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포스 2세

역대 마케도니아 왕조 국왕
아민타스 4세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3세
베르기나의 고분에서 발굴된 두개골 유골을 토대로 복원한 얼굴.[1]필리포스 2세의 상이 새겨진 황금 주화.

1 개요

Philippos II(BC 382~BC 336)
영어로는 Phillip II of Macedonia.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이자 고대 마케도니아의 기초를 다진 인물. 본인이 젋은 시절 볼모가 되어 테베로 갈 정도로 약소국이었던 마케도니아를 군사 개혁과 정복 전쟁을 통해 급성장시켰다.

크고 작은 전투마다 직접 현장에 나타나 지휘를 했고 그 때문인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과 전쟁을 하던 중에 부상을 입고 애꾸눈이 되기도 하였다.

2 업적

왕위에 오른 후에 군제개혁을 통해 병사의 정예화를 이루었다. 저 유명한 마케도니아의 팔랑크스가 바로 이분의 작품인데 사리사라는 매우 긴 을 고안하여 정면에서의 방어력을 극대화 시킨다. 이런 긴 창을 쓰게되면 자연스레 기동력과 측면 공격에 취약함을 보이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기병의 양과 질을 늘린다. 특히 왕을 호위하는 헤타이로이(영어로는 컴패니언-동료) 중기병은 그야말로 왕의 친구들과 혹은 가까운 인척, 또는 유난히 왕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용맹한 병사로 구성된 정예 기병 중의 정예였다. 훗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격파했을때 그가 직접 지휘한 기병대가 바로 이 컴패니언. 그러나 이를 최초로 고안한 것이 바로 이 필리포스였으므로 사실상 알렉산드로스의 눈부신 군사적 업적의 토대는 필리포스가 거의 다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에 대해 기록할만한 것은 장비를 국가에서 마련했다는 점.[2] 게다가 전투병이 직접 식량 등의 군장을 메고 이동해, 기동성을 늘렸다. 노예 등을 이용해서 식량 수송과 장비를 이동시켰던 아테네 문화권의 병사들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하지 못할 기행이었을 것이다.

호플리테스 위주로 싸웠던 기존 그리스 식 전투에 보조병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투창병, 궁병, 그리고 기병의 비율을 크게 늘린다. 이는 알렉산드로스가 그대로 계승하여 훗날 페르시아 원정때 기병을 보병의 1/6 에 해당되는 비율로 편성하끔 한다.

또한 그리스의 국가들과는 달리 1년에 12번 월급을 주고 일하는 직업 군인을 마련하였으며, 이 때문에 농한기 때만 전쟁을 할 수 있었던 그리스 국가들과는 달리 어느 때나 전쟁을 할 수 있는 상비군을 갖추었다.

이러한 여러 군제 개혁 덕[3]듣보잡 국가였던 마케도니아는 그의 지휘 하에 기존의 스파르타, 아테네, 테베를 모조리 꺾고 그리스 전체의 지배국이 된다. 그가 워낙 연전연승하자 마침내 그리스의 대장격이였던 아테네, 테베가 동맹을 맺고 카이로네이아 평원에서 맞서나 필리포스는 깨끗이 격파했다. 그리고 헬라스 동맹(코린토스 동맹)의 의장[4]이 되어 그리스(스파르타 제외)의 지배를 완전히 굳힌다.

그 뒤, 페르시아 원정을 계획하고 그 준비를 거의 다 마친다. 그러나 필리포스의 네 번째 아내인 올림피아스의 딸 클레오파트라와 에페이로스의 알렉산드로스 1세 간의 혼인잔치 중 극장에 들어설 때, 일곱 명의 친위대 중 한 명인 오레스티스의 파우사니아스에 의해 죽었다. 파우사니아스는 탈출을 시도했지만 다른 친위대들에게 추격당해 죽었다. 시기가 참 절묘했던 탓에 이 암살의 배후가 누구인가에 대한 많은 설들이 있다. 일단 그의 친척들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설도 있지만 평소에 별로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아내인 왕비 올림피아스와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암살당했다는 설도 있다. 심지어는 페르시아가 그를 두려워하여 자객을 보냈다는 설까지 나돌았지만 근거는 없다.[5]

3 평가

암살만 당하지 않았다면 페르시아 원정을 지휘하는 것은 어쩌면 알렉산드로스가 아닌 필리포스였을 수도 있었다. 물론 필리포스의 성격은 알렉산드로스에 비해 많이 현실적이었으므로 인도까지 원정할 정도로 우악스럽게 정복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몇 번 본때를 보여준 뒤 유리한 조건으로 강화를 맺을 수도 있고, 그리스를 상대로 보여준 것을 비춰볼 때 이것이 필리포스의 성격에 더 걸맞을지도 모른다.

