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 세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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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節子 (1920 - 2015)
<키네마 준보> 선정 "20세기 일본 영화 여배우 1위"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일본의 여배우. 현대에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과 같이 출연한 만춘(1949), 동경이야기(1953) 와 같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오즈 야스지로 영화를 상징하는 착한 딸, 착한 며느리로써의 모습을 보여주어서 '영원한 성처녀' 라는 이미지로 유명. 만춘(1949)에서는 홀아버지 때문에 시집을 가려하지 않는 노처녀 [1], 동경이야기(1953)에서는 2차대전에서 남편을 잃고도 시부모를 정성을 다해 모시는 둘째 며느리 등 일본 홈드라마에서의 '착한 딸/며느리'의 이미지를 영원히 굳히게 되었다.

1937년 독일과의 합작 영화인 <새로운 대지>를 통해 데뷔하여 2차 대전 전에 이미 일본의 최고 인기 여배우로 군림하였다. 그 이후 전후에도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아키라, 나루세 미키오와 같은 1950년대 일본영화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많은 작품에 출연하였다. 참고로 구로사와 아키라우리 청춘에 후회 없다백치 등에서 풍기는 인상은 오즈 야스지로 영화에서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만춘'에서의 모습. 은근 글래머

그녀를 짝사랑하던것으로 알려진 오즈 야스지로가 암으로 사망한 1963년 이후 갑자기 은퇴하여 도쿄 인근 가마쿠라에서 독신으로 은둔생활하며 대중에게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2] 매스컴의 노출을 워낙 철저하게 차단하고 살았기에 하라 세츠코의 존재 자체가 일본 영화계 최대의 수수께끼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3] NHK의 보도에 따르면 2015년 9월 5일에 이미 타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보도가 나온 게 49재도 한참 지나서인 11월 25일(...). 생전에 본인이 자신이 죽더라도 절대로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지 말아달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에 관계자들이 의도적으로 주변에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전에 워낙 철저히 은둔생활을 한 탓에 은퇴이후의 자료가 전무하다시피 해서 매스컴에서 사망소식을 보도할 때도 현역시절의 흑백사진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하라 세츠코의 일화는 콘 사토시 감독이 2001년에 제작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천년여우의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물론 천년여우의 주인공인 치요코와 하라 세츠코의 이미지는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데, 천년여우의 치요코는 시대극에서 SF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연기력을 자랑하는 배우로 묘사되지만, 하라 세츠코는 당대의 인기를 양분하던 대배우인 다나카 기누요라든가 다카미네 히데코 등에 비하면 사실 연기의 폭은 좁은 편. 김태희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좀 발연기일지도

후지모토 겐지에 의하면 북한김정은의 어머니인 고용희가 하라 세츠코를 많이 닮았다고 한다.
  1. 1960년작 '늦은 가을'(가을햇살) (秋日和)은 일종의 리메이크작인데, 여기서도 출연하였다. 단 여기서는 미망인으로써 어머니 때문에 시집을 가지 않으려는 딸을 시집보내고자 하는 어머니 역으로 나온다
  2. 은둔 후에 가끔 동료 장례식장에 모습을 드러내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이였고 매스컴 노출을 매우 꺼렸다. 류 치수 장례식 때 몰래 온 게 포착된 이후로는 대외 활동 자체가 없다. 그나마 사진 있는것도 비공식적으로 도촬한 것. 인터뷰도 1973년 전화 인터뷰가 마지막이다.
  3. 이러한 은둔 성향에서 유래한 별명이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