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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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컵스 시절, 새미 소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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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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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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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과 함께 우승을 이끈 최전성기였던 2009년 시절.

KIA 타이거즈 역대 주장
김상훈
(2009)
최희섭[1]
(2010)
김상훈
(2010~2011)

2009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이름최희섭 (崔希涉 / Hee-Seop Choi)
생년월일1979년 3월 16일
신체196cm[2], 123kg, A형
출신지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만수리
학력광주송정동초-충장중-광주일고-고려대[3]
투타좌투좌타
포지션1루수
가족배우자 김유미
프로입단1998년 1차 지명(해태 타이거즈)
1999년 아마추어 자유계약(시카고 컵스)
2007년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KIA 타이거즈)
소속팀시카고 컵스 (2002~2003)
플로리다 말린스 (200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4~2005)
KIA 타이거즈 (2007~2015)
등장곡Jean Roch 'Can You Feel It'
응원가Deep Purple 'Smoke on the Water'[4]
Village People 'YMCA'[5]
군 복무병역특례
보유 기록
2009년 한국프로야구 최다 득점상

1 개요

前 프로야구 선수, 현 MBC SPORTS+의 해설위원.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타자이며 2007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국내로 복귀한 선수이자 KIA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한기주와 함께 애증의 존재.[6] 사실 최희섭 본인도 MLB 시절에 겪은 뇌진탕을 비롯하여 온갖 질병을 겪긴 했지만, 그와 동시에 온갖 구설수를 만들었던지라 드라마틱했던 2009 시즌이면 몰라도 2011년 이후로는 씨알도 안 먹힌다. 최희섭에 대한 KIA팬들의 반감이 얼마나 크냐면, 직전에 산악인에 취소선을 긋지 않은 채로 수정되어 있었고, 하다못해 상위 항목에도 있지도 않은 산악인 항목 링크까지 걸려 있었다. 2009년 해태 시절을 포함한 타이거즈 10번째 우승의 주역이기도 하지만, 그 후에 유리몸과 창호지 체력, 유리멘탈로 인한 여러 구설수로 실망감을 잔뜩 주고 있다. 이래저래 구단과 팬들을 지치게 만드는 계륵같은 존재였으며 타이거즈 팬들은 그를 그냥 최초의 메이져리거 타자와 2009 V10을 이룰때 반짝한 인물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당장 2007년 복귀 후 2014년까지 약 8년을 뛰면서 최희섭은 통산 타율 0.282를 기록하는 등 크게 나쁘지는 않지만 세부 스탯을 보면 그야말로 막장인데, 평균 성적을 매겨보면 한 시즌당 평균 74경기 250.8 타수 70.8안타 11.8홈런 46.6타점 38.6 득점 2도루를 기록하며 아무리 평균이라지만 규정타석도 제대로 못채운 셈이다. 그나마 평균 홈런이 높은 것도 2009/2010 시즌에 54 홈런을 몰아쳐서 저렇게 나온 거다(...).[7] 팀내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라는 걸 감안하면 좋게 표현해줘야 계륵이고, 냉혹하게 표현하면 빼도박도 못할 먹튀다.

야만없이지만그의 커리어에 ×3을 한다면, 1902경기 6393타수 1796안타 345 2루타 300홈런 1179타점 981득점이 되는데 이 성적은 2015시즌 종료 직후 기준으로 경기수 12위 타수 9위 안타 13위 2루타 6위 홈런 8위 타점 3위 득점 11위가 된다. 기복없이 꾸준히 뛰는 선수가 6000타수는 가뿐히 넘기는것을 볼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아쉬운 부분.

2015년 10월 20일 드디어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9시즌 동안 정확히 100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이승엽의 2002~03시즌 103홈런, 박병호의 2014~15시즌의 105홈런 만큼도 안되는 양이었다.

2 본격!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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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일고 시절.
광주일고 시절, 191cm의 키에 110Kg에 육박하는 몸무게로 한국인으로선 독보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박찬호로 인해 한창 메이저리그 붐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 진출, 시카고 컵스에 입단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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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컶 시절.
트리플 A에 있을때는 타자 신인 중 최고의 잠재성을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했고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유망주 순위에서도 2001, 2003년에 22위에 선정되는 등 기대가 촉망됐다. 그렇게 콜업된 메이저리그에서도 초반 나름대로 활약했다. 2003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 4월의 신인으로 선정되는 듯 막 잘 나가려고 했으나, 6월 8일 뉴욕 양키스전에서 내야 플라이를 잡기 위해 마운드 근처로 접근하다 투수 케리 우드와 충돌, 뒷머리를 땅에 부딪혀 6시간 동안 깨어나지 못했고, 이 때 생긴 뇌진탕은 그 후로도 계속 그를 괴롭혔다. 다만, 은퇴 직후에 가진 인터뷰에서 최희섭은 이후 자신이 부진했던 것에 대해 '솔직히 실력에서 버거웠다'며 뇌진탕으로 변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관련 인터뷰 여기서 뇌진탕때문이었다고 해봐라. 지금까지 십몇년동안 '괜찮다. 완치됐다'라고 말해왔을텐데

