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하시 쇼운

高橋紹運 (たかはし しょううん/しげたね)
1548년 ~ 1586년 9월 10일

난세의 꽃(乱世の花).[1]

1 개요

일본 센고쿠 시대 무장.
다치바나 무네시게의 친아버지이다.
큐슈를 대표하는 전국시대의 명장으로 유명하다.

2 高橋紹運

오토모가신. 분고 3로 (우츠키 아키스미, 요시히로 아키타다, 요시오카 나가마스)중 한명인 요시히로 아키타다의 차남으로 원래 이름은 요시히로 시게타다였으나,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다카하시집안을 계승하게 되었고, 후에 불문에 출가하여 쇼운이라는 이름을 칭했다.
(간혹 코에이발 역사게임에 요시히로 시게타네라고 나오기도 하는데, 원래 이름은 시게타다가 맞지만, 후에 다카하시씨를 계승하면서 시게타네로 바꾼 것이므로 오류이다)

오우치가에 양자로 보내진 오토모 소린의 동생, 오우치 요시나가를 따라서 스오에 가 있었지만,
스에 하루카타모리 모토나리에게 패배하여 오우치 씨가 망하면서 귀국하게 되었다.

오우치가문을 멸망시킨 모리가문은 그 여세를 몰아 북큐슈를 침공하고 이에 타치바나 아키토시와 다카하시 아키타네가 호응했다.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으나 요시오카 나가마스의 계략으로 오우치 가문의 후예인 오우치 테루히토가 야마구치에서 궐기하자 모리가문은 그때까지 점령했던 북규슈의 모든 땅을 포기하고 주코쿠로 철군했다. 오토모 소린은 반역한 타치바나씨와 다카하시 씨를 박살내면서 베츠키 아키츠라에게는 타치바나씨를 요시히로 시게타다에게는 다카하시씨를 계승하게 했다.
(베츠키 아키츠라 ⇒ 타치바나 도세츠, 요시히로 시게타다 ⇒ 다카하시 시게타네)
(베츠키 아키츠라가 타치바나씨를 이으면서 불가에 입문하여 도세츠로 개명하자
다카하시 시게타네도 불가에 입문하여 쇼운이라는 법명을 쓰게된다.)

'벼락을 맞고도 살아난 사나이', '뇌신'이라 불리던, 같은 집안의 선배이며 명장인 다치바나 도세츠를 스승으로 모시며 그의 모든 것을 전수받고 오토모 가문의 양대 기둥으로 성장했다. 이 시기 쇼운과 도세츠는 서로 협력하며 치쿠젠을 통치했다.

원래 현군이었던 주군, 오토모 소린이 말년에 기독교에 빠져 망국의 전쟁을 일으켰다. 오토모 소린은 규슈전토의 기독교화를 기치로 내걸고(뭔가 웃기지만 사실이다) 사찰을 파괴하며 진군했는데, 당시 일본인에게 불교신앙이란 매우 깊은 것으로, 오토모 병사들은 죽어서 지옥에 갈것이라며 사기가 모두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나다를까, 오토모 소린은 미미가와 전투에서 시마즈 군에게 대패하고, 시마즈 군은 단숨에 역전하여 규슈는 류조지, 시마즈, 오토모의 3국 체제가 되었다.

오토모 가문이 미미가와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었기 때문에 소린으로부터의 지원은 받기 힘들었지만 이 시기에 쇼운은, '도세츠있는 곳에 쇼운이 있다'라는 말이 있을정도로 군사행동을 함께 하며 무명을 떨쳤다.
도세츠는 하반신이 불수였으므로, 자식이 딸인 긴치요 하나밖에 없었는데, 이에 쇼운은 장래가 촉망되는 장남을 기꺼이 도세츠에게 보내 뒤를 잇게 했다. 이 자가 벽제관싸움에서 명군을 대파했던 '다치바나 무네시게'(국내 기록에는 입귤좌근)이다.

아들을 보낼 적에 쇼운은 아들에게 이별의 잔을 교환하며,

'오늘 이후로는 도세츠공이 너의 아버지이다. 무문의 일은 알수 없으므로 내일이라도 당장 도세츠와 적이 될 수 있다. 그 때에 너는 타치바나가의 선봉이 되어 이 쇼운을 죽여라. 도세츠공은 미련한 자를 싫어한다. 만약 네가 나를 앞에 두고 불측한 행동을 마음에 품는다면, 나는 너와 의절할 것이다. 염치없이 집에 돌아오는 일은 허락하지 않겠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차라리 자결하거라.'

