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 5

Renault 5 / Le Car

1 개요

프랑스의 국영 자동차 회사 르노가 1972년부터 1996년까지 생산한 소형차이다. 당대 르노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 모델로, 이후 르노 클리오과 같은 새로운 베스트셀러 모델들을 배출하는 기반이 되어주었다.
참고 링크 1참고 링크 2

2 역사

2.1 1세대 (1972~1985)

르노 5의 디자인이 처음 나온 것은, 당시 르노에 근무하던 젊은 디자이너 미셸 부에(Michel Boue)가 여가시간동안 그린 스케치가 공개된 1967년 5월의 일이었다. 이때 부에가 제안한 디자인은 바짝 당겨진 후미등, 해치백 구성, 차체와 통합된 플라스틱 범퍼와 같이 양산차에서도 이어지는 스타일링들이 거의 다 들어있었다. "프로젝트 122"라는 이름 하에 진행된 이 프로젝트는 부에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으나, 처음 스케치에서 만들지 못한 앞모습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여러 가지의 앞모습들이 제안되었다. 본래 후미등은 부에가 피아트 푼토볼보 XC70 등의 차들처럼 기둥 끝까지 늘리고 싶어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당대로서는 넓은 실내공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당대 유럽차들의 공기저항이 0.45cd 이상일 때 0.37cd를 기록해 공기저항도 덜 받았다.

나중에 이 프로젝트 122는 1971년 12월 10일에 "르노 5(Cinq. 생크)"라는 이름 하에 공개되었고, 1972년 1월 28일에 L과 TL 트림에다가 3도어의 단일 라인업을 갖추고 데뷔했다. 르노 5는 기존 라인업과 많은 부품을 공유해 변속기 손잡이와 설계 구성, 세로배치 앞바퀴굴림 설계, 앞바퀴 토션바 서스펜션은 르노 4로부터 가지고 왔고, 처음 제공되는 782cc 및 956cc OHV 엔진도 르노 4와 르노 8에서 사용하던 것들이었다. 다만 대시보드 디자인은 훨씬 인체공학적이였으며, 차대+차체 대신 모노코크 차체 구조를[1], 최초의 플라스틱 범퍼 커버, 접히는 뒷좌석이 적용되어 훨씬 진보적인 구성을 꾀하기도 했다. 당대로서는 최초의 현대적인 슈퍼미니급 소형차 중 하나였으며, 소비자들로부터 크게 인정받는 것은 물론 1973년에 "유럽 올해의 차" 최종후보였던 아우디 80을 거의 다 따라잡는 순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차의 디자이너였던 미셸 부에는 르노 5의 성공을 보지 못하고 으로 1년 일찍 요절하고 만다.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 저가 트림인 L은 사실상 내수 시장용으로서 782cc 엔진과 4륜 드럼브레이크, 1만 프랑 이하의 가격표를 달고 나왔으며, 상급인 TL 트림은 956cc 엔진과 교류 발전기, 앞바퀴 디스크브레이크, 문 밑의 얆은 크롬장식, 뒤로 젖히는 시트 등받이 등이 적용되었다. 1973년에는 대시보드에 설치된 변속기를 바닥으로 옮겼으며, 1974년 4월에는 르노 12로부터 가져온 1289cc 엔진을 장착한 5TS/LS 트림을 추가했다. 이해 9월에는 LS 트림을 TS로 개명함에 따라 TS 시절의 사양과 통합형 헤드레스트를 갖춘 새 앞좌석, 검은색 범퍼, 조명이 들어오는 히터 조절판, 앞범퍼 스포일러, 뒷창문 와이퍼, 시계, 새로운 후미등 디자인을 추가했다.


사진은 르노 5 알핀. 이 차의 앞범퍼는 나중에 알핀만이 아닌 모든 트림에서 쓰이게 된다.