2004년 플로리다로 이적해 제프 코나인과 같이 플래툰 시스템으로 엮여 출전하면서도 전반기에만 15홈런을 기록하는 활약을 펼치다가 그 해 7월 30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전격 트레이드되었으나 트레이드 이후에는 홈런을 한 개도 추가하지 못했다.[9] 그리고 이듬해인 2005년에도 플래툰 시스템으로 엮여 올메도 사엔즈와 번갈아 출전했지만, 그 와중에도 6월 13일 한 경기 연타석 3홈런을 포함하여[10] 3경기 6홈런이라는 미칠듯한 포스를 보여주는 등 15홈런을 기록했다. 그 해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초청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최희섭 자신의 순수한 실력으로 올라가기 보다는 2006년 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을 앞둔 메이저리그 사무국 입장에서 WBC 개최의 정당성을 나름대로 피력하기 위해 뽑혔던 것. 참고로 최희섭이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서 성공한 홈런이 5개였는데 이는 2014년 기준으로도 다저스 역대 홈런 더비 출전 선수 중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가 2015년 신인으로서 홈런 더비에 참가한 작 피더슨이 결승까지 가면서 가볍게 최희섭을 뛰어넘었다. 피더슨이 결승까지 친 홈런 숫자는 최희섭의 7.8배나 된다.

한편 이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잘 나가던, 어쩌면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레전드 3루수가 될 수 있었던 한 선수와 본의 아닌 충돌로 인해 이 선수의 운명이 뒤바뀌었다. 다만 최희섭이 고의적으로 충돌한 것은 아니었다. 항목 참고.[11]

하지만 2006년 선발 경쟁에서 밀려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고[12] 그 이후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결국 2007년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로 이적했다가 부상 악화와 기량이 기대만큼 발전하지 못하고 여전히 답보 상태인 점 등 여러가지 이유로 결국 구단에 방출을 요구하여 메이저리그에서는 완전히 아웃되었다.

마이너 당시 비슷한 유망주 랭킹에 위치했던[13] 알버트 푸홀스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특급 타자로 성장한 반면에 완전히 추락한 케이스. 후에 푸홀스가 마이너에 있는 최희섭을 보고 놀라워했단 이야기도 있다. 이러한 최희섭의 성장실패는 상당수의 스카우터들이 지적한 몸쪽 공 적응을 잘하면 40홈런 올스타 1루수, 못하면 AAAA리거가 나쁜 쪽으로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본인의 메이저리그 의욕이 좀더 강하고, 경험을 쌓아 몸쪽공에 대한 적응도를 조금이라도 높였다면 언젠가 재기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탬파베이 데블 레이스의 1루수였고 마이너시절 진짜 최희섭의 라이벌이었던 카를로스 페냐[14] 역시 최희섭과 비슷한 약점을 가지며 커리어 역시 비슷하게 갔지만 최희섭이 한국으로 귀환하던 시즌에 기회를 잡아 성공했다. 다만, 페냐도 그 성공이 오래가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지만. 마해영의 야구본색에서 다시 20대로 돌아가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할 자신은 없다는 솔직한 인터뷰를 했었다. 사실은 트리플 A 때부터도 수준격차를 너무 심하게 느껴서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16시즌 박병호가 부진함에 따라 그래도 타율은 평균 .250이상은 유지했던 최희섭과 비교해 재평가설이 나오고 있다

3 KBO 리그 시절

3.1 2007 ~ 2008 시즌

2007년 5월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로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던 고향 팀 KIA 타이거즈의 제의에 응해 KIA에 입단, 국내 팬들의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으나 부상을 이유로 1군 52경기밖에 뛰지 못했으며 팬들이 기대하던 홈런 또한 7개밖에 치지 못했다. 그래도 후반기에 단타 위주의 타격을 보이며 3할 3푼의 높은 타율을 기록해 기아 팬들은 2008년도를 기대했지만 뇌진탕 악화로 전지훈련 중 조기 귀국해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라 어깨 부상 등이 겹치며 55경기 출장에 타율 0.229, 22타점, 6홈런, OPS 0.640의 최악의 먹튀짓을 기록하며 기아의 주적이 되었다. 부상 당시 최희섭이 부상 치료를 위해 2군으로 내려가자 조범현 감독은 '일요일날 통증을 느꼈으면 휴식일에 말을 해서 조치를 취하게 해야지 화요일 경기가 시작되고서야 말하면 어떻게 하나, 프로로서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다'고 질책했으나 당시 기아의 성적이 안습이었던 터라 팬들은 조감독과 최희섭을 함께 깠다….[15] 최희섭과 플로리다 말린스 시절 잠시 인연을 맺었던 박철영 SK 배터리코치는 "최희섭 기량문제 떠나 체중 감량이 우선"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정확히는 "체지방이 있어도 꽃등심처럼 마블링이 퍼져있는 상태라면 문제없다. 희섭이는 마블링이 아니라 일부분에 기름이 낀 것"이라면서 "몸의 회전력이 과거보다 상당히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여담으로 최희섭의 홈 데뷔전은 522 대첩이라는 엄청난 막장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5년 후 같은 날 일어난 대첩에서 동점타로 활약한다

