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테카와 단시

예명立川 談志타테카와 단시
본명松岡 克由마츠오카 카츠요시
생년월일1936년 1월 2일
사망2011년 11월 21일
출생일본 도쿄
직업라쿠고가(落語家)
데뷔년도1953년
혼인여부기혼
라쿠고 타테카와류의 문장
일본을 대표한 천재 라쿠고가(落語家)중 한명

1 설명

일본에서는 아주 유명한 라쿠고가로 흔히들 천재 라쿠고가 라고 불리운다.
현재까지 방송되고있는 일본의 유명한 방송 쇼텐(笑点)의 초대 사회자를 맞은 인물이 바로 이사람.[1]

2 이력

초기에는 柳家 小ゑん(야나기다 코엔)이라는 이름을 쓰다가 1963년 4월 타테가와 단시로 개명하며 신우치로 승격된다.
이후 1966년 소텐을 기획하여 사회자를 맡기도 하였지만 후일 시청율 저조, 출연진과의 마찰 등을 이유로 쇼텐에서 하차하게 된다.

1974년에는 제9회 참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의원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78년의 라쿠고협회 분열소동에 관련된 주요인물 중 한 명이었으며, 분열소동 당시엔 잔류했으나 1983년에는 라쿠고협회의 신우치 승단 시험제도의 운영에 있어 당시 라쿠고협회 회장과의 대립으로 라쿠고협회를 탈되하고 라쿠고 타테카와류를 창설하였다.

1997년 식도암수술을 한 이후에는 계속되는 투병생활이 지속된다. 그리고 2011년 11월에는 후두암으로 고인이 된다.[2]

3 다른 예능인에 대한 그의 평가

"코미디(お笑い)에는 절대적인 재능이 필요하다"는 것이 단시의 지론이었다.
본래 오사카(칸사이)의 개그풍과는 본인이 맞지 않는면이 많아 요시모토 흥업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한 면이 있다.
하지만 제2회M-1그랑프리의 심사위원을 맡기도 하였으며, 그의 평가 방법은 80점, 70점, 50점의 3단계로 명확하게 평가 하였다.

  • >우타마루(桂歌丸)[3] - 쇼텐 초기 멤버중 유일하게 제대로된 리액션을 보여준 라쿠고가.
  • >다운타운 - 바로 이것이 만자이의 마(間)다.(これはまさしく漫才の間だ)[6]

4 관련 영상

항목 참조

5 관련 항목

라쿠고
독설가
게닌
이시하라 신타로[8]

6 출처

일본 위키피디아.
  1. 쇼텐을 기획, 실현시킨 이가 바로 타테카와 단시이다.
  2. 타테카와 단시가 별세 후 딸의 인터뷰에서 후두를 적출한다면 생존확률이 높았지만 라쿠고가로서 목소리를 잃을수는 없다고 수술을 거부한것으로 알려져있다.
  3. 최근까지 쇼텐의 사회를 보다 물러난 인물로 쇼텐의 초기 멤버였다.
  4. 카미오카 류타로의 말에 따르면 아직 신인이었을 시절 타테카와 단시(당시는 야나기다 코엔)가 카미오카 류타로(당시의 만화 트리오)에게 친해지자고 먼저 다가왔다고 한다.
  5. 투비트(비트 타케시의 콤비명)를 가장먼저 인정한것을 계기로 교류를 가지고있었다고 한다.
  6. 처음에는 젊은 만담가들중 한 팀이라고 생각했으나 후일 다운타운의 가키노츠카이야아라헨데를 보고 느낀 것이라고 한다.
  7. 폭소문제의 오오타 히카루의 재능을 높이 사면서 해준 말이라고 한다.
  8. 일본 버라이어티 방송 스마스마에서 빍힌 바로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단시의 성향을 판단하기에는 힘들지만 긍정적인 면은 없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