1976년 1월에는 폭스바겐 골프 GTI보다 앞선 시기에 핫해치 버전인 "르노 5 알핀(Alpine)"을 추가했다. 알핀 버전에는 전용 5단 수동변속기, 르노 "시에라" 엔진에 크로스플로우 실린더헤드, 반구형 연소실과 높은 압축비를 갖춘 1397cc OHV 92마력 엔진, 전용 알로이휠과 안개등, 토션바를 포함한 단단한 서스펜션을 장착해 최고시속 168.5km/h에 0~96km/h까지 9.7초를 기록했다. 영국에서는 크라이슬러의 유럽 지사인 루츠 그룹에서 출시한 크라이슬러 알파인과 이름이 겹치는 바람에 르노 산하의 고성능 브랜드 중 하나인 "고르디니(Gordini)"의 이름을 사용했다.

또한 이 해에는 출력을 42마력으로 낮춘 1289cc 엔진, 회색 사이드 몰딩, 휠 디자인과 후미등, 담배 라이터, 조명이 적용된 히터 조절판, 전동 앞창문 워셔를 비롯한 TS 트림의 편의장비들이 장착된 경제형 버전인 GTL을 출시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L 트림에 845cc 엔진을 장착했으며, 1978년 1월에는 GTL 트림을 베이스로 3단 자동변속기를 제공하는 "오토매틱" 버전[2]이 라인업에 추가되었다. 5도어 모델은 1979년 8월에 가서야 처음 등장했고, 1980년에 TL, GTL, 자동변속기 사양이 추가되면서 라인업이 확장되었다. 1982년에는 최고급형 모델인 TX을 선보이기도 했다.

1982년에는 알핀/고르디니 버전도 업그레이드되어 "알핀/고르디니 터보"라는 이름으로 재출시되었고, 기존의 1397cc 엔진에다가 가레트(Gatette) T3 터보차저를 장착해 최고출력이 110마력으로 증가했다. 1982년에 영국의 "모터(Motor)" 잡지사에 의하면 당시 시승했던 차량은 최고시속 약 179.9km/h에 0~97km/h까지 걸리는 가속시간이 8.7초였으며, 이처럼 뛰어난 성능을 칭찬하는 반면, 준중형급인 포드 에스코트 XR3보다도 비싼 가격을 지적한 바가 있다.


사진은 1984~1985년식 르노 5 로레아트 5도어

1세대 르노 5와 알핀/고르디니는 1984년 10월에 2세대 모델이 나온 뒤에도, "로레아트(Laureate)"라는 서브네임을 붙이고 1985년 말까지 병행 생산되었다.

이외에도 승용밴인 소시에떼(Société)를 기반으로 1970년대 미국 밴들의 스타일을 본따 만든 고급 상용차 "율리에즈(Heuliez)", 6륜구동 오프로더 버전인 "크리스티앙 레오타드(Christian Leotard)", 컨버터블 버전처럼 외부 업체에서도 다양한 변형들을 만들어냈으며, 자동차 경주에서도 나름 활약한 바도 있다. 원메이크 레이싱 차량으로도 적잖은 인기를 끌었고, 랠리 경기에도 여럿 참여해 1978년 몬테카를로 랠리에서도 르노 5 알핀 2대가 각각 2등과 3등을 차지한 바가 있다. 르노 5 터보는 아래 문단 참조바람.

여담으로 데뷔 당시에는 르노 5를 캐릭터화해서 만든 애니메이션 광고가 방영된 적이 있다. 이후 일부 TV 광고도 그 애니메이션 광고의 캐릭터를 등장시켰으며, 당시 카탈로그의 일러스트나 최근 모터쇼에 초대 5가 전시될 때의 상태에서도 해당 광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2.1.1 5 터보

로드고잉 버전랠리 버전

시판 FF 소형차를 MR 랠리카로 마개조한 차량.

1980년 브뤼셀 모터쇼에서 등장하였다. 1970년대 란치아 스트라토스가 랠리무대에서 거둔 성공에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의 유명 카로체리아 베르토네[3]와 함께 개발되었다. 상술되었다시피 원래 뒷좌석과 트렁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알파인 터보에도 쓰인 1.4L 터보 엔진과 구동계가 들어가 있는 기묘한 물건이 탄생했다. 더 큰 뒷 타이어를 끼우기 위해 엽기적으로 넓어진 뒷 펜더와 냉각을 위해 여기저기 뚫린 벤트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인상이 특징.

