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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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신회 홈페이지 프로필 사진 | |
한글 표기 | 이시하라 신타로 |
원어 표기 | 石原 慎太郎 (いしはら しんたろう) |
로마자 표기 | Shintarō Ishihara |
출생일 | 1932년 9월 30일 |
키 | 183cm[1] |
학력 | 히토츠바시 대학[2] 법학 학사 |
당적 | 일본 자유민주당(1968년 ~ 1995년) 무소속(1995년 ~ 2012년) 태양당(2012년 ~ 2012년) 일본 유신회(2012년 ~ 2014년) 일본의 마음을 소중히 하는 당(구 차세대당)(2014년-현재) |
정치 경력 | 참의원 초선(1968년 ~ 1972년) 중의원 9선(1972년 ~ 1995년, 2012년 ~ 2014년) 도쿄도지사 4선(1999년 ~ 2012년) 2014년 낙선과 함께 정계은퇴 |
목차
1 개요
일본의 극우 성향 수구꼴통 정치인으로 별칭은 망언 제조기.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도 이 사람 앞에선 한 수 접어야 될 정도. 한국에 지만원이 있다면 일본에는 이 사람이 있다. 그래도 지만원은 정신나간 일반인이므로 그냥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이 사람은 정치인이다.
행보 하나하나에 병맛이 철철 넘치는 인물로 한일 양국 좌우 가리지 않고 개념 좀 있다는 사람들에겐 허구한날 까이던 인물이다. 그런데 후술되어있지만 하는 말들을 보면, 딱히 극우 사상이랑 상관없는 뻘소리도 심심찮게 하는 사람이라(...) 저 인간이 진짜 어떤 극우 사상에 감화되어 활동하는 정치인이 맞긴 한건지 의심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냥 지 꼴리는데로 내뱉는 부류? 하지만 '될 수만 있다면 히틀러가 되고 싶다'는 개소리발언도 서슴치 않고 하는거 보면 분명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인건 틀림이 없어보인다.
결국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 본인이 만든 차세대당이 참패하고, 비례대표로 입후보한 자신도 낙선하면서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다행이다 은퇴의 변도 그다운데(?) "죽을 때까지 말하고 싶은 말과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미움을 받으며 죽고 싶다".(...) 그래 맘껏 미움받아라 본인이 미움받고 있다는건 아는 모양
2 소설가로서 이시하라 신타로
히토츠바시 대학 법학부에 재학하던 1955년, 데뷔작인 단편소설 〈태양의 계절〉을 문예잡지 <문학계> 7월호에 발표한다. 〈태양의 계절〉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한 청년의 자유분방한 삶과 비극적인 연애담으로 거침없고 노골적인 성묘사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며 문단 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다음해인 1956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 이것은 역대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이었다. 이후 1958년 오에 겐자부로에 의해 이 기록은 경신된다.
〈태양의 계절〉은 1956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서도 크게 성공하고, 영화 속의 패션 - 알로하 셔츠에 선글라스, 통칭 '신타로가리'라 불리우는 짧은 머리의 헤어스타일 - 을 따라하는 태양족[3]이라 불리는 신세대 청년문화 붐을 일으켰다.
〈태양의 계절>이 영화화되고, 동생 유지로는 이 영화에 단역으로 잠깐 출연했는데, 180cm의 장신과 잘생긴 마스크는 업계에서 주목받고 다음 영화에서는 주역을 맡으며 영화계에 등장 영화배우로 대성했다. 그리고 유지로의 헤어스타일은 형의 이름을 따와 "신타로가리"라고 당시 일본 젊은이들사이에 크게 유행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신성일이 데뷔 초반에 이시하라 유지로를 많이 벤치마킹했고, 실제로 맨발의 청춘을 비롯한 초기 히트작에 나오는 그의 짧은머리는 사실상 신타로가리와 똑같다. 그정도로 파급력이 컸다. 이시하라 형제는 그 당시 문화 아이콘 수준이었다고 한다. 즉 스포츠머리의 원조가 이시하라 신타로고 이걸 동생인 유지로가 따라했고 다시 유지로의 스포츠머리를 본 신성일이 스포츠머리를 해서 우리나라에 유행이 된거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스포츠머리의 원조가 이시하라 신타로 이 할배다.천하의 개ㅆ..... 미시마 유키오를 비롯한 당대의 아이콘격인 소설가들과도 절친했다고 한다.
이후, 〈화석의 숲〉을 통해 문부대신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동생인 이시하라 유지로가 태양의 계절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영화배우로 유명해지자 동생을 백업한다는 명목하에 본격적인 드라마와 영화의 각본을 집필하거나 각색하였고 본인 또한 간간히 영화배우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 이시하라 신타로와 미시마 유키오. 아니 이렇게 멀쩡하게 생긴 젊은이가 40년 후에는 망언제조기가 되다니..
이 때문에 일본 문학/영화사 공부할때 의외로 자주 나오는 이름이기도 하다. 1950-60년대 젊은 감독들이 시대를 따라 이시하라 형제를 기용하거나 이시하라 신타로의 소설을 영화화했기 때문에.
재미있는 것은 자신의 작품과 무척 비슷한 구도를 지닌 다나카 신야의 아쿠타가와 수상 즈음에서는 "요즘 애들은 소설이고 뭐고 사람을 잘 모른다." 는 식으로 비판했었다. 빡친 다나카 신야는 "내가 (수상을) 거절해 소심한 심사위원, (이시하라) 도쿄 도지사가 쓰러지기라도 해 도쿄도 행정이 혼란에 빠지면 곤란한 것 아니냐. '도지사 각하'와 도쿄 도민을 위해 받아주겠다."라 말하며 "할아버지는 신당 창당에나 신경쓰세요"라고 쏘아붙이기도.
