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必死卽生반드시 죽으려 하는 자는 살고
幸生卽死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
오자병법 제 3편 치병(治兵)편이 출처로 전쟁터에서 장수의 마음가짐에 대해 기술한 내용이다. 전쟁터에서는 죽음을 각오해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요행히 살고자 하면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항상 필사적인 심정으로 싸움에 임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 비슷한 예로 손자는 손자병법 구지(九地)편에서 속히 싸우면 살아남아도 속히 싸우지 않으면 멸망하는 땅을 '사지(死地)'라 하고, 사지에서는 다만 싸워야 한다고 말하여 전장에서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난중일기에도 사용된 표현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난중일기에서는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아래는 그 전문이다.
정유년 9월 15일(명량 해전 전날)여러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약속하되, "병법에 이르기를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반드시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하였고, 또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오늘의 우리를 두고 이른 말이다.너희 여러 장수들이 조금이라도 명령을 어기는 일이 있다면 즉시 군율을 적용하여 조금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고 재삼 엄중히 약속했다.
도망가려 하면 반드시 내 칼에 죽을 것이다[1]
여기에는 부하들의 충무공에 대한 '신뢰'도 포함되어 있다. 즉, 상관인 충무공의 명령을 어기고 도주하면 전투에서 패해서 왜군에게 죽기 전에 먼저 군율로서 죽이겠지만,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상관을 신뢰하고 끝까지 죽음을 각오한 채 전투에 임한다면 싸움에서 이겨서 살 수 있다는 의미.
제3보병사단에서는 필사즉생必死卽生 골육지정骨肉之情이라는 구호로 바꿔서 여기저기서 사용하고 있다.(사단 구호라든가 연대 마크라든가)
가끔 몇몇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오히려 죽으려 하는 자보다 살고자 하는 자를 더 높이 평가하는 묘사가 나오기도 하는데, 여기서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승산이 없는 상황에서 후퇴해 불필요한 피해를 최소화 하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후자는 손자병법에서도 '상황이 불리할 때는 처음부터 전투를 피해야 한다', '무능한 장수는 일단 싸움을 한 뒤에 요행수로 승리를 바란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승패의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하고 유불리에 따라 전투의 여부를 결정해야 함은 당연한 것이며, 분명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인데도 도망쳐 살려고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이다.
이 幸生卽死에서 "요행히 살고자 하는 자"는 '싸움에서 도망쳐 운좋게 살려고 하는 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실제로 고대의 전장에서는 무작정 도망가는 것이 더 위험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등 뒤로부터의 공격에서는 완전히 무력하기 때문. 무질서하게 흩어져서 도망치면 적에게 무력하게 소탕당할 뿐이다. 대부분의 고대전에서는 무질서하게 패주할 때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다고 한다. 이러한 행태는 한참 후인 나폴레옹 시대에도 보였는데, 주로 기병대가 도주하는 적군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사상자가 쏟아져 나왔다. 즉, 추격 후 섬멸의 단계에서는 고금을 불문하고 대량의 사상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대에선 적전 도주를 반역죄 수준으로 엄히 처벌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한번 적전 도주를 시작하면 그 분위기가 순식간에 전염되어 무질서한 패주로 이어지고, 이는 단순한 패배가 아닌 군 전체의 섬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꽤 간지나는 명언이기 때문에 군부대 정훈교육에서 가끔 언급된다. 그리고 월드컵 당시 모 사단장은 "대~한민국" 박자에 맞추어 저 말을 외우라고 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