遷都
노부나가의 야망 13탄에 대해서는 노부나가의 야망 천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목차
1 개요
천도(遷都)는 나라의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한 국가에 있어서 수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인데 이런 수도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는 것은 그만큼 나라의 중대사란 의미가 된다.
2 천도의 이유
2.1 외적의 침략
대부분의 경우 본래 있던 수도가 외적에 의해 침략당해 수도로서의 기능을 할 수 없거나 수도를 포함한 영역이 외적에게 침탈당할 경우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는 외부적인 요인이라 볼 수 있다. 한국사에서는 백제가 고구려의 침공을 받아 개국이래 수도였던 한강 유역의 위례성이 함락되고 한강 유역을 상실하면서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게 된 것,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주나라가 호경에서 낙양으로 천도하거나 초나라가 진나라(秦)의 위협을 피해 네 차례 수도를 옮긴 일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2.2 국가 발전이나 정치적 목적
외적의 침략이 없어도 수도를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는 한 나라의 통치자가 국가 발전의 전략차원에서 현재의 수도 입지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할 경우 그러한 국가 발전 전략에 알맞는 입지로 천도를 단행할 수 있으며 또한 국가 체제를 개편하기 위해 현 수도에 영향력이 큰 정치세력을 제거하고 새로운 수도에서 정치적 입지를 넓히기 위한 목적에서 천도를 단행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한국사에서 고구려 장수왕이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천도한 것이나 백제 성왕이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것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다른 경우는 새로운 왕조가 창건되거나 왕위 찬탈로 인해 기존의 세력이나 정통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도하는 경우가 있다. 조선의 한양 천도나 명의 북경 천도가 주 예로 볼 수 있겠다.
2.3 자연재해
꼭 외적의 침입없이도 다른 외부의 힘에 의해 수도가 타격을 받아 천도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연재해이다.홍수,지진등으로 수도가 큰타격을 받아 수도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거나 더이상 살기어렵다고 판단해 수도를 옮기게 된것이다.대표적인 경우가 중미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벨리즈.허리케인으로 수도가 타격을 받아 천도를 했다.[1]
3 천도의 빛과 그림자
천도는 한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인만큼 간단하지 않으며 그만큼 천도 과정에서 나라안에 극심한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소지를 안게 된다. 구 수도에 터전을 내린 기득권층이나 일반 백성들은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것을 꺼려하게 되기 때문에 당연히 반발하게 되며 이런 과정에서 정치적 변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반면 천도를 단행하여 나라의 체제를 새롭게 하여 새로운 중흥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사족으로 한국 한정으로 천도를 하면 나라가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천도를 한 경력이 있는 고구려와 백제는 삼국통일을 못하고 멸망한 반면, 천도를 전혀 안한 신라가 삼국통일에다가 천년 가까이 번영해서 그런걸로 보인다. 중국의 열국지에서도 초나라가 진나라의 위협을 피해 여러 번 수도를 옮긴 일을 주나라의 동천(東遷)과 싸잡아서 적을 피해 달아나면 그만큼 적을 불러들이는 일이라고 까는 시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다.
4 천도의 사례
시간순으로 기록.
4.1 한국사
- 고조선: 본래 고조선의 중심지가 요하 혹은 요동에 있다가 연나라의 침공으로 요동을 상실하면서 대동강 유역의 왕검성으로 옮기게 되었다는게 통설이나 기록이 그리 많지가 않은데다가 이때 정말 수도를 옮겼는지에 대해서도 기록이 없고[2] 그저 추측이나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존하는 수준이다.
