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피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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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마이크 조지프 피아자(Michael Joseph Piazza)
생년월일1968년 9월 4일
국적미국
출신지펜실베이니아 주 노리스타운
포지션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8년 드래프트 62라운드(전체 1390번, LAD)
소속팀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92~1998)
플로리다 말린스(1998)
뉴욕 메츠(1998~2005)
샌디에이고 파드리스(2006)
오클랜드 어슬레틱스(2007)
뉴욕 메츠의 영구결번
1431374142
길 호지스마이크 피아자케이시 스텡겔톰 시버재키 로빈슨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
마이크 피아자
헌액 연도2016년
헌액 방식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83.0% (4회)
1993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에릭 캐로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마이크 피아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라울 몬데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96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제프 코닌
(플로리다 말린스)
마이크 피아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샌디 알로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 개요

역대 메이저리그 포수 최다 홈런 기록을 세운 선수
포수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물어깨와 약한 수비력을 압도적인 타격으로 커버한 최고의 공격형 포수

비록 3,000안타도 500홈런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포수 역사상 최강의 공격력을 보여준 선수였다. 포수라는 최고의 수비부담을 가진 포지션을 소화하면서 세운 기록이 워낙 흠좀무스러워서 아래에 언급될 몇몇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머지 않은 시간 안에 쿠퍼스타운행이 거의 확실한 선수였으며 2016년에 입성했다.

커리어 스탯
잘 보면 알겠지만 포수인데도 15시즌 defensive WAR 1라는 HoF급 포수로서는 꽝인 결과를 남겼지만수비 war는 일반 주전 포수들보다 못한 편, 포수라는 굉장히 힘들고 체력적으로 힘든 포지션을 소화했음에도 공격쪽에서는 가히 초월적인 67.7(연평균 4.513!)이라는 무시무시한 offensive WAR를 찍었다.(오클랜드 지명타자 시절 제외) 이 무시무시한 공격지표가 워낙 충공깽스러워서 포수 수비 꽝이라고 까던 사람들도 그의 HoF 입성에는 이견이 없다.

비슷한 시기 전성기를 구가한 이반 로드리게스와 함께 양대 리그 최강의 포수로 꼽혔지만 수비력은 10년 연속 골드글러버이자 전성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46%라는 무시무시한 도루저지율을 기록 중인 퍼지에겐 한없이 밀린다. 안습. 둘의 어깨 차이는 다른 포지션에서 동굴맨게선생 수준의 격차나 다름없다.

2 낙하산 지명자 62라운더의 빅리그 진출

마이크의 아버지 빈스 피아자가 자동차 딜러 사업으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굉장한 재력을 가지게 되었고[1] , 야구 광팬이던 아버지는 아들들을 야구 선수로 키우기로 하고 아예 개인 연습장을 지어서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운동신경이 한결같이 시망이라 대부분 나가떨어지고, 그나마 싹수가 보이던 아들 마이크를 선수로 키우기로 하였다. 그리고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레전드 테드 윌리엄스조 디마지오를 초빙하여 개인 강습을 받도록 하였다. 하지만 워낙 운동신경이 안습이라 개인강습에도 불구하고 야구실력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사실 포수 포지션을 맡게된 것도 팀에서 잘하는 선수들부터 포지션을 채워넣다보니 남는 자리가 거기 뿐이라서(…).

사실 학창시절 동안 실력이 크게 늘지 않았고, 아마추어 드래프트에 참여해봤자 선발되지 않을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빈스가 구단을 사려고 했지만 마이크가 말려서 포기하고 다저스 구단 관계자이자 감독이던 토미 라소다와의 친분을 통해드래프트 62라운드에서 간신히 다저스의 낙하산지명을 받았다. 62라운드라는 것은 애초에 팀에서도 별로 기대를 안했고 사실상 버리는 카드다. 그 증거가 바로 피아자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늦은 순번에 지명돼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 무려 1,390번 지명선수라는 놀라운 기록이다. 요즘은 도미니카 베네수엘라 굇수들이 하도 징글징글하게 몰려오다보니 3,4라운드 지명자도 데뷔 가능성이 반도 안되는 것을 감안하면,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기록이다. 그리고 이젠 40라운드까지만 뽑으니까 제도가 안바뀌면 깰수 없다. 가장 낮은 지명순위 데뷔도 진기한거지만, 그 선수가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된것도 메이저리그 역사에 오래 남을 이야기거리다. 그 만큼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극복했다는 뜻.