처음에는 WRC 그룹 4 호모로게이션 사양에 맞게 400대 한정 생산되었고, 이후 보다 저렴한 부품들이 사용된 '터보 2'가 1984년까지 생산되었다. 순정 상태에서의 출력은 160마력이었으나 초기 랠리 사양은 180마력에서 210마력 사이, 나중에 그룹B 사양의 MAXI TURBO는 무려 350마력까지 뽑아냈다고 한다. 이 차의 무게가 900kg대라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ㅎㄷㄷ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지만 80년대 중반에 들어서 아우디 콰트로를 필두로 4WD 랠리 카들이 압도적인 비포장도로 성능을 자랑하자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도 포장도로에서의 전투력은 그룹 B의 괴물 4WD 머신들에게도 뒤지지 않아서, 르노의 전설적인 워크스 드라이버 장 라그뇨티(Jean Ragnotti)의 손 아래에서 1981년 몬테 카를로 랠리, 1984년1985년 투르 드 코스(코르시카) 랠리에서 우승하는 등 뛰어난 랠리카로 활약했다.

나중에 르노는 후속 모델인 2세대 르노 클리오에 같은 방식으로 운전석 뒤에 V6 3.0L 250마력 엔진을 때려박는 기행을 한번 더 저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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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그림. 드래곤볼에서 부르마의 차로 등장하고, 닥터 슬럼프에도 등장하는 등 은근히 자주 그려졌다.

2.1.2 해외 시장

북미 시장의 경우, 르노에서는 미국AMC(아메리칸 모터 코퍼레이션)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1976년부터 5를 "르노 르 카(Le Car)"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앞바퀴굴림 소형차인 혼다 시빅 1세대와 폭스바겐 골프(북미 수출명은 "래빗(Rabbit)")가 석유파동을 틈타 흥행하고 있었고, 심지어 미국 업체들도 쉐보레 셰베트[4]포드 피에스타 등을 북미 시장에 투입하려던 참이였기에, 르노 도핀을 판매했다가 처참한 실패만 거두었던 르노도 이때를 틈타 북미 진출을 제개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또한 1976년에 미국 달러의 환율이 불리해짐에 따라 미국 업체들은 유럽 경쟁차들의 "침입"에 크게 예민해져 있었고, 르노에서는 1975년 10월 23일에 캘리포니아의 나파(Napa)에서 미국시장용 르노 5를 언론에 공개했다. 유명한 프랑스 주방장인 Paul Bocuse가 프랑스 요리들을 기자들에게 제공할 정도로 나름 신경을 썼고, 수백 명의 기자들이 여기에 참여했다. 물론 유럽차에 대한 경계심을 감안해, 미국 AMC가 판매를 담당하기로 결정되었다.

미국시장용 르노 5에는 배기가스 저감 장치를 장착한 1397cc 55마력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3도어 해치백의 단일 차체 라인업과 2개의 트림이 준비되었다. 미국 시장에 대응하고자 무연휘발유에 대응하기 위한 촉매변환장치의 적용, 마일 단위의 속도계, 내부에서 잠기는 도어 락, 안전벨트를 장착하지 않을 시 작동하는 경고음과 픽토그램 등이 들어가있었고, 선택사양으로는 썬팅 유리창과 뒷창문 와이퍼, 썬루프 등이 제공되었다. 르노 5의 미국 판매를 담당했던 AMC에서는 르노 5에 대해서 "수백만의 만족스러운 고객들을 가진 유럽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했었다.