- 고구려: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주몽이 최초로 고구려의 터전을 잡은 졸본에서 유리왕대에 국내성으로 천도하게 되었고 국내성에서 수백년을 지내다가 장수왕대에 이르러 남진정책의 일환으로 평양성으로 천도했다... 라고 하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고구려의 도읍이 여러 번 옮겨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장수왕 대의 평양성 천도를 제외한 다른 천도는 대략 천도 미만 이궁(移宮) 이상 정도의 뉘앙스라고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198년(산상왕 2년)에 환도성을 축조한뒤 209년에 이곳으로 천도했다고 한다. 246년에 관구검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함락되어 파괴되었는데 동천왕은 환도성의 백성들을 보기 부끄럽다고 하여 평양성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대체로 환도성은 평지의 국내성 인근에 있는 산성자산성으로 보는게 정설이며 평양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환도성 인근의 성으로 보는데 삼국유사에서는 안시성을 평양성으로 비정하고 있지만 정확치는 않다. 어쨌든 이후 국내성으로 돌아왔다가 고국원왕 때 전연의 침략에 대비해 환도성을 다시 수축하고 도읍을 옮겼지만 342년 전연의 침공으로 함락당하고 만다. 이후 국내성으로 옮겼다가 장수왕대에 평양성으로 천도하게 된다. 외적의 침략으로 국내성, 환도성을 오간것으로 보이는데 국내성은 평지성이고 환도성은 인근의 산성이기 때문에 크게 보아 국내에서 수백년간 도읍했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장수왕은 평지성인 청암리토성, 산성인 대성산성, 왕궁인 안학궁을 지었는데 이후 평원왕이 안학궁 서쪽에 나성을 두른 장안성을 건설하고 그곳으로 천도하게 되며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장안성을 도읍으로 삼게된다. 즉 졸본-국내성-평양성이란 고구려 역대 수도의 변천은 큰 줄거리를 말한것이고 국내성 기간중에 국내성, 환도성, 평양성을 오갔으며 평양성으로 천도한 이후에 안학궁+대성산성, 청암리토성 체제였다가 평원왕이 안학궁 서쪽에 나성을 두른 장안성을 축조하고 수도를 옮겼다고 볼수 있다. 장안성 이전까지는 고구려 특유의 평상시에는 평지성, 전시에는 산성으로 옮기는 체제에 따른 것이며, 장안성을 축조한 이후부터는 확고한 도성이 구축된 것.
뭔가 복잡한 것 같지만 넘어가자
- 백제: 건국당시 초기 수도는 서울특별시의 이곳 이었지만 근초고왕 때 '도읍을 한산으로 옮기다.'란 기사가 있는데 이 기사로 말미암아 한성(위례성), 한산(북한산성)으로 천도를 한 것으로 보이고 다시 5세기 장수왕의 남하정책때 고구려의 침입을 받아 개로왕이 전사하고 문주왕이 한성에서 웅진성(공주)으로 도읍을 옮겼고, 성왕이 부흥을 꿈꾸며 사비성으로 천도하였다.
위에 고구려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 조선: 개국 후 2년 뒤인 1394년에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그러나 1차 왕자의 난으로 인해 정종이 일시적으로 개경으로 환도하였고, 이후 태종이 점을 쳐서(...) 다시 한양으로 재천도한다.
4.2 중국사
- 북위: 효문제의 한화 정책을 위해 만리장성 인근의 평성에서 낙양으로 천도. 이 때 효문제는 송을 정벌하는 척 페이크를 써서 군대를 동원해 낙양에 진주한 뒤, 신하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형식을 통해[4] 천도에 성공한다.
- 금나라: 희종 때까지는 만주에 위치한 상경회령부에 수도를 두었으나,
희대의 막장해릉양왕이 한화 정책을 시도하기 위해 연경으로 천도하고 그 이름을 중도로 고친다. 이후 몽골 제국의 공격을 받고 선종 때 개봉으로 수도를 옮긴다.
4.3 일본사
4.4 유럽사
- 사르데냐 왕국: 본래는 사보이 공국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의 프랑스 사부아에 수도를 두었으나, 이후 나라가 팽창함에 따라 수도를 토리노로 옮겼다. 그 후에 이 나라가 이탈리아의 통일을 주도해서 통일에 성공하자 수도를 지금의 로마로 이전했다.
- 독일: 수도 이전(정확히는 부분 이전)을 결정하여 서독 시절 임시수도였던 본에는 환경 등 6개 부처만 남기고 외무 등 핵심 10개 부처를 현재의 수도인 베를린으로 이전했다. # 하지만 베를린은 1871년의 독일 통일 이후 독일 국민국가의 수도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수도의 '이전'이 아니라 '복귀(환도)'로 볼 여지가 많다.
4.5 서남아시아사
- 오스만 제국: 건국 후 1335년까지는 쇠위트, 1335~1363년 동안엔 부르사, 발칸 반도로 진출한 후 1453년까지는 에디르네, 1453년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후 최종적으로 콘스탄티노플에 천도한다.