마이너리그에서 출중한 공격력을 보여주던 피아자는 1992년 맛보기로 메이저리그에 승격되었고, 1993년 24세의 나이로 주전 포수 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주전 첫해 .318의 타율에 35홈런 112타점을 기록하면서 신인왕과 실버슬러거를 수상하였다. 이후 매 시즌 3할 이상의 타율과 20홈런 90타점 이상을 기록하면서 폭발적인 화력을 보여주었다. 사실 물어깨로 정평이 나 있지만 젊은 시절에는 그래도 도루저지율 25% 이상일 정도로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다만 떨어지는 블로킹 능력과 수비력, 적절하지 못한 볼배합…. 하지만 이런 단점들을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타격 하나는 절륜이었다. 다만 수비에 관해서는 현지보다 국내에서 더 과도하게 평가절하되는 경향이 있는데 박찬호의 배터리였기 때문이다. 박찬호의 경기성적이 나쁘면 자연스럽게 포수탓을 했던것.

3 수비력 논란?

미국의 전문가, 코칭스탭들의 평가를 기준으로 하면 물어깨를 제외하면 그의 수비능력은 좋지는 않은데 포수를 못할 정도는 아니다였다. 하지만 최근 대두되는 포구(프레이밍) 능력과 블로킹 능력을 고려한다면 실제로는 뛰어난 포수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통계 분석이 발달함에 따라 포수 능력을 다각도로 평가하는 게 가능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도루저지가 사실은 그렇게까지 엄청난 요소는 아니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2]관련글

박찬호와는 볼배합 관련해서 호흡이 맞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저명한 MLB 중계진에게까지 까이기도 했으며 특히 박찬호의 부진에는 피아자의 막장스런 리드 능력 때문이라는 극성스런 의견이 대세였으나 서재응과의 좋은 배터리 궁합을 보고 몇 년 사이 급성숙(?)해진 피아자의 리드를 칭찬하기도 하는 웃긴 일도 벌어졌다. 이름 대신 피자포수로 많이 까였다

유명한 일화로, 한 인터뷰에서 피아자는 박찬호가 변화구만 던지면서 도망가는 승부를 한다고 의문을 제기한적 있다. 국내에서는 이 인터뷰가 나오자 피아자의 볼배합이 무식하다고 깠지만 피아자의 입장에서 보면 박찬호가 메이저리그 내에서도 손꼽히는 패스트볼을 가졌으나 제대로 구사하지 않고 도망다니는 투구를 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3] 특히 로저 클레멘스드와이트 구든도 데뷔 초기엔 같은 증세를 보였지만 자기 패스트볼에 대한 자신감을 얻으면서 대투수가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박찬호의 패스트볼을 아끼는 투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거기다가 애초에 포수 혼자가 단독으로 투수한테 이거 던져라 저거 던져라 명령하지 않는 리그인 메이저리그에서 투수리드가 안 좋다는 것은 그 투수의 커맨드가 안 좋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결국엔 누워서 침뱉기였다. [4]

이미지가 잘못 박힌 탓에 과도하게 까이는 탓도 있는데 실제 피아자는 박찬호가 호흡을 맞춘 포수중 게임출장 1위(89경기), 소화이닝 2위(385.1이닝)이며, 평균자책점도 3.71로 준수하다. 물어깨라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박찬호 경기에선 20회 도루허용,12회 저지로 도루저지율도 0.375이다. 다저스 시절에만 한정하면 거의 5할대에 육박하였으나,(특히 97년에 한정하면 5할 7푼정도였다. 98년엔 트레이드 직전까지 도루 허용만 3개를 하고 하나도 잡아내지 못했지만...) 샌디에이고 시절 박찬호와 재회했을 때, 폭풍 도루허용(...)으로 도루저지율이 1할대에 그치면서 이미지를 깎아먹은 감이 있다.

