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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d Fiesta
얘네가 아니다
1 개요
1976년에 데뷔해 현재 6세대에 걸쳐 생산되고 있다. 피에스타는 유럽,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중국, 인도, 대만, 태국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생산되어 왔다. 피에스타는 1976년 생산 이래 1600만대 이상 판매되어 왔으며, 포드 에스코트와 포드 F 시리즈에 이은 포드의 베스트셀러 모델이다.
2 역사
피에스타는 원래 "Bobcat"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개발되었으며, 경쟁차종인 피아트 127과 르노 5의 출시에 바로 뒤이어 1972년에 헨리 포드 2세에 의해 개발이 승인되었다. 이 차의 개발 목표는 현재 판매중인 포드 에스코트의 단가보다 100 달러를 낮추는 것이었다. 피에스타는 피아트 127보다는 긴 휠베이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에스코트의 그 것보단 짧았다. Bobcat 프로젝트의 최종 디자인 제안은 카로체리아 기아의 Tom Tjaarda에 의해 만들어졌그며, 생산 승인은 1973년 12월에 독일 쾰른과 영국 에섹스의 포드 엔지니어링 센터에서 이루어졌다.
포드는 연간 50만대의 피에스타가 생산될 것이라고 추정했으며, 스페인 발렌시아에 새로운 현지공장을 지었다. 원래는 트랜스 액슬만 생산하는 공장이었으나, 후에 조립 생산라인의 확장으로 인해 완성차도 생산하게 되었다. 본래 "피에스타"라는 이름은 올즈모빌 88의 트림명으로 쓰고 있던 제너럴 모터스가 상표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너럴 모터스가 포드에게 상표권을 내 주면서 쓸 수 있게 되었다. 본래 포드 측 임원들은 브라보(Bravo)라는 이름을 쓰고 싶어했지만, 당시 포드의 회장이었던 헨리 포드 2세는 피에스타라는 이름을 가져다 쓰기로 결정을 내렸고 1975년 12월에 명칭을 공개했다.
2.1 1세대 (1976~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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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6월에 르망 24시 경기장에서 공개되었으며, 9월에 프랑스와 독일에서 판매가 시작되었다. 영국은 한발 늦은 1977년 1월부터 판매가 이루어졌다. 피에스타는 4단 수동변속기와 포드 켄트 OHV "발렌시아" 엔진을 조합해 기술적으로는 평범했고, 생산 속도를 늘리고 비용을 절감하는 것을 목표로 동력계통 패키지를 개발했다. 서스펜션은 동시대 경쟁차들이 쓰는 토션 빔 서스펜션 대신에 코일 스프링을 사용했으며, 앞바퀴에는 맥퍼슨 스트럿 서스펜션을 기초로 세로배치 압축 링크와 하부 컨트롤 암을 장착한 "트랙션 컨트롤 암(track control arm)" 을 적용하고, 뒷바퀴에는 빔 액슬과 트래일링 링크, 파나르 로드를 사용했다.[1] 모든 라인업은 12인치 휠이 기본이었으며, 앞바퀴에는 디스크 브레이크를, 뒷바퀴에는 드럼 브레이크를 장착했다. 특히 포드는 피에스타를 개발하면서, 정비가 쉬운 패키지를 짜는 데 공을 상당히 들였다.
포드 피에스타 슈퍼스포츠 | 포드 피에스타 XR2 |
피에스타는 포드 타우누스 P4와 포드 코셀 이후 최초의 앞엔진 앞바퀴굴림 구성이 적용된 포드 차종으로, 포드의 앞바퀴굴림 차들로서는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다. 엔진은 957cc와 1117cc 발렌시아 4기통과, 1298cc와 1597cc 크로스플로우 4기통 엔진이 제공되었고, 기본형과 포퓰러(Popular), L, GL, 기아, S, 심지어는 승용밴에 걸친 라인업이 제공되었다. 영국 현지에서는 복스홀 셰베트 이후 최초로 생산된 해치백 소형차라는 의의를 남겼으며, 1979년에는 100만번째 피에스타가 생산되기도 했다. 특히 1978년에는 복스홀 셰베트를 제치고 영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형차로 기록되었다.
북미 사양 피에스타는 독일 자를루이에서 생산되었는데, 기본형, 데코르(Decor), 스포츠, 기아의 4개 라인업이 제공되었으며, 유럽 사양보다 구형 사양의 1596cc 엔진을 사용하되 촉매 변환기와 공기 펌프를 장착해 미국의 엄격한 배기가스 규정을 만족시키고자 했다. 또한 5마일 범퍼와 반사등, 원형 밀봉 헤드램프, 개선된 안전 설계 등을 적용해 안전 규정에 대비했으며, 유럽에는 제공되지 않았던 에어컨 옵션도 준비했다. 북미에서는 포드 에스코트가 피에스타의 자리를 대신했고, 6세대 피에스타가 미국에 들어올 때까지 북미 포드 라인업은 준중형 라인업인 에스코트와 포커스가 막내를 담당했다.