3 정치가로서의 이시하라 신타로
1967년 요미우리 신문사의 의뢰로 베트남 전쟁을 취재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다음해인 1968년 자민당 소속으로 참의원 선거에 출마, 일본역사상 최초의 300만표 초과지지를 얻었다. 이는 당시 국민배우였던 이시하라 유지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루어진 결과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1972년에 중의원으로 자리를 옮겨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정치인과 소설가로서 병행하여 활동하다[4] 1983년, 자유민주당의 파벌인 나카가와파를 이어받아 이시하라파를 결성하여 본격적인 정치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5] 이때 자기 당 후보이자 경쟁자였던(당시 일본 중의원 선거제도가 중선거구제였다.) 누군가가 아라이 쇼케이 후보 포스터에다가 북한사람이라고 대놓고 비방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시하라는 자기비서가 했다고 꼬리 짜르기를 시전한 뒤 자기 혼자 당선되었다(...) 뭐, 1986년 선거때부터는 동반당선되었기는 했지만 이때의 앙금때문에 사이가 그리 좋지는 그 뒤 1999년에 도쿄 도지사에 당선된다. 이 때 도지사에 당선되면서 춤추는 대수사선의 아오시마 슌사쿠는 "도지사[6]와 같은 아오시마입니다"라는 자기소개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2009년에는 도쿄 도민들도 상당수가 반대하던 2016 도쿄 올림픽 유치를 한답시고 안 그래도 적자인 도쿄도 예산을 어지간히 거덜낸 후 침몰. 뒤에 보겠지만 2020년에도 유치한다고 한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때 유치 슬로건이 <환경과 세계통합>인데 삼국인 발언으로 분열과 반목을 조장하던 이시하라가 통합을 외쳤으니 이빨도 안 먹힌다. 한번 이미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기도 했고. 여하간 덕분에 평창은 그럭저럭 도움을 받게 될 기세.
2011년에 2018 동계올림픽의 평창 유치를 축하할 때 "평창이 훌륭한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개최해 성공하기를 기원한다"고 발언했다. #의외인데
2012년 10월 25일, 뜬금없이 도쿄도지사직에서 사퇴하였다. 기사. 신당을 창당하여 중의원 선거에 참여, 내각총리대신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무산된 하시모토 도루의 일본 유신회와의 연대도 다시 시도하여 11월 3일 교토 오쿠라 호텔에서 이시하라와 하시모토의 회동이 있었다. 회담 장소가 교토 오쿠라 호텔인건 막부말기에 이곳에 사츠마번의 저택이 있었기 때문. 제2의 메이지 유신을 일으키겠다라는 상징적 의미에서 선택한듯 하다. 그러나 하시모토는 이시하라와의 연대는 어렵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성과는 없었다. 다만 이시하라의 제2의 메이지 유신 발언은 조금 먹힌듯. 이런 이시하라의 행보에 그의 절친인 가메이 시즈카 전 국민신당 대표마저도 "요즘 이시하라가 말하고 다니는게 뭔 말인지 모르겠다. 뭔가 정신쇠약자 같은게 있다"라고 디스했다. 물론 대다수의 일본인들도 '드디어 맛이 갔구나!' 하는 반응.
2012년 11월 16일, 여론의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중의원 해산을 선언하면서 일본은 본격적인 선거전에 돌입했다. 이시하라의 행보도 바빠진 상황. 일단 이시하라는 자신의 신당인 태양당과 감세정책을 주장하는 군소정당 "감세일본", "일어나라 일본" 등과의 통합을 선언했다. 또한 이날에 도쿄에서 하시모토 도루와 재회동을 가졌다. 하시모토가 소비세인상,탈원전,TPP참여등을 이시하라가 인정해준다면 자신은 이시하라가 주장하는 사토 에이사쿠의 비핵3원칙 수정에 동의하여 보수연대가 가능하다고 밝혔고 이시하라는 17일쯤에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는데...11월 17일, 이시하라가 하시모토의 요구사항을 모두 수용하겠다라고 선언하면서 태양당과 일본 유신회의 합당이 성사되었다! 이로서 극우 보수연대가 성사되었고 이시하라는 더욱 총리에 대한 야망을 불태울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2월 16일 일본 중의원 총선에서 도쿄권역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하지만 아베 신조의 수상취임 지지를 놓고 하시모토 도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때문에 일각에선 결국 성향상 차이가 있는 두 사람이 갈라설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
이후 참의원 선거에서 유신회가 칸사이를 제외하고 전멸하는 바람에 되려 하시모토의 입지만 확인되었고 이시하라의 입지가 좁아진 가운데 2014년에 들어서는 하시모토가 결속당과의 연대를 추진하자 개헌론자인 이시하라는 결속당이 호헌주의라면서 분당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자민당으로의 복당도 고려중이라고 한다.
결국 2014년 5월 29일 평화헌법 개정을 둘러싸고 결속당과의 연대에 대해서 결정적인 문제라면 당을 나눠 가져도 좋다고 하면서 하시모토와 분당 의견이 일치하면서 결국 분당을 하게 되었다. 이시하라는 자기 계파 국회의원 22명을 데리고 2014년 8월 1일에 차세대당을 창당했다. 대표는 히라누마 다케오가 맡기로 했고, 자신은 당의 최고고문(한국의 상임고문격)으로 추대되었다.
2014년 12월 14일 중의원 선거에서 비례대표 9번을 받았으나 차세대당이 대패함에 따라 본인도 같이 낙선했다. 같이 나온 다모가미 도시오 전 항공막료장도 낙선.
