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능선 전투


6.25 전쟁의 일부

1 개요

피의 능선 전투는 고지탈환전의 일부로 전투 당시 가 너무 많이 흘러 능선을 뒤덮었기 때문에 사상자가 너무 많았고 전투를 촬영하던 기자들에 의해 피의 능선(Bloody Ridge)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태극기 휘날리며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전투이기도 하다. 장소는 백마고지 전투와 마찬가지로 강원도에서 치러졌다.

2 배경

1951년 7월 개성에서 첫 휴전 회담이 열렸으나 결국 결렬되었다. 8월 중순이 되자 장마가 그쳤고,
미군은 장마 때문에 중단했던 공격을 재개하기로 한다.

3 전투의 전개

1951년 8월 18일, 한국군선제공격을 시작했다. 황엽 장군이 이끄는 제36연대가 미군의 공격지원 하에 공격을 시작했지만 인민군의 완강한 저항 때문에 점령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인민군이 매설해 놓은 지뢰 때문에 진격은 더욱 어려웠다. 황엽 장군은 지뢰의 파괴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단하고 지뢰 지대에 포격을 요청하였다. 오후 8시경에 포격이 시작되었고, 포격이 끝난 오후 10시에 돌격을 시도했으나 남은 지뢰들이 폭발하였고, 공격이 제대로 되지않자 철수했다.
계속된 공격에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자, 결과 황엽 장군은 결국 능선에서 가장 왼쪽인 983 고지의 전면 공격을 피하고 우회하여 공격하는 방법을 이용한다. 황엽 장군은 능선에서 가장 오른쪽의 고지인 773고지와 능선 가운데의 940 고지의 공격을 명령했다. 기습당한 인민군은 허점이 노출되어 후퇴하였고, 한국군은 8월 22일 983 고지를 점령하였다.황엽 장군은 983 고지의 방어를 미군이 맡아주기를 건의하였으나 미국은 거부하였다. 인민군은 22일 밤에 역습을 시도하였고, 26일에는 대규모 역습을 시도하였다. 결국 포위된 36연대는 후퇴하였다. 9월 초가 되도록 능선에서의 공격은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능선 왼쪽에서 공격하는 한국군과 오른쪽에서 공격하는 미군의 공격이 성공하자, 인민군이 점령한 983 고지는 포위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결국 9월 3일 인민군은 983 고지에서 후퇴하였으며, 미군은 9월 5일 오후 2시경 983 고지를 점령하였다. 후퇴한 인민군은 후방에서 전열을 가다듬은 후, 다시 전당의 능선 전투를 개시하였다.

4 대중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