학자들 중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보다 필리포스 2세를 더 높게 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사력은 사실 필리포스 2세가 다 만들어 놓은 것이고, 정치력도 필리포스 2세가 더 높다는 것. 다시 말해서 그가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복 전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쌓았고 그 활약이 없었다면 알렉산드로스 3세의 정복 등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흠좀무. 필리포스의 군사적 재능도 매우 뛰어난 편이었다.[6][7] 만약 필리포스가 알렉산드로스와 군사적 재능이 맞먹는다면 당연히 더 뛰어난 정치력을 가진 그가 알렉산드로스보다 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군사적 재능은 역사를 통틀어도 필적하는 자가 손에 꼽을 정도이므로 필리포스가 알렉산드로스만큼의 군사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지는 모르는 일이다.

4 대중 매체

상당한 업적에 비해서 대중 매체에서의 취급은 의외로 그다지 좋지 못하다. 일단 대부분 애꾸눈전투광과 같은 이미지를 달고 다니며, 여기에 더해서 아내와 아들을 학대하는 등 막장스러운 가장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아들과 아내와의 관계가 그리 순탄치않았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나름 근거는 있다.

2004년작 영화 알렉산더에서는 발 킬머가 연기. 아내인 올림피아스와 사이가 틀어지면서 급기야 새왕비를 들여[8] 아들도 낳게 되면서 점차 알렉산드로스와 사이가 벌어지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들의 능력과 열정을 잘 알고 있어 한때 손수 가르침을 주기도 하였으나 점차 의심이 많아져서 아들이 왕위를 노린다고 여기게 되었다. 애증이 뒤섞인 부자간의 관계를 잘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9] 알렉산더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10]로 아버지를 못미더워 하면서도 위대한 능력을 가진 필리포스를 우러러 보고 필리포스 또한 점차 장성해가는 알렉산더를 자신의 어리고 귀여운 아들이라기 보다는 재능있는 경쟁자로 인식하고 질투하면서도 동시에 후계자의 재능을 대견스러워 하고 키워주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1] 올림피아스의 사주를 받은 장교에게 암살당하기 직전에도 알렉산드로스가 어딘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혼자 개선식에 나가지 말 것을 권했으나 이를 무시하고 홀몸으로 광장에 들어갔다가 그대로 살해당하고 말았다.[12] 여담으로 알렉산더가 부케팔로스를 처음 타는 장면에서 좌에 파르메니온, 우에 클레이투스를 끼고 어깨동무를 하는데, 나중에 아들 자랑을 하며 왼쪽에 있는 파르메니온은 "아탈루스!"라고 부른다.

샨사가 쓴 소설 《알렉산더의 연인》에서는 연약하게 태어난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겨 아내와 아들을 마구 학대하는 등 심히 막장가장스러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당시 그리스인들의 성적 취향을 반영한 것인지 여색은 물론 남색을 탐하기도 하는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13] 작중 묘사에 따르면 아내인 올림피아스는 다른 나라의 공주였으나 필리포스 2세가 침략해오는 바람에 강제로 혼인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러한 어두운 과거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알렉산드로스의 경우에는 친아들이기는 하지만 생김새가 너무 여리다는 이유로 매우 괄시하기도 한다. 알렉산드로스가 아름다운 청년으로 장성한 후에는 마음을 돌려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게 된다.[14] 그 후로 아버지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던 알렉산드로스는 틈을 노려서 친구들을 시켜 암살해버리고 왕좌를 찬탈한다. 그러나 아버지를 살해하고 왕좌를 찬탈한 일은 평생의 콤플렉스가 되고 만다.

발레리오 마시모 만프레디의 소설 <알렉산드로스>에서도 대체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학식을 갖춘 문무겸비의 군주이나, 그리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발전한 신흥국 마케도니아의 군주답게 격정적이고 방탕한 마초의 면모도 엿보인다. 술을 퍼마시고 여색을 밝히는데다 수틀리면 사람이고 물건이고 때려부수고 박살내는 것이 예사라서 알렉산드로스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낼 때 미에자 아카데미의 아름다움을 필리포스가 묘사하자 알렉산드로스가 '헐, 아버지가 장미꽃의 아름다움을 말씀하시니 곰이 시를 읊는 것 같음ㅇㅅㅇ;' 같은 반응을 보일 정도(......).
다만 아들과의 관계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부드러운 편인데, 아탈로스의 딸 에우리디케를 후처로 얻으면서 올림피아스와 갈등을 빚고, 아들과도 멀어지지만 기본적으로 알렉산드로스는 물론이고 올림피아스에게도 기본적인 애정은 남아있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길러낸 알렉산드로스에게 미래를 맡길 생각은 죽을 때까지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본작에서 필리포스의 죽음은 필리포스가 억지로 빼앗은 그리스 신성회의에 속한 신관들과 그리스-마케도니아 일대의 여러 불만분자들의 합작품으로 암시된다. 다만 이를 파헤치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중간에 위협을 느끼고 손을 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는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이를 밝힐 수 있는 정치적 힘을 지닌 자는 올림피아스와 알렉산드로스 뿐인데, 올림피아스는 근본적으로 필리포스를 증오하는 상태였고, 알렉산드로스는 정복전쟁에 바빠서...(...).

