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quot War
1637년 북아메리카 원주민 피쿼트 족과 뉴잉글랜드 이주민들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인디언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전투다.
뉴잉글랜드 초기 정착민들은 일반적으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서 옥수수, 콩, 감자, 호박 등의 작물을 기르는 방법이나 새로운 농사 기술들을 배우고 교역을 할 때에 그들과 파트너로 일하는 등 우호 관계를 유지했고 그들에게서 땅을 사거나 그들이 버린 땅을 통해서 이득을 보기도 했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에게서 그들의 문화나 종교를 배웠고, 그들 중에는 개종하거나 부분적으로 동화된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도 점점 다른 정착지들처럼 백인들의 토지에 대한 과다한 욕심으로 점점 양 인종 사이의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 이러한 갈등이 돌출된 이유는 뉴잉글랜드의 종교 지도자들의 원주민들에 대한 태도에 있다. 이들은 새로운 세계에서 신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에 원주민들이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로 인해 원주민들은 순식간에 고마운 이웃에서 야만인 이교도 취급을 받게 되었다.
이런 다툼은 코네티컷 강을 두고 본격화 되었다. 피쿼트 부족은 코네티컷 강을 이용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고, 정착민들은 이 코네티컷 계곡을 자신들이 차지하려 들었다. 정착민들은 이 근처 지역을 구매했다고 주장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였고, 피쿼트 족은 이에 대해서 반발하면서 대립이 시작되었다. 이 때 내러갠셋 부족과 피쿼트 부족에서 분리 된 모히칸 족은 정착민들의 편을 들면서 대립이 격화되었다.
결정적 계기는 영국인 정착민 한 명이 살해된 사건이었다. 사실 이 정착민은 백인 정착민들 간의 다툼으로 죽은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플리머스 의회는 이걸 모호크 족에 의한 살해라고 판결을 내려버렸다. 이전 네덜란드 정착민이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와핑거족 80여명에 대한 학살명령이 떨어졌던 것처럼, 정착민들은 피쿼트 부족에 몰려가서 살인범을 내놓으라고 주장했고, 당연히 그런 적 없는 피쿼트 족이 이를 거부하면서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1637년 영국 정착민 일부가 피쿼트 족에 대한 선공을 시작했고, 피쿼트 족 역시 정착지에 대한 공격으로 반격이 이뤄졌다. 결국 영국 정착민 병력이 모히칸 부족, 내러갠셋 부족과 연합해서 피쿼트 부족을 공격해서 마을을 잿더미로 만들고 300여명을 학살하면서 실질적 전쟁이 끝났다.
이 전쟁은 결국 정착지의 확장을 노리는 정착민들과 기존 영역을 유지하고 싶어했던 원주민들이 대립했다는 것, 이 과정이 악의에 가까운 모함으로 시작해서 실질적으로는 원주민들의 일방적 학살로 끝난다는 것, 이들에 대한 평가가 상당기간 원주민들의 약탈만 강조하는 등 불공정했다는 것 등 인디언 전쟁의 전형을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다. 사실 피쿼트 전쟁과 필립왕 전쟁 항목을 보면 인디언 전쟁의 주요양상은 거의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전쟁 과정에서 본래 600여명이었던 피쿼트 부족은 최소 500여명이 사망했으며, 나머지 인원은 도주하던중 추격당하여 죽거나 모히칸과 내러갠셋의 노예로 팔려갔고 피쿼트 부족의 영지는 모호크 족이 차지했다. 이 사건으로 피쿼트 부족은 사실상 절멸한 것으로 여겨졌으나, 1983년에 생존자들이 부족의 존재를 미국정부에 알리고 끈질지게 요구하면서 멸족이 취소되고 존재를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