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네임 | 폴 앤서니 로두카 (Paul Anthony Lo Duca) |
생년월일 | 1972년 4월 12일 |
국적 | 미국 |
출생지 | 뉴욕 주 브루클린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93년 드래프트 25라운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입단 |
선수 경력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98~2004) 플로리다 말린스(2004~2005) 뉴욕 메츠(2006~2007) 워싱턴 내셔널스(2008) 플로리다 말린스(2008) |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던 포수 출신의 야구 선수. 어깨가 심히 소녀 어깨라서 도루저지율이 2할5푼을 찍기도 버거웠다는 점만 제외[1]하면, 수준급의 타격능력을 바탕으로 전성기에는 4차례나 리그 올스타에 오른 A급 포수였다. 하지만 2007년 미첼 리포트의 발간과 스테로이드 복용이 폭로되면서 지금은 그냥 약쟁이로 전락.
2 경력
이미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 재학중이던 시절부터 타격 소질 하나는 뛰어났기에[2] 1993년 드래프트 25라운드에서 다저스가 그를 지명한다. 문제는 그가 지명되던 시점에서 다저스의 안방을 지키고 있던 사람이 바로 갓 포텐을 터뜨린 마이크 피아자였다는 것. 대학교 졸업 후 프로행을 택한 로두카는 다저스 입단 당시에 이미 24살이었지만 피아자로 인해 하염없이 마이너리그를 달구고 있어야만 했고, 피아자가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된 이후에야 메이저리그 데뷔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01년부터 확실히 주전 자리를 꿰찬 로두카는 피아자와 달리 거포는 아니었지만, 정교한 타격[3]과 준수한 수비를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 내셔널리그 최고의 포수 중 하나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한다. 2004 시즌 중간에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4]되었고 말린스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줬지만, 2003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 또 한번 페이롤 절감을 위해 파이어 세일을 단행하던 말린스에게, 로두카는 너무나 고액연봉자였고 2005 시즌 종료 이후 다시 같은 지구의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된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피아자도 그렇고, 다저스에서 좋은 포수가 나오면 꼭 플로리다를 거쳐 메츠로 가는것 같다. 메츠에서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 번 올스타에 선출되었고, 메츠의 2006년 내셔널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이끌었지만 2007년부터 부상으로 인해 급격히 포수 능력이 하락[5]하면서 메츠는 로두카를 잡지 않기로 결정한다. 로두카에게 러브콜을 날린 곳은 역시나 같은 내셔널리그 동부지구의 워싱턴 내셔널스. 1년간 500만 달러의 계약을 맺지만 망했어요. 부상으로 골골 거리면서 제대로 된 활약도 펼치지 못하다가 8월에 그대로 방출된다. 이후 친정팀 말린스로 돌아가 2달 정도 잠깐 활약을 펼쳤지만, 공수 모두에서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 그에게 메이저리그 계약을 제시하는 구단은 없었고 2009년 한 해를 무직[6]으로 지내면서 그렇게 은퇴하나 싶었다. 그런데 2010 시즌을 앞두고 백업포수를 구하던 콜로라도 로키스와 다시 계약을 맺는데 성공한다! 그렇지만 이미 뚜렷하게 진행중이었던 하향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시즌 중간에 방출된 뒤 은퇴를 선언한다.
3 미첼 리포트
2007년 12월 미첼 리포트가 발간되었고, 여기서 폴 로두카는 성장 호르몬 복용자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뉴욕 메츠의 트레이너였던 커크 래돔스키에게 3000불 가량을 지불하고 약물을 구입한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근데 이 정황이 로두카의 자필 서명이 담긴 영수증이었다(..) 심지어 래돔스키의 집에서 발견된 만큼, 사실상 약쟁이 확정. 여기에 한 술 더떠서 로두카는 래돔스키에게 다저스 시절 동료였던 케빈 브라운과 에릭 가니에 등을 소개시켜준것으로 알려져있다. 이후 한참동안 자신의 약물복용에 대해 침묵을 지키던 로두카는 2013년에야 자신의 약물복용을 시인했다. 그런데 이 시인 발언이 굉장히 미묘한 뉘앙스여서 또 욕을 먹었다(...) "나는 성장호르몬을 복용했고 그게 썩 자랑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약물을 복용한다고 해서 누구나 레전드급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다.(I took PEDs and I'm not proud of it..but people that think you can take a shot or a pill and play like the legends on that ballot need help.)"- ↑ 그것도 말년에나 부상 탓에 그랬지 데뷔 초창기에는 도루 저지율 1위를 먹기도 했다.
- ↑ 대학교 리그에서 4할 타율을 찍어서 MVP에 뽑히기도 했고, 3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기도 했다.
- ↑ 이 점에서 다저스의 또다른 명포수 출신인 마이크 소시아와 비슷했다.
- ↑ 여담으로 이 때 로두카의 상대로 다저스에 온 선수가 최희섭이다. 물론 1대1 트레이드는 아니었고 최희섭 외에도 브래드 페니와 몇몇 마이너 유망주가 포함된다.
- ↑ 그래서 이 시기부터 포수뿐만 아니라 1루와 외야도 겸직하기 시작한다.
- ↑ 선수로 뛸 팀을 못 구했을 뿐이지 해설가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