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Shamrock
국적 | 미국 |
종합격투기 전적 | 35전 23승 10패 2무 |
승 | 2KO, 14서브미션, 5판정, 2실격 |
패 | 4KO, 2서브미션, 3판정, 1실격 |
생년월일 | 1972년 12월 8일 |
신장 / 체중 | 178cm / 84kg |
주요 타이틀 | 무차별급 잠정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 |
UFC 초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 |
WEC 초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 | |
Strikeforce 초대 미들급 챔피언 |
종합격투기계의 전설로 MMA 역사상 컴플릿 파이터라는 개념을 정립시킨 기념비적인 선수이다. 라이온스덴의 수장인 켄 샴락의 동생이며, 고아 출신으로 격투계의 정점에 오른 드라마틱한 인생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관련항목 : UFC 역대 챔피언 |
1 전적
- 주요 승 : 바스 루튼, 스즈키 미노루(2), 후나기 마사카즈, 버논 화이트, 야나기사와 류지, 코사카 츠요시, 엔센 이노우에, 케빈 잭슨, 이고르 지노예프, 제레미 혼, 존 로버, 티토 오티즈, 엘비스 지노식, 브라이언 파르도, 세자르 그레이시, 필 바로니
- 무승부 : 알란 고에즈, 타무라 키요시
그가 격투기를 시작한 것은 형인 켄 샴락의 영향을 받아서였다. 1994년 22세의 나이로 Pancrase에 데뷔한 프랭크는 1994년 12월 바스 루튼을 상대로 판정승을 거둔다. 이후 후나기 마사카즈, 스즈키 미노루 등의 선수들과 승패를 주고받은 샴락은 1996년 1월 Pancrase - Truth 1에서 스즈키 미노루에게 니바승을 거두며 킹 오브 판크라시스트의 자리에 오른다.
하지만 1996년 5월 바스 루턴과의 3차전에서 패하면서 타이틀을 내주었고, 곤도 유키 등에게 연패를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형인 켄 샴락과의 불화설이 돌기도 했는데, 결국 프랭크가 Pancrase와 라이온스덴을 탈퇴하기에 이른다.
1997년 Pancrase를 나온 프랭크는 Rings, WPC, VTJ 등을 전전했는데, 이 시기에 코사카 츠요시, 엔센 이노우에[1] 등을 쓰러뜨리기도 했다.
그리고 1997년 12월 UFC Japan에 모습을 드러낸 프랭크는 고공행진을 이어가게 된다. 케빈 잭슨을 16초만에 암바로 정리해버리며 초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후 1998년 3월에는 이고르 지노예프를 역시 22초만에 슬램으로 실신시키며 장중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다. 이후 제레미 혼, 존 로버 등 도전자들을 모조리 정리해 버렸다.
1999년 9월 UFC 22에서는 티토 오티즈를 상대로 4차 방어전을 가졌다. 티토는 예전부터 끊임없이 프랭크와 라이온스덴을 도발하고 있었고 마침 UFC 19에서 라이온스덴의 간판이었던 가이 메츠거를 꺾고 상승세를 타고 있었기에 두 선수의 대결은 일종의 자존심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감정적인 대립으로 인해 팬들의 열기가 한껏 고조된 가운데 경기가 시작되었다. 프랭크와 티토의 체격차는 상당한 것이었고,[2] 파워에서 앞선 티토는 프랭크를 깔아뭉갠 채 유리하게 경기를 주도해갔다. 하지만 프랭크는 가드에서 끈덕지게 티토를 물고 늘어지며 체력전으로 끌고갔고 4라운드 체력이 떨어진 티토를 그라운드에서 엘보우로 가격해 탭을 받아냈다.
티토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프랭크는 UFC 22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다. UFC와의 계약에서 불협화음이 있었고 이때문에 결국 MMA 커리어를 접어야 했던 것.
그리고 2000년 12월 K-1 무대를 통해 복귀를 선언한다. 2003년 3월에는 WEC에서 브라이언 팔도를 쓰러뜨리고 WEC 초대 라이트헤비급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3월에는 Strikeforce에서 세자르 그레이시와 대결, 오랜 기간 대립하며 감정싸움을 벌였던 시저를 21초만에 펀치로 초살시키며 예전 그대로의 위용을 과시하기도 했다.