메이저리그 시절 약혼했던 일본인 스포츠 리포터 야스다 아야와 2007년 11월 27일 파혼, 그 충격과 더불어 반년만에 국내 투수들에게 모든 약점을 간파당한 채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게다가 WBC 때의 모 기사로 인해 퍼진 자만심 넘치는 이미지와 함께 허우대에 맞지 않게 두통[16]등 각종 부상을 호소해 약골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인생의 승리자였던 최희섭은 한순간에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최후의 자존심인 메이저리거 한국인 타자 신기록(최다타점, 홈런 등등)들은 모두 추신수가 경신했다. 더군다나 추신수는 사이클링 안타도 쳤다.

3.2 2009 시즌

부활, 그리고 CK포로 일궈 낸 우승

절치부심하며 몸만들기와 훈련에 열심히 임하였다. 2009년에 성적을 내지 못하면 은퇴하겠다는 기사가 뜨기도 할 만큼 독심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09년에 적어도 수비는 확실히 메이저리거급이란 평가를 받았으며, 부진하던 타격도 이전에 비해 어느 정도 일취월장했다. 파워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다는 평. 한 번은 경기중에 타격폼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한쪽 무릎을 꿇고 타격을했는데 그게 폴대를 살짝 비껴간 파울홈런이 나왔을 정도. 시즌 중 김상현의 영입으로 타선에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 데다, 워낙에 포구 능력이 좋아서 내야진의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17] 6, 7월 두 달 동안 타격에서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최희수비의 명성은 보여주며 주전 자리를 잡고 있다가, 8월에 대폭발했다.

8월 21일 SK전에서 24호 홈런을 치면서 김상현, 클리프 브룸바와 함께 홈런 공동 1위까지 올랐으나 바로 다음 타석에서 김상현이 홈런을 치면서 1위의 기쁨은 한순간(…) 멀고도 먼 홈런왕의 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김상현에 이어 2009년 시즌에 두 번째로 30홈런을 때렸으며,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회말에 역전 쓰리런을 때려내 기적적으로 100타점을 채우면서 김상현에 이어서 두번째로 3할 30홈런 100타점에 가입했다. 이로써 그를 향한 부정적인 인식은 대부분 잠들었다. 역시 프로선수는 실력으로 말한다. 특히 이 홈런은 엄청난 비거리로 날아가[18] 팬들이 한동안 몇 미터를 날아갔는지 알아보려 시도하기도 했다.

2009 시즌의 최종 성적은 거의 풀 타임인 131경기(535타석) 출전에 타율 0.308(리그 11위), 타점 100(리그 공동 3위), 홈런 33(리그 2위), OPS 1.023(리그 4위). 그 외에도 98득점으로 득점 부문에서 정근우와 공동 1위를 기록할 정도로 팀 공헌도도 높았으며, 수비섭이라고 불릴 정도로 1루를 안정적으로 지켜 KIA의 시즌 우승에 중심을 담당했다. 1루수 골든글러브도 압도적인 표차로 획득했다.

연봉협상의 의견차가 커지면서 2009년 12월 15일 팀에서 이탈했다. 최희섭이 욕심을 부렸다기 보다는 프론트에서 별다른 협상 의지없이 제시한 연봉액을 강요했다는게 중론. 결국 연봉 4억원의 100% 인상안에 재계약했다.

3.3 2010 시즌

잠실 구장에서 장외 홈런을 치는가 싶더니 기록원의 매의 눈과 경기장 안에서 그 공을 주웠다는 사람 덕분에 장외 홈런이 아닌 걸로 판정났다.

이렇게 좋은 페이스로 시즌을 시작하나 싶었으나 4월 성적은 어게인 2008….

2009년과 다름없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기아 타선에서 그나마 제몫을 하고 있지만 작년보단 부진한 모습. 나지완의 부진과 김상현의 부상으로 중심타선에 제대로 된 선수가 없는 것도 성적 하락의 원인 중 하나이다.

최종 성적은 타율 0.286 21홈런 84타점 81볼넷. 확실히 전 시즌보다는 좋지않은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4할에 가까운 출루율과 OPS 8할대 후반을 기록하면서 그야말로 후루꾸 공갈포로 전락한 김상현보다는 그럭저럭 밥값을 하였다.

시즌이 끝난 뒤 내년을 위해 이를 갈고 있다고 한다. 삽질을 했던 나지완, 손영민과 등산을 함께 가고 신혼여행도 포기할 정도. 이때부터 등산가의 기질이 보이기 시작하였는데..

3.4 2011 시즌

최희섭/2011년 항목 참조.

