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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Achille Debussy(1862.8.22~1918.3.25)
프랑스의 작곡가. 인상파음악의 기틀을 마련하여 근, 현대 음악의 시작을 알렸다.
목차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1] 中 "달빛"(Clair de Lune).
▲Reflets dans l'eau
1 생애
드뷔시는 1862년 파리 근교의 생 제르망 앙 레[2]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도자기상을 경영했지만, 그가 어렸을 때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피하려 임신중인 어머니와 두 누이동생과 함께 칸에 있는 백모에게 보내지기도 했는데, 이 때의 경험이 이후 그의 교향시 바다의 밑바탕이 되기도 했다. 칸에서 드뷔시는 7살 되던 해에 백모의 지원 아래 피아노를 배웠다.
우연히 시인 베를렌의 의모(義母)가 되는 모테 부인에게 음악의 재능을 인정받은 것이 그가 음악가가 되는 계기였다. 아마추어이면서도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던 모테는 무상으로 레슨을 맡았으며, 11살에는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 12살에는 프레데리크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할 정도의 천재성을 보였다. 그 외에도 17세에는 악보 초견[3]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는 등 피아노 연주만이 아닌 작곡등에도 재능이 있음을 입증하기도 했다.
다만 학교에서는 반항아로 통했는데, 수업이 휴강되자 자기 멋대로 대신 강의를 한다든지, 듣도 보도 못한 화음을 작품에 넣는 등의 행동으로 교수들 사이에서는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로마 대상[4]을 준비할 때 주위에서 계속 이렇게 파격적으로 곡을 쓰면 상을 못탄다고 조언을 하자 바로 멀쩡한 곡을 작곡, 로마 대상을 받는다.??
그러나 로마 대상의 부상으로 로마로 유학을 떠난 후, 드뷔시는 다시 자기 스타일로 복귀, 다시 악명을 쌓아간다. 파리로 돌아온 뒤, 인상파 화가, 시인들과 교류하면서 인상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졌는데, 한편으로 바그너의 음악에도 관심을 가져 바그너 음악의 중심지인 바이로이트로 성지순례를 떠났으나, 오히려 바그너의 안티만 되어서 돌아왔다.[5]
이후 피아노 레슨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중, 1889년 파리에서 세계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그 곳에서 자바의 전통음악을 듣게 된다. 그는 이 음악에서 신선한 영감을 얻게 되고 이후 그의 음악에 영향을 주고, 이때 쓰여진 곡으로 '달빛'으로 유명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이 있다.
그리고 1894년, 그의 걸작 중 하나이자 근,현대 음악의 시작을 알린 '목신의 오후 전주곡'을 발표하게 된다. 이 작품은 환상적이고 몽롱한 느낌을 주는 화음의 사용으로 인상주의 음악의 지표를 세운다. 이어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6]를 발표하는데, 찬반 양론이 거세게 맞붙긴 했지만 어쨌든 상연을 거듭하면서 성공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단지 몽환적인 분위기를 벗어나 가능한 모든 색채를 음악에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탄생한 작품이 그의 대표작인 교향시 '바다'이다. 일본의 판화가 호쿠사이의 판화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을 하였다고도 하는데, 이전의 작품들과는 달리 웅장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간직하여 인상파 음악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안가 점차로 그의 생활에 불행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잇달은 이혼과 재혼을 시작으로, 딸의 죽음, 그리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와 아르놀트 쇤베르크등을 필두로 한 새로운 음악의 태동으로 높은 명성 속에서도 행복하지 못했다. 얼마 안가 그 역시 암에 걸리고,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그의 몸과 마음 모두 쇠약해져갔다. 그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작곡, 만년의 작품인 피아노 연습곡집, 바이올린 소나타등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전쟁의 포화속에서 1918년 3월 25일 숨을 거둔다.
2 작곡 성향
초기에는 바그너 등의 후기 낭만파에 영향을 받았지만, 이후 동양 음악과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아 색채감이 넘치는 곡을 작곡한다. 또,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7] 피아노곡들을 많이 작곡하기도 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후에 프로코피예프,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등의 새로운 음악의 대두와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상주의 음악이 맥이 끊기면서 그와 모리스 라벨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만한 인상주의 음악가가 없게 되었다. 지못미
3 주요 작품
일련 번호는 L번호로 정리된다.
3.1 오페라
- 펠레아스와 멜라장드 L88 (1893~1902)
3.2 관현악
- 교향 모음곡 '봄' L61 (1887)
- 교향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L86(1894)
- 3개의 야상곡 L91(1897~9)
- 교향시 바다 L109 (1903~5)
- 관현악을 위한 영상 L122 (1902~12, 1905~8, 1905~9)
3.3 발레
- 유희 L126(1912~3)
- 장난감 상자 L128(1913)
3.4 협주곡
-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간주곡 L27(1882)
-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환상곡 L73(1889~90)
- 알토색소폰과 관현악을 위한 광시곡 L98(1901~11)
- 클라리넷과 관현악을 위한 제1 광시곡 L116 (1909~10)
3.5 실내악
- 피아노 3중주 G장조 L3(1879)
- 현악 4중주 G단조 Op.10 L85(1893)
- 독주 플루트를 위한 시링크스 L129(1913)
- 첼로소나타 D단조 L135(1915)
- 플루트·비올라·하프를 위한 소나타 F장조 L137(1915)
- 바이올린소나타 G단조 L140(1916~7)
3.6 피아노
- 작은 모음곡 L65 (1886~9): 연탄곡으로 되어있으며, 대부분 관현악으로 편곡해서 연주한다.
