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75년 박정희정부 때 있었던 석유에 관한 해프닝.
2 배경
1974년에 1차 오일 쇼크가 발생하자, 석유 값이 크게 올라 우리 경제가 주춤했을 때, 혹시 우리나라에 석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여러 곳을 탐사해 보았는데 낙점된 곳이 포항 앞바다. 근거는 다음 2가지.
1. 삼국유사에 경주시 지방에서 사흘 동안이나 불길이 솟았다는 기록이 있다.2. 지질 조사 결과 포항 지역이 제3기층[1]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1. 삼국유사가 진실이라는 근거는 없다.일연스님 죄송합니다.2. 3기층이어도 퇴적층이 너무 얇다.
하지만 정부는 비밀리에 시추하기로 결심하고, 중앙정보부에게 맡겼다. 그리고 중정은 석유탐사단을 구성하고 포항 앞바다를 뚫기 시작했다.
3 시추
중정은 영일만에 구멍 2개(편의상 A,B공)를 뚫었는데, A공은 지하 1,150m, B공은 지하 1,400m[2]막히고 말았다. 이 아래는 화강암과 마그마가 있을 터. 여기서 석유가 나올 리 없다. 결국 중정은 포기했는데, 얼마 뒤 B공에서 시커먼 액체가 솟아나오기 시작했다(!!!) 이 사실은 청와대로 보고되었고 샘플이 직접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해졌다. 정부 각료들은 모두 기뻐했고, 야 신난다! 직접 먹어 보기도 했다.[3] 박정희 대통령은 급히 오원철 수석을 불러서 기름을 직접 붓고 불을 붙여 보았다. 여기서 오원철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는데...
4 사실은 아니었다
원래 석유는 가스들도 들어 있는데 그래서 원유에 불을 붙이면 불꽃을 일으킨다. 근데 포항 석유는 얌전하게 탔다. 여기서 오원철 수석은 무언가를 느끼고 분석해 보았는데 결과는 경유였다(...). 석유가 땅에 스며들어서 지하수를 타고 나온 듯. 그런데 국민들은 이 결과를 몰랐다. 정부가 석유가 나왔다는 발표를 듣고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되었다는 기쁨에만 넘칠 뿐이었다. 그런데 석유는 사실 없었으니 해를 넘겨 76년이 되어도 석유는 나올 줄을 몰랐다. 1976년 여름부터 국민들의 관심이 식어가며 그렇게 석유 해프닝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