3.5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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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6일 대 삼성전에서 끝내주는 시구를 보여준 이수정씨와(...) 잘 논다

정초부터 큰 논란에 휘말렸던 최희섭은 결국 전년 대비 57.5%가 깎인 1억 7천만원에 연봉계약을 맺었고 동시에 상벌위원회를 열어 구단 이미지 실추 및 팀워크 저해, 프로야구선수로서의 품위 실추 등을 이유로 최희섭에게 벌금 2000만원과 정상적인 체력 회복까지 재활군 훈련에 임하라는 징계를 내렸다.#

손바닥 골절 부상으로 3개월이나 결장하게 된 김상현을 대신해서 4월 10일 홈개막전부터 1군에 콜업될 예정이다. 4월 11일 삼성전에서 0:0으로 팽팽히 맞선 상황에서 팀의 승리를 이끄는 중요한 안타를 쳐낸데다 12일에는 2루타로 타점을 올렸다. 4월 15일에는 마수걸이 투런홈런까지.

특히 애리조나 전지훈련 다녀온 타자들이 죄다 삽질하는 상황에서, 이탈파문을 일으키며 국내에서 그것도 뒤늦게 훈련에 임한 최희섭이 이범호가 돌아오기 전까지 혼자 기아의 타격을 이끌고 있는 모양새라 야구는 잘한 놈이 잘한다며 기아팬들은 최희섭을 찬양중. 별명도 저메'대왕'으로 격상. 변수라면 동계훈련을 소화하지 못한 만큼 체력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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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2일 한화전에서 2타점 2루타를 날리고.

5월 22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제2차 522 대첩에서 8회말 무사 1, 2루, 팀이 3: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2타점 동점 2루타를 때려내며 크게 활약했다. 물방망이가 되어버린 기아 타선에서 이범호와 함께 쳐야 할 때 쳐 주는 선수로 칭송받고 있다.

6월 9일날 vs롯데전에서 롯데의 마무리 투수 김사율을 상대로 대타로 나와 동점 솔로 홈런을 작렬, 팀의 vs롯데전 12연패에 종지부를 찍는 데 교두보가 된 귀중한 한 방을 날렸다.

클린업 타자나 대타로 출장하며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동계훈련에 빠졌던 탓인지 체력 문제로 풀타임 선발 출장이 힘들어 보인다. 김주형이 대수비 땜빵을 맡기도 했지만, 답이 안 나오는 플레이로 결국 조영훈을 트레이드해오게 만들었다.[19] 어찌됐든 아직 최희섭은 기아 타선에서 아주 빼놓을 수 없는 타자임은 분명하다.

7월들어 계속 부진하더니 7월 12일자로 치질(...)수술을 받았다는 기사가 떴다. 그 전에는 허리가 고질병이더니, 이제는 거기냐...

7월 19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0:4로 이기던 5회말 2사 2루[20] 상황에서 가운데 담장을 넘는 투런 쐐기 홈런을 때려냈다. 팀은 0:6으로 완승. 시즌 전반기 마지막 경기를 홈런으로 장식하며 시원하게 마무리했다.

8월 9일 복통으로 병원에 갔더니, 요로결석 진단이 나왔다고 한다.(...) 본인은 팀이 상승세를 타는 상황이라 빠질 수 없다며 입원을 거부하고 덕아웃에 나오고 있다.[21] 시즌 초 팀 이탈을 하던 상황에 비해 멘탈 측면에서 성숙한 모습이지만, 이범호김상현 모두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이라 걱정스러운 모습이다. KIA의 주축 클린업 선수들이 모두 골골대는 터라 하루빨리 대체 자원을 찾아야 하는 상황.

8월 14일, 이번에는 장염이라고 한다. 선동열 감독도 단단히 화가 난 듯하다. 그리고 그의 빈 자리에는 커다란 수비 구멍이 뻥뻥...

9월 15일에는 치루 수술을 받으며 재활에 4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시즌 아웃이 되었다.

시즌이 끝난 후 몸상태를 끌어올리며 마무리 훈련에 합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몸을 잘 추스려서 2009년의 활약을 다시 보여주길 바랄 뿐.# 츤데레 선동열 다행히 무사히 오키나와 마무리 훈련에 참가하면서 다음 시즌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보이는 등 안습이었던 2012년과는 다른 모습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3.6 2013 시즌

최희섭/2013년 참조.
화려했던 4월 그리고...

3.7 2014 시즌

작년 9월말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을 했으나 회복이 더뎌 스프링캠프에 나서지 못했고 2014년 6월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재활한답시고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중. 일단 본인 입으로는 마음은 늘 그라운드를 향한다고 하는데 팬들 반응은 매우 차가운 상황. 무슨 양심이 있어서 몸값은 1억은 꼬박꼬박 받아먹으려고 하냐는 비이냥도 들을 정도다.야구해라 최희섭

5월까지 브렛 필의 맹활약으로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나 싶었는데, 필이 부상을 당하자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는 중.

