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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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건설사.

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급성장한 회사로 휴플러스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유명하며, 8~90년대에 한신코아(현 세이브존)라는 백화점도 운영했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 크리맞고 흑역사가 되었다. 한신코아 브랜드는 백화점 뿐만 아니라 잠실 한신코아 같은 일부 고급아파트나 오피스텔에도 사용된 바가 있는데 한신코아 브랜드는 아파트에서는 널리 쓰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파트 업계에서는 이른 시기에 고급 브랜드 마케팅을 도입한 것으로, 한신코아 아파트 브랜드의 파생형으로 부산지역 향토기업과 합작하면서 부산지역 한정으로 쓰이던 그린코아도 있다.

1970~80년대 당시 한신공영의 회장이 부도 이전의 뉴코아의 회장의 장인이다.[1] 뉴코아는 뉴코아백화점(현 뉴코아아울렛), 킴스클럽 등을 세우며 재벌이 되었지만 1997년 외환 위기때 부도가 나고 이랜드그룹에 인수된다.[2]

2002년에 건설부문만 따로 분리되어 코암시앤시개발이라는 중견기업[3]에 팔려가면서, 2010년대 현재는 아파트만 건설하고 있다. 그나마 건설부문만 살아남은게 다행이다. 코암시앤시개발로 인수될 당시에 언론에서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평하였으며, 한신공영에 오랬동안 있었던 중역들은 그래도 한때는 대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인지는 몰라도, 지방 중견기업에 인수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1970~80년대 당시에는 강남개발을 주도하면서 현대, 우성, 삼익, 삼호, 한보, 한양 과 더불어 잘나가는 1군 메이커 아파트로 유명했고 1976년~1984년에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 대규모 브랜드 타운이 만들어지기도 할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으나 중동진출 실패로 인해 휘청거리기도 하고 산업합리화대상업체로 지정되면서 어려움을 겪다가 1990년대 초반에 겨우 정상화 되어 흑자를 보나 싶었는데 IMF 사태때 부도 나버리고, 그 와중에 삼성물산 래미안, GS건설 자이 같은 대기업 아파트 브랜드들이 고급화로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전성기시절 라이벌이었던 주식회사 한양과 함께 현재는 평범한 브랜드 이미지가 되어버렸는데 지금은 주식회사 한양과 비슷한 도급 순위 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래도 아예 기업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잊혀진 우성, 삼익, 삼호, 한보보다는 상황이 낫지만...

이 기업의 잘 안알려진 또 다른 흑역사로 학교법인 한신학원[4]이 있는데, 1970년대에 반포동 일대에 아파트를 대량으로 지으면서 한신공영은 엄청난 부를 쓸어담았지만 그 이면에는 특혜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댓가로 반포동 일대에 초등학교, 중학교 용지를 기부채납하기로 했으나 막상 기부채납을 하게 되자 그 부지가 아까웠던 한신공영은 꼼수로 그 자리에 사립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만들어서 계속 가지고 있으려고(...)[5] 학교법인 한신학원을 1978년에 설립하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눈가리고 아웅이다보니 얼마 안가 그 속셈이 들통 나면서 결국 학교법인 한신학원은 1980년경에 해체되고 약속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부지는 기부채납이 이루어지면서 결국 그 자리에 반원초등학교경원중학교가 공립학교로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워낙 불순한 목적으로 설립된 학교법인이다보니 만약에 그 사립학교들의 설립 인가가 났더라면 그것도 그것대로 특혜시비 같은 문제로 말썽이었을것이다.