피아자가 말린스-메츠로 이적한 뒤에 다저스가 야심차게 영입한 토드 헌들리의 경우에도 똑같이 작용했다. 헌들리 역시 빠따는 당시 포수들 중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정도로 공갈포 강타자였지만 수비능력은 피아자와 비교하면 도찐개찐이었다. 결국 1999 시즌 한만두 사건 이후 박찬호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토드 헌들리를 1루수로 빼고 당시 오랜동안 묵혀뒀던 노망주 폴 로두카와 짝을 이루기도 했다.

결국 국내에서는 박찬호가 다저스 선발로 자리잡아가던 시점에 주전 포수였기 때문에 인지도가 높았고 메츠 시절에는 서재응과 호흡을 맞추기도 하였다. 반면 메츠 시절 서재응은 피아자와 궁합이 잘 맞는 편이었다. 언론 인터뷰에서 피아자의 볼 배합을 극찬하기도 하였다.

팬들 상상 이상으로 보수적인 미국 야구감독들이 주전포수로 계속 낙점한 것은 분명히 포수로 내세울만 하니까 그런 것. 매년 떨어지는 도루 저지율과 별개로 매년 포일의 수가 적어졌던 걸 보면 비록 한동안 메츠에서의 1루수 출장시간이 있었음을 감안해도 이는 분명 그럭저럭 못봐줄 정도는 아니었다. 박찬호는 리그에서도 볼끝이 좋지만 제구력은 엉망이기로 소문난 선수라 볼질할바엔 구위 좋은 패스트볼로 우겨넣고 안타를 맞는 것은 어느정도 감수하자라는 의도인 것[5]

박찬호가 2013 WBC 해설당시 포수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피아자를 뜬금없이 언급하며 수비력 논란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주된 논지는 자신의 도루 저지율만 신경쓰느라 바깥쪽 속구만을 계속 요구를 해서 마음에 안들었다는 것이다. MLB의 조인성? 하지만 박사장은 조인성하고의 배터리 조합을 제일 좋아했다는 게 함정

각종 코치진의 증언과 박찬호의 해설을 볼때 팀플레이어형 자기희생적인 포수는 절대 아니라는 결론은 이견없이 나온다. 또한 이기적인 포수는 자신의 도루저지율을 위해 바깥쪽 속구만을 주로 요구하는 경우도 많기에 도루저지율을 기준으로 포수의 수비력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결론 또한 알 수 있다.

덧붙여 다저스 시절엔 노히터도 캐치했던 포수다. 라몬 마르티네즈, 노모 히데오. 특히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투수들의 무덤 쿠어스필드에서 노히터를 캐치한 것만으로도 수비력이 아주 나쁜 포수는 절대 아님을 알 수 있다.

4 메츠의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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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다저스는 플로리다 말린스의 파이어세일에 맞춰 당초 다저스의 84M 규모 재계약 오퍼를 거절한 피아자와 찬스에 유독 강했던 3루수 토드 질을 말린스에 넘기면서[6] 국내에는 박찬호 도우미로 잘 알려진 게리 셰필드와 강타자 바비 보니야, 당대 최고의 수비형 포수 찰스 존슨, 대타요원 짐 아이젠라이크에 마이너리그 선수 한 명을 데려왔으며, 플로리다는 애시당초 피아자를 데리고 있을 돈도 없었으므로 며칠 뒤 뉴욕 메츠에 미련없이 피아자를 넘겼다.[7] 그리고는 메츠 역사상 최고의 강타자의 시대가 시작하였다. 초창기에 팀의 4번을 치면서 NL 우승과 서브웨이 월드시리즈 진출을 견인하며 99~02 기간동안 .302 .375 .576 로 맹타를 휘두르며 MVP 후보에 거론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메츠가 이렇다할 팬투표 올스타를 내지 못하더라도 팀내 유일의 올스타가 마이크 피아자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면서 이 레전드도 서서히 쇠락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메츠는 2004년 포수로써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피아자를 1루수로 전환하려 하였으나 대재앙.[8] 이후 메츠도 1루수 전환을 포기하였다. 2005년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만료된 피아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포수로 풀타임을 소화했으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지명타자로 뛰다가 2007년 시즌 후 자유계약선수로 공시된 후 이듬해 5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메츠 시절엔 노쇠화 경향이 보이는 바람에 1루로도 조금 뛰었고 다저스 때보다는 약간 수치가 하락했고 높은 연봉값에 대해 비판이 존재했으나 여전히 절륜한 타격을 선보이며 비판을 잠재웠다. 7년 반 동안 .296 .373 .542 220홈런 655타점. 타격에서 답답한 점이 많았던 메츠의 3, 4번[9]으로서 역사에 남을 선수가 되었다. 또한 2004년에는 포수 통산 352호 홈런으로 칼튼 피스크의 포수 최다 홈런 기록을 넘어섰다.

