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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로 부서진 열차
파리 리옹역에 세워진 추모비
사고 열차와 같은 기종의 열차
1 개요
1988년 6월 27일, 물랭 발-리옹 행 열차 Z5300이 폭주해 파리 리옹역의 2번 승강장에 있던 통근열차를 들이받아 56명이 사망하고 57명이 부상을 당한 사고다.
2 사고 전개 과정
오후 6시 36분, 파리 8km 외각서 물랭 발 파리 리옹 행 열차 Z5300이 베르 드 메종 역을 통과하다가 둘째칸의 한 여성이 비상브레이크를 작동시킨 뒤 내리고 사라졌다. 기관사 다니엘 소랭은 알람 재조정후 알람을 풀기위해 조종실로 무전을 치고 기다리라 하지만 이게 생각보다 많이 지체되어서 6시 40분에는 안의 승객중 몇 명이 기다리다 지쳐 열차에서 내렸다. 7시 2분이 되서야 브레이크를 고치고 예정시간보다 26분 늦게 열차가 출발했다. 통제관 톨렌스는 열차가 늦었으니 메종 알 포레 역을 건너뛰고 바로 리옹까지 가라 지시하고 기관사는 시속 100km로 속도를 올리자 7시 7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경고 표시인 노란등이 들어온다. 기관사는 브레이크를 작동 시키지만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았다.
한편 파리 리옹역에선 7시 4분에 2번 승강장을 떠나야할 열차에 문제가 발생했다. 기관사 탕기는 준비가 다 됐는데 차장이 오지 않은 것이다. 열차가 연착되고 퇴근시간이 다 되자 열차에는 승객이 계속해서 타기 시작하고 이후 열차는 만원이 된다.
Z3500의 폭주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이고 브레이크가 간신히 작동하긴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1] 기관사는 차장에게 수동제동기를 찾으라 명령하고 리옹 역 조종실에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경고를 보낸 뒤 무선 경보 신호를 울렸다. 리옹 역 조종실에선 경보가 울리자 통근열차를 대피시키고 신호 담당자는 모든 녹색불을 붉은불로 바꾸고 모든 열차를 세웠다. 기관사는 열차의 모든 승객을 맨 뒷칸으로 피신시키고 충격에 대비하라 말했다.
리옹역 2번 승강장에서 출발이 지연됐던 열차의 차장이 도착하고 폭주 열차는 리옹역으로 진입하는 내리막에 들어갔다. 기관사는 모든 승객을 대피시켰으나 차장은 여전히 수동제동기를 찾는 상황이었고, 신호조작자가 폭주열차의 돌진을 알아 차리지만 안전 시스템이 작동 하지 않아 열차는 비어있는 플랫폼이 아닌 만원 통근열차에 돌진했다.
통근 열차의 기관사는 열차가 돌진중이란 걸 알아차리고는 안내방송으로 열차 안의 모든 승객에게 즉시 열차에서 내리라 방송하고 승객들이 내리는 와중에 자신은 대피하지 않고 계속해서 방송을 하며 승객들에게 내리라고 지시하다가 열차와의 충돌로 즉사한다.[2]
폭주 열차가 통근열차와 충돌하며 서로 칸이 융합되고, 큰 먼지 구름이 발생하고 이후 가라앉았다. 폭주열차에서는 모든 승객이 뒷칸으로 대피해서 충격만 느꼈을 뿐 피해는 없었으나 통근열차에서는 사망자가 속출했다.
7시 20분, 구조대원들이 시체조각이 가득한 사고현장에 도착하고 시체수습과 부상자 구조에 나섰다. 밤 11시에는 당시 파리 시장이었던 자크 시라크와 교통부 장관도 사고 현장에 방문했다.
구조가 다 끝나고 56명의 사망자와 5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3]
3 사고 조사
사고 다음날 12시, 폭주열차와 통근열차가 분리되고 폭주열차는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기 위해서 조사팀에게 끌려갔다.