2014년 12월 아베내각 3기가 발족하는 날 정계은퇴했다. 물론 마지막에도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게 망언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본인의 말로는 평생 미움받으면서 죽고싶다고(...). 계획대로
2016년 9월에 츠키기시장 이전문제에서 성토(盛土)문제로 난항을 겪게 되자 해당 지시가 내려졌을 때 도지사였던 이시하라가 TV 토론프로에 출연하였는데, "당시에 해당 내용에 대해선 하나도 보고를 받지 못했다. 난 완전히 속았다. 도쿄도의 공무원은 부패했다." 라면서 팀킬비판을 해댔다. 하지만 여론의 반응은 영 냉담한데, 현직 시절에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도쿄도의 공무원들은 정말 우수하다면서 항상 치켜세우다가 일이 생기니까 손바닥 뒤집는 태도를 보였기 떄문. 게다가 재직 당시에도 1주일에 2~3번 밖에 도청에 출근하지 않는 근무행태가 비판을 받았었는데, 출근도 제대로 안한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남 탓이나 하느냐는 비아냥을 들었다. 애시당초 총 책임자가 일이 터지니까 부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옹호를 해줄 수 있는 여지가 없다.
4 망언의 달인
사실 이 사람이 한국뿐 아니라 각국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개인의 경력이나,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가로서 걷는 우익 행보와 그에 따른 막말성 발언 때문이었다. 일본 내에서도 도를 넘은 망언 때문인지 石原不謹慎太郎(이시하라 후킨신타로), 즉 불근신 타로라는 멸칭이 있다.(...)
특히 그가 유명해진건 정치인이란 그의 입지 때문이기도 한데, '망언제조기'란 소릴[7] 들을 정도로 극에 치우친 우익적 발언을 "도쿄도지사인 내 입장에서 말하자면"이란 식으로 심심하면 공개적으로 쏟아낸 덕에 한국에서 매우 유명해졌다. 도쿄도지사란 입지 덕분에 2천년대엔 언론 노출도가 여타 극우 정치인들과는 격을 달리 한 셈. 2010년대 들어서 라이벌이 오사카에서 한명 튀어나오기도 했지만 하시모토 도루는 혐한 현상에 대해선 일침을 놓기도 하는 등 그나마 신타로에 비하면 양반이다.
4.1 주변국에 대한 망언
국내에 이시하라 지사의 망언제조기 능력을 알린 가장 대표적인 발언은 2004년에 있었던 민도(民度) 드립이다. 2004년 아시안컵 경기대회에서 중국 관중이 일본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낸 것과 관련해, "중국인들은 민도가 낮아 어쩔 수 없다. 곧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국가와 국민의 자질이 그런 정도라면 눈살을 찌푸릴 국가가 많을 것"[8]이라고 말해 잡음을 일으킨 바가 있다.
또 2000년 4월 9일 육상자위대 훈시 때 내뱉은 "삼국인" 발언도 유명하다. 조선인(남북한인), 중국인(대만 포함)과 그외 기타 아시아계 외국인 체류자들을 사회 암덩어리처럼 취급했던 발언으로, 요약하면 도쿄가 지금 흉악한 삼국인들에게 점거당해서 까딱하다간 큰 소동이 일어날 수 있으니 경찰 뿐만 아니라 자위대 여러분들도 진압준비(...)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삼국인'은 일본 사전에 실려있는 단어다.
【第三国人】第三国の人。特に、第二次大戦後、米国占領下の日本に在留していた朝鮮人・中国人をいった語。
대강 번역해보면 제삼국의 사람. 특별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점령하의 일본에 남아있던 조선인·중국인을 일컫는 말이다.
2012년 12월 13일엔 도쿄 도내에서 "유색인종 중 유일하게 일본인만이 근대국가를 이룩하는 데 성공했다."라는 소릴 하기도 했고, 같은 달 4일에는 "이 나라는 계속 미국의 부하 노릇을 해 왔다. 자칫 잘못하면 다음에는 옆나라 중국의 부하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릴 하기도 했다. 미국 부하 노릇하는건 아나보네 미국 부하 노릇해서 경제대국 됐으면 괜찮은 장사 아닌가?
4.2 한국에 대한 망언
그의 대표적인 망언 목록은 다음과 같다. 당연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 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고, 한국이 반대할지라도 결국은 자신들에게 이익이다. 관련뉴스 → 이건 자국에 대한 망언과도 겹친다. 그 이유는 후술된 자국에 대한 망언 문단 참고.
- 한국 식민통치는 부드러웠고 공평했다.[9] 관련뉴스
- 한일합방은 조선인이 선택한 것이다. 관련뉴스
- "한일병합은 한국이 선택한 것", "당시 한국은 청나라나 러시아의 속국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의회(결의)를 통해 일본에 귀속했다"#
- 2014년에도 일본의 자위를 위해 한국을 병합했다며 비슷한 소릴 해대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덤.
4.3 미국에 대한 망언
80년대 말 일본 경제버블이 최고점에 다다르던 때, 이시하라 신타로는 소니의 회장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No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이라는 책을 펴냈다. 한마디로 "일본은 이제 미국을 넘어설 수 있으며, 이제 일본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슬슬 불안해진다 하지만 이로부터 10년도 안 가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으로선 제 코가 석자인 일본이 되어버렸고 결국 영원히 미국을 이길 수 없게 되었다. 신타로의 저주? 여담으로 이후 중국에서 이시하라 신타로를 의식하고 썼는지 어쨌는지 "부(不, No)라고 할 수 있는 중국"이란 책을 냈는데, 여기서 일본은 결코 중국의 상대가 못 된다는 식의 주장을 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이시하라는 무척 불쾌해했다고 한다. 자업자득
4.4 중국에 대한 망언
2012년 4월 17일 미국 현지 강연을 갔을 때 센카쿠 열도(중국명 : 댜오위댜오)를 도쿄도가 직접 사들이겠다며 논란을 일으켰다. 그런데 진짜 샀다.[10] 그야말로 현실성도 없는 얘기를 혈세로 현실화시킨 것.(...) 얼마나 어이없으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당시 총리인 노다 요시히코가 "도대체 뭡니까 이건?"이라고 문책했을 정도였다.