2007년 2월에는 Elite XC에서 헨조 그레이시와 싸웠지만 다소 지루한 경기 끝에 그라운드 니킥으로 반칙패를 당했다. 2007년 6월 돌아온 Strikeforce에서 필 바로니를 리얼네이키드 초크로 꺾으며 미들급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오오 노익장.
하지만 2008년 3월 산타파이터 쿵 리에게 일격을 당하며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변칙적이면서도 다채로운 리의 킥공격에 난타당한 끝에 3라운드에 오른팔이 부러지며 TKO패가 선언되었다. 2009년 4월에는 시저 그레이시 문하의 닉 디아즈와 맞붙었으나 거의 관광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2010년 6월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2 파이팅 스타일
시대를 앞서간 웰라운드 파이터로 흔히 알려진 '프로토타입'이라는 별명대로 컴플릿 파이터의 시대를 연 선수로 평가받는다. 라이온스덴의 슛파이터로 하체관절기를 비롯한 그래플링에 능했으며 이를 수준급의 타격능력과 조율하며 경기를 주도하는 모습은 웰라운드의 시초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조르쥬 생 피에르, BJ 펜은 그로부터 바톤을 이어받아 그래플링 베이스의 웰라운더 시대를 열었고 이는 2010년대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약점이라면 체격이 작았던 것을 들 수 있다. 다만 180cm에 못미치는 신장으로 초창기 무차별급과 라이트헤비급에서 정상에 올랐으니 대단하다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겠다. 컴플릿 파이터의 시초임과 동시에,무차별급시대의 마지막 세대라 할 수 있다. 선수생활 마지막을 웰터급으로 뛰었던 사람이 라이트헤비급에서도 사기체격인 티토 오티즈를 제압한 건 실로 대단한일.
3 기타
본명은 프랭크 알리시오 후아레즈 3세. 고아 출신으로 유년 시절을 고아원에서 보냈는데 꽤 문제가 많은 아이였다고 한다. 이를 양부인 밥 샴락이 거두었는데 형인 켄 샴락도 프랭크와 마찬가지로 밥에게 입양된 고아다. 즉 켄과 프랭크는 피가 섞이지 않은 형제. 근데 엄청 닮았다
켄 샴락과 Pancrase 시절 갈등을 겪은 후 사이가 매우 나빠졌다.
켄 샴락은 wwf로 간 뒤 소속 체육관이던 라이언스덴의 운영을 프랭크 샴락에게 맡겼고, 갑작스레 체육관의 운영을 맡아 여러 골치아픈 일들을 떠맡게 된 프랭크 샴락은 큰 불만을 품게 된다. 결정적으로 둘 사이가 틀어진 계기는 프랭크 샴락이 소속짐이자 계약에 관한 전권이 일임되어 있는 라이온스 덴을 제껴버리고 직접 UFC와 계악한 것이었다. 켄 삼락은 불같이 화내며 컴퓨터 모니터까지 집어던져가며 프랭크 샴락을 닥달했고, 프랭크도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친다. 그 길로 프랭크 샴락은 켄 샴락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UFC 16에서 이고르 지노예프에게 거둔 22초 슬램 KO승은 명장면으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이 일격으로 지노예프가 선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리게 되었기 때문에 MMA의 폭력성과 위험성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머리부터 떨어지는 슬램이었는데, 충돌하는 순간 지노예프의 머리가 바닥과 샴락의 어깨 사이에 끼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지금 이런 짓을 하면 반칙이며, 00년대 이후에는 대부분의 단체에서 머리부터 떨어뜨리는 슬램을 금지하고 있다.
당시 아마추어 레슬러였던 댄 헨더슨을 그래플링 대회에서 힐훅으로 이기면서 헨더슨이 종합격투기 선수가 된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IFL에서 트레이너로도 활동한 전력이 있다.
매우 유쾌한 사람이기도 하다(…)
과거 곽백수의 트라우마에서 종종 언급되었던 인물이다. 프랭크 삼락으로.
여담으로 격투기 선수 치고는, 아니 그 중에서도 수준급으로 잘생긴 편이다. 격투게임으로 말하자면 주인공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