4.6 기타
- 몽골 제국: 쿠빌라이 칸의 치세에 남송을 멸망시킨 후, 카라코룸에서 대도로 천도하고 원나라의 건국을 선포한다. 그러나 명나라의 흥성으로 인해 중국 대륙을 잃고 카라코룸으로 재천도한다.
- 브라질: 1960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천도.
- 미국:미국은 천도를 2번 했다. 독립 직후 수도는 뉴욕 시이었으나 1790년 필라델피아로 천도했고, 1800년에 현 워싱턴 D.C로 천도했다.
5 천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사례
역시 시간순으로 기록.
5.1 국내
- 대한민국: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시절 처음 주장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1977년부터 수도 이전을 추진하다가 1979년 10.26 사건으로 암살당하면서 무산되었다. 이 시기 가장 큰 이유는 국토의 균형발전과 함께 휴전선과의 거리문제였다. 서울은 장사정포 떡밥에 더해서 그게 아니라도 전시수도로는 문제가 많았다. 사실 이 시기는 북한과 전쟁이 벌어지면 서울은 일단 포기하고 후방에 지휘본부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수도" 개념이었고, 통일이 되면 다시 서울로 환도한다는 것.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행정수도를 충청남도 연기(현 세종특별자치시)·공주 일대로 옮기려는 시도를 했다가 여러 이유에 부딪혀 실패했다. 헌법재판소에서 서울은 관습헌법적으로 수도라는 위헌결정을 받아 폐기되었으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안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러나 이나마도 정권이 바뀌면서 세종시 떡밥 크리. 이 관습헌법론에 대해서는 논란이 컸다.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1.국가의 수도의 위치는 헌법사항이어야 하고[7], 2.수도는 서울이어야만 한다[8]는 국민들의 법적 확신이 필요하다. 일단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 이전계획은 일단 무산되었지만 적어도 남북통일시 통일 한국의 수도는 서울시가 아닌 다른 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여전히 간헐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특별시장 시절에 개성 통일수도론을 주장한 적이 있으며 고양시, 파주시, 철원군(...) 등 여러 지자체가 통일수도로는 자기 지역이 적합하다고 떡밥을 날린 적이 있다. 이에 대한 논란에 대해서는 통일 한국 문서의 수도 항목 참조.
5.2 해외
- 동로마 제국: 사산 페르시아의 카바드 2세의 공격으로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인근인 칼게돈까지 점령되자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자신의 근거지였던 카르타고로 천도하려 했으나 총대주교의 만류로 포기한다.
- ↑ [1]
- ↑ 정사 삼국지같은 중국의 문헌을 봐도 연나라가 조선을 침공해서 영토 2000리를 확보했다라고 나와있는 수준에 머물러있다.
- ↑ 오(삼국시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일은 손권 뿐만 아니라, 중국사 전체로 보아도 신의 한 수에 해당되는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건업은 당시 중국 최고의 꿀땅이던 형주에서 멀 리 떨어져 있어서 발전이 더딘 곳이긴 했으나, 그래도 미개발지가 대부분이던 양쯔강 이남에서는 그나마 가장 큰 대도시였던 곳이라서, 이후의 중국 남부의 개발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애초의 손오가 중국 경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조위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다.
- ↑ 정벌과 천도 중 어떤 것을 택할지를 물었고, 정벌보다 천도의 비용이 덜 먹힐 것 같았던 신하들은 천도를 지지했다.
- ↑ 덤으로, 중국사에서 유일하게 명나라만이 강남에서 일어나 화북까지 통일한 유일한 왕조이다.
- ↑ 참고로, 라고스는 나이지리아 경제의 발전과 더불어 매우 빠르게 산업화와 근대화를 이루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빈부격차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으며, 행정력에도 공백이 생겨 쓰레기를 관청의 청소행정 관련 부서에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인근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소각처리를 해서 해결하는 상황이다.
- ↑ 아니면 관습법이니까 신법이나 특별법 우선원칙으로 자동폐기된다
- ↑ '지금 현재 수도는 서울이다'로는 안된다. 이는 '사실인 관습'으로 법적인 의미가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