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류 합기유술

1 개요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合気柔術)은 일본 무술의 하나로 일본 아이키도와 한국 합기도의 아버지이다.
합기(合氣)라는 개념은 바로 이 무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합기(合氣)는 상대방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을 뜻한다.

대동류는 처음 “대동류 유술”이라고 칭하고 있었다. 이 명칭에 “합기”의 문자가 가미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수 있는 것은, 1922년(타이쇼11년), 다케다 소가쿠가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수여했던 목록이 처음이었다. [1]

한국 합기도의 도주 최용술일본에서 대동류 합기유술을 수련했다고 전한다.
일본 아이키도의 도주 우에시바 모리헤이 또한 다케다 소가쿠에게 면허개전비전오의(秘伝奥儀)의 면허를 받았다.[2] 우에시바는 자신이 배운 여러가지 유술, 대동류 합기유술과 스스로 배웠던 다른 여러 무술[3], 오모토(大本)교의 사상을 결합하여 아이키도를 만들었다.

2 역사

대동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설 세가지를 소개한다.

첫번째는 타케다 가문에서 내려온 고류 무술이라는 설이다. 이 설에 따르면, 대동류는 신라[4] 사부로 미나모토노 요시미츠(新羅三郎 源義光, 1045–1127)를 시조로 아이즈 번(会津藩)에서 전해내려왔으며, 메이지 시대에 중흥의 조(祖) 타케다 소오카쿠(武田惣角, 1859–1943)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근현대 일본 무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무술이 소오카쿠 이전에는 전혀 무명이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납득되기 어려우며, 소오카쿠의 대표적인 제자중 하나인 사가와 유키요시(佐川幸義)[5] 또한 대동류는 소오카쿠의 창작무술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두번째는 앞서 언급했듯이 대동류가 타케다 소오카쿠에 의한 창작 무술이라는 설이다. 소오카쿠는 오노파 일도류[6] 등 여러 무술[7]을 배웠던 것으로 보이며, 대동류는 소오카쿠가 배운 이러한 기술을 종합해 창시한 신흥무술이라는 주장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 중 하나가 1967년에 발행된 <아이즈 검도지>의 내용이다. <아이즈 검도지>에 따르면, 당시 옛 아이즈에 존재했던 무술을 모두 조사하였으나 합기나 대동류라는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소오카쿠의 가르침에는 여타 고류에서 찾아볼 수 있는 '예법'이 일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고 하여[8], 연구자들은 이를 근거로 사실상 소오카쿠 당시에는 '하나의 유파로서 성립되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 아닌가 라고 보기도 한다.

현재 일본 무술계의 일반적인 시각은, 두 설중 '소오카쿠에 의한 창작 무술'로 보는 쪽이 유력하다.

세번째는 모든 한국 합기도 단체에서 말하듯 신라에서 비롯된 무술이라는 설이다.
신라에서 화랑이 수련하던 무술[9]이 일본으로 건너가 대동류 합기유술로 발전했고 그 대동류를 최용술 도주가 한국에 가져와서 합기도로 재탄생시키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인데 합기유술 관련 서적 (혹시 아는 위키러는 제목을 추가바람)에서 '원 씨 성의 신라인이 왜로 넘어와 무술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발전하여 대동류가 되었다.'고 언급된다. 신라삼랑원의광(新羅三郎源義光), 즉 미나모토노 요시미츠는 사실 신라인이라고 보는 견해. 그러나 해당 문서에도 나와있듯이 신라명신(新羅明神) 앞에서 성인식을 치추어서 붙여진 이름일 뿐, 신라인 운운은 낭설에 불과하다. 실제로 맏형 요시이에는 하치만궁에서 성인식을 치루어서 하치만타로, 둘째 요시츠나 역시 마찬가지로 카모지로라고 불렸다. 또한 신라시대부터 소오가쿠가 활동할 시기까지 화랑도(대동류)가 아무 유명세도 없었다는 것이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이 설은 '태권도 전통무예설'처럼 합기도의 유래를 우리 것으로 위장하기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3 유파

  • 대동류 합기유술 총본부
  • 대동류 합기유술 타쿠마카이(琢磨会)
  • 대동류 합기유술 코도카이(幸道会)
  • 대동류 합기유술 롯뽀카이(六方会)

4 대동류 출신 무술인 (가나다순)

