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4세

역대 잉글랜드 국왕
플랜태저넷 왕조랭커스터 왕조랭커스터 왕조
리처드 2세헨리 4세헨리 5세
왕호헨리 4세
(Henry Ⅳ of England))
별칭볼링브로크의 헨리
(Henry Bolingbroke)
생몰년도1366년 4월 3일 ~ 1413년 3월 20일
재위기간1399년 9월 30일 ~ 1413년 3월 20일
대관식1377년 7월 16일
서명

1 개요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자 그의 4남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블랜치의 삼남이다[1]. 사촌동생 리처드 2세로부터 해리퍼드 공작, 더비 백작에 봉해졌는데 아버지 곤트의 존이 실권을 쥐고 있을 때는 별 행동을 하지 않았다. 1386년 곤트의 존이 카스티야로 원정을 떠나자 헨리 4세는 정계에 입문해 리처드 2세에게 반대했다. 그는 토마스 드 모브레이와 함께 청원파의 일원이 되었으며 리처드 2세의 총신들을 범법자로 규정하고 왕에게 이를 강요했다. 이에 리처드 2세는 격노했고 이에 1390년 헨리 4세는 화를 피할 겸 리투아니아와 프로이센으로 십자군 원정을 떠났으나, 리처드 2세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1398년 리처드 2세는 헨리 4세와 노퍽 공작 토마스 드 모브레이와의 불화를 구실로 국외로 추방해 버렸다.

2 즉위

1399년 곤트의 존이 죽자 리처드 2세는 랭카스터 영지를 몰수하고 헨리 4세의 재산을 뺏았다. 그런데 아직 정국이 안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아일랜드 방문을 강행했고 이 틈을 타 헨리 4세는 잉글랜드를 침략해 뒤늦게 돌아온 리처드 2세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리처드 2세를 퇴위시켰다. 이어 헨리 4세는 즉위했으며 자신이 헨리 3세와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인 점을 이용해 왕위 찬탈을 정당화시켰다.

3 귀족들의 위협

하지만 결국 찬탈자였기에 몇몇 귀족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고 위협했다. 1400년 리처드 2세의 지지자들이 꾸민 음모를 막아내고 연달아 일어난 반란을 제압하며 상당히 고생스럽게 왕위를 유지했다. 헨리 4세의 건강이 나빠지자 헨리 4세의 이복동생이자 곤트의 존의 사생아 가문인 보퍼트 가문과 그의 후계자 헨리 왕자와의 파벌이 형성되었다. 이에 헨리 4세와 헨리 왕자의 사이는 나빠졌으며 몇 개월 후 헨리 4세가 죽고 헨리 왕자가 헨리 5세로 즉위했다.
  1. 하지만 장성한 자녀들로만 따지자면 곤트의 존은 에드워드 3세의 장성한 아들중에 3남이었고, 헨리는 곤트의 존의 장성한 아들중에 장남이었다.