포드 피에스타 플라이 | 북미시장용 포드 피에스타 |
영국에서는 장애인 운전자들에게 맞춘 차량인 "Motability"를 지원하는 제도를 만들면서 피에스타도 휠체어 탑승자를 위한 개조차량의 베이스로 많이 쓰였고, 스포티 버전인 1.3 슈퍼스포츠(Supersport)도 1980년부터 1298cc 엔진과 검은색 플라스틱 트림, 원형 안개등, 범퍼로 옮겨진 방향 지시등이 적용된 체 출시되었고, 최고시속 169km/h에 제로백 9.3초를 기록했다. 나중에는 대형 원형 헤드램프와 1597cc 엔진을 얹은 XR2도 등장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1981년에는 충돌 테스트 규제를 맞추기 위해 크기를 키운 범퍼를 장착하고, 2세대 모델을 준비할 동안 상품성을 유지하고자 여러 가지 개선도 거쳤다.
여담으로 1979년에 포드에서는 카로체리아 기아를 통해 만든 "피에스타 투아레그(Fiesta Tuareg)" 오프로더 컨셉트카를 만든 적이 있다. 또한 1981년에는 영국의 카로체리아(코치빌더)인 크레이포드(Crayford)가 데이비드 맥뮬란(David McMullan)의 손을 거쳐 디자인된 "피에스타 플라이(Fiesta Fly)" 카브리올레는 만든 적이 있었다. 생산 대수는 알려진 게 없으나 1983년 9월에 "오토카" 지가 보도한 바로는 100대가 만들어졌고, 일반적으로는 대강 200대가 만들어져 83대 가량이 운행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크레이포드는 2세대 피에스타 2대를 가지고 카브리올레를 만든 적도 있었다.
2.2 2세대 (1983~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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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식 3도어 | 1986년식 패널 밴 |
1983년 여름 후반기에 출시된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공기저항을 낮추는 데 푹 빠져 있었던 포드답게 랩어라운드 헤드램프를 장착했고, 인테리어도 새로 갱신했다. 엔진 라인업도 훨씬 다양해진 것은 물론 다른 차들에도 빠르게 적용되어가던 5단 수동변속기가 1984년부터 적용되었으며, 새 엔진과 변속기를 수용하기 위해 프론트 트랙[2]이 33mm 넓어졌다.[3] 처음에는 975cc와 1117cc 발렌시아 엔진만 적용되었으나 이 두 엔진도 연비 개선을 위해 가변 벤투리[4]를 장착한 카뷰레터가 설치되었고, 1298cc CVH 엔진이 1984년에 출시되면서 보닛 위를 볼록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또한 1984년에는 1597cc CVH 엔진을 장착한 XR2를 스포티 버전으로 출시해 대형 바디킷을 적용했고, 또한 포드 에스코트에서 가져온 96마력 버전도 5단 수동변속기와 같이 장착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1608cc LT 디젤엔진도 준비되어 엔진 라인업을 넓히는 데 기여했는데, 연비가 뛰어난 대신 정숙성이 떨어져 고객들이 눈을 돌렸고, 심지어 디젤차의 인기가 좋았던 독일에서도 1988년 기준으로 휘발유 버전의 4분의 1수준에 불과한 판매량을 보여 주었다.
1986년 11월에는 XR2 트림의 엔진의 실린더헤드와 카뷰레터를 손보면서 린번 설계를 적용했고, 그렇게 해서 엔진 출력이 떨어지는 대신[5] 배기가스를 줄일 수 있었다. 또한 1298cc 엔진에 적용된 5단 수동변속기가 1117cc 엔진에 옵션으로 적용되었고, 다른 엔진들을 무연휘발유에 대응할 수 있도록 손보는 동안에 1298cc CVH 엔진을 린번 설계를 적용한 1392cc CVH 엔진으로 대체되었다. 1986년 1월에는 XR2 전용의 40리터 연료탱크[6]가 모든 라인업에 적용되었다. 또한 CVT가 적용되는 CTX 트림도 1987년 5월에 라인업에 추가되었으며, 1117cc 엔진 전용으로 소수가 판매되었다.
2.3 3세대 (1989~1997)
1990년식 5도어 | 1995년식 1.1 쿼츠(Quartz) 3도어 |
BE-13이라는 코드명 하에 개발된 3세대 피에스타는 1988년 말에 공개되어, 1989년 2월부터 판매가 시작되었다. 이번 피에스타는 풀 모델 체인지로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으로 개발되었으며, 예전에 뒷바퀴 서스펜션으로 쓰던 쓰던 빔 액슬을 대신하는 반독립식 토션 빔을 사용하고 그동안 경쟁차들이 다 갖춰 왔던 5도어 차체가 새로 추가되었다. 엔진 역시 켄트/발렌시아 엔진의 HCS(High Compression Swirl) 버전을 도입했으며, CVH 계열 엔진은 큰 변화 없이 그대로 가져왔고 LT 디젤엔진은 배기량을 1.8리터(1,753 cc)로 확장했다. 1991년에는 밴 버전인 커리어(Courier)가 도입되었다. 역대 피에스타 중 가장 오랫동안 생산된 차종으로, 1990년대 초반 동안에는 피에스타 역사상 가장 많은 1년 단위 판매량을 기록해 첫 2년안에 100만대가 생산되었다.