파드리스 소속으로 셰이 스타디움에 와서 4회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두들겨 홈런을 뽑아냈을 때는 오히려 상대팀 선수인 피아자에게 기립박수와 커튼콜을 보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 경기에서 6회에 홈런을 한번 더 쳤을 때도 메츠 팬들은 오히려 승부보다 피아자에 열광했는데, 8회 파드리스의 4-2 리드 상황에 피아자가 또 라뱅쓰리런을 쳐버렸을 때에야 팬들이 제정신으로 돌아와서 할말을 잃었다고.(...)

2008년에는 9월 말 셰이 스타디움의 마지막 경기에 방문하여 메츠 역사상 넘버원 에이스 톰 시버의 마지막 시구를 캐치했고, 다음 해 시티 필드 개장 경기에서도 톰 시버의 시구를 받았다.

2011년에는 피닉스에서의 올스타 전야 퓨처스게임에서 미국팀 감독을 맡았는데 메츠 모자를 쓰고 감독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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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 약쟁이들은 저기로 가버렷.

월드팀 감독은 애리조나 디백스의 우승멤버이자 20번 영구결번자인 루이스 곤잘레스. 어어? 루이곤조도 미쿡인인데? [10]

여담으로 ESPN의 퓨처스게임 중계에서 루이곤조는 Dayan Viciedo, Chih-Hsien Chiang, Hak-Ju Lee 같은 괴랄한 이름들을 발음하지 못해서 버벅댔는데 피아자는 미쿡인들의 이름을 여유롭게 발음하고 윙크를 날렸다(...).

현재는 공식적으로 메츠 31번이 결번은 아니지만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실시되는 레전드에 대한 예우로서 아무도 달지 않고 있다. 만약 그가 공식적으로 영구결번이 선포될 경우 이는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메츠 프랜차이즈 사상 최초의 포지션 플레이어 영구결번이다.[11]

그런데 국내 야구온라인 게임인 마구마구에서는 비슷한(?) 이름의 마이크.P를 LA 다저스소속의 레전드 카드를 출시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그래야 찬호.P랑 같이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12] 나중에 추가패치에서 메츠버전 레전드도 나왔다. 메데타시 메데타시