라고 하며 명검 '비젠 나가미츠'를 주다가,

'....라고 해도, 당장에 일어날 일은 아닐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쇼운이 너보다 먼저 죽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 때는 그 칼을 우리 기념품이라고 생각하여 몸에 항시 지니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그 칼을 볼때마다 양가문과 주가에 대한 의리를 생각하거라. 평소에 내가 말했던 것을 마음에 잘 새기고, 무사인 자가 걸어가야 할 길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거라.'

라고 했다.

오오토모 소린이 은퇴하고, 오토모 요시무네가 당주가 되었는데, 요시무네는 시마즈의 북상과 맞춰 비장의 카드인 다카하시 쇼운과 다치바나 도세츠를 적극 활용하여 치쿠고를 탈환하고자 했다.

하지만, 집안 자체가 망조였는지, 아군 무장들도 비협조적이고, 또 앞선 미미가와 전투에서 숙련병들은 거의 죽어버려 싸움에 익숙치 않은 병사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치바나 도세츠와 다카하시 쇼운은 적의 네코오성을 떨어뜨리고, 야전에서 적의 총대장 류조지 이에하루를 패주시켰다.

이 즈음에 도세츠가 진중에서 죽었는데, 위대한 노장의 죽음에 적도 아군도 모두 숙연해 하며, 감히 오토모의 진지를 공격하는 자가 없었다고 한다.

비장의 카드인 도세츠의 죽음으로 초조해진 오토모 소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직소하여 시마즈 정벌을 기도했다. 그런 한편,

'아침에는 아키츠키에게 붙고, 저녁에는 류조지와 내통하는 지조없는 무리들 가운데에서도, 타치바나 도세츠와 다카하시 쇼운은 무명을 아끼고, 의리를 지키며 수치가 무엇인지를 아는 무장입니다. 제발 御家人(고케닌)이 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라며 쇼운 부자를 직신으로 천거했다. 히데요시도 매우 기뻐하며 직신에게 내리는 주인장을 내렸다.

치쿠시 히로카도는 쇼운이 출진한 틈을 타, 호우만 성을 빼앗았으면서도 도요토미에 붙기위해 쇼운의 차남에게 자기 딸을 보냈다. 쇼운도 자신의 처가 히로카도의 아내와 자매인데다, 호우만 성이 적의 수중에 있는것이 불편했으므로 승낙했다.

하지만 아키츠키 타네자네도 다카하시 쇼운에게 붙기를 원했는데, 선수를 빼앗기자, 시마즈를 종용하여 오토모의 움직임을 알리고, 시마즈의 2만이 중심이 되어 거의 전 규슈의 5만군세가 오토모를 박살내기위해 출진했다. 사쓰마 시마즈 가문의 당주인 요시히사는
규슈와 주코쿠 사이의 칸몬해협을 봉쇄하여 도요토미 세력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우선 치쿠젠을 공략을 결정했다. 쇼운은 타치바나 산성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이와야성에서 농성하기로 결정했는데

  1. 부모에게 자식이 하나밖에 없는 자
2. 형제간에 한사람이상
3. 농성에 반대하는 자
4. 노약자, 어린이, 부녀자, 부상자

등을 내보낸뒤 763인의 결사대로 농성에 들어갔다.

아버지가 걱정된 무네토라(다치바나 무네시게)가 노신을 보내 설득하자,

'일이 여기에 이르렀는데, 1군의 장이라는 자가 한곳에 몰려 농성하는 것은 좋은 방책이 아니다. 비록 사쓰마군인 5만이라고 하여도 이 쇼운이 지휘한다면, 14~5일은 버티면서 공격군에게 3천정도의 손실을 입힐 수 있다. 시마즈군이 막강하다고는 하나, 여기에서 3천의 군사를 잃게 된다면, 타치바나성에 도달할 무렵에는 기세를 다소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타치바나성은 견고하며 군세도 많기 때문에 비록 공격받는다고 하여도 20일 정도는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1개월 정도만 방어를 해낸다면, 쥬코쿠의 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무네토라의 운도 열리게 되어 이 쇼운의 죽음도 결코 헛되지는 않을 것이다.'

