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622년부터 1890년(혹은 1917년)까지 북아메리카에서 벌어졌던 북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과 미국 백인들과의 일련의 무력 충돌을 모두 통틀어 일컫는 말. 캐나다에서는 미국처럼 대규모 무력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2 전개
초기의 전쟁은 영국에서 북아메리카로 이주해온 식민지 개척자들과 인디언들 사이에서 벌어진 소규모 전투가 대부분이었지만 점차 식민지 개척지가 늘어나고 영토확장이 일어나면서 원주민들과의 전쟁은 점점 대규모로 치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백인들이 처음 왔을 때 북아메리카는 순수한 자연 그대로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는 태초 그대로의 신대륙이었을 것이라는 것인데, 사실은 이미 아시아같은 다른 대륙들과 똑같이 바글바글하게 사람이 들어찬 곳이었다. 이젠 하도 알려져서 그렇게 큰 오해는 아니지만.
서부개척 이후 이야기만 나오지만, 북아메리카 정착 초기부터 대립은 시작되었다. 물론 쌩초기는 애초에 정착기술도 없이 일단 건너온 정착민들이 원주민들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추수감사절 같은 모양새도 나오기도 했으나, 이건 말 그대로 쌩초기 이야기이다. 일단 원주민들의 도움이 없어도 정착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초기 자신들의 정착을 도왔던 바로 그 부족들을 공격했다. 인디언 전쟁의 가장 초기를 장식하는 피쿼트 부족도 그렇지만, 필립왕 전쟁으로 전멸하는 왐파노아그 부족이 없었던 메이플라워와 필그림의 존재는 제임스타운과 같이 역사속에서만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착민들은 이 두 부족을 모두 절멸로 몰아넣고 뉴잉글랜드 지역을 독차지한다.
남북전쟁 이후 골드러시와 서부개척 붐이 일어나면서 미국은 점점 서쪽으로 팽창하는 정책으로 나아갔고 이는 필연적으로 북미 서부에 사는 원주민들과 갈등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서부로 점점 유럽인들이 몰려옴에 따라 원주민들은 이에 거세게 맞섰으며 지역 민병대들, 미 연방군과 싸웠다. 미국인들과 원주민간의 전쟁은 주로 남서부 히스패닉계 주민들과 부족간의 싸움이 많았는데 이들은 수백년간 상호간 원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밀려렸다. 쉐리던이 주장한 들소떼 박멸을 통한 청야전술(…)이 큰 효과를 거두었다는 설이 있다. 결국 "인디언 보호구역"에 보호를 명목으로 한 감금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1890년, 운디드니 학살사건 이후 사실상 "인디언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20세기 초까지도 소규모의 전투가 가끔 벌어졌다. 미국 역사상 공식적인 최후의 교전은 1918년 1월 9일에 있었던 베어 밸리 전투지만, 이건 사실상 멕시코 인디언과 미군의 국경분쟁에 가까우므로 인디언 전쟁으로 분류하기 애매하다. 실질적인 최후의 인디언 전쟁 전투는 1898년 10월 5일 미네소타에서 벌어진 슈거포인트 전투. 이 전투는 인디언 사상자 없이 미군만 80명 중 16명이 죽거나 다쳤고 전사자 중에는 지휘관인 M. 윌킨슨 명예소령이 포함되어 있으며, 지역 내 분쟁 해소라는 당초의 작전 목적 달성에도 실패했으므로 미군의 완패로 간주된다(…).
인디언 전쟁은 백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원주민들을 자신들과 같은 존엄성을 지녔다고 인정하지 않은데서 출발한 전쟁이기도 했다. 사실 모든 인류가 같은 존엄성을 지녔다고 인정받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만민 평등 선언이 UN 출범 후에 나왔다는 것을 생각하자. 그리고 사회학에서는 걸핏하면 '주된 경우', '일반적인 경우'란 말을 써 가면서 평균에서 벗어난 데이터를 무시한다는 것을 생각하자(이 부분은 '학문'이라는 개념 자체의 특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회학에서는 다루는 대상이 존엄성이란 점에서 이런 관점의 문제점이 부각된다). 실제로 19세기 말 미국에서는, 미성년자의 법적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면 그들에게 가축과 같은 법적 권리를 주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미성년자들에게 가장 호의적인 의견이었다. 이 시기에는 백인의 의무나 명백한 운명과 같은 편의주의적이고, 도덕적 정당화가 줄을 잇던 시기였으니, 이 시기 미국에서 말하는 인권과 자유라는 것은 백인 성인 남성의 특권이라고 하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1]
본래 대륙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동부에서 서부로 밀려드는 개척자들, 원주민과 오랜 원한 관계를 가졌던 멕시코인들의 압박에 밀려 계속 거주지가 줄어들었기에 반발할수밖에 없었고 결국 엄청난 피해를 입어야만 했다. 물론 전쟁의 와중에 인디언들이 승리한 경우도 있기는 했으나 그러한 승리들이 결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북미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구는 한때 1천만명을 넘었다. 2천만명이 넘었다는 얘기도 있으나 각 부족간의 전쟁이나 기타 기아상황 등으로 유럽인들이 도착했을 당시엔 몇백만명 수준을 넘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 엄청난 인구가 "인디언 전쟁"이 끝났을 때 수십만으로 줄었다. 현재는 상당부분 회복하긴 했으나(250만명) 아직도 그 전의 인구수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인디언 인구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은 전쟁으로 인한 사망, 식량부족으로 인한 사망보다 백인들에게 전염병이 옮은 탓이 크다. 물론 전염병에 대한 저항력은 절대 식량부족에 따른 건강악화나 전쟁 같은 상황에 따른 스트레스와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이제 보호구역에 사실상 갇힌 채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들은 20세기 중엽까지만 하더라도 야만적인 족속으로 헐리우드 영화에 그려져서 두 번 죽는 비극을 겪기도 했지만 이후 미국 내에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미국 의회에서도 전쟁을 일으켜 원주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해 사과하자는 결의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2010년 5월 20일에는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이 과거 미국 정부에 대항해 싸우다 숨진 많은 원주민 부족 지도자들이 묻혀있는 워싱턴 D.C.의 의회묘지에서 체로키, 촉토, 무스코지, 포니, 시스턴 와페톤 오야테족 등 5개 부족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에 참석, 과거 원주민들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 및 폭력행위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사과하고, 원주민들에 대한 정책상의 잘못으로 그들이 현재 보호구역내에서 빈곤과 폭력사태에 직면하고 있는데 대해서도 유감을 표시하며 그들의 권익향상과 복지증진을 위한 미 정부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낭독하기도 했다.