3일 후 차체조사를 하던 도중 브레이크 밸브가 잠겨있어서 안이 막힌 것을 확인한다. 고의적인 브레이크 조작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언론서는 비상 브레이크를 작동한 여성을 찾았다. 해당 여성은 21세의 독신모로 시간표가 바뀐지 몰라서 정차시간을 몰라 역을 놓칠까봐 비상브레이크를 당기는 병크를겼다고 말했다. 어째 인천대교 김여사가 연상되는건...
이후 조사 도중 기관사의 병크들이 밝혀진다.
브레이크 손잡이를 열려다가 힘이 안 되자 브레이크 레버를 지렛대로 사용해 손잡이를 잠그다가 브레이크 레버를 잠갔다.[4] 그러면서 기차 브레이크 엔진에 공기공급이 차단되며 맨 뒷칸 브레이크가 켜짐 위치에 놓여진 채 잠겼다. 그것도 모자라서 브레이크 시스템의 기실을 없애야 브레이크가 풀릴 거라 생각하고 기관실칸을 제외한 승객칸 7곳의 기실을 모두 뺐다. 결국 브레이크가 풀리긴 풀렸으나 시스템 안에 있던 공기들이 빠져나가며 승객칸 7곳의 브레이크가 무용지물이 됐다. 완전히 작동하는 곳은 기관실뿐으로 결국 브레이크의 작동력을 8분의 1로 줄인 셈. 이 상황에서 기관실의 브레이크 시스템 압력은 기관실만 보여줘서 정상적으로 표시됐고 기관사는 이를 보고 정상이라 착각했다.
거기다 기관사가 차장에게 찾으라 한 수동제동기는 정지중인 열차에만 작동하고 고속주행중인 열차에는 써봤자 소용 없는 물건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공기 브레이크 외에 존재했던 전기 브레이크는 사용도 안했다.[5][6]
통제관과 교신하며 자신의 이름과 위치를 정확히 밝혔다면 사고를 막는데 도움을 줬겠지만 기관사는 당황한 나머지 브레이크가 안 먹힌다고만 말하고 이름과 위치는 밝히지 않았다. 통제관이 다시 불렀지만 이미 기관사는 기관실을 떠난 상태였다. 통제관과 역무원이 당시 진입중이던 4대의 열차에 연락하고 연락이 안 오는 1대를 정지하는 방법도 있긴 있었으나 기관사가 기관실을 떠나기 전에 전체 경보를 울렸고, 이게 선로의 모든 열차에 울리면서 전화가 폭주해 무슨 열차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리옹역의 승강장 지정기술로 승강장을 미리 지정해 사고전에 미리 막을 수도 있었지만 신호조작자에게 철도 수동 통제권을 주기위해 자동 승강장 지정 프로그램을 무시했고 결국 사고를 불렀다.
4 사고 이후
신호 조작자와 브레이크를 작동한 독신모는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기관사는 과실치사혐의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사고를 막기위해 새로운 시스템들이 도입됐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은 기관사와 승객이 직접 통화해 기관사만이 비상브레이크를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인터콤 시스템이다. 기관사 훈련과정 또한 바뀌었고, 브레이크 레버도 교체되었다.
2002년에 파리 리옹역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 시속 45km까지 줄어들긴 했으나 리옹 역으로 가는 내리막에서 속도가 다시 증가했다.
- ↑ 이후 언론에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살리려다가 사망한 영웅으로 기록된다.
- ↑ 한 부상자는 심장이 멈추기도 했으나 심폐소생술덕에 다시 살아났다.
- ↑ 거기다가 해당 절차는 원래 기술자를 불러야 했으나 기관사가 귀찮고 빨리 가고 싶어서 안 부르고 직접 한 것으로 드러났다.
- ↑ 전기브레이크와 공기브레이크를 혼용하면 고장이 나기도 해서 기관사중에는 전기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 ↑ 원래 해당 사고차량의 브레이크 계통은 전동차에서 흔히 구경할 수 있는 전기지령식 공기브레이크나 전자직통 공기브레이크도 아닌 기관차에서나 사용하는 자동 공기브레이크였다. 전 항에서 언급했다시피 자동 공기브레이크 시스템에서는 전기 브레이크와의 블렌딩도 안되고 고장도 났기에 이 사고때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철도차량 관련 어느 교재에서는 자동 공기브레이크를 동차형에는 쓸 수 없다는 설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