스포티 라인으로는 1989년에 도입된 XR2i가 먼저 등장했으며, 이쪽은 8밸브 CVH 103마력 엔진을 장착했다가 1992년부터 16밸브 제텍(Zetec) 엔진으로 바꾸었다. 1990년 4월에는 XR2i를 기반으로 13인치 휠을 대신하는 14인치 알로이휠과 피렐리 P600 타이어, 초록색 장식이 들어간 몰딩, 차체 색상으로 마감된 리어스포일러와 B필러, 개폐식 후측면 창문, 초록색 썬칭 유리창, 보닛 위에 추가된 RS 엠블럼이 기본으로 추가되었다. ABS와 "퀵클리어(Quickclear)"로 불리는 발열식 앞창문은 선택 사양이었다. "Ascot In Raven"으로 불리는 직물로 마감한 레카로제 버킷시트와 회색 가죽으로 마감된 변속기 레버 및 3스포크 스티어링 휠도 추가되었다.
RS 터보는 XR2i의 1597cc CVH 엔진을 사용했지만 압축비가 좀 더 낮았고, 가레트(Garette)의 T2 터보차저와 공대공(air-to-air) 인터쿨러가 들어가 들어가 최고출력 135마력에 0-96km/h까지 7.9초, 최고시속 약 214km/h를 기록했다. 형편없는 핸들링과 반응이 부족한 스티어링을 제외하면 평가가 꽤 좋았으며, 인기 탓에 도난사고가 자주 발생해 보험료가 올라가기도 했다. 1992년에는 CVH 엔진을 단종시키면서 1796cc 130마력 제텍엔진을 집어넣은 RS1800을 도입했고, 최고시속 201km/h를 기록했다. 1994년 초반에는 XR2i가 단종되면서, 보험료를 낮추기 위해 1392cc CVH-PTE나 1598cc 제텍엔진을 장착한 Si 트림을 대신 출시했다.
영국 시장에서는 1991년에 연료분사 엔진이 도입되었다. 한때 포드에서는 호주의 Orbital Engine Corporation을 통해 직분사 2행정 엔진을 피에스타에 장착한 시험차를 여럿 만들었으며, 2~3년 안에 대량생산 라인까지 세울 계획이 있다고 밝히기까지 해 영국에서 주행시험까지 다양하게 거쳤지만, 결국 2행정 직분사 엔진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1994년에는 차체 골격을 강화하고 휘발유 사양에 이모빌라이저를 도입했으며, 새 백미러와 휠 디자인도 도입되었다. 1995년에는 4세대가 등장하면서 "피에스타 클래식(Classic)"이라는 이름 하에 1997년까지 병행 생산되었다.
2.4 4세대 (1995~2002)
전기형 5도어 | 후기형 5도어 |
기존 모델의 페이스리프트였기에 옆모습은 3세대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2.5 5세대 (2002~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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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식 3도어 | 2006년식 5도어 |
2002년에 출시되었다. 남아메리카 등 일부 시장 한정으로 4도어 세단 라인업이 추가되었다.
2.6 6세대 (2008~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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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형 3도어 | 전기형 세단 중국 사양 |
2008년에 6세대 피에스타가 공개되었으며, 이 모델은 원 포드 전략에 의해 1980년 피에스타 1세대 단종 후 북미에서 최초로 팔리는 피에스타다. 또한 세단 모델의 판매 지역도 더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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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형 5도어 | 후기형 세단 북미 사양 |
2013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3 미디어에서의 등장
-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럽에서의 베스트셀링 카라서 영화 등에서 거의 항상 나오는 편이다.
- 니드 포 스피드 프로스트리트에서는 3세대 피에스타가 나온다. 플레이어 용 차량[7]과 중간중간마다 나오는 경쟁 드라이버의 차로 나오는데, 경쟁 드라이버의 차량에 적용된 외관이 멋있다.
- 더 월즈 엔드에서는 전 세대의 피에스타가 마지막에 탈출하는 데에 쓰였다. 실패했지만.
- 탑기어에서는 피에스타 초기형의 리뷰를 영국군 해병대에서 실전훈련할때 쓰였다.
- 또 탑기어에서 리차드 해먼드가 피에스타의 1.0리터 에코부스트 버전을 타고 우크라이나 체르노빌까지 가려다가 연료가 떨어져서 실패했다. 해먼드는 아주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