6월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가 6월 14일 드디어 근황이 공개 되었는데 재활하면서 12Kg을 감량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재활중이라는 소식도 함께 들려와 팬들의 한숨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다.그냥 은퇴하고 좋아하는 등산이나 농사나 하길

그리고 또 소식이 없다가 7월 22일자 기사에서는 8월 말이나 9월쯤에야 겨우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고 했으나, 결국 9월 시행 확대 엔트리 진입에도 실패하였다는 기사가 떴다. 브렛 필이 09년 최희섭과 비견되는 포스를 풍기는데다 멘탈은 비교도 안되는지라 은퇴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2014년 시즌은 결국 통으로 날리며 마감하였다. 심지어 2군에서조차 단 한 경기도 출전한 적이 없다고 한다. 예정되어 있었던 타격 훈련조차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SUN의 한숨 “최희섭, 야구할 의향은 있는 건지…” 팬들 사이에선 선감독과 손잡고 나가라고 아우성이다. 마침 선동열 감독도 2년 재계약에 성공했다가 며칠 만에 사퇴했지 과연 2014 시즌 1, 2군에 코빼기도 안보이고도 자존심 운운하는연봉 1억을 지킬 수 있을지 두고 봐야 할 일. 여기 삽리대 추가요!

2014년 10월말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구단에 찾아가 마무리캠프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달라 읍소했다 한다. 역시나 또 어김없이 스토브 리그가 시작되자 열심히 훈련중, 내년에는 다르다라는 인터뷰를 했다. 매년 감독 이름만 바꿔서 똑같은 기사가 나오는듯

선동열 부임 후 트레이드 소동부터 시작해 온갖 구설수로 선동열 감독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며, 그 때문에 선 감독 재임 기간중 고의적으로 태업했다는 의혹도 있다. 그래서 선 감독이 자진 사퇴했으니 이젠 잘하겠지...라는 의견이 없지 않으나, 전에도 몇 번 이런 전적이 있는데다 몇 년째 유리몸, 유리멘탈에 학을 뗀 팬들은 반응이 매우 차갑다. 사실 태업 자체도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오죽하면 연봉협상 기간이 얼마 안남았다고 대놓고 억대연봉 유지하려고 언플하는거라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양치기소년

야구인생 최초로 내년 연봉을 백지위임했고, 12월 30일 연봉 7000만원에 사인했다고 한다. 1억 지키기는 깨졌지만 몇몇 팬들은 7000만원도 아깝다고 깠다.

3.8 2015 시즌

화려했던 4~5월, 그리고 현역 마지막 시즌

최희섭/2015년 항목으로.

4 은퇴 선언 뒤 행보

2015 시즌 후 더 이상 선수 생활에 미련을 접은 최희섭은 KIA 구단에 은퇴 의사를 알렸다. 은퇴 후에는 프런트로 취업하여 야구 실무를 배우고 싶어한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메이저리그 시절의 동료들이 지금은 코칭스태프로 있는 등, 메이저리그 쪽에 있는 인맥들을 잘 활용하면 상당히 팀에 도움이 될 수 있기도 하다. 근데 여기아직도 선발 출장 중이다. 다만 이 있어서 지명타자다. 하라는 등산은 안 하고 프런트를 하다니

2015년 12월 28일 인터뷰에서는 자신이 실력이 부족하여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했다고 발언하면서, 그 당시 라커룸에서 대놓고 금지약물 주사를 맞는 것을 일상처럼 봤다며 메이저리그 이면에 있는 금지약물의 어두운 면을 꼬집었다. 물론 팬들의 반응은 맞는 말인데 발언자가 엉뚱하다는 평.

볼티모어 오리올스미네소타 트윈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기로 했는데, MLB 시절에 같이 뛰었던 동료들이 현재 각 팀의 감독이나 코치를 하고 있어서 아마 직장을 구하기는 쉬울 것이라고 전했다. 메이저리거의 위엄

그리고 2016년 MBC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됐다. 5월 20일(한국 시간 기준, 현지는 19일) 애틀랜타 대 피츠버그 전에서 첫 해설을 했는데 말을 시작할때와 끝마칠때 그리고 단어 사이 사이에 이 사이로 흘러나온 침을 빨아당기는 듯한 소리를 계속해서 내기스~읍 때문에 거슬린다는 평무등산을 가던가 코치를 해라이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최희섭의 새로운 별명으로 최희스읍이 생기기도 했다.

2016년 5월 12일 엠스플의 광고로 등장했다. 광고가 정말 약을 거하게 빨았다;;. 덕분에 야빠 들에게 큰웃음을 줘서 순간 검색어 순위 1위에도 등극했다. 광고 이름이 형.저.메 다(..)날알아주는건 무등산 밖에 없다 생각했거든

실제 방송영상(2:53:24 지점) 광고가 끝난 뒤 중계석에서 터진 빵형은 덤(..)

