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戸塚ヨットスクール事件
1 개요
1983년까지 아이치현 치타군 미하마쵸의 요트 전문학교 '토츠카 요트 스쿨(공식 홈페이지)'에서 발생, 발각되어 사회문제로 전개된 일련의 사건으로 일본판 해병대 캠프 사건이기도 하다.
본래 요트선수 출신인 토츠카 히로시[1]가 1976년에 설립한 토츠카 요트 스쿨은 초기에는 일류 요트선수들을 기르기 위한 취지로 요트와 윈드서핑 조종법 등의 항해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였다. 그 후 정서장애 등에 토츠카의 '뇌간론'이 효과가 있다고 매스컴에서 붐이 일어 토츠카도 지도를 요트에서 생활지도 등으로 바꾸고 부모들이 요트 스쿨에 맡긴 학생들이 많아졌다. 교육계의 카리스마로서 매스컴에서는 호의적으로 다루었지만 나중에 사건이 발각되었다. 그리고 2013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터졌다.
2 발각
일반아동 및 청소년 대상 요트스쿨인 토츠카 요트 스쿨에서 훈련생이 사망・상해치사・행방불명이 된 사건이 1980년대를 통해 매스컴에 다루어져 스쿨의 방침이 교육적인 체벌이라기보다 가혹한 폭행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여기에 보내진 아동 및 청소년의 상당수가 은둔형 외톨이, 정서장애, 등교거부와 갖가지 폭력 등을 일삼은 비행청소년 등으로 일단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인데 부모가 억지로 보내면서 문제가 더 커진 것도 있었다.
- 1979년에서 1982년에 걸쳐 훈련중 훈련생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되는 사건이 다수 발생.
- 1982년에 일어난 소년의 사망에 관해 경찰은 당초에는 과도한 체벌에 의한 사건으로 보고 있었지만 시신에서 다수의 타박・내출혈의 흔적・치아 2개의 손상 등이 확인되어 1983년 상해치사 혐의로 스쿨 내를 수사. 그 후 코치가 타봉(舵棒)이라 불리는 요트의 부재(방향을 잡기 위한 도구)로 소년의 전신을 구타, 그 후 요트 훈련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 밝혀져 조직 단위의 범행으로서 교장을 포함한 관계자가 체포, 다른 사망사건에 대해서도 기소되었다.
- 1983년 6월 13일, 토츠카 히로시 교장을 비롯한 코치진 전원이 체포되고 요트 스쿨 역시 일시 폐쇄되었다. 이때 구류중인 토츠카 교장은 자신의 스파르타식 교육철학인 '뇌간론(脳幹論)[2]'을 완성했다.
- 1986년 7월, 토츠카 교장이 보석으로 3년 만에 출소하고 요트 스쿨을 재개하였다. 이후 이듬해에 '토츠카 요트 스쿨을 지원하는 모임'을 만들어 이시하라 신타로를 회장으로 앉혀 학교를 지원하는 활동을 하도록 했다.
- 1992년 7월 7일, 나고야 지법은 토츠카 히로시와 코치들에게 상해치사죄를 인정. 토츠카 히로시는 징역 3년, 집행유예 3년(검찰측의 구형은 징역 10년), 코치들에게는 징역 1년 6월에서 2년 6월, 집행유예 2년에서 3년을 선고했다. 이에 대해 검찰측과 스쿨 측 양쪽에서 항소했다.
- 1997년 3월 12일, 나고야 고법은 '훈련은 인권을 무시. 교육도 치료도 아니다'라고 하여 1심 판결을 파기, 토츠카 히로시에게 징역 6년, 코치 3명에게도 실형 판결을 내렸다. 토츠카는 즉시 상고하며 이듬해에는 세계인권선언까지 지적했다.
- 2002년 2월 25일, 최고재판소는 2심판결을 지지하여 토츠카의 상고를 기각. 이로써 토츠카의 징역 6년과 코치진 등 기소된 15명 전원의 유죄가 확정되었다. 기소로부터 판결까지 19년이 걸린 장기재판이었다. 이때 스쿨측은 남은 코치들을 중심으로 운영을 이어나갔다.
- 2006년 4월 29일,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3] 토츠카가 출소. 앞으로도 요트 스쿨을 계속할 의향을 밝혔다.