  • 마츠다 토시미 : 타케다 소오카쿠의 제자로 교수대리를 수여했다. 한국인 제자로 장인목이 있다.
  • 반기야 [10]
  • 사가와 유키유시 : 타케다 소오카쿠의 제자로, 교수대리를 수여했다. 토키무네는 '기술은 호리카와, 면허는 히사, 실력은 사가와' 라고 평한바 있다. 일본 무술계에서는 불세출의 달인으로 칭송된다.
  • 요시다 코타로 : 소오카쿠에게 모리헤이를 소개한 인물. 최영의에게 대동류를 가르친바 있다.
  • 오카모토 세이고 : 호리카와 코도의 제자.
  • 오쿠야마 류호 :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 이후 팔광류 유술을 창시했다. 팔광류에서는 합기를 금강력이라 칭한다.
  • 우에시바 모리헤이 : 교수대리. 사실상의 수제자로, 각종 자료나 증언에 따르면 소오카쿠는 모리헤이에게 유파의 대를 잇게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 장인목 : 마츠다 토시미의 제자. 대구에서 대동류를 가르쳤으며, 제자로 이성창, 박병관, 허일웅 등이 있다.
  • 최용술  : 요시다 코타로의 제자 [11]
  • 최영의 : 요시다 코타로에게 대동류를 배웠다. 최영의는 가라데도 쇼토칸, 고주류를 익혔을 뿐 아니라 기무라 마사히코와 교류하며 유도를 배우기도 했다.
  • 콘도 카츠유키 : 타케다 토키무네의 제자. 토키무네에게 입문하기 전에는 소오카쿠의 제자인 호소노 츠네지로, 요시다 코타로에게 대동류를 배웠다.
  • 타케다 토키무네 : 타케다 소오카쿠의 셋째 아들.
  • 호리카와 코도 : 타케다 소오카쿠의 제자로 교수대리를 수여했다. 제자들로부터 '영세명인'으로 추대되었다.
  • 히사 타쿠마 : 타케다 소오카쿠의 제자로 면허개전을 받았다. 원래 우에시바 모리헤이에게 아이키도를 배웠으나, 소오카쿠가 히사에게 찾아가 '내가 우에시바의 스승이니 내게 배워라' 라고 하여 소오카쿠 문하에 입문하게 된다.

5 연무

6 대중매체에서의 대동류

  1. 대동류 합기유술과 아이키도에서 이야기하는 현대적인 의미의 합기라는 명칭은 다케다 소가쿠가 같은 시기 아야베의 오모토 본부에 있는 모리헤이의 거처를 방문했을 당시 오모토의 성사(聖師) 데구치 오니사부로가 '합기'를 자신의 이름으로 칭하도록 모리헤이에게 권하였고 , 모리헤이가 '합기'를 대동류의 이름에 가미할 것을 소가쿠에게 진언, 이후 소가쿠도 동의하여 “대동류합기유술”이라고 이름하였다는 증언이 있다.
  2. 고류에서 이야기하는 '개전'이란, 모든 것을 다 가르쳤다는 뜻으로, '면허개전'은 졸업증서로 보면 된다. 소오카쿠는 제자의 실력과는 별개로 면허개전을 쉽게 발행하지 않았는데, 또다른 수제자로 꼽히는 사가와 유키요시는 물론, 임종을 지킨 야마모토 카쿠요시나 아들인 타케다 토키무네까지 모두 '교수대리'만 허가하였을 뿐 면허개전을 발급하지 않았다. 소오카쿠에게 면허개전을 받은 인물은 단 둘로, 히사 타쿠마(久琢磨)와 토네다치 마사오(刀祢館正雄) 두 사람 뿐이다. 모리헤이 역시 교수대리.
  3. 모리헤이는 대동류 외에도 키토류유술(유도의 모체중 하나), 신카게류 검술, 야규신카케류 검술(면허개전)등 여러 무술을 배웠다.
  4. 이와 관련하여 한국기원설이 있긴 하지만 근거가 약하다.
  5. 사가와 도장(佐川道場)을 운영하며 종가를 자칭, 이후 소오카쿠의 셋째아들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에게 '종가'라는 이름을 양보하고, 토키무네에 의해 '종가의 사범'이라는 뜻의 종범(宗範)으로 추대된다.
  6. 실제로는 소카쿠가 나카니시파 일도류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사실 현대의 '오노파, 나카니시파'의 구분은 후대의 편의에 따른 것으로, 당대의 오노파 문인들은 스스로를 '일도류'라고만 불렀던 반면, 당대의 나카니시도장 문인들은 스스로 '오노파'를 자칭했다는 점을 고려해 볼때 어느정도 일리가 있다.
  7. 직심영류 검술, 혹은 경신명지류 검술을 배웠다는 이야기 있다.
  8. 사가와 유키요시의 증언에 따름. 아들 타케다 토키무네(武田時宗) 계열은 예법을 강조하고 있다.
  9. 그 원형은 현재 '화랑도'라는 별개의 무술로 발전했다고 한다. 당연히 여기도 근거는 없다.
  10. 김광석 씨 계열의 '십팔기'(무예도보통지 복원무술. 본인들은 계승을 주장) 쪽에서는 일본에서 대동류를 배워온 반기야라는 인물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얼마나 배웠는지에 대한 자료는 전혀 남아있지 않으며, 십팔기측 이외의 계통에서 이 인물이 언급되는 일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타케다 소카쿠의 영명록에 반기야의 이름은 없다.
  11. 미국의 저명한 무술가 리처드 킴이 1984년 미국 합기도인 글렌(Glenn)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용술이 일본의 극우파 조직 흑룡회의 멤버이자,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 로부터 교수대리(敎授代理)를 받은 요시다 코타로(吉田幸太郞)의 뛰어난 제자였다고 한다. 최용술 도주의 일본 이름이 요시다 아사오(吉田朝男)였다고 증명한다. 이 때문에 일본 위키백과에서는 최용술을 요시다 코타로 쪽의 제자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