- 2개의 아라베스크 L66(1888, 91)
- 낭만적 왈츠 L71 (1890)
-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L75(1890~1905) : 전주곡, 미뉴에트, 달빛 [8], 파스피에로 되어있다.
- 피아노를 위하여 L95(1894~1901): 전주곡, 사라반드, 토카타로 되어있다.
- 판화 L100 (1903)
- 기쁨의 섬 L106(1904)
- 영상Ⅰ L110 (1905)
- 영상Ⅱ L111 (1907)
- 어린이 차지 L113(1906~8) [9]: 그라두스 애드 파르나수스 박사[10], 짐보의 자장가, 인형의 세레나데, 눈은 춤춘다, 작은 양치기,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11]로 되어있다.
- 전주곡Ⅰ L117(1909~10): 돛(Voiles), 아마빛 머리의 소녀(La fille aux cheveux de lin), 가라앉은 성당(La cathédrale engloutie)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 더 느리게 L121 (1910)
- 전주곡Ⅱ L123(1912~3): 안개(Brouillards)가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
- 흑과 백 L134 (1915)
- 연습곡 L136 (1915)
- 비가(悲歌) L138 (1915)
3.7 가곡
- 보들레르의 5개의 시 L64(1887~9)
- 별의 밤 L4 (1880)
- 아름다운 저녁 L6 (1880)
- 잊힌 노래 L60 (1885~7)
- 말라르메의 3개의 시 L127 (1913)
3.8 합창
- 칸타타 방탕한 아들 L57 (1884)
- 선택된 여자 L62 (1887~8)
4 기타 사항
- 취향이 꽤 고상한 편이었다고 한다. 미식가에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 항상 최신 유행하는 옷을 입고 다녔고, 거기에 비싼 그림, 서적등을 자주 사들이곤 했다고.
하지만 그 결과 빚더미에 올라 앉아 신용 불량자크리 - 꽤나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위에서도 봤듯이 이혼과 재혼을 밥먹듯이 하고, 그 이전에도 수많은 여자들과 연애를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문제는 양다리를 걸치는 건 기본, 결혼한 후에도 연애를 하다 한번 잘못 걸려 총으로 위협을 받아 Nice boat.탈 뻔 하기도.
- 오귀스트 로댕과 헤어진 까미유 끌로델과 깊은 우정을 나눴다고 한다. 하지만 머지 않아 까미유 끌로델이 결별을 요구했기에 헤어졌다고 한다. 다만 까미유 끌로델의 조각 중 '왈츠'의 모델이라 카더라는 소문이 있는데 드뷔시에게 선물로 주었고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 일본의 무그 신디사이저 연주자인 토미타 이사오는 드뷔시의 곡을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이때 만든 작품들은 8~90년대 방송이나 광고 BGM으로 우려먹을 정도로 쓰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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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부이마루 타쿠오의 줄임말이라고 한다.
5 대중 문화
-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대표곡으로 끊임없이 재생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선율과 달리 작품 속 현실은... (릴리 슈슈라는 이름은 드뷔시의 아내 릴리와, 릴리에게서 드뷔시를 빼앗은 엠마 바르닥 사이에 난 딸 슈슈의 이름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6 관련 문서
- ↑ 베르가마스크는 베르가모 (Bergamo)라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에 있는 지방의 민속 춤곡을 칭하는 말이다. 드뷔시는 이 곳의 달빛에 매혹되어 작곡된 표제 음악이라고 한다.
- ↑ Saint Germain-en-Laye라고 쓴다. 이곳에는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관광사무소와 함께 운영되고 있으니 기회가 있다면 꼭 찾아가보자. 이 곳엔 크고 아름다운 숲도 있다.
- ↑ 악보를 보고 연습 없이 한번에 연주하는 것.
- ↑ 파리 음악원에서 주는 권위있는 상이다.
- ↑ 이때 그가 했던 말로 '바그너는 새벽으로 오해받은 황혼이다.'가 있는데, 바그너가 새로운 음악의 선구자인줄 알았는데 그도 구시대 음악에 묶여있다는 의미이다.
- ↑ 당시 유행하던 작품으로 장 시벨리우스, 포레, 아르놀트 쇤베르크도 같은 소재로 작품을 썼다. 물론 제목도 같다.
- ↑ 무대연주가로는 자처하진 않았지만 초견력은 거의 리스트 급이었다고 하며, 파리 음악원 입학 시험의 심사위원을 몇 번 맡기도 했다.
- ↑ 따로 관현악으로 편곡되서 연주한다. 국내에서는 CF에 자주 쓰여 드뷔시의 음악 중 가장 유명하다.
- ↑ 자기의 딸 슈슈에게 헌정했으며, 각 제목이 모두 영어로 되어있다. 슈슈가 영국인 보모에게 자라 불어를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 클레멘티를 풍자하기 위해 붙인 제목.
- ↑ 래그타임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