비평가들도 실내공간도 넓고, 승차감도 부드러우며, 심지어 연비[5]까지 좋은 차라는 식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했지만, 미국 소비자들이 다시 대형차로 등을 돌리면서 1976년 한 해 동안 13458대밖에 수출되지 않았고, 그나마도 7782대나 되는 차가 재고로 남아 돌 지경이었다. 또한 판매 지역이 동부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었고, 수입차들이 자주 데뷔하던 로스 엔젤레스 자동차 엑스포에 출품되지 않으면서 르노차에 대한 인지도 자체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홍보 감독이었던 피에르 가차리안(Pierre Gazarian)은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당시 보고에 따르면 "르노 5"라는 이름 자체가, 르노차 자체를 모르다시피 했던 미국 소비자들에게는 상당히 무의미한 이름이었고, 때문에 "프랑스 차"라는 느낌을 주고자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le"를 영단어 "car"에다 붙인 "르 카[6]"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 트림명도 "르 카 GTL 디럭스(Deluxe)"와 "르 카 GTL 베이직(Basic)으로 바꾸었고, 1977년부터는 광고 전반에 . "Les Features", "Le Performance", L'Economy", " Le Fantastic Ride", “Le Price”와 같은 표현들이 쓰였으며, 심지어는 " Le sport Car", " Le Weekend Car", "Le City car", "Le fun Car", "Le Police car"와 같은 새로운 표현들도 만들어졌다. 다행히도 1977년 1월에 862대로 시작한 판매량은 3월에는 1377대로, 4월에는 2503대로 늘어났으며, 나중에는 미국에서 18번째로 가장 잘 팔리는 차로 기록될 정도의 흥행을 기록했다.


1980년식 모델은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져, 이전의 원형 헤드램프 대신 직사각형 헤드램프가 장착되어 유럽 사양에 더 가까워졌고, 1981년부터는 5도어 해치백이 추가되었다. 1983년 3월에 미국 위스콘신의 케노사(Kenosha) AMC 공장에서 만들어진 르노 9/얼라이언스와 르노 11/엥코르가 출시될 때까지 미국 판매가 지속되었으며, 캐나다에서는 1985년까지 3도어 버전이 판매되었다. 특이하게도 미국 워싱턴의 라 코너(La Connor)에서는 1970년대 말에 르 카/5 3대가 경찰차로 제공되었으며, 르노에서도 이를 가지고 넓은 실내공간을 홍보하는 데 사용했다.

하지만 이후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부드럽고 힘있는 엔진에 길들여진 미국 소비자들에게 저배기량의 유럽식 소형차는 힘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부족한 A/S망, 차체 부식 등의 품질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많은 미국인들에게 르 카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사진은 1979년식 르노 7 TL

스페인에서는 FASA-르노 지사에서 스페인 전용의 4도어 버전인 "르노 7(Siete. 시에떼)"를 1974년에 출시하기도 했는데, GTL 사양과 같은 3단 자동변속기와 1289cc 55마력 엔진, 비닐 루프, TS 사양의 앞좌석, 실내 카펫, 트렁크 안쪽에 추가한 작은 수납장, 크롬범퍼 등이 들어가있었다. 1981년 3월에는 1.4리터 엔진으로 교체되어 연비와 성능 모두 개선되었다.

이란에서는 "Pars Khodro PK"라는 이름 하에 사이파(SAIPA)에 의해 생산이 이루어졌으며, 2002년에는 기아 프라이드 1세대의 플랫폼을 채용하는 동시에 일부 외장 부품을 둥글리고 플라스틱 펜더를 추가하는 수준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다.

2.2 2세대 (1984~1996)

1985년식 르노 5 오토매틱 3도어

2세대 르노 5, 일명 "슈퍼 생크(SuperCinq. 슈퍼 5)"가 탄생하게 된 계기는 1978년 봄에 시작된 "140 프로젝트"였으며, 초대 모델을 따라 플라스틱 범퍼 커버를 사용하되 범퍼 형샹이 트렁크의 페인트 마감에 손상을 주지 않도록 형상을 잡는 등, 기존의 르노 5라는 베스트셀러를 대체하기 위한 계획인만큼 르노에서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 이때 많은 수의 프로토타입들이 만들어졌으나 이전 모델의 강한 이미지 때문에, 고객 클리닉 단계에서 그리 좋은 평을 얻지 못했다.

