) 선생 및 요시다(吉田)가의 부자(父子) 등 다른 수련생들도 같이 수련했으며 그 증언들도 존재한다. |
미국의 저명한 무술가 리처드 킴이 1984년 미국 합기도인 글렌(Glenn)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용술이 일본의 극우파 조직 흑룡회의 멤버이자,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 로부터 교수대리(敎授代理)[1]를 받은 요시다 코타로(吉田幸太郞)의 뛰어난 제자였다고 한다.[2] 최용술 도주의 일본 이름이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였다고 증명한다. 이 때문에 일본 위키백과에서는 최용술을 요시다 코타로 쪽의 제자로 분류한다.
왼쪽이 리처드 킴, 그리고 오른쪽이 요시다 코타로이다.
흑룡회가 어떤 곳인지 잘 모르는 위키러를 위해서 말하자면, 제국주의 일본의 국가주의 우익조직으로, 일본 제국이 헤이롱장(흑룡강黑龙江) 일대를 차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단체라서 흑룡회라는 명칭을 사용했다.이들은 대한제국의 식민지화에 적극 앞장섰고, 일진회를 배후에서 조종하였으며 이후, 만주와 일본 등지에서 조선인 학살을 주도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일본 무술계는 최용술이 반일 감정이 높을 수 밖에 없었던 해방된 고국에서는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하고 있다.
5 동영상 자료
최용술 도주의 지도.
최용술 도주의 인터뷰.
'합기술의 기틀을 잡고 죽으면 원이 없겠다. 도장마다 기술이 다 다르고 제자들은 몇 달만 배우고 모두 독립해서 도장차린다. '
용술관 김윤상 총재의 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