5 로저 클레멘스

뉴욕 메츠 시절의 사건으로 라이벌팀인 뉴욕 양키스로저 클레멘스과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 로저 클레멘스는 유독 피아자에게 약한 면모를 보였는데, 2000년 7월 9일에 인터리그 경기가 열리면서 성립된 서브웨이 시리즈 더블헤더 2차전[13]에 선발 등판한 클레멘스는 2회초 타석에 들어온 피아자를 향해 헤드샷을 꽂아버렸고, 피아자는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대주자와 교체된 피아자는 헬멧을 쓴 덕에 특별한 외상을 입지는 않았지만 이후 둘은 언론을 통해서 서로 디스질하면서 싸우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해 2000년 월드시리즈에 양키스와 메츠가 동시에 진출하면서 둘은 다시 한 번 맞붙게 되었다. 결국 10월 23일 양키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월드시리즈 2차전 1회초에 또다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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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자가 클레멘스의 공을 친 게 파울이 됐는데 이 때 부러진 방망이 조각이 마운드에 있던 클레멘스한테까지 튕겨져 날아왔다. 그리고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는 모르지만 클레멘스는 그 방망이 조각을 집어들더니 1루 선상을 달리고 있던 피아자를 향해 던져버렸다. 사실 동영상을 보면 클레멘스도 방망이 조각을 마치 타구인 것 처럼 잡은 후에 1루로 던지는 것 같기도 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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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빈볼 사건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던 피아자는 분을 못이겨 클레멘스를 향해 몇 마디를 던졌고, 클레멘스가 이에 무시하는 투로 응수하면서 순식간에 벤치 클리어링이 터지고 말았다. 이후 2001 올스타전에 선발 투수와 선발 포수로 맞붙었을 때도 뉴스거리를 많이 생산했다 카더라.

이후 시간이 흘러 2004년 올스타전을 앞두고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가버린 클레멘스가 선발투수로, 피아자가 선발포수로 뽑히면서 두 앙숙이 내셔널리그 올스타 팀의 배터리를 이루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언론에서 "서로에게 감정이 없다.", "다 지나간 일이다.", "각자 일에 충실히 할 것"이란 발언을 쏟아내면서 화해무드가 조성되나 싶었는데…올스타전 1회 초장부터 볼배합을 놓고 마찰이 벌어졌고, 결국 클레멘스는 1이닝 동안 홈런 2개 포함 5피안타 6실점 3자책점을 기록하고 내려왔다.(…) 피아자 :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6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

커리어 통산 .308 .377 .545 162경기평균 36홈런 113타점 94K/64BB.

특히 풀타임 15년 동안 단 한 시즌도 100삼진을 당하지 않으면서 통산 3할 타율을 유지한 400홈런 타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역대 최고의 꾸준함을 보여준 타자들에 당당히 꼽힐 수 있다는 것.[14]

워낙 배트 스피드가 빨라서 어지간한 에이스투수들도 바르고 다녔다. 흠좀무스러운 타율이나 홈런도 저 사기적인 배트 스피드에서 나왔다. 위에도 언급되었듯이, 로저 클레멘스를 상대로는 통산 25타석 22타수 8안타 4홈런 10타점 2볼넷이고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상대로는 통산 27타석 26타수 10안타 6홈런[15] 8타점. 톰 글래빈 상대로는 통산 90타석 75타수 27안타 6홈런 13타점. 글래빈에게는 삼진 5개 당하는 동안 무려 15개의 볼넷을 얻어내는등[16]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자랑한다. 글래빈이 메츠에 올때는 피아자가 살짝 아쉬웠을듯(...)
피아자에게 많은 타점을 조공한 선수들.[17]

클레멘스와 페드로를 상대로도 가히 본즈급의 OPS를 찍었고 커리어 말년 오클랜드에서나 제대로 상대해 본 로이 할러데이에게도 12타수 6안타 1홈런 4타점을 빼앗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통산 16타수 밖에 상대하지 않은 지옥의 종소리가 피아자에게 7안타 4홈런 11타점이나 털렸다는 것이다.(...) 메츠의 철천지 원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그렉 매덕스, 존 스몰츠에게는 다소 부진했다지만 이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사실 상대전적 OPS 6할 정도야 이상할게 없다(...). 한편 김병현에게는 유달리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통산 10번 상대해서 고의사구 1개만을 얻어냈고 9타수 무안타 3삼진 1병살로 철저히 눌렸다. 박찬호와 대결에서는 홈런 1개 포함 16타수 6안타(.375)로 강했다.

커리어 내내 타자에게 불리한 구장만을 골라다녀서 손해를 좀 본게 아쉽다. 그럼에도 다저 스타디움부터 시작해서 프로 플레이어 스타디움, 셰이 스타디움, 펫코 파크, 콜리세움 등 모두 손꼽히는 투수친화 구장을 홈으로 쓰면서 통산 400개가 넘는 홈런을 쳐냈다. 덕분에 통산 OPS+ 수치가 142로 굉장히 높은데, 이는 포수 중에 전례가 없는 기록으로 레지 잭슨 같은 웬만한 외야 강타자들보다도 높은 수치다.