다만 일부에선 이 센카쿠 열도 관련 발언을 의도된 정치적 발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자신은 소신 발언하는 정치인으로 이름 날리고, 중국에서 날아오는 후폭풍은 집권 민주당이 제대로 막아낼 방법이 없으니 자신과 반대 성향의 여당 지지도 깎아먹고,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식의 발언이라는 것.
2013년 9월 11일에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악화는 전적으로 중국 탓이다'라는 광역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4.5 러시아에 대한 망언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일본과 본선 조별예선 상대인 러시아와 경기를 앞두고 "러시아를 이겨 쿠릴 열도 반환에 대한 일본의 마음을 보여주자!"라는 말을 했다. 결국 1:0으로 이겼긴 이겼으나[11] 되려 러시아에선 일본 놈들에게 우리 땅을 빼앗길 수 없다며 러시아 극우들이 그 쿠릴 열도 4개 섬에 모여서 일장기를 태우며 시위를 벌였고, 거리 곳곳에서 일본산 자동차와 제품을 때려부쉈다. 블라디미르 푸틴을 비롯한 강경파들한테 돌려줄 마음 따위는 없다고 못 박게 만들었다. 2011년 2월에는 일본 보수파들이 주일 러시아 대사관 앞에서 삼색기를 찢어버리는 사태도 있었으니 복수한 셈인가?(...) 양국 관계를 험악하게 만들어버린 원흉.
결국 이 결과로, 러시아 사람들이 다들 그렇겠지만 특히 외교관련 종사자들이 언급하는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는 사람은 가슴이 없는 사람이다. 소련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푸틴의 말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가뜩이나 강한 러시아를 주장하는 푸틴인데, 이 망언은 위의 격언에 딱 들어맞는다. 근데 그 앞에서 저런 소리를 하고 앉았으니...
4.6 프랑스에 대한 망언
2003년 10월 19일 도쿄 U클럽 설립총회의 축사 중 프랑스어의 숫자 세는 법이 특별한 것을 가지고 프랑스어는 수를 셀 수 없는 언어라서 국제어로서 실격이란 말을 했다. 당연히 이에 항의하여 명예훼손혐의로 항소를 하자 뭐든 재판 건다고 다냐...라면서 프랑스어 험담을 더 많이 했다.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일본어 또한 개음절 천지에 모음도 빈약한 등 '불완전한' 언어인데, 이를 어찌 설명하려는지 원...
4.7 서양 전체에 대한 망언
2012년 8월 4일,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일본이 국기인 유도에서 서양인 선수들에 밀려 죽을 쑤자, "서양인들의 유도는 짐승들의 싸움"이라는 말을 했다. 이젠 서양인한테도 인종차별이냐 그래서 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2020 올림픽 유치전 투표 당시 이 발언이 악재로 적용되는 것 아니냔 우려도 있었으나 결국 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사실 스페인의 경우 경제난으로 올림픽 유치에 무리가 있었고, 터키의 경우 2013 터키 시위로 정세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그나마 차악(...)으로 일본이 채택된 셈.
4.8 여성에 대한 망언
"여성이 생식능력을 잃고 살아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100세 이상 살았던 '쌍둥이 할머니' 긴상 자매처럼 오래 사는 것은 지구에 큰 폐해다. 문명이 가져온 가장 유해한 것은 할망구[12]들이다."
여성의 존재 이유를 생식에만 한정지은 그야말로 몰상식에 무개념한데다 패륜적인 발언이다. 신타로 모친, 아내 의문의 1패 하다하다 사실상 패드립까지 친 셈. 역시 하루하루 망언 만드는 기계답게 여성을 하루하루 난자 만드는 기계쯤으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난자는 여성이 태어날 때부터 숫자가 정해져있다.. 하루하루 생성되는건 정자! 진지한 답변)
나이가 든 출산 여성들은 직접적인 재생산은 마감했지만, 다른 여성들이 재생산한 존재를 보살펴 줌으로써 끝까지 재생산과 관련된 행위를 지속하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들은 다른 세대를 보살피는데서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는 가설도 있다. 일명 할머니 가설.
또한 여성의 가치가 생식능력에만 있는가? 그렇다면 불임 여성들은 태어난 존재 의미가 없을 것이며 수많은 미혼 여성들을 모욕하는 짓이다. 문자 그대로 여성들을 향해 네년은 그냥 하루하루 난자 만드는 기계일 뿐이지!를 강요하는 것이다! 그렇게 치자면 남자들의 가치는? 객관적으로 말해 남자가 여자보다 분명하게 앞서는건 기실 힘밖에 없다.(...) 근육을 거의 안쓰는 사무직이나, 머리로만 하는 소위 '편한 일'들을 '정상적'이자 이상적인 직업들로 보면서 정작 3D 극한직업인들은 천시하는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이 그렇게 남녀 가려야만할 정도로 힘의 우열이 필요한가? 당연히 아니다. 무엇보다 배란을 못하는 여자는 번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쓸모없는 낭비이므로 일찍 죽어야만 한다면, 선천적으로 무정자증을 가지고 태어난 남자 역시 무정자증을 검진받는 즉시 사회를 위해 죽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1979년 가부장적인 성격이 강한 육아지침서 <아들을 남자답게 키워라>에서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아내를 혼내라, 자식 때리기를 두려워마라, 자라나는 아들의 고추를 찬양하라(...) 등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여놨다. 어릴때 맞고 사셨나 참고로 그는 (후술하지만) 아들만 4명이다.