해설가로서 평가는 그리 좋지 않다. 그냥 2군 타격코치나 하지 첫날이야 긴장하고 해설가 데뷔니 그렇다 치더라도 해설가로서 미숙한 모습이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 발전이 없지는 않아보이지만 2016년 내로 욕 안먹는 수준까지 올라올지는 비관적이다. 한편으로는 한국 팬들에게 좋은 소리를 전혀 못 듣는 시카고 컵스를 대놓고 응원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자신이 성장하고 자신에게 첫 타석부터 전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줬던 좋은 추억을 가진 팀이라 어쩔 수 없지만...

5 야구 외

  • 키가 키인지라 농구로 따지면 포워드도 가능한 키이다. 메이져 강타자중에서도 평균이상이다. 실제로 야구선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야구선수가 안되었다면 무슨 직업을 가지고 있었을까?'라는 내용의 설문조사에서 본인도 야구를 안 했으면 농구를 했을 거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이후의 급격한 유리몸화에 학을 뗀 팬들은 한 경기 뛰고 시즌아웃 당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여담으로 이때 최정은 과학자라고 대답했는데, 이를 들은 야갤러들은 '복리도 모르는 빠가(…)가 무슨 과학자?'라는 반응을 보였다. 현실은 등산가가 되었다
  • 2004년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 될 때 트레이드 대상자였던 데릭 리와의 인연이 화제가 됐다. 데릭 리의 아버지인 레온 리는 바로 최희섭을 메이저리그로 스카웃 했던 사람. 레온 리는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족적을 남겨 메이저리그에서도 동아시아통으로 통했다. 참고로 레온 리와 그의 형인 레론 리는 일본프로야구 롯데 오리온스에서 뛰었으며, 레론 리는 일본프로야구 통산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메이저리거 시절 별명은 빅 초이이고, 한국 무대에 돌아온 후에도 소개 문구[22]로 간혹 쓰이고 있으나 국내 복귀 후 삽질만 한다고 희 초이라고 불렸으며 특히 모 기자의 기사에서 자신에게 충고해주던 이승엽을 향해 말했다는 '형, 저 메이저리거예요.'의 줄인말인 형저메로 굳어졌다. 메이저리거 대신 병신/병살타자(형저병), 홈런타자(형저홈), 함평리거(형저함 - 기아 2군훈련장이 함평에 있다.) 등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 그 외엔 빅 초이+취미가 등산+시즌 내내 안 보임=빅풋(…)이라는 별명도 있다. 스토브리그 시즌이 열리면 산에서 내려오는 크립티드
다만 이는 한국 기자문단의 큰 병크로 기사 하나가 얼마나 사람을 잡을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 사실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라는 기사를 쓴 유명 모 기자 본인도 확실한 근거를 가지고 쓴 기사다라고 장담하지는 못했고 근거가 있는 기사라는 식으로 에둘러 넘어가버린 것을 보면 확실치 않은 걸 건수 잡아서 쓴 듯 하다. 사실 기사 내용도 최희섭을 까기 위한 내용보다는 적당한 유머의 성격이 강했다. 최희섭 본인이 내성적인 성격인 탓에 적극적으로 해명을 하지 않아서 최희섭이 하는 건 없으면서 건방지다는 인식을 주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셈. 안습스러운 일이다.라고 기아팬들은 대부분 생각하지만 정작 최희섭이 직접 해명한 '형저메의 진실'이란 해명글을 읽어보면 어차피 그게 그거...
  • 별명중에 동네 모자란 형(줄여서 동모형)[23]이 있다. 초등학생을 위한 야구 캠프에서 급식당번을 맡아 계란말이를 나눠주다 자기가 집어 먹는 장면이 사진에 찍혀 바보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 2009 시즌에는 위의 별명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맹활약을 펼쳐 저메신, 형저신이 되었다. 또 2009년 들어서 최희섭이 사실은 사슴같이 착하고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밤비섭이라고도 불린다. 어쨌든 형저메의 거만한 이미지는 2009년 들어서 거의 불식된 상황. 대신 09 시즌 부터 시작된 그의 깊은 산 사랑에 형저뫼라는 별명이 탄생했다. 혹은 형저농이라 불린다. 09시즌 종료 후 프런트와의 연봉협상에서 만족할만한 대답을 얻지 못하자 농사나 짓겠다고 발언한 것에서 나온 이야기. 이것에 착안해 농부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로 인해 항구도시인 군산 출신 김상현은 어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나지완은 광부.본격1차산업클린업트리오
  • 11시즌에는 위의 아내 트위터 사건때문에 돡저메, 최두산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한 똑딱질만 한다고 똑저메, 최희블세터라는 별명도 붙었다.
  • 2009년 12월 6일자 개그 콘서트나지완, 양현종과 함께 방청하다가 왕비호에게 까였다. 다음 시즌에 성적 나쁘면 보나마나 악플로 "훈련 안하고 개콘이나 보니까 그렇지!"라고 할거라며…. 추가타로 형저메사건. 하지만 이 기간은 비활동 기간[24]이라 단체 훈련은 금지되어 있다…. 개인훈련은 가능하지만.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물론 10년은 김상현의 부상 및 나지완의 삽질로 쉴드를 쳐줄 수 있지만, 11, 12년의 성적은 형저메라는 별명이 다시 혐오로 돌아오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
  • 등산 덕후로 알려져 있다. 등산을 하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고. 이승엽의 말에 의하면 "무슨 등산 안내원인줄 알았다."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겠다는 포부를 밝힌바 있다. 그리고 등산가로 제 2의 삶을 시작했다.
  • 절친인 이현곤의 혼삿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자기 혼삿길은 고난의 행군
  • 일본인인 야스다 아야와의 파혼 이후 가수 홍진영과 사귄다는 기사가 난 적 있지만, 최희섭 본인은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냐며 펄쩍 뛰며 부정. 사실 진짜 여친은 따로 있었고, 이후 7월 22일 미스코리아 미 출신 김유미씨와의 열애사실과 2010년 12월 5일 결혼한다는 사실을 발표하였다. 김유미는 결혼 발표 기자회견에서 속도위반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2011년 1월 임신 7개월 속도위반이 밝혀졌다. 2011년 3월 28일 득남하였다.
  • 불암갑에 따르면 최희섭이 홈런을 치면 저메인대포라는 듯.
  • 뱀발로, 부활을 기원해 새로운 응원가가 만들어졌다(…). #아~ K.I.A 최희섭 갸희섭이~ 갸희섭이~ 믿으면 골룸.
  • 2012년 비시즌기간 보여준 모습에 많은 기아팬들이 돌아섰지만 수도권팀에 복수드립으로 역시 동모형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저메, 최등학생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러다 2013년 4월 한정으로 다시 2009년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진격의 저메라는 별명이 생겼다.