7 명예의 전당 입성 이전의 떡밥

알려진 바에 따르면 약물 의혹에서도 자유로운 진퉁 슬러거[18]로 꼽혀왔다. 따라서 명예의 전당 입성은 기본이고, 포인트는 '얼마나 많은 표를 받고 들어가느냐'였다. 2013년 첫 투표에서 충분히 가능해보이지만, 만약 2013년 한방에 75%을 못채우면 몇 년간은 좀 심하게 빡세질 전망이었다.

일단 같은 해 출발하는 선수가 약켓맨, 약즈, 약미 소사를 제외하더라도 크레익 비지오커트 실링이 있어서 첫 턴 입성이 쉽지만은 않을 뿐더러 그 다음해부터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같은 첫 턴 입성이 확실한 레전드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때문인지 일단 첫 해에는 57.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HOF 입성에 실패하였다. 다음해에도 그렉 매덕스, 프랭크 토마스, 톰 글래빈, 마이크 무시나 같은 선수들이 대기 중이며 기존의 크레익 비지오, 잭 모리스 등도 제쳐야 하는 상당한 부담감이 있기 때문에 당분간 호프집 입성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선수 본인은 만약 HOF 가게 된다면 메츠의 멤버로서 입성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톰 글래빈 역시 그에 대해 "역대 최고 타격의 포수니까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 입성할 것"이라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긍정적인 분위기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은 2013년 2월.

피아자가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근육 강화제인 안드로스텐다이온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게 되었다. 이 안드로는 마크 맥과이어가 즐겨 사용했던 바로 그 약물이며, 게다가 바이옥스, 암페타민, 에페드라도 복용했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일단 피아자가 맥과이어처럼 안드로를 MLB 사무국에서 금지약물로 분류하기 시작한 2004년 이전에 약물을 끊었다[19]고는 하는데, 이 말을 이제 과연 누가 믿어줄 지가 문제다. 설령 안드로스텐다이온, 암페타민 등의 복용문제가 당시 기준으로 금지약물 복용은 아니라고 쳐도, 현재 금지약물로 지정된 이상 투약이 100% 확실하여 빼도박도 못하는 선수는 물론 단순한 약물 의혹만 있는 선수도 싸잡아 비난하는 세태가 당연시되는지라 피아자처럼 약밍아웃을 한 이에게 대중들이 전과 같은 우호적인 시선을 보낼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하지만 피아자가 합법적인 규정 내에서 위 약물을 복용한 것을 인정했고, 문제가 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만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자서전에서 주장한만큼 이에 대한 여론의 귀추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주목해 볼만하다.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피아자의 명예의 전당 득표율은 재수에 도전한 2014년에 62.2%로 전년보다 상승했고, 삼수째인 2015년에도 69.9%를 기록하며 꾸준히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 배리 본즈로저 클레멘스 같은 다른 약쟁이들은 물론 제프 배그웰처럼 단순 의심만 받는 후보들조차 득표율이 전부 하락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규정 내 약물 사용을 자신이 먼저 고백했다는 데서 피아자에 대한 현지 여론은 이미 상당히 우호적으로 반전된 상태이고, 근년 후보가 하도 괴수들이 많이 모여서 당장 못 들어간 것일 뿐이라 간주하는 이들도 많다. 스테로이드에 대하여 거짓말을 했다는 확증이 없는 이상, 피아자의 쿠퍼스타운 입성은 이제 길어봤자 3년 내에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6년 투표에서 83%로 너끈히 기준인 75%를 넘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이제는 피아자가 LA 다저스의 모자를 쓰고 입성하냐, 뉴욕 메츠의 모자를 쓰고 입성하냐가 이슈인데, 마이크 피아자는 미련없이 커리어 하이를 보낸 뉴욕 메츠의 모자를 선택하고 명예의 전당에 입성. 이는 톰 시버에 이은 팀 프랜차이즈 통산 두 번째 명예의 전당 입성자이며, 공통적으로 원 소속팀과 좋지 않게 헤어진 랜디 존슨과 비슷한 선례로 보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마이크 피아자는 역대 명예의 전당 입성자 중 역대 최저 순위 지명자라고 한다.