라며 농성을 고집했다.

결국 시마즈군이 들이닥쳤는데, 이 전투가 센고쿠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였다고 하는 '이와야 전투'이다. 쇼운은 자신이 말한대로 20일 가까이 버텨내면서 적의 맹공을 막아냈다. 시마즈는 초조하다 못해 쇼운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항복을 권유하거나 '성만 비워주고 물러가면 뒤쫓지 않겠다'고도 했지만,

「(중략) 주가가 번성한 때에 충성을 외치는 무리들은 많아도, 주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운명을 함께하려는 자는 드문 법. 귀하도 시마즈가가 멸망할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주군을 버리고 목숨을 아까워 할 것인가? (중략) 무사라는 자가, 인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금수와 다를 바 없소.」

라는 말을 하며 거절했다.

결국 시마즈군은 급하다 못해 아군의 시체를 넘고 넘는 방법으로 무조건 강공을 했고, 성의 병사들도 밤낮으로 계속되는 격전에 지쳐가고 있었기에 결국 혼마루까지 적의 진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쇼운은 적이 혼마루로 몰려오는 상황에도 태연히 염불을 하며 죽은 병사들의 넋을 위로했으며, 스스로 적병 17명을 베어 죽인뒤 50명정도 남은 부하들 앞에서 자결했다. 고무된 나머지 50명도 전원 옥쇄를 택하여 사납기 그지없는 사쓰마의 병사들도 숙연해 했다고 한다.

쇼운과 부하들의 수급은 시마즈 본진으로 옮겨졌다. 대장 시마즈 다다나가는 적이면서 훌륭한 최후였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쇼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최고의 군례를 거행하게 했다고 한다. 쇼운의 죽음을 확인한 사쓰마 군영에서는 오히려 살아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고 한다.

게다가 시마즈는 진짜로 3천이상의 사상자를 내는 바람에 큰 타격을 입었고 쇼운이 자신의 목숨과 바꾼 20여일은 오토모 가문에게는 천금같은 시간이었다.

뒤늦게 도착하여 시마즈를 박살낸 히데요시는, 쇼운의 죽음을 매우 애석해 하며 '난세의 꽃'이라 극찬하였다. 쇼운이 닦아놓은 덕 덕분에 적자인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시동출신 무장보다도 더 후대를 받았으며, 아버지의 위명을 이어 전국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무장이라 일컬어졌다.

쇼운의 차남인 무네마스는 시마즈의 포로가 되었다가 무사히 구출되어, 1만8천석의 독립영주가 되었다.

3 노부나가의 야망

파일:高橋紹運.jpg

코에이발 게임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전통적으로 높은 전투능력수치와 최고 수준의 의리수치를 가진 무장으로 등장하는 등 대우가 좋은편이다. 다치바나 도세츠와 같이 오토모 가문의 에이스 무장.

노부나가의 야망 혁신에서는 통솔95 무용94 지략70 정치22에 아시가루, 기마적성이 A로 등장한다.

노부나가의 야망 천도에서는 통솔91 무용94 지략70 정치62로 통솔력이 소폭 하향 된 반면 정치력이 대폭 상승해 내정요원으로도 어느정도 써 먹을 수 있다. 적에게 많은 피해를 주고 사기저하와 동시에 혼란상태로 만들어버리는 특기 '질구'를 가지고 등장한다.

태합입지전에서도 훌륭한 용장. 능력치는 전형적인 용장형이긴 한데 위의 일화를 보면 무력 쪽을 좀 후하게 쳐줘도 될 거 같지만 5기준으로 무력이 87에 부가효과가 없고, 무운이 2레벨이라는게 조금 아쉽다. 그래도 군학3에 기마가 3이라 기마대를 맡긴다면 적비 돌격으로 적들을 털어버릴 수 있다.
  1. 살아 생전에 들었던 소리는 아니다. 이와야 성의 처절한 20일 간의 농성으로 시마즈 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주가를 보전시키면서 자신은 옥쇄했는데, 뒤늦게 도착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쇼운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붙였던 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