4.9 자국에 대한 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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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 괜찮은 인생이었다!!! 모욕이잖아!
젊은 시절 정치에 막 입문했을 무렵에는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서 전두엽이 퇴화해있기 때문에 정치를 맡겨서는 안된다'고 주장했었다. 한마디로 늙은이들은 물러나란 소리. 그리고 본인은 80대가 되도록 정치활동을 했다(...).
만화 애니에 대한 규제안을 낼 때는 트위터를 통해 "만화나 애니를 보는 사람들은 전부 인생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 예??그런 사람들은 여자 사귀는 일도 못 한다."는 망언까지 했다.[14][15]
2011년 3월 14일, 기자가 도호쿠 대지진에 대한 의견을 묻자 뜬금없이 고령자 소재불명 문제[16]를 언급하면서 자국민의 사심과 정치행태를 비난한 뒤, "이번 지진을 잘 활용해서 일본인의 사리사욕을 한 번쯤 깨끗이 씻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시 이것은 천벌이라고 본다."라는 초유의 망언을 해버렸다.
나중에 그 발언을 들은 기자들이 "천벌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하지 않느냐"고 묻자, "피해자들에게는 귀에 거슬리는 소리이겠습니다만, 이라고 한마디 덧붙여 두지요"라고 대꾸했다고 한다.
이 기사에 의하면 그는 "일본인만이 떼지어 슈퍼를 터는 바보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개소리라는 게 증명되어 버리고 말았다(...).
더 웃긴건 선거가 코앞(2011년 4월 10일 실시예정)인 상황에서 이런 희대의 개드립을 쳤는데도[17] 불구하고 재당선되었다(...). 자국민을 디스 걸고 어그로 끄는 것을 보면 예능인으로서의 기질이 잘 보인다. 이번 망언으로 2ch에서도 디스를 걸게 되었다카더라.
하지만 결국 온갖 망언에도 눈 하나 깜짝 안하던 그조차 이번 망언은 워낙 파급이 컸던지라 다음날인 15일에 바로 깊은 사죄를 드린다면서 수습에 나섰다. 사과할 줄 알긴 아네
그러나 또 도졌는지(...) 2011년 4월 25일, 이시하라는 도민들에게 일본인이 반성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하늘이 용서치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2011년 8월 15일, 이시하라는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은 간 나오토 총리는 일본인이 아니다!라고 짖어댔다. 전범이 합사된 그런 곳을 참배하지 않는게 오히려 사람의 도리 아닌가? 8월 22일에 나온 잡지 인터뷰에도 개소리를 했는데 "일본인들은 금전욕구와 물욕과 성욕만 갖고 있는 한심한 종족이다."라는 말이 껴 있었다. 결국 이시하라는 간 나오토를 칭찬한 셈이 되었다?
사실 야스쿠니 신사는 아키히토 덴노, 그러니까 이시하라 신타로를 위시한 일본 극우파들이 떠받들어야 할 대상인 사람조차 참배를 안한 곳이다. 그런 곳을 참배 안했다고 까니...불경죄? 참고로 아키히토는 평화를 지향하는 철저한 반전주의자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2012년 4월 25일에는 시즈오카 현의 영화 촬영장에서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사람들 앞에서 때린다고 철권통치를 예고. 이유는 아사히신문 23일 석간의 이시하라 비판 기사 때문이라는듯. 비판은 하되 비난은 하지 말라고 했다는데 누가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지 원.[18]
2012년 10월 25일에는 일본의 청년들을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5월 14일에는 군대와 매춘은 불가분의 관계라면서 하시모토 도루의 일본군 위안부 망언에 쉴드를 치고 나섰다.
2013년 5월 18일에는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2차 세계대전은) 침략이 아니다.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 역사에 관해서 무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지한 것은 네놈이다
한국에 대한 망언 문단에서 이미 나왔지만 "북한이 중국에 통합되는 것이 최선이고, 한국이 반대할지라도 결국은 자신들에게 이익이다."는 망언을 했는데 이 경우 일본의 안보적 부담 및 위협은 지금보다 수 배로 증가하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건 자국의 안보적 부담이 증가하는 게 최선이라는 의미가 되어 자국에 대한 망언도 된다.
어떻게 보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사람으로 보인다. 아니 그냥 생각을 안하는 거다.
5 도쿄도 청소년 건전육성 조례
도쿄도지사 시절 그가 추진하여 꼰대 소리 들으며 백만 안티를 양성한 조례다. 제목만 봐서는 여성가족부 같다.
5.1 일본 만화와 애니를 죽여라
2010년엔 '각종 매체의 비실재 청소년 표현을 규제하는' 법을 내놓았다가 만화가들의 반발을 샀고, 이 일로 그는 오타쿠들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하지만 결국 이 법은 부결되어 한숨 돌리나 했는데...이후 비실재 청소년 표현 규제는 아니지만 범법적 행위의 묘사에 대한 규제안이라는 흡사 만화계와 타협한 듯하면서도 실제론 더 폭넓은 규제안을 내놓으며 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속칭 도쿄도 조례라고 부르는 법안이다.