얼핏 보면 원주민과 백인간의 전쟁으로 이 전쟁을 단순화시킬 수도 있지만 내막을 따져보면 상당히 복잡하다. 우선 전염병이 유럽인들의 진출보다 신속하게 퍼져나갔기 때문에 정작 유럽인보다 전염병이 더 많은 인구를 줄인 것도 있다. 이는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식민지화 때도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또 미국정부에 협력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공격한다거나, 부족간 분쟁을 중재하려 파견된 미군 병력이 공격측과 싸움이 붙어 본격적인 교전이 시작됐다든가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족간 갈등은 결국 개척과정에서 백인들의 침략으로 원주민들이 고유의 영토를 잃고 밀려나면서 지나치게 좁은 지역에 복수의 부족이 밀집되면서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기도하다.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 등장하는 수족과 포니족의 갈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천연두 등의 전염병으로 숨진 병사의 담요를 모았다가 원주민에게 선물로 주는 등 바이오 테러를 통한 인종청소를 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나쁜 짓은 참 시대를 앞서는 것 같다
캐나다는 미국과 달리 그럭저럭 원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냈다. 인디언 전쟁 중 상당수의 부족들이 선택한 도피지가 바로 캐나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캐나다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비록 미국처럼 무력충돌이나 일방적인 유혈 학살은 없었지만 자국내 원주민들을 거짓말로 속여 본래 살던 곳에서 황무지로 이주시키거나 어린이들을 부모와 강제적으로 격리시키는 등 캐나다도 원주민들을 탄압한 전례가 있다. 캐나다 출신의 영어 강사들의 말에 따르면 미국에서 흑인들이 받는 대우를잠재적 범죄자 인디언들이 받는다고 한다. 실제로 캐나다 감옥의 주된 수용 인종은 미국 원주민 들이라는 통계도 있다.
외계인 침공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 스페인 정복자와 같이 인디언 학살이 많이 언급된다. 즉 백인은 외계인, 인디언(원주민)은 지구인 이런식으로 자주 비유가 되곤 한다. 반대로 아바타처럼 인간에게 침략당하는 외계인을 원주민에 비유하는 영화도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에서는 입장이 역전되어 카지노로 떼돈을 번 원주민들이 사우스파크를 밀어버리고 자기네 카지노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려고 하는데 이에 반대해 시위하는 주민들을 쫓아내기 위해 담요에 사스 전염병[2]을 묻혀 선물하는 역지사지의 만행을 저지른다.
3 전쟁의 개요
- 식민지 개척기의 인디언 전쟁
- 미시시피강 동부의 인디언 전쟁(1775-1842)
- 치카마우가 전쟁(1776-1794)
- 북서 인디언 전쟁(1785-1795)
- 테캄세 전쟁(1811)
- 크리크 전쟁(1813-1814)
- 제1차 세미놀 전쟁(1817-1818)
- 블랙호크 전쟁(1832)
- 제2차 세미놀 전쟁(1835-1842)
- 미시시피강 서부의 인디언 전쟁(1823-1890)
4 관련인물
- 미국
- 아메리카 원주민
- ↑ 물론 공식적으로는, 일단 백인들도 원주민들(더 나아가 모든 유색인종)을 인간으로 본 것은 맞다. 에스파냐는 일찍이 자국령 내의 원주민들을 신민으로 받아들였으며, 미국의 남북전쟁에서는 노예제에 대한 도덕적 회의감 역시도 분명 주요한 원인이었다. 무엇보다도 유색인종을 인간으로 인정 안했다면, 선교사들이 세례 좀 주겠다고 온갖 개고생을 하며 오지로 달려갈 이유가 없다. 유인원에게 복음을 전한다는게 말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원칙적인 경우이고, 대다수의 당시 백인 소시민들은 원주민과 흑인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존엄성을 지녔다고 받아들이는 것을 힘들어했다. 당장 오늘날에도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흔한데, 19세기 이전의 사람들이면 오죽하겠는가.
- ↑ 사스에 걸린 벌거벗은 중국인들을 담요에 문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