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톨레마이오스 1세

Ptolemaios I
(BC 367 ~ BC 283)

마케도니아 왕국의 장군인 디아도코이의 한 사람이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초대 왕.

필리포스 2세 때 카리아의 총독인 픽소다로스가 마케도니아와 동맹을 맺기 위해 아르히다에우스에게 자신의 딸인 아다를 바쳤는데, 알렉산드로스 3세가 사람을 보내 자신이 아다와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 일이 필리포스 2세에게 보고되자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친구였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하르팔로스, 네아르코스, 에리기우스 등과 함께 마케도니아에서 추방되었다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즉위한 후에 귀국했고 왕실 근무대로 임명되었으며, 알렉산드로스 3세의 원정에 종군해 기원전 333년의 이소스 전투에 참여했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죽자 이집트, 리비아를 차지했고 알렉산드로스 3세의 시신을 멤피스로 옮겨 석관을 안치하면서 제1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일어나는데, 페르디카스가 프톨레마이오스 1세를 공격하기 위해 이집트에 군사를 이끌고 갔지만 그 전에 페르디카스가 부하들에게 암살당하면서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페르디카스가 죽자 페이톤, 셀레우코스 1세, 안티게네스, 안티파트로스, 안티고노스 등과 트리파라디소스 협약을 맺으면서 페이톤, 부하인 아리다이오스에게 섭정을 맡기자고 제안했지만 다른 디아도코이들의 반대로 안티파트로스가 섭정이 되었다.

제2차 디아도코이 전쟁으로 안티고노스가 아시아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셀레우코스 1세가 안티고노스의 부관 1명을 처형한 일로 안티고노스가 셀레우코스 1세에게 바빌론에서 걷는 세금의 일부를 요구했고 셀레우코스 1세를 이를 거절했다가 후환이 두려워 바빌론에서 탈출해 이집트로 피신하자 받아들였다.

제3차 디아도코이 전쟁이 일어나 기원전 314년 봄에 안티고노스가 남부 시리아로 선제 공격하자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자신의 군사를 티레까지 후퇴시켜 1년간 막았지만 결국 빼앗겼으며, 셀레우코스 1세를 시켜 티레를 되찾도록 하면서 셀레우코스 1세에게 수백 척의 전함을 주고 로도스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안티고노스에게서 지원을 약속받고 협박을 받았기에 로도스에 거절당했다.

소아시아 남서부 해안의 카리아로부터는 협력받는 것에 성공했고 기원전 313년에 동생 메넬라오스를 시켜 해군과 전함으로 셀레우코스 1세를 돕게 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기원전 312년에 남부 시리아를 공격해 가자 전투에서 데메트리오스 1세를 이기고 시돈을 점령해 남부 시리아를 되찾았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셀레우코스 1세가 바빌론을 되찾을 수 있도록 군사를 제공했으며, 안티고노스가 셀레우코스 1세와의 싸움으로 약해지면서 안티고노스와 화의를 맺었다가 기원전 309년에 안티고노스가 셀레우코스 1세를 공격하기 위해 동쪽으로 간 사이에 안티고노스의 킬리기아, 리키아, 카리아를 공격해 리키아, 카리아를 점령했다.

제4차 디아도코이 전쟁에서는 기원전 308년에 코린토스, 시키온, 메가라 등을 점령했고 기원전 305년에 왕을 칭했고 안티고노스의 아들 데메트리오스 1세가 로도스를 공격하자 지원군을 보냈으며, 프톨레마이오스는 로도스로부터 구원자라는 의미를 가진 소테르라고 불릴 정도로 존경받았다.

제5차 디아도코이 전쟁에서는 기원전 295년에 마케도니아에서 키프로스에서 가던 도중이었던 데메트리오스 1세의 부인인 필라를 사로잡았다가 잘 대해준 후에 마케도니아로 돌려보냈으며, 기원전 288년에는 그리스 쪽에 함대를 보내 폴리스들에게 데메트리오스 1세로부터 독립하라고 독려했고 리시마코스, 피로스와 협공하면서 데메트리오스 1세를 마케도니아에서 쫓아냈다.

기원전 285년부터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공동으로 통치하다가 기원전 283년에 사망했다. 디아도코이들 중에서 자연사한 몇 안되는 인물이며, 그는 저술 활동을 한 것이 있어 아리아노스가 그의 책을 기록에 인용했다. 게다가 2천년도 전 사람이고 전쟁터에서 살았다시피 한 인물인데도 80년이 넘게 사는 수명복도 있었다.

에우클레이데스(유클리드)의 명언인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이 이 사람한테 한 말이라고 한다. 에우클레이데스로부터 기하학을 배우던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좀 쉽게 하는 법이 없냐는 물음에 한 대답이다. 에우클레이데스와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동시대에 같은 도시에 살았음을 감안하면 상당히 믿을만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