6 기타

6.1 형저메의 진실

최희섭에게 그 유명한 '형저메(형, 저 메이저리거예요)' 사건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저메'란 자신에게 충고를 하는 이승엽에게 최희섭이 "형, 저 메이저리거예요"라고 했다는 데서 시작된 별명이다. '형저메'는 최희섭이 부진할 때마다 팬들에게 좋은 안주감이 됐다.

최희섭은 이에 대해 "(김)태균이 편을 들어주려다 나온 농담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털어놓았다. 2006년 3월 1회 WBC 참가중 어느날 운동장에 나갔는데 김태균(한화)이 약간 풀이 죽어 있더란다. 이승엽이 타격 조언을 해주면서, 농담으로 자존심 상하는 말을 했던 모양이었다. 최희섭은 김태균과 나란히 서서 몸을 풀었다. 그때 둘을 지켜보고 있던 이승엽이 "왜 말이 없냐. 소리도 안내고 열심히 할 수 있냐!"라고 외쳤다. 이때 최희섭이 '형저메'의 오리지널 버전인 "승엽이형. 무슨 소리를 내요 프로가. 저 메이저리거예요."라고 웃으며 농담으로 되받았다. 메이저리그 훈련 때는 소리를 안 내는 거 알지 않냐는 설명과 함께. 그때부터 '형저메'는 최희섭과 패키지로 붙어다니게 됐다.

최희섭은 "그때 난 못 하던 시절이었고, 승엽이 형은 최고의 선수이자 본받고 싶은 선수였다. 아무 생각없이 튀어나온 말"이라며 "승엽이형이 기분 나빴을 수도 있는데 이후에도 승엽이 형과는 잘 지낸다"며 팬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승엽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형저메'논란 해명 기사가 뜬다.##

대충 내용을 요약하자면 최희섭, 김태균, 이승엽이 내야 펑고 때 최희섭과 김태균이 조용히 공만 받자 이승엽은 "애들아. 소리도 조금 내면서 파이팅 외쳐야지"라고 말하자 최희섭이 "메이저리그에서는 소리 안 내는데요"라고 말한 것이 주변에 있던 베테랑 선수들의 귀에 들어가면서 '형저메'라는 우스갯소리가 만들어졌다는 것. 이승엽은 "당시 (최)희섭이가 메이저리그와 한국의 야구 스타일이 다르다는 의미에서 내게 "미국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한 게 "형! 저 메이저리거에요"라고 와전됐다"고 밝혔으며 자기도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정말? 어쨌든 최희섭의 설명과 일치한다.

김상현과의 만남 이후 강렬한 불꽃을 태웠던 2009년에는 "형 저 홈런쳐요"로 패러디된 적이 있었다.

비하적 목적으로 생겨난 별명이지만 최희섭 본인도 이제는 해탈했는지 본인의 메이저리그 해설 데뷔 광고 문구에서 대놓고 '형저메'가 쓰였으며, 또 다른 비하용도인 무등산 드립까지 나왔다. , 이저리그 중계해요.