하지만 이번엔 아키모토 오사무 같이 예전에 세간의 눈치를 보느라 비실재 청소년 규제안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던 소년 점프 및 집영사계 잡지 연재 중인 만화가들까지 극구 반대에 나섰고, 자타공인 극우계열 만화가임에도 불구하고 이시하라 신타로를 대놓고 싫어하는(...) 쿠메타 코지도 이 대열에 합세했다. 그는 절망선생 25권에서 단행본 발매시기에 열렸던 도쿄도지사 선거 투표를 독자에게 권유했고, 노골적인 낙선 운동 25권에 수록된 247화에선 태양의 계절에서 나왔던 19禁 묘사인 검열삭제로 문지방 뚫기(…)를 하고 있는 이시하라를 출연시켜 도쿄도 조례를 풍자하는 등 안티 이시하라임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법안은 논란 속에서도 결국 통과되긴 했는데, 결국 업계의 반발 때문인지 가상의 아동 포르노. 즉, 만화나 게임, 애니메이션들에 대한 부분은 대부분 대상외로 변경된채 통과되었다. 덕분에 일단 덕후들이 걱정할(?)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 법안 탓에 부녀자들은 2011년 3월 '이시하라 신타로 온리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태양의 계절에서 따와서 이차원의 계절.
당연히 출판사들은 이 법안에 대한 항의로 도쿄 국제 아니메 페어를 단체로 보이콧해버렸다. 이에 대해 이시하라는 "안 와도 좋다. 내년엔 제발 울면서 참석시켜달라고 할 거다."면서 한껏 허세를 부렸지만, 포켓몬스터 애니메이션 시리즈 같은 아동용 애니메이션 업체들까지 제대로 등을 돌려버려, 행사를 개최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이시하라는 출판사들에게 참석해달라고 고개를 숙이며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나며 도쿄 국제 아니메 페어 2011년 행사는 중지되었다.(...)
그런데 정신을 못차렸는지 하트 커넥트 성우 낚시 사건를 빌미로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아예 작정하고 죽이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성우라는 직업자체를 폐지할 계획을 세워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다.
5.2 일본 게임을 죽여라
상술한 만화/애니 업계에 대한 도쿄도의 탄압 정책에 게임 업계에서는 "진작에 우리처럼 자체규정을 엄격하게 정해서 실행했어야지 하하하!!"라며 강건너 불 구경하고 있었는데...아니나 다를까 게임업계에도 같은 법안을 적용한다고 해서 한순간 초상집 분위기가 되었다. 이에 대해 일본 비디오게임 자체심의기관인 CESA회장 曰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거기에 이시하라 신타로가 과거에 쓴 불쏘시개책 '스파르타 교육 ~강한 아이로 키우는 책~'(한국에선 '아들을 남자답게 키워라'로 출간됨)에서 쓴 그의 주장들이 법안상 각종 규제와 모순되는 말들이 많은 걸로 밝혀져 안티들에게 좋은 조롱거리를 던져줬다. 몇 가지 추려보면 아래와 같은 말들이 그 책에 들어가있다.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던 간에 부모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럼 19금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계시의 힌트가 숨겨진 책을, 부모가 그의 짧은 인생경험으로 좋은 책과 나쁜 책으로 나누는 것은 자기 분수에 맞지 않은 월권행위가 아닌가.」
「인간의 상상력을 키우는 비료가 되는 독서를 어떤 기준으로 좋고 나쁨으로 나누는 것 만큼 근거없는 짓은 없다. 그 좋고 나쁨에 부모가 진부하고 통솔적인 도덕을 적용할수록 아이들의 장래성을 망치는 짓은 없다.」
「내 가정에선 마누라나 어머니는 반대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누드 사진이 범람하는 잡지를 숨기지 않도록 하고 있다.」[19]
그야말로 궁극의 이중잣대. 물론 본인은 과거에 자신이 집필한 작품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그걸 영화로 만드나? 그러고보니 그 책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요절하는 아버지가 이상적인 아버지이다.」 80 넘게 장수했으니 본인도 이상적인 아버진 아니게 되었다 돈 벌라고 기억도 못하는 아무 말이나 쓴 모양
6 트리비아
너구리알 작의 불멸의 이순신이란 게임에서는 자폭왜구로 나온다.(...) 안습
과거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지랄주장하기도 했다. 집권당이 되면 이걸 추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망했어요 중국의 영토 위협, 북한의 도발 등 일본의 안보 상황을 살펴보면 핵을 보유할 명분은 지속적으로 생기고 있기 때문에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국민감정 딴에는 이 주장에 동조할 수도 있으나, 현실은 평화헌법과 자위대의 전수방위 원칙에도 위배될 뿐더러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핵 자체에 대한 불신이 커져버려 물건너갔다는 평이 높다. 그래서 헌법을 자꾸 개정하려고 하는구만 결정적으로 미국이 이것을 허용할 리도 없고...애당초 미국은 핵확산에 대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 등 주변국도 반발했다. 이에 대해 미국 언론에서는 '열폭에 싸인 일본 국민들의 심리를 이용하려는 술책'이라고 깠다.
한땐 콩깍지 씌인 일본 청년들에게 인기가 좀 있었는지, 그가 도쿄도지사 시절인 2011년 25세에서 34세 사이의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어떤 조사에선, 현역, 은퇴 정치인 중 가장 총리에 적합한 인물 2위로 뽑히기도 했다.[20] 물론 전체로 가면 택도 없지만 넘어가자 하지만 이후 거품이 빠졌는지(...)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선 본인이 창당한 차세대당이 고작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했고, 비례대표로 입후보한 자신도 낙선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한 문단으로 이시하라 신타로를 정리하자면, 일단 주변국과의 역사, 외교 문제에 있어 막가파 까막눈에다가 누구나 할 수 있는 속 좋은 소리나 하면서(ex 미국을 이기자) 정작 그것을 현실로 만들 방법은 내놓지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상술했듯 일본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산업이 일본의 소프트파워에 얼마나 공헌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오히려 무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극우 성향의 비뚤어진 애국자조차 아닌 그저 자극적인 언행과 비현실적인 공약으로 표 좀 벌어보려던 구시대적 사고를 가진 전직 정치인 A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6.1 유사품(?)