여담이지만 삼성물산 만큼은 아니지만[6] 기업 규모나 수도권에서의 인지도에 비하면 유난히도 부산광역시(특히 동부산 지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던 건설업체이기도 했다. 1970년대 후반 중동지역 진출 실패로 자금난에 빠지면서 1987~1992년에 산업합리화대상업체로 지정되어 부산지역 진출이 매우 지연되었기 때문. 부산광역시에 한신공영이 처음 진출한것은 매우 늦은 시기인 1988년 11월에 부산지역 향토기업인 주식회사 삼정 및 반도종합건설과 합작으로 서부산권인 만덕에 1468세대 규모 대단지 그린코아 아파트를 공동 건설하고, 그와 동시에 근처에 소규모 저층 임대아파트 단지를 단독으로 건설한 것이 시초였으나(입주는 1990년~1991년), 본격적으로 단독으로 부산지역 아파트 사업에 뛰어든것은 1992년이었으며 그해 하반기에는 부산지역에서 처음으로 1408세대 규모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부곡동 경남한신아파트를 경남섬유로 부터 단독 발주 받기도 하였으며 이때 동부산 지역에 본격 진출 하였다. 1994년에는 부산지역 주택사업을 본격화 하기 위해 부산에 작정하고 현지법인을 만드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으나 워낙 부산 진출이 늦었기 때문에 당대의 라이벌이었던 삼익주택[7], 주식회사 한양이나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 선경건설(현 SK 건설), 현대건설(현 현대산업개발), 럭키건설(현 GS건설) 같은 유명 브랜드 아파트들은 물론이고 부산 향토기업으로 홈그라운드 버프를 받던 동원개발, 주식회사 삼정, 반도종합건설에도 인지도에서 밀릴 정도[8]인데다가 이미 부산에는 한신주택[9]이라는 비슷한 사명의 건설업체가 1970년대 후반에 훨씬 먼저 들어와서 연립주택과 아파트를 동부산 위주로 워낙 많이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부산 사람들은 한신아파트 하면 한신공영 보다는 한신주택을 떠올릴 정도이며 지금도 부산에서 한신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아파트들은 한신공영에서 만든 것 보다 한신주택에서 만든게 더 많이 남아있다. 그래도 1990년대 중반이 되면 부곡동 대단지인 경남한신아파트(1995년 입주)의 성공 및 부산 중심지인 서면의 대양고무 부지에 서면 한신아파트 발주를 따내서 분양하고, 고급 주거지역인 사직동에서 사직한신아파트를 분양하면서 부산지역에서 나름대로 메이커 아파트 브랜드로 자리 잡는듯 싶었는데, 몇년 지나지 않은 1997년에 IMF 사태로 부도가 나면서 다시 안습화 되고 말았다. 결국 부산진출 타이밍이 따라주지 않았던 것. 그래도 부도 이후에 워크아웃을 거치고 주인이 바뀌면서 어느정도 재기하여 부산에 재진출해 서부산지역에서 휴플러스 브랜드로 아파트를 계속 짓고 있기는 하지만, 동부산지역에서 여전히 힘을 못쓰는것은 매한가지이며 삼성물산이 한동안 부산지역에서 시망 상태가 되었다가 2014년에 장전 래미안으로 부산지역 재진출에 대성공하여 대단지 아파트들을 계속 만들어내는것과 대조 되기도 한다. 아마도 주인이 바뀐 이후에는 부산지역에 크게 관심이 없는듯....

여담이지만 부산 향토기업 건설업체인 주식회사 삼정의 아파트 브랜드 삼정그린코아의 기원이 이 회사이다(...) 본래는 한신코아 브랜드의 연장선이자 파생형으로 한신공영, 주식회사 삼정, 반도종합건설 3사가 합작해서 만든 만덕 그린코아에서 유래된 부산지역 한정 브랜드였고 그린코아 브랜드를 주식회사 삼정과 공유하기도 했지만, 한신공영이 부도난 이후에 파트너였던 주식회사 삼정 단독의 고유 브랜드가 된것. 아이러니하게도 한신코아 브랜드는 아예 사라지지 않고 다른 회사로 넘어가서 브랜드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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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뉴코아의 부도 후 뉴코아 전 회장은 더이상 뉴코아의 회장이 아니다. 그냥 이랜드 회장이 뉴코아 회장이라고 봐야 할 듯.
  2. 그래서 뉴코아아울렛 등 '뉴코아'의 이름이 붙은 곳에는 애슐리와 같은 이랜드그룹의 계열사들이 들어서 있다.
  3. 전북 소재 협승토건이라는 지역 건설업체(한때 메이커아파트였다가 망한 우성건설과 친척관계였다고 한다)가 코암시앤시개발이라는 컨소시엄을 만들어서 인수하였다고 한다.
  4. 특이하게도 법인명의 한자어가 韓信學園이 아닌 韓信學 이었다. 일반적으로 학교법인의 한자어는 學院이 아닌 學園으로 끝난다는것을 생각하면...
  5. 사립학교 형태로 설립하면 한신공영 입장에서는 추후에 어떻게 해서라도 해당 부지들을 다시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이쪽의 경우는 부산지역에서 그런대로 잘 나가는듯 싶었다가 구포 무궁화호 열차 전복 사고의 주요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부산에서 한동안 완전히 시망 상태가 되어버렸고 이후에 전개될 부산지역에서의 많은 계획들이 아예 엎어져버렸다.
  7. 1970~1980년대 부산지역에서 가장 알아주던 아파트 브랜드였으며 특히 남천동의 삼익비치로 대표되는 삼익시리즈는 부산지역 최초의 브랜드 타운이었다.
  8. 부산지역 최초 진출때 향토기업과 합작한 전략을 쓴 것이 이러한 이유였다. 울산이나 광주같은 타 지역에도 최초 진출때는 향토기업과 합작하는 전략을 사용했다.
  9. 이름은 비슷하지만 이 회사의 마크는 머큐리 자동차 앰블렘과 비슷하기에 눈썰미가 있으며 쉽게 구분 할 수 있었다. 이 회사 역시도 한신공영과 비슷한 시기에 망했으나 한신공영은 그래도 건설사업부만 따로 팔려가서 살아남은것과는 달리 이 회사는 그냥 아예 망해서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