7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장타율출루율
2002시카고 컵스2450.1809102460.320.281
200380202.21844170828311.421.350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장타율출루율
2004플로리다 말린스95281.276961611550481.505.388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장타율출루율
2004로스앤젤레스 다저스3162.16110500650.242.289
2005133320.253811521542401.453.336
20061군 기록 없음
년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
장타율출루율
2007KIA 타이거즈52199.33767170746203.528.386
200855188.2294321622174.346.295
2009131435.30813423033
(2위)
100
(3위)
98
(1위)
2.589
(4위)
.435
2010126444.2861272212184784.482.413
201170242.28168141937361.459.379
201280246.25262170742311.406.379
201378252.258651711142291.464.380
20141군 기록 없음
201542125.2563230620180.424.369
한국 통산(8시즌)6342131.281598115410039332716.479.388
MLB 통산(5시즌)363915.240220543401201305.437.349
  1. 주장을 시켰으나 엄하게 군기잡는 스타일이라 후배들의 반발이 있어서 시즌 도중 주장이 교체되었다.
  2. 실제 맨발 키는 192cm. 사족으로 최희섭의 우월한 장신은 부모님의 유전자덕이 커보인다. 부모님도 굉장히 키가 크셔서 은퇴식 당시 참가한 아버지의 키만 해도 족히 180은 되보인다.
  3. 중퇴를 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4. 최희섭 오오오~ 최희섭 오오~
  5. 2008년 내야수 외국인 선수로 뛰었던 윌슨 발데스의 응원가의 재탕이다. 가사는 빅초이! 오오오오오오오오x3 타이거즈 빅초이!
  6. 다만 한기주의 경우 서정환의 무식한 혹사로 인한 후유증으로 부진에 빠진 거라고 변호라도 할 수 있지만, 최희섭의 경우 그런 것도 별로 없다.
  7. 2014년까지 최희섭은 통산 94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8. 이때 고려대를 입학하자마자 중퇴했다.
  9.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데릭 리는 2005년 내셔널리그 타격왕 및 홈런2위로 폭주했다. 그리고 마구마구에서 사기스텟을 받았다.
  10. 이 때 당시 다저스의 선발 투수는 훗날 KIA 타이거즈에서 같이 한솥밥을 먹게 되는 데니스 홀튼이었다.
  11. 커리어하이 시즌이자 어깨 부상을 당하기 바로 전 시즌인 2004년까지의 커리어, 그리고 그 이후의 커리어와 수술 경력을 생각해본다면 어깨 부상이 롤렌에게 있어 매우 치명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유격수에서 3루수로 전향한 로드리게스가 한동안은 메이저리그 최고의 3루수로 불리었지만 알다시피...
  12. 이 과정을 보면 토미 라소다와 폴 디포테스타의 다저스 내 권력투쟁에서 라소다가 승리해 디포테스타가 다저스를 떠나자 그가 데려왔던 최희섭은 얼떨결에 휘말려 이도저도 아닌 입장이 되어 이적을 빙자한 쫓겨남을 당했다. 물론 자신이 잠재력을 살리지 못하고 계속 기량이 정체되었던 것이 가장 주요한 이유다.
  13. 사실 이건 푸홀스가 마이너리그에서 너무 짧은 기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푸홀스는 마이너리그에 얼마 머물지 않고 바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고, 드래프트 랭킹도 낮았기 때문에 당시 굉장히 저평가 받은 상태였다. 때문에 실제로 최희섭이 가장 많이 비교된 타자는 한국에서나 이야기가 많은 푸홀스가 아니라 애덤 던이나 카를로스 페냐이다.
  14. 2010 시즌이 끝난 후 자유계약선수로 시카고 컵스로 이적했다.
  15. 조범현이 07,12,13 제외하고 03부터 11년간 프로야구감독을 맡아왔지만 최희섭같은 사례는 없었다.
  16. 상술된 바, 최희섭은 수비 시 투수와 부딪혀 넘어지며 뇌진탕을 당했고, 후유증이 나름대로 있어서 DL까진 안 오르더라도 꽤 많은 경기를 결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크보 팬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이는 김태균이 홈 쇄도 하다 뇌진탕 증상을 입고 고생한 것과 같다.
  17. 사실 최희섭의 키가 5cm만 작았더라도 악송구가 되었을 공이 상당하다. 특히 김선빈이 덕을 가장 많이봤다.
  18. 무등야구장 뒤편의 교회를 넘어갔다는 얘기도 있다.
  19. 짐짝이라며 욕만 먹던 김주형과는 달리 만루홈런까지 터뜨리기도 하며 1루 구멍을 훌륭하게 메꿔주고 있다.
  20. 김상현의 우익수 쪽 펜스 맞는 2루타. 조금만 넘어갔으면 홈런이 될 상황이었다.
  21. 사실 요로결석은 입원을 꼭 해야 할 정도로 심한 질병은 아니다. 물론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종합병원에서 진단을 받아서 입원 권유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돈 벌려고
  22. 홈 경기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 문구도 '빅 초이'이다.
  23. WBC로 병역혜택을 받고 훈련소에 입소하는 최희섭의 모습을 실은 인터넷 뉴스 기사에 한 네이버 이용자가 '동네 바보 형 같다'고 리플을 단 데서부터 비롯되었다.
  24. 프로야구 선수의 계약기간은 2월부터 11월까지. 보수도 그 기간에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