사실, 구시대적 마인드를 가지고서 별의별 트러블을 일으키면서도 정당이나 성향, 인기 등으로 대충 넘어가는 케이스는 신타로 1명만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예를 들자면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펜이나 북아일랜드의 이언 페이즐리,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지리놉스키 등이 있다. 다만, 르펭은 프랑스에서도 안티가 엄청나며[21] 벌금형에 소송제기에 고소에 피선거권 박탈이니 뭐니 꽤나 수난을 당하는 거와 달리 이 인간은 일본에서 상대적으로 참 평온하게 지내니(...) 극과 극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로 르펭은 2011년 1월 82살 노령으로 정계를 은퇴했다. 대신 그의 당은 역시 극우 정치인으로 활약하시는 그의 딸 마린 르펜이 이어받았다.
일본 내에서 비슷한 강도의 망언을 하는 작자로는 구 민주당, 일본 유신회 의원이었던 니시무라 신고 등이 있다.[22] 근데 이쪽은 자국민 험담은 하지 않는다.(...) 다만 민주당 당적일 때부터 TV쇼프로 등에 나와 상당한 혐한 스멜을 풍겼으며(우리 일본인은 솔직히 한국인이 싫다), 이후 극우 성향의 일본 유신회 소속으로 들어갔으나 "종군위안부가 성노예로 전환되고 있다. 매춘부와 성노예는 다르다", "일본에는 한국인 매춘부가 우글우글하다. (중략) 번화가에서 '너, 한국인, 위안부지?'라고 말해도 될 정도다" 등의 신들린(...) 망언을 내뱉다가 극우 정당인 일본 유신회에서까지 제명당했다.
6.2 자식 관련
2006년에는 도쿄 도의 예산으로 자신의 넷째 아들을 실질적으로 후원했다는 것이 딱 걸려서, 이것이 매스컴에 보도되었다. 도쿄 원더랜드의 스테인글래스의 원화제작을 노부히로에게 맡기고 제작비 300만원을 지불한 것이다.[23] 아들이라는 이유로 작품을 맡겼냐는 항의에 대해 "실력이 있어서 의뢰했을 뿐이다."라고 항변했지만, 그의 넷째아들인 노부히로는 그 당시까지 수상경력은 고사하고, 한 번도 개인전을 연 적이 없었던 사람이다. ...개인전을 가지지 못한 것과 실력은 관계없다는 건가? 그래도 이게 켕겼던 건지, 그 후에는 자국 내 갖가지 전시회에 끼워넣기로 간간히 출품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구설수를 떠나서 노부히로는 예술가로써의 실력만큼은 분명히 있다. 구설수에 오르기 전에는 도쿄 일대의 갤러리에서 젊은 작가로 주목을 끌고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2010년에는 한국 인천에서 열리는 예술제에 참석하고 출품도 했으며 평가도 좋았다. 다만 신타로 아들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그 후 한국에서의 초청은 끊겼다. 본인도 자꾸 구설수에 휘말리는 게 부담이었는 지 2010년경부터는 계속 해외에서 미술관계 일을 하며 돌고 있다. 해외로 돌면서 구설수도 끊겼다. 2013년에는 중국발 뉴스로 그가 자살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
장남 노부테루도 자민당 간사장 출신으로 매우 충실한(...) 수구꼴통이다. 2011년 도지사 재출마가 아들내미 정치적 영향력 보장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나올 지경. 2011년 9.11 테러 10주기에서 자민당 간사장인 장남 노부테루가 9.11 테러는 역사의 필연이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되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네
하지만 2012년이 되면서 이시하라와 장남 노부테루 사이가 점점 험악해지고 있다. 이시하라가 자민당을 대체할 신당을 창당하겠다라고 선언한 탓. 이시하라는 자신과 코드가 비슷한 하시모토 토오루 오사카 시장등을 영입해 신당을 만들려는 구상을 하고 있는데 자민당 의원도 영입하겠다라고 하면서 노부테루를 경악시킨것.
노부테루도 자민당 간사장을 맡고 있고 간사장은 사실상 차기 당대표를 예약한거나 마찬가지인 자리라 노부테루가 아버지때문에 부글부글 끓어오를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시하라가 자민당을 뛰쳐나가서 신당을 차리는것도 곤욕스러운 마당에 자민당 의원까지 빼내가겠다고 하니 자민당내에서의 노부테루의 입지가 좁아질것은 불문가지. 당대표는 집권시에 자동으로 총리가 될수 있기 때문에 노부테루 입장에선 아버지가 아들 앞길을 가로막는 상황에 처한 꼴이다. 이 때문에 이시하라의 부인까지 아들의 앞날을 생각해서 신당창당은 하지 말아달라고 읍소하고 있지만 이시하라는 기어코 신당을 창당해서 차기 총선에 출마해 총리가 되겠다는 야심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자민당내 간부들이 노부테루에게 '이시하라 도지사의 아들입니다'라는 자기소개를 그만두도록 권고했다. 자민당 간사장이 도쿄도 지사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이부키 전 간사장은 도리어 불초 아비가 세간을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나가야 할 것 아니냐고 일침. 출처
하지만 이시하라의 야망과는 달리 하시모토와의 회동에서 결국 보수신당 창당은 무산되고 말았다. 하시모토가 이시하라를 높게 평가하고 존경하는 부분은 있지만 원전 문제나 증세 문제에 있어서 서로의 입장차가 뚜렷한 탓에 이를 줄일수가 없었다고. 사실상 하시모토와의 연대가 없으면 이시하라의 야망은 성사되지 못할것이 분명해 보이는지라 노부테루만 오질듯 하다. 결국 이시하라의 야망이 좌절되고 아들인 노부테루는 다니가키 대표의 후임을 뽑는 선거에 당당히 출마했다. 당초 재임을 노리던 다니가키 대표였으나 노부테루의 배신(...)에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고. 여담이지만 애비인 이시하라도 자민당 대표선거에 출마한적이 있지만 미끄러졌었다.(...) 노부테루도 강력한 주자인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출마하는 바람에 미끄러질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고, 결국 아베가 또다른 망언제조기 아소 다로와 힘을 합쳐 제2기 아베 정권을 만들었다.