결국 당시 르노의 회장이었던 베르나드 아농(Bernard Hanon)은 이 프로젝트의 디자인 과정을 위해, 람보르기니 쿤타치 등을 맡은 것으로 유명한 마르첼로 간디니(Marcello Gandini)를 호출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때 간디니는 초대 모델의 디자인을 시대에 맞게 현대화하는 방식으로 디자인 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이미 평균보다 낮았던 공기저항계수가 0.35cd까지 낮아졌고, 연료 효율도 크게 개선되어 90km/h 정속주행시 리터당 24.4km/l의 연비를 달성했다. 설계 부분에 있어서는 르노 9와 11에서 사용하던 엔진 가로배치 설계를 적용한 새 차대가 쓰였으며, 서스펜션은 폭스바겐 골프의 그것을 응용해 맥퍼슨 스트럿 구조가 사용되었다.


사진은 1985~1987년식 르노 5 GT 터보

시간이 흘러 1984년 10월, 2세대 르노 5/슈퍼 5가 파리 오토쇼에서 첫 선을 보였다. 처음에는 3도어 차체 라인업만 선택할 수 있었으며, 트림별로는 956cc 42마력 엔진이 적용되는 TC와 1108cc 47마력 엔진이 쓰인 TL, 1397cc 59마력 엔진이 쓰인 GTL과 TS, TSE, 같은 엔진의 67마력 버전이 쓰인 오토매틱(Automatic), 71마력 버전이 쓰인 TS와 TSE 사양이 존재했고, TC와 TL 트림에서는 4단 수동, TL의 선택 사양인 동시에 나머지 트림의 기본 변속기로는 5단 수동, 오토매틱 사양에는 3단 자동변속기가 쓰였다. 길이를 6cm 늘리고 뒷문을 보탠 5도어는 1985년 11월에 출시되었으며, TD와 GTD 트림이 추가되면서 디젤 엔진을 고를 수 있게 되었다. 출시 당시에는 1983년에 출시되어 푸조의 베스트셀러가 된 푸조 205와 양대 쌍벽을 이루었다.

핫해치 버전으로는 1985년에 "GT 터보"를 출시했다. 클레옹(Cléon) 1397cc 4기통 8밸브 엔진에 공랭식 가레트 T2 터보차저를 얹어 최고출력 113마력을 기록했으며, 중량도 고작 850kg로 가벼운 편인데다가 출력-중량비도 훌륭했고, 때문에 97km/h까지 약 7.5초가 걸리는 수준이었다. 외양상으로는 각을 집어넣은 플라스틱 드레스업과 알로이휠, 데칼이 들어가 있었다. 단점이었다면 터보 래그(Turbo lag)와 높은 기온에서의 시동 문제 때문에 차량 통제가 어려웠다는 점이 있었다.


사진은 르노 5 바카라

또한 르노에서는 페이스리프트와 함께 1987년부터 9와 11에서 쓰던 1721cc 94마력 자연흡기식 MPI 연료분사 엔진을 얹은 GTE 트림도 출시했다. 비록 터보만큼 빠르지는 않지만 겉보기에는 터보와 빼닮았고, 서스펜션과 브레이크도 같이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같은 엔진을 공유하는 신규 트림 중에는 전동 윈도우와 썬루프, 파워스티어링, 고사양 라디오, 온보드 컴퓨터, 가죽 인테리어 마감, 에어턴 등이 적용되었던 호화로운 사양의 "바카라(Bacarra)"[7]와, 가죽 인테리어을 옵션 처리하는 식으로 가격을 낮춘 GTX도 존재했다. 그해 4월에는 저가 사양으로 "파이브(Five)"를 추가했으며, 특별 사양들도 상당수 쏟아냈다.