3 훈련중 일어난 사망 및 행방불명 사고
- 1979년 : 소년(당시 13세)이 사망. 토츠카는 '저체온증에 의한 것으로 체벌과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 병사로 취급되어 불기소되었다.
- 1980년 : 입교 4일째 폭행에 의하여 청년(당시 21세)이 사망. 코치들의 폭행에 의한 것으로 상해치사로 기소
- 1982년 : 소년 2명(당시 15세)이 배에서 뛰어내려 행방불명. 체벌에서 피하기 위해 뛰어내렸다고 보아 감금치사로 기소.
- 1982년 12월 소년(당시 13세)이 사망. 입교 1주일간 폭행을 받고 토츠카와 코치들이 요트에서 몇번이고 떨어뜨려 사망. 그동안 치료는 전혀 행해지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상해치사로 기소되었다.
당시 13세였던 소년의 어머니는 주간현대(2006년 11년 18일자)의 실명인터뷰에서 '출소 후에도 분향이나 사죄가 없었다. 재범이 우려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또 1982년 배에서 뛰어내려 행방불명된 소년의 아버지도 마찬가지로 실명으로 '아들이 정말로 배에서 뛰어내렸는지를 모르겠다. 사실은 떨어뜨려진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일련의 사건은 일본에서 체벌의 정당성을 묻는 토론에서 자주 참고되고 있으며, 개인의 교육론의 전개를 위해 자주 인용되고 있다.
4 사건 이후
사건 이후에도, 사망사고나 실종 사고, 특히 훈련을 견디다 못한 수련생들의 자살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 2006년 10월, 스쿨에서 사라진 25세 남성 훈련생이 치타만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자살과 사고 양면으로 수사중이라 발표했다. 남성은 우울증으로 통원중이었으며, 시신에서 눈에 띄는 외상은 없었다.
- 2009년 10월 19일, 토츠카 요트 스쿨 숙소 3층에서 훈련생 여성이 뛰어내려 자살했다. 2011년 12월 10일에는 훈련생 남성이 뛰어내려 중상을 입었으며, 2012년 1월 9일에는 훈련생 남성이 뛰어내려 자살했다.
4.1 일본 사회의 문제점
일본의 경우 해병대 캠프나 학교 수련회, 국토대장정 같은 것이 만연시된 한국보다는 많이 낫다고 하지만 역시 빡센 훈련이 인성을 고친다는 사고 방식이 어느 정도 존재하는 국가다. 당장 구 일본군의 유산조차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그대로 새로운 사회가 만들어졌으니 더욱 그렇다. 토츠카 히로시가 정부에 의해 기존의 운영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음에도 반성하지 않고 계속 같은 방법으로 스쿨을 운영할 의향을 밝힌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요트 스쿨에 여전히 사람들이, 그것도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아 일단 병원에 우선 보내고 치료부터 한 뒤 극기훈련을 시킬지 말지 결정해야 할 사람들까지도 그대로 보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현재 토츠카 히로시 본인은 체벌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만 엄연한 체벌 긍정론자이고 작금의 교육은 문제가 많으니 그 옛날 군대식 교육으로 돌아가자고 각종 매체를 통해 개드립을 치기까지 했었다. 게다가 그는 한 방송 인터뷰에서 "체벌은 선(善)한 것"이라고까지 했다. 설상가상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유토리 교육으로 인해 청소년들의 가정내 폭력 문제와 안하무인 사태 등의 역효과를 내면서 일본 내에서도 그의 교육방식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2011년부터 유아들을 상대로 합숙회를 시작하고 2013년에는 '주니어 트레이닝부'를 세워 어린이들에게도 확대하고자 했다.
사실 1980년대에는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에 가려져서 믿기지 않겠지만 의외로 군국주의 스타일의 학교교육 및 사내연수가 꽤 인기를 끌던 시절이었다. 토츠카 요트스쿨뿐 아니라 당시 닛세이가쿠엔(日生学園)이라는 사립학교[4]나 와타나베노몬(渡辺の門)같은 입시 훈련 기관등도 토츠카 못지 않게 빡센 군대식 교육으로 유명했었다. 그리고 당시 몇몇 중고등학교들은 관리교육(管理教育)이라는 이름 하에 중고등학생들을 굉장히 엄격하게 통제했었다. 여기에 반발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토야마 코이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