하나 재밌는건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우익들이 독도를 되찾아라! 하고 난리칠 때 이 인간은 웬일인지 어차피 차지하기 힘든 독도는 놔두고 센카쿠 열도나 집중하라는 발언을 하였다. 따져보면 독도보다 (이미 자기네가 차지하고 있는) 센카쿠 쪽이 실익이 더 많다는걸 저울에 재고 한 말일 뿐이지만, 중국(+대만)도 영토 분쟁에 무관심하진 않다.
차남인 이시하라 요시즈미는 배우인데, 나친적 실사 영화판에서의 개그 캐릭터 카시와자키 페가수스를 맡기도 했다.
6.3 문화 관련
우주전함 야마토 부활편의 각본을 담당했다. 물론 야마토 팬의 평가가 안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위해 죽으러 갑니다'(<俺は君のためにこそ死ににいく>, 2007)라는 카미카제 소재 영화의 각본과 총제작지휘를 하기도 했다.
6.4 토츠카 요트 스쿨 관련
이시하라는 1987년부터 토츠카 요트 스쿨을 지원하는 모임(戸塚ヨットスクールを支援する会)의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시하라 본인부터 요트 애호가이기도 하고. 다만 요트를 좋아하는 건 개인의 취향이니 뭐라 할 수 없지만, 토츠카 요트 스쿨 사건을 보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다.- ↑ 참고로 일본인 남성 평균신장이 170cm를 돌파한건 1960년대생부터고, 이시하라 신타로와 비슷한 연배인 1930년대생 일본 노인들 남성 평균신장은 160cm대라는 점에서 정말 큰 키이긴 하다.
하지만 키에 비례해 인격도 성숙하지 못한건 함정 - ↑ 히토츠바시는 일본 내에서 좌익 학풍으로 유명한 학교다. 어쩌다 이런 사람이 나왔는지...
지능적 안티? - ↑ 사실 태양족은 일본식 로큰롤/로커빌리문화, 다시 말해 미국식 그리서 문화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 ↑ 이때 도쿄도지사 직에 출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미노베 료키치에 밀려서 낙선. 그래도 상당히 따라잡기는 했다.
- ↑ 나리타 국제공항의 철도 접근성을 개선한 것이 운수대신 할 때의 업적이다.
- ↑ 아오시마 유키오(1932~2006).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도쿄 도지사를 지냈다.
- ↑ 신문에서조차 "망언제조기"라고 쓴다.(...)
- ↑ 이에 대해 오에 겐자부로는, '민도'란 (일본 민속학의 대부인)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도 자신의 방대한 저서에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차별적인 단어인데 그걸 썼다고 깠다.
- ↑ 기사에도 나와있지만 이시하라 신타로는 박정희로부터 직접 이 같은 내용을 들었다고 말했다.
- ↑ 이사하라 지사의 발언에 기부금을 모으긴 했지만 결국 일본 정부가 개인 소유였던 센카쿠 열도를 국가 명의로 매입했다. 매입 금액은 20억 5000만엔.
- ↑ 그나마도 이나모토의 오프사이드 골이 인정되는 오심으로 이긴거다.
- ↑ 원문은 ババア. 해석하자면 '할망구' 혹은 '할매'쯤 된다.
- ↑ 2011년 3월 24일 수돗물을 공급하는 가나마치 정수장에서 어른들은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며 시음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 찡그린 표정이 억지로 먹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왼쪽에 있는 남자의 표정을 보시라.
- ↑ 완결편 제작 전에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불법총기소유와 마약사건 후 절교를 했다곤 하지만 완결편의 각본은 절교 전에 썼다.
- ↑ 니시자키는 그래도 작품은 잘 만드는 능력있는 사람이지만, 이시하라는…
- ↑ 사망한 부모를 사망신고하지 않고 노령연금을 장기간 부당 수령한 것이 잇따라 적발되었던 사건을 말한다. 일본에서 대지진 발생 전에 한동안 사회 문제로 아주 큰 논란이였으나 당연히 대지진으로 사실상 언급이 잘 안되기 시작함.
- ↑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 현의 일부 선거는 지진으로 연기되었지만, 도쿄도지사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졌다.
- ↑ http://headlines.yahoo.co.jp/hl?a=20120425-00000004-jct-soci
- ↑ 물론 이 말 자첸 부모가 저런 잡지는 매출을 위해 선정적으로 과장, 연출한 것이라는 식으로 가이드 해주면 왜곡된 성관념을 막아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타당한 면도 있다. 하지만 문젠 이런 리버럴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저딴 조례를 내놓았다는게(...) 그야말로 부조리 개그라 이 발언도 덩달아 까였다.
- ↑ 재미있는 사실은 동시 진행된 '일본 연예인, 유명인 중 총리에 어울리는 인물' 조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2위로 뽑혔다는 것이다. 1위는 코미디언 겸 영화감독 기타노 타케시.
- ↑ 인터넷에 홈페이지 만들기 무섭게 해킹을 마구 당할 정도.
- ↑ 다만 민주당 당원들은 대부분 우익들에게 부정적이라, 이 사람 정도면 민주당 내에서 가장 우익적인 사람이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일본 유신회로 넘어간거지만.
- ↑ 이외에도 2004년 1월에도 다른 작품을 맡기고 약 120만엔을 지불한 전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