8 그 외

  • 10대 임신을 주제로 한 영화 <주노(Juno)> OST로도 쓰인, Belle & Sebastian이라는 밴드의 Piazza, New York Catcher라는 노래가 잘 알려져 있다. 딱히 이 마이크 피아자 선수와 큰 연관이 있는 노래는 아니고, 웹에서 검색해도 대체로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거나, 곡 자체만으로도 괜찮다보니 이 곡을 커버한 사람들의 영상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Piazza New York Catcher, are you straight or are you gay라는 가사가 나오기 때문에 무턱대고 듣는 야덕들은 다소 골룸하다(...). 사실 이 노래가 나오기 전부터 피아자는 게이라는 의혹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결국 이 때문에 피아자는 자신이 이성애자임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플레이보이지 모델 출신 여성과 결혼하며 이같은 의혹을 잠재웠다.
  • 또한 WBC에서 피아자 가문이 이탈리아계통이었던 까닭에[20] 이탈리아 대표 후보에 이름이 올랐으며, 이탈리아 국기를 달고 출전하였다. 이를 계기로 이탈리아 야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야구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2회 대회부터는 타격코치로 참가하였다.
  • 많은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처럼 조상이 시칠리아섬 출신이다. 2016년에 팔레르모 구단 인수 루머가 있었는데 직접 부정하며 밝힌 사실.
  • Baseball Cube 쪽에 가면 간혹 마이크 피아자가 09년에 LA 에인절스와 계약했다는 충공깽한 뉴스가 떠서 혼란을...주기도 하지만 뭇 올드비들에게 향수를 불러오기도 하는데, 이 마이크 피아자는 동명이인의 24세 AA 우완투수인데 친척지간이라고 한다. 그나저나 Piazza라는 이름이 미국 전체에서 마냥 흔한 이름은 아닐텐데 이런 혼란이... AA에서 고전하는 모양인데 2013년이면 이미 HoFer가 되어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서 빅리그에 올라와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좋을 것이라 보인다
  • 한 때 메이저리그 최고의 호색한, 잘 나가는 싱글로 유명했지만 2005년에 플레이보이 출신의 스트리퍼와 결혼했다고 한다.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방송에서 해설위원을 맡은 박찬호가 해설을 하다가 투수의 컨디션에 관해 당시 피아자와의 일화를 이야기했는데. 전성기 시절 배터리를 이뤘던 사이인만큼 친하긴 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박찬호는 피아자에게 한국어를 가르쳤고 박찬호의 피칭이 난조에 이를때면 마운드로 올라와서 "괜찮아?"하고 물어봤다고 한다. 박찬호는 "굿"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1. 어느 정도였냐면 아들 마이크의 드래프트 선발이 불투명해지자 아들을 프로 무대에 데뷔시키기 위해서 메이저리그 구단을 하나 사려고 했다고 한다. (...) 결국 아들들이 이를 만류하여 아버지가 구단주(...)가 되는 일은 없었다.
  2. 사실 도루저지는 포수보다 투수의 책임이 더 큰 부분.
  3. 다만 이런 발언은 지금도 미국야구 = 묻지마 정면승부라는 한국 야구팬들의 이상한 고정관념을 갖게 하는데 원인이 되기도 했다.
  4. 참고로 박찬호가 2013년 WBC중계중에 "피아자는 2스트라이크일때는 무조건 직구 던지랬어요"라고 폭로한 바 있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본인의 변화구를 잘 안받아줘서 아무래도 조금 서운했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송재우의 그게 뭐하는 짓이에요 드립은 덤.
