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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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沖
984~1068

고려의 문신. 우리에게는 해동공자로 친숙하며,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에도 등장한다. 해주 최씨의 시조인 최온(崔溫)의 아들이다. 이 사람과 햇갈리면 곤란하다

그가 세운 9재학당은 한국 사립학교의 원조였다고 한다. 당시 국립 교육기관이던 국자감이 약간 쇠퇴하는 징조를 보이자 전직 시험관으로서 직접 돈을 들여 창설한 것. 하지만 의도는 좋았는데 학벌을 만들어 버렸다. 최충의 학생들이 크게 성공하자 너도나도 사학을 열어서 사학 12도가 완성된 것도 모자라 현재의 입시위주 교육처럼 되어버렸고, 뽑아준 시험관들과 성공한 사람들이 자기의 후배들을 이끌어주는 일이 벌어진 것. 훗날 조선시대에서 붕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재현된다.

그러나 고려 중기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문은 별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 무신정변이후 문신들이 많이 살해되고 그들의 문집도 함께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여몽전쟁 당시 제1차 자모산성 전투에서 빛을 발한 최춘명(崔椿命)은 최충의 8대손이며, 훈민정음 반대 상소로 유명한 최만리는 12대 후손이다.

참고: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