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케

平家

1 개요

타이라노 키요모리를 중심으로 한 '이세 헤이지(伊勢平氏)' 일족의 정권을 가리키는 말. 호겐의 난(保元の乱)과 헤이지의 난(平治の乱)에서 승리를 거두고, 키요모리는 그 지위를 높혀 전국에 500여개의 장원과 각종 공경 벼슬을 독점하여 헤이케 정권을 형성한다.

헤이케는 해상 세력이기도 했는데[1], 대 송나라 무역을 독점하고 세토내해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현재의 고베에 무역을 위한 인공섬 쿄가시마(経が島)를 건설했으며, 역시 고베에 후쿠하라쿄(福原京)의 건설과 천도를 시도하기도 했다.

키요모리 사후 겐페이 전쟁에서 겐지 세력에 패배하며 멸망했다. 헤이케 측의 장원과 영지는 몰수되어 가마쿠라 막부를 따르는 무사들에게 재분배되었다.

각지에서 "헤이케의 도망자 전설"이 만들어지게 된다.

"헤이케가 아니면 사람이 아니다"라는 유명한 고사가 바로 헤이케 정권 시기 때 나온 말이다.

2 여담

일본 역사학계에서는 가마쿠라 막부 이전에 헤이케 정권을 무가 정권의 선도적인 형태로 파악하기도 한다.

이를 다룬 문학으로 헤이케모노가타리가 있다. 13세기에 성립된 이래 수많은 문학과 회화, 연극 작품 등에 영향을 주었고 현대에도 곧잘 주석본이 나오는 삼국지연의급 고전.
  1. 반면 헤이케의 숙적이었던 겐지는 척박한 간토 지방을 거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육상전에 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