사진은 1990년식 르노 5 GT 터보 "레이더" 특별 사양

또한 1987년에는 GT 터보의 페이스리프트가 버전인 "페이즈 II(Phase II)"가 등장했으며, 수냉식 터보차저를 장착해 이전 모델의 오일 냉각 문제를 개선하면서 터보차저의 수명을 연장했다. 또한 점화 시스템을 새로 적용해 엔진회전수를 높히면서 118마력짜리 최고출력을 끌어올렸다. 또한 외양상으로도 새로운 드레스업 파트가 쓰이면서 공기저항이 0.36에서 0.35cd로 살짝 낮아졌고, 0~97km.h까지 걸리는 시간은 7.5초를 유지했다. 1989년에는 새로운 인테리어가 제공되었으며, 1990년데는 특별 사양으로서 파란색 메탈릭 페인트 마감, 다른 디자인의 인테리어와 알로이휳이 적용되는 "레이더(Raider)"가 출시되었다. 랠리카로서도 어느 정도 성적을 거두어 1989년에 WRC 경기의 그룹 N 차량으로서 "Rallye Côte d'Ivoire"에서 1989년에 우승을 거두었다.


사진은 1996년식 르노 5 "바이 바이" 5도어 특별 사양

한편, 르노에서는 1990년 6월에 슈퍼 5의 후속으로 "르노 클리오(Clio)"를 출시했으며, 슈퍼 5도 클리오와 같이 병행생산이 이루어졌다. 이때 생산지도 슬로베니아로 이동했고, 1991년에는 르노 클리오 윌리엄즈(Williams)와 16v의 출시와 함께 GT 터보가 단종되었으며, 1.1리터와 1.4리터 휘발유 엔진과 1.6리터 자연흡기식 디젤엔진만으로 라인업을 꾸려나갔다. 염가 사양인 "캄푸스(Campus)"[8]만 판매가 이루어졌으며, 1992년에 출시된 신형 경차였던 르노 트윙고의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영국에서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었다. 1996년에 출시된 "바이 바이(Bye Bye)"[9]라는 특별사양 2000대를 마지막으로 르노 5의 24년간 역사도 막을 내리게 되었고, 1997년까지 재고차가 모두 판매되고 나서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생산 기간동안 패널 밴 버전인 르노 익스프레스(Express)도 생산되었고, 1989년에는 벨기에 업체인 EBS와 프랑스의 율리에즈에서 컨버터블 사양을 만들기도 했다. 여담으로 2011년에 "카 메카닉스 매거진(Car Mechanics Magazine)" 지에서 저렴하고 주행거리가 낮으며, 충분한 관리를 받은 개체들이 많다는 점을 들어 "영국 최고의 고물차(Britain's Best Bangers)"들 중 하나로 뽑은 바가 있으며, 최후기형 사양의 트림명이었던 캄푸스 이름도 2005년에 2세대 클리오의 병행생산 명칭으로 부활했다.
  1. 때문에 차량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는 강점을 얻은 반면, 완전히 새로운 플랫폼을 설계하느라 투자비가 꽤 들어갔다.
  2. 르노 5 전체 생산량의 5% 정도만 자동변속기 사양이다.
  3.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등 람보르기니 슈퍼카들을 개발한 것으로 이름높다.
  4. 3세대 오펠 카데트 C의 해치백 버전인 "시티(City)" 라인의 현지화 버전.
  5. 당시 EPA에서 측정한 기준으로 시내연비 약 11.9km/과 고속도로 연비 약 14.9km/l.
  6. 1978년에는 유럽에도 미국 사양과 빼닮은 모습의 특별판으로 판매되었다.
  7. 영국 시장에서는 "모나코(Moncao)".
  8. 캄푸스라는 이름이 처음 쓰인 것은 1980년대 초반, 초대 르노 5가 판매되던 시절에 TL 트림에다가 몇 가지 액세서리를 더한 특별 사양이 판매될 때였다.
  9. 1990년대 중반에 단종된 르노 4와, 2010년대 초반에 단종된 르노 클리오 2세대 모델의 마지막 버전에서도 이러한 이름의 한정판이 제공되었다. 덧붙이자면 1996년 당시 슬로건은 “당신에 새 수집용 차를 구하는 일은 매일 벌어지지 않습니다(This is not every day that you can acquire a new collectible car)”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