이와아키 히토시의 만화 히스토리에에선 일단 용맹하고 우렁찬 제왕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여기서도 가정적인 모습은….
재미있는 것이, 필리포스는 에우메네스와의 첫 만남에서 안티고노스라는 가명을 댄다. 훗날 디아도코이 전쟁 때 에우메네스의 숙적이자 그를 죽이게 되는 장군의 이름이 안티고노스 모노프탈모스(Monophtalmos : 애꾸눈)인 것을 고려하면 심상찮은 등장장면이다. 팬들은 필리포스가 암살 위협에서 살아남아 도주하고 훗날 안티고노스로 이름을 바꿔 아들과 에우네메스에게 복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고 있다.

작중 필리포스는 오디세우스 신화에도 등장하는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싸이클롭스)에 비유되는데, 주인공 에우메네스가 동경하는 영웅상이 오디세우스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묘한 암시가 될지도.
  1. 이 유골이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
  2.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는 보통 남자 시민이 자비로 무기를 마련했다.
  3. 물론 필리포스의 군사적 재능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 그리스 국가들이 모두 사이좋게 몰락하고 있었다는 것도 간과하면 곤란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을 시작으로 코린토스 전쟁(기원전 395~386)등 갖은 전쟁을 겪으면서, 그리스 전체가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다. 여기에, 필리포스의 마케도니아가 슬슬 크기 시작하더니 그리스 전체를 먹어치워버린 것.
  4. Hegemon. Hegemony의 어원.
  5. 영화 <알렉산더>에서는 왕비 올림피아스가 필리포스의 암살 배후자로 묘사되었지만, 알렉산드로스 본인은 페르시아인들이 암살 배후자라고 주장하는 장면이 나온다.
  6. 이전 버전에서는 필리포스가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되어 있었으나, 사실 여러번 패배하기도 했다. 먼저 기원전 354년. 또는 기원전 353년에, 포키스군대를 이끄는 오노마르코스라는 인물에게 연거푸 두 번 패한 적이 있다. 당시 그리스에서 일어난 신성전쟁에 테살리아의 요청으로 개입했다가, 테살리아의 반대편에 있던 포키스에 패했던 것. 하지만 이듬해에 군대를 재편성해서 돌아와, 크로코스 평원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고 오노마르코스는 십자가에 매달았다. 한편 기원전 340~339년에는 항구도시인 페린토스와 비잔티움을 포위공격했지만, 해군이 없었던 탓에 아테네의 해상 지원을 저지하는 데에 실패. 결국 포위를 풀기도 했다.
  7. 이전 버전에는 이 각주가 달려있는 자리에 필리포스가 '당대 최강의 보병을 운영하고 있었던 그리스' 를 상대로 상당한 군사적 성과를 거두었다는 문장이 있었으나, 오해하지 말자. 필리포스는 쟁쟁한 그리스 국가들의 강력한 저항을 차례차례로 분쇄하며 세력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서로간의 오랜 전쟁으로 다 쓰러져가는 그리스 국가들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것일 뿐이다. 다만 필리포스의 군제개혁으로 마케도니아가 이전에 비해 몰라보게 강력해진 것은 사실이고, 그리스 국가들이 '다 쓰러져가' 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마지막 일격'을 가할 수 있었던 점도 재능의 일종이긴 하다.
  8. 참고로 오해하면 곤란한 것은, 마케도니아에서는 일부다처제의 풍습이 있었다는 것. 즉, 새 왕비를 들이고 아들을 낳는 것을 '막장' 으로 보면 곤란하다. 실제로 알렉산드로스 3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도 유일한 왕비는커녕 일곱 명의 왕비 가운데 한 명에 불과했고, 알렉산드로스에게도 이복형이 있었다. 다만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알렉산드로스 사후에야 알렉산드로스의 아들(알렉산드로스 4세)와 함께 공동왕(필리포스 3세)으로 즉위했다.
  9. 적어도 영화 속에서는 실제 역사상의 부자관계는 뒤로 하더라도 관객인 21세기 남자들이 이해할법한(그 중에서도 재혼이 사회적인 이슈인 미국에서 더더욱), 그들에게 설득력 있는 부자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게 심해지다보니 어떤 평론가는 알렉산더가 무슨 21세기 대학생이냐며 비아냥 거리기도...
  10. 단순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아니라 어머니 본인이 직접 부추기고 아버지와 경쟁시킨(...)
  11. They say already, "Philip was a great general, but Alexander is simply great.
  12. 게다가 이 장교가 몇년전 축제 중에 만취한 필리포스 2세와 친구들에게 겁탈당한 일로 원한을 품고 있었다(…).
  13. 몰래 젊은 청년과 성교를 나누기도 하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이를 훔쳐 보고는 충격에 빠지는 장면이 나온다.
  14. 그런데 작중 묘사를 보면 순수하게 부성애로써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성적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