  5. 실제로 제구력이 나쁜 선발투수나 너클볼러나 싱커볼러같이 홈플레이트에서 심한 변화를 일으키는 구질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일부 투수들이 주전포수 대신 전담포수를 둔 예는 지금도 있다. 예를 들면 팀 웨이크필드그렉 매덕스. 이 투수들은 비슷하게도 당시 팀내 주전이지만 궁합이 안 맞는다고 GG쳤던 포수들이 제이슨 배리텍,하비 로페즈라는 리그 상위권의 공격형 포수들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6. 이는 마이크 소시아 퇴출, 폴 코너코 포기, 페드로 마르티네즈 포기, 대런 드라이포트 계약(...) 등과 함께 다저스 역사상 최악의 실책 중 하나로 꼽힌다. 어째 다저스도 어메이징하다 다만 이 당시 피아자가 1억 달러 규모를 요구했다는 이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있다. 후술한 것처럼 당시 기준으로는 피아자로 상당히 남는 장사를 했기 때문. 애초에 받아온 선수를 제대로 못 써먹은 구단 탓을 해야지
  7. 물론 같이 말린스로 이적한 토드 질 역시 말린스의 포풍세일 정책 때문에 타자가 필요했던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 이후 2000년에 메츠로 옮겼다.
  8.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피아자의 대체자로 영입한 선수가 다저스에서 올스타 포수로 성장한 폴 로두카였다.
  9. 말년에는 카를로스 벨트란, 클리프 플로이드, 데이빗 라이트의 합류로 5, 6번에 자리했다.
  10. 쿠바 망명자 가족에서 태어났으니까 뭐 월드팀에 포함되어도 크게 문제까진 없다고 보면 될듯.
  11. 비공식 영구결번으로 게리 카터가 있긴 하다.
  12. 사실 다저스 시절 WAR(BR 기준)이 31.9로 메츠 시절의 24.5보다 월등하다.
  13. 덧붙이자면 전날 경기가 취소되어 더블헤더 1차전이 낮에 열리게 된 것인데, 이 경기는 메츠의 홈인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결국 원래 이날 예정되어 있던 경기는 더블헤더 2차전이 된 셈인데, 이 경기는 양키스의 홈인 양키 스타디움에서 시작하는 경기. 따라서 1차전 경기가 끝난 후 관중들은 모두 셰이 스타디움에서 지하철을 타고 양키 스타디움으로 갔다.
  14. 이 기록의 보유자는 테드 윌리엄스, 스탠 뮤지얼, 루 게릭, 멜 오트, 행크 아론, 베이브 루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버트 푸홀스, 치퍼 존스, 그리고 마이크 피아자까지 열 명 뿐이다.
  15. 페드로에게 가장 많은 홈런을 때린게 피아자.
  16. 물론 글래빈의 통산 1회 성적이 K/BB가 1에 가까울 정도였던 점도 있지만 글래빈 상대로 90타석을 상대하면서 13타점에 OPS가 1.133이라는건 범상치 않은 수치다.
  17. 2001년부터 같은 지구 팀끼리 지겹도록 자주 만나게 된 MLB 대진의 특성상 애틀랜타 브레이브스필라델피아 필리스,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뛴 선수들은 타수가 많이 쌓였기 때문에 타점 수가 높게 측정되는 것이 반영되긴 했다.
  18. 그러나 제프 펄먼 기자의 책 <The Rocket That Fell to Earth>에서 대놓고 스테로이드 복용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분히 무차별 폭로성이 짙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이 책 외에는 아무 데서도 언급된 바 없고 팬들은 이 책에 대해 알지도 못한다. 또한 이반 로드리게스도 이 책에 나왔지만 호세 칸세코의 책 <Juiced> 외에 아무런 도핑테스트나 각종 신뢰할만한 소스에서 언급된 바 없다는 점에서 약쟁이로 치부할 수 없다. 그리고 기레기들 덕에 퍼지는 HOF 득표율을 까먹고
  19. 자서전에 따르면 대놓고 빅맥이 1998년의 홈런 레이스 중에 안드로를 사용했다는 얘기를 밝혔고, 실제로 빅맥의 라커에서 안드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끊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20. 1997년 피아자가 인종차별성 발언을 했을 때 국